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120조 산단 발목 잡기’에 ‘건축 허가 뒤집기’… 지자체장들 갑질
입력 2023-09-27 00:00업데이트 2023-09-27 08:52
크게보기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용수 인프라 상생협력 협약식에서 이한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앞줄 왼쪽부터)과 이충우 여주시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김성구 용인일반산업단지 대표이사의 협약서 서명에 박수를 치고 있다. 2022.11.21/뉴스1
지역 숙원사업 해결을 조건으로 내걸며 120조 원 규모의 국책 사업 인허가를 부당하게 지연시킨 경기 여주시장에 대해 그제 감사원이 ‘엄중 주의’ 처분을 내렸다. 전임 시장 때 허가된 사업을 선거 공약이라는 이유를 들어 백지화하려 한 경기 양주시장도 같은 처분을 받았다. 선출직 공무원에게 감사원이 할 수 있는 최고 수위의 조치다. 감사원은 두 사례를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알려 ‘반면교사’로 삼을 것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이충우 여주시장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이미 마무리 단계에 있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 관련 인허가 절차를 중단시켰다. 여주시를 지나는 남한강에서 공업용수를 끌어와야 하는데, 중앙정부와 경기도가 여주시 숙원 사업들을 해결해 주지 않으면 인허가를 내줄 수 없다고 버텼다. 지난해 11월 이 시장은 여주시에 산단을 조성한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인허가를 내줬다. 1만7000개 이상의 일자리와 188조 원 이상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이 지자체의 ‘물값’ 요구에 한때 제동이 걸린 것이다.
강수현 양주시장은 이미 건축 허가를 받은 양주 옥정신도시 물류센터 건설 사업을 지난해 7월 취임 직후 취소시키려 했다. 신도시 입주 예정자들이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민원을 넣었고, 자신도 허가 취소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는 이유였다. 공사를 위한 도로 점용 허가 신청도 법적 근거 없이 반려했다. 이 때문에 공사가 4개월 이상 지연되면서 시공사는 20억 원 이상의 손해를 봤다.
지자체들이 인허가권과 법령 유권해석을 무기로 기업을 압박하는 사례는 많다. ‘상생 협력’ 등의 명분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2019년 2월 발표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은 올해 6월에야 부지 조성에 들어갔다. 여주시의 몽니 외에도 환경영향평가, 산업단지계획 심의, 토지 보상 등으로 여러 차례 사업이 지연됐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은 전력 공급을 위한 송전선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5년이 걸렸고, 송전선 지중화 비용 750억 원도 기업이 부담해야 했다.
지자체들은 인허가 횡포가 아니라 지역 현안을 해결하고 주민의 이해를 대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국가적인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고 기업 투자가 활력을 잃으면 궁극적으로는 그 지역도 피해를 보게 된다. 진정으로 그 지역과 주민들을 위하는 지자체장이라면 이처럼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갑질 행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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