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표는 2월18일 대구시민회관 앞 광장에서 열린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 3주년 추모행사에 참석한 뒤 구미시 상모동(171번지) 부친의 생가를 찾았다. 이날 박대표의 동정에 관해 연합뉴스 등의 보도가 있었으나 현지 인터넷 매체 경북인터넷뉴스가 가장 상세한 보도를 헸다. 보도내용을 간추려 보았다.
대구에서 구미 생가는 자동차로 30여분 거리. 박대표는 대구, 경북지역 국회의원, 유정복 비서실장 등과 함께 생가에 도착, 김재학 생가보존회장과 김관용 구미시장, 박영언 군위군수, 김수남 예천군수 그리고 김태환 국회의원 등을 포함한 구미시 관내 기관단체장을 포함한 주민 1천여명의 환영을 받았다.
먼저 분향소에 들러 분향을 마친 박대표는 추모공원 조성 현황을 둘러보고 지역 주민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 자리에서 그는 인사말을 통해 “날씨가 풀렸지만 아직은 쌀쌀한데 이렇게 고향의 여러분들이 따뜻하게 맞아줘서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생가를 잘 지켜준 김재학 회장 및 여러분들에게 고마우며 특히 그동안 관심을 갖고 주변정리나 기념사업 등에 큰 힘을 싣고 관심으로 애써준 김관용 시장에게 특별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현안에 관해 “그동안 피땀 흘려 쌓아온 나라가 최근에 근본부터 흔들리고 모든 분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안타깝다. 저와 한나라당은 사명감을 가지고 반드시 우리나라의 기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를 튼튼하게 지켜내겠다는 각오를 가진다. 또한 경제를 크게 성장시켜 절망에 빠진 국가와 국민을 구해내야겠다는 사명감을 강력하게 느낀다. 국민들이 안심하고 편안할 수 있는 우리나라를 꼭 만들겠다는 결심을 이 자리에서 다짐한다”고 말했다. 김관용 구미시장은 “5천년의 가난을 끊고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역사를 만들어낸 고 박대통령의 정신이 어려운 시대를 지탱해 나가는 강력한 에너지”라고 말하면서 “혼백이 있다면 하늘에서 여러분과 박대표의 방문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박대표의 무궁한 앞날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힘찬 박수”를 부탁했다.
박대표와 함께 생가를 방문한 한 당직자는 “대통령 박근혜, 구호가 나올 정도로 지역 주민의 환영 분위기가 높았다”면서 "박대표의 인사말에도 평소와는 다른 결연한 분위기가 배어 나왔다”고 전했다. 이날 박대표는 정수장학회와 박근혜 팬클럽 회원들을 포함한 수많은 인파의 격려와 환호를 받으며 바쁜 일정에 1시간여의 부친 생가 방문을 마무리했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생가는 고 박대통령이 구미초등학교와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생가, 안채, 분향소, 관리사 등 4동의 건물이 있고, 고인이 사용하던 앉은뱅이 책상, 책꽂이, 호롱불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초가였던 안채는 1964년 기와를 얹어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하여 주거 및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으며 1979년 박대통령 서거 직후부터 응접실을 분향소로 이용하고 있다. 박대통령은 5남2녀중의 막내로서, 생가의 소유 및 관리자는 박대통령의 맏형 박동희씨의 장자 박재홍씨 명의로 되어 있고, 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1993년)로 지정되어 유족과 구미시에서 공동관리하고 있다. 생가보존회장 김재학씨는 마을 인근의 주민으로 초등학교 교장 출신의 교육자. 아주머니와 함께 2인이 생가를 지키고 있다.
생가를 찾는 인원은 1일 평균 수백명에서 1천명을 헤아린다. 대부분 전국에서 승용차, 승합차, 관광버스 등을 이용해 영남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거쳐가고 있지만 안내원은 없고, 방문객들이 스스로 분향소에 분향을 하고 고인이 사용하던 토방과 사진, 생가를 두른 대나무숲 등을 둘러보고 방명록에 기록을 남기는 게 일상의 모습이다.
수많은 방문객이 왕래하지만, 생가 운영은 원활치가 못한 편. 사무실에 사무요원이 없어 컴퓨터 같은 사무기기도 없다. 문자 그대로 ‘보존’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현재 추진중인 추모공원 조성사업과 구미시의 독자적인 기념관 건립 등 대규모 사업을 위해서는 생가 자체의 체계적인 업무가 요청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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