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40도를 오르내리던 달라스의 칠팔월이 조금씩 물러나며 새벽 산책길은 제법 선선하기까지 하다.
한여름을 나던 중에는 어린 날의 행복했던 여름날들이 자주 떠오르곤 했다.
기억의 시작은 검정고무신부터 시작이 된다.
여름 기억에 운동화는 없다.
벗기 편하고 신기 편한 검정고무신.
뒤축을 뒤로 접어 넘겨두고는 빼딱 구두라고 깔깔 웃던 어린 나도 기억 속에서 튀어나온다.
댓돌에 가지런한 고무신은 엄마 하얀 고무신이고, 마당 이쪽저쪽 내팽개쳐져 있는 고무신은 내 검정고무신.
여름 햇살에 탄 발등은 고무신 속에 숨은 발가락과 깜둥이 흰둥이 놀이를 하고, 세상에서 발과 신을 동시에 씻을 수 있는 신으로는 고무신이 유일했지.
고무신에 땀이 차 질적거릴 정도가 되면 펌프로 달려가 물을 퍼올렸다.
"아이고 차바라. 누부야 좀 살살 해라~."
펌프 아래 엎드려 지하수를 덮어쓰면 심장이 얼 것 같은 냉기에 소름 돋았고, 그 와중에도 혹 반바지 젖을까 봐 걱정했었다.
왼손 들어 오른 가슴 씻고, 오른손 들어 왼쪽 가슴 씻고, 머리는 통째로 들이밀어 두 손으로 감고... 누나가 허리에 감아 준 수건 풀어 몸 닦으면 어느새 여름 긴 해가 서산에 걸려있었지.
"엄마! 이거 수박 아이가?"
그제야 발견한 작은 다라이에 담긴 수박 한 덩이. 맛보라고 세모로 잘라 둔 조각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 내 몫이 아니어도 행복했었지.
"해 지기 전에 얼른 가서 얼음 사온나~."
딴 심부름은 귀찮아도 얼음 사는 심부름은 하나도 귀찮지 않다.
가람 형과 달려 나가 새끼줄로 묶어주는 얼음 한 덩이 사 오면, 집에서는 큰형과 누나들이 숟가락 하나씩 들고 수박 파기 바빴지.
"바늘 하나 가온나."
사온 얼음 잘게 깨기는 큰형의 몫. 바늘을 얼음에 대고 망치로 톡톡 치면, 그 단단한 얼음덩이가 화채에 넣기 좋게 잘게 잘게 부서져갔지. 사카린까지 털어 넣은 양재기에 담긴 수박화채, 보는 맛도 꿀맛이다.
"아부지는 와 빨리 안 오시노..."
아버지 먼저 맛보셔야 한다고 식구들 목 빼고 기다리는데, 아버지는 약주 한 잔 하고 오시는지 소식이 없고, 난 깜빡 잠이 들어 버렸는데...
"익아, 수박 묵고 자라."
수박이고 뭐고, 여름밤 단잠이 더 맛이 있을 즈음, 엄마의 채근에 안 일어날 수가 없었지.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목을 타고 내려가는 그 시원한 단맛에 깨길 잘했다 싶고, 금방 드러나는 바닥을 보면 그저 아쉬움만 가득했는데...
"오줌 누고 자라."
엄마 말 들렸지만, 자다가 깬 와중에 그것마저도 귀찮아 먹던 자리 그대로 드러누워 다시 잠든 다음날 아침엔 어김없이 반바지에 오줌을 쌌지.
그 무안했던 아침의 기억이 지금 와 돌아보면 왜 이렇게 눈물 글썽거릴 정도로 행복했던 여름날의 기억으로 떠오르는 것인지, 가을에 밀려나고 있는 여름처럼 애잔한 마음으로 자꾸 돌아보게 된다.
첫댓글 그래요 ~
요사이엔 있을 수 없는 풍경이 되어버렸으니 ~~
그 시대를 함께 했던 아이들의 비슷한 일상들 .....
문득 잊고 지냈던 소소한 이야기에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어 잠지 흥분하고 말았네요 .
지하수를 끌어 올리는 첨단 양수기 " 뽐뿌" 차디찬 물에 등물을하면 가느다란 팔다리에 소름이 ~ 수박 . 얼음 . 바늘 ..... 찌걱거리던 고무신 . 털레털레 거리던 발장난 ~ 아 ~ 그 시절은 우리들 가슴에 별처럼 반짝거립니다 .
감사합니다 ~^^
오분전님 덕분에 어제 아주 행복한 글읽기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분전님의 글을 많은 분들이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추억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자리 ^^*~
행복한 하루 만드세요 ~
오늘 아침 산책은
날씨가 좀 싸늘했습니다.
글속의 풍경이 영락없이
우리들 어린시절의 모습입니다.
누부야,하는
누나에 대한 호칭도 그렇고
얼음을 바늘로 쪼개는 것
그 맛있는 수박을
아버지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마음도
그렇습니다.
경제 문화면이 다 좋아졌다고 해도
부모에 대한 효심과 가족과의 사랑은
그 때를 잊을 수 없지요.
제 기억 속엔 왠 추억이 이리 많은지
꺼내도 꺼내도 마르지 않는 우물 같습니다.
태풍이 더운 기운 몰고 가버렸으니
올 가을은 추석처럼 좀 더 일찍 올 수도 있겠습니다.
바늘로 얼음 덩어리를 깨던 걸
잊었는데 여기서 봅니다.
대바늘을 썼지요.
큰 댁에 가면 수박을 우물에 담구던데
어떻게 건지는지는 못 봤습니다.ㅎ
풀벌레가 울어 가을입니다.
요즘은 수박을 그냥 잘라서 먹지 화채로 만들어 먹는 경우는 드물지요. 예전엔 식구들 많다보니 사카린도 넣고 얼음도 넣고 크게 만들어 한사발씩 나누어 먹었네요.
큰 바늘로 그 단단하고 찬 얼음이 툭툭 깨지니 얼마나 신기하던지요. ㅎㅎ 가람과뫼형과 서로 해보고 싶다고 큰형에게 달려들고...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정겨울수밖에 없겠네요. ㅎㅎ
제가 산 곳도 저 이야기의 배경도
대구 대봉동 대명동입니다.
수도산과 수성천변이 제 놀이터주무대였습니다.
반갑습니다~~
삼복더위가 되면, 오뚜기가 그려져 있던 '뉴슈가'란 사카린류의 물질을 넣고
발그스레 우러난 수박물과 수박육질이 함께 들어있던 수박화채를 먹던 기억을 잊을 수 없지요.
예쁜 초록색 수박화채그릇도 생각이 납니다.^^
아름다운 유년의 수채화같은 추억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그 대봉동집 대청마루가 생각납니다. 기억 속의 그 마루는 늘 반질반질 윤이 납니다.
이제는 추억을 파먹고 살아야 할 나이가 되어서 그렇겠죠.
수박을 자를 때마다 어머니는 그러시죠 하얀 속도 버리지 않고 옛날에는 다 긁어 먹었단다.
잠시 어린시절로 돌아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른들은 대충먹고 남기는 걸 두고 못 보셨지요. 격동의 세월을 지나면서 쌀 한톨, 물 한방울도 아껴며 사시던 습관이 몸에 배여서...
추억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 영어권에 살고,있으면서 모국어를 감칠맛나게도 잘 쓰시군요. 기억력도 대탄합니디ㅣ
오십에 옮겨 왔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린시절 기억을 걷어낸듯 제겐 그 시간이 흐립니다. 형제들과 앉아 옛이야기를 나눌 땐 "난 기억력이 나빠 생각이 잘 안나.." 이게 제가 뱉는 말입니다.
그런 제게 마음자리님께서 올리신 글은 가끔 제 기억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내것이었으면 하는 추억으로 부풀려집니다. 감사합니다.
저흰 형제들이 모이면 옛이야기 하기를 좋아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다보면 서로서로가 보완되어 더 생생해지지 않았을까 추리해봅니다. 제 글이 노을향님의 추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추억을 부풀리기도 한다니 글 쓰는 기쁨이 커집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수박농사를 지으셨지요
수박에 가시로 10 원 20 원 써놓고
원두막 아래 큰 다라이에 담궈놓으면 원두막에서 숙제하다가 수박사러 오면 써진대로 수박을 팔았지요
오줌쌀줄 알았지 ㅋ
아... 저 그림 속의 원두막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담아낸
원두막인가요?
오줌 쌀 줄 알았으면 귀뜸이라도
좀 해주시지 않고... ㅎㅎ
세대는 조금 다르지만 추억은 다르지 않습니다.
검정고무신은 왜 그렇게 미끄럽든지 땀이 나면 미끄러워서 신기가 어려웠습니다.
읍내 부자집 아이들이 신은 운동화가 그렇게 부럽던 시절, 저는 중하교에 가서야 신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사시면서도 유년의 추억을 잊지 아니하시니 가깝게 느껴집니다.
저는 간간이 운동화 얻어걸리긴 했었는데, 제가 신고 싶었던 축구 운동화는 초등학교 졸업 때 학교 저금했던 돈으로 어머니가 사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유년 추억이 아주 많아서
점점 더 가깝게 느껴지실 겁니다.
추억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명 깊게 잘 읽고 마음에 담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