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하나로 돈을 버는 파파라치들이 판치고 있다. 정부가 각종 불법행위에 포상금을 걸면서 파파라치를 주업으로 삼는 사람도 늘고 있다. 최근엔 교육비리를 신고하는 ‘교파라치’까지 등장해 파파라치들의 눈이 빛나고 있다. 이런 세태 속에서 쾌재를 부르는 것은 사설 파파라치 학원들. 신고 포상금제도가 늘수록 학원수강생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파파라치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포상금 노린 파파라치 기승…교육비리 캐는 ‘교파라치’까지
파파라치 양성 학원까지 우후죽순…감시 권하는 사회 우려
서울에 사는 최모(34)씨는 돈 모으는 재미에 신바람이 난다고 한다. 파파라치로 벌어들이는 부수입이 제법 짭짤하기 때문이다. 한 달에 2주는 야간근무를 하는 직장에 다니는 최씨는 야근하는 주의 낮 시간동안 할 만한 소일거리를 찾았다. 그러다 최씨는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파파라치들의 일상을 담은 프로그램을 봤고 ‘투잡’으로 선택하기엔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수백만원 수익 너끈
그날부로 최씨는 집에 있는 디카를 가지고 나와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최씨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는 사람들을 찍는 쓰파라치. 최씨는 집 근처 골목 등에 숨어 불법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초보인 최씨의 눈에 불법행위가 쉽게 눈에 띌 리 없었다. 그리고 설사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사람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어설픈 촬영 실력으로 불법장면을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기가 생긴 최씨는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파파라치 기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기법을 숙지한 최씨는 비닐봉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상인들을 몰래 찍는 ‘봉파라치’에 도전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포상금을 받는 것에 실패했다. 결국 최씨는 파파라치 전문학원을 찾았다. 학원에서는 최씨에게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다. 장비를 구비하고 기법을 잘만 숙지하면 한 달에 수십에서 수백만원의 수익은 너끈히 벌 수 있다는 것. 문제는 비싼 수강료와 장비였다. 100만원 가량의 밑천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파파라치로 성공할 수 있다는 꿈에 부푼 최씨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국 파파라치에 필요한 장비들을 구입하고 교육을 받은 최씨는 곧바로 실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포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 후에도 최씨의 파파라치 성공률은 높아갔고 지금은 꽤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한다.
최씨는 “시간과 장소에 제약이 없는 파파라치는 투잡으로 매우 적당하다”며 “최근에는 학파라치, 교파라치 등 포상금 규모가 큰 건수가 늘어나 일할 맛이 더 난다”고 말했다.
최씨처럼 파파라치를 하나의 업으로 삼고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적지 않다. 이는 파파라치 학원 수강생의 숫자로도 알 수 있다. 한 파파라치 전문학원 관계자에 따르면 파파라치 교육을 받는 사람은 무려 40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후죽순 학원이 생겨나는 현실을 감안하면 파파라치를 꿈꾸는 사람들은 더욱 증가할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또 실전 파파라치 기법과 신고서류작성, 영상편집, 신고대행까지 해 준다는 인터넷 사이트들도 속속 생겨 파파라치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곳에 마련된 ‘성공사례’ 코너를 보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파파라치에 뛰어들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주부라고 밝힌 김모씨도 이곳에 성공담을 올린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파파라치가 된 지 1년이 됐다는 김씨의 원래 직업은 보험설계사. 그러나 파파라치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꽤 짭짤하자 보험일이 부업이 돼버렸다고 한다. 김씨는 이틀 동안 175만원을 벌어들인 경험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파파라치가 증가하는 이유는 각종 분야에서 신고포상금 제도가 속속 생겨났기 때문이다. 지난 2001년 교통법규위반 현장을 찍어 신고하면 1건당 3000원을 주는 ‘신고 포상금 제도’가 생기면서 ‘카파라치’가 등장한 이래 파파라치 종류는 꾸준히 늘어났다.
정부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들이 앞 다퉈 신고 포상금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신고를 유도한다는 명목이었다. 경찰과 공무원이 모든 범법행위를 단속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시민들의 눈을 활용하자는 의도에서였다.
봉파라치(1회용 비닐봉지 무상제공), 쓰파라치(쓰레기 불법투기), 세파라치(탈세), 신파라치(신문 불공정 판매), 하파라치(불법 하도급), 술파라치(청소년 술판매), 토파라치(토지이용의무 위반), 담파라치(담배꽁초 투기), 성파라치(성매매 범죄 신고), 노파라치(노래방 불법영업), 선파라치(선거법 위반), 쌀파라치(쌀 원산지 및 품종 허위기재), 농파라치(농지 불법전용), 식파라치(식품위생법 위반), 의파라치(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 부정청구), 주파라치(불공정 주식거래), 지파라치(지하철역내 불법영업) 등 이름도 다양한 파파라치들이 판을 치게 됐다.
최근에는 교육비리와 관련된 신종 신고 포상금 제도가 생겨 파파라치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불법사교육을 뿌리 뽑겠다는 명목 하에 생겨난 ‘학파라치’다. 이로 인해 카메라를 들고 곳곳을 주시하는 파파라치들이 학원가를 점령하고 있다.
학파라치 신고도 쏟아졌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파라치 제도 시행 후 7개월간 전국에서 3900여 개 학원이 적발됐다고 밝혔다. 제보자들에게 돌아간 포상금은 1인당 30~50만원씩 총 16억9000만원에 달했다.
그런가하면 서울교육청은 교육관련 비리에 관해 신고하면 최대 1억원을 주는 신고 포상금 제도를 내놨다. 이른바 ‘교(敎)파라치’제도인 셈이다. 이 제도는 교육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금품, 향응을 받은 행위를 신고하면 수수액의 10배(최고 1억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최근 장학사, 교장 등의 부정행위가 연이어 적발되면서 서울시가 고육지책으로 내 놓은 제도다.
뇌물교장까지 찰칵?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파파라치들의 활동은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1억원’이란 꿈의 포상금이 걸린 교파라치에 학원가와 파파라치들의 구미가 당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 학원 관계자는 “비교적 포상금 규모가 큰 교육비리 파파라치의 등장에 학원가가 들썩이고 있다”며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은 현실과 맞물려 파파라치들은 날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파파라치의 증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불법행위를 감시하고 단속해야 할 공권력이 시민에게 할 일을 떠넘기고 감시를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애초에 신고 포상금 제도가 가진 순기능은 사라지고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시민이 시민을 감시하는 세태가 팽배해지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