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20 월요미사 지향 ㅣ 김성길 신부(의정부교구 덕정성당)
수 많은 행복이 있는데, 그 행복이 왜 골고루 나눠지지 못해서 누군가는 너무 많이 가져서 그것이 병이되고, 누구는 그것마저 없어서 삶이 고단합니다. 복직을 위해 긴 싸움을 하고 있는 우리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이 미사를 통해서 하루빨리 일터로 돌아감으로써 가정을 삶을 이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수많은 곳에서 유린 당하고 있는 인권을 주님께서 우리의 노력을 어여삐 보시고 더욱더 넓게 펼쳐주시길 바라며, 힘겨운 싸움 중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께서 힘과 지혜를 주시기를 함께 청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 : 가난한 벗들과 연대하는 것
2012.08.20 월요미사 강론 ㅣ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성소국장)
찬미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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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와 전국의 해고노동자와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용산 참사 유가족과 억울하게 옥살이 하고 계시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쉼 없이 굽이치려는 물길 막힌 4대강, 평화를 읍소하는 강정과 구럼비, 그리고 이들을 보듬으려는 선한 형제자매님들, 안녕하십니까?
용산과 노동현장에서 죽음에 내몰린 영령들이여, 이제는 하늘에서 고통 없는 평화를 누리고 계시지요?
벗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생명과 평화 넘치는 세상을 이루려 이 자리에 모이신 형제자매 시민 여러분, 수녀님, 수사님, 신부님들, 모두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오늘도
“용산참사,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4대강, 제주 구럼비, 그리고 오늘을 생각하는 월요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휘황찬란한 서울 한복판 길 위에 모였습니다. 길 위의 미사가 더 이상 필요 없는 날을 위해 오늘도 길 위에서 미사를 봉헌합니다.
저는 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입니다
. 반갑습니다. 저는 작년 11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의 미사를 마치고, 대한문 앞에서의 미사에는 오늘 처음 참석합니다. 첫 미사부터 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뒤늦게 아름답고 가슴 벅찬 대열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5월에 동창신부에게 간을 이식해준 후에 몸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를 지켜 주신 벗들에게 죄송합니다. 눈물 나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뵙게 되서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저는 간 이식 수술을 전후에서 함께 하는 벗들에게 많은 사랑과 격려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신부님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사랑을 온 몸으로 실천하신 것입니다.”라는 말씀이 지금까지 가장 가슴 깊이 남습니다. 간 이식이 생명을 담보로 할 정도로 위험한 것은 아니기에, 목숨을 바치는 사랑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더 큰 사랑을 하라는 격려로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분이, 그리고 비록 이 자리에는 있지 않지만 마음으로 함께 하는 모든 벗들이 “벗을 위해 제 목숨을 바쳐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발에 눈이 먼 무자비한 이들에게 보금자리를 빼앗긴 용산의 억울한 희생자들, 죄인들에게 오히려 죄인으로 낙인 찍혀 옥고를 치르고 있는 선한 이들, 그리고 의지할 데 없는 유가족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안락한 삶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용도 폐기된 기계 부속품처럼, 온 삶을 투신했던 노동현장에서 힘없이 내팽개쳐진 쌍용자동차를 비롯한 전국의 해고노동자들이, 기계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임을 선포함으로써, 거대한 물신주의와 두려움 없이 맞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이익을 채우려 창조주의 자리를 탐하는 오만한 권력자들의 더러운 손아귀에서, 이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어머니 젖줄 같은 4대강을 지켜내려 온 몸과 마음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무력으로 평화를 강변하는 군사주의자들과 이에 기생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건설업자들의 폭력에 무릎 꿇지 않고, 남쪽 끝 작은 마을 제주 강정에서 온 나라에 이르기까지 생명과 평화를 회복하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오늘 이 땅의 가난한 이들은 과연 누구입니까? 생명을 유린하고 정의를 파괴하며 인간다운 삶을 짓밟는 불의한 사회적 죄의 구조(화해와 참회 16항 참조)로 말미암아 희생되는 이들이 아니겠습니까? 더 이상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지탱할 수 없는 이들, 피눈물마저 말라버리고 죽어가는 신음소리조차 사치스런 이들, 하늘을 바라볼 힘조차 박탈당한 이들, 그리하여 자신과 함께 할 벗들의 관심, 사랑, 그리고 강력한 연대를 호소하는 이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가난한 벗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죽음의 처지에 놓인 벗들과 우리 자신을 하나로 묶는 것입니다. 바로 벗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사랑에 뿌리를 둔 아름다운 연대입니다. 이 연대를 통해 벗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적 죄의 구조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장엄하고 성스러운 연대의 또 한걸음을 내딛습니다. 이천년 전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셨던 예수님의 발걸음에 함께 합니다. 참으로 눈물겹도록 감격적인 시간입니다. 옆에 계신 자랑스러운 벗들을 보십시오. 언제나 함께 하시는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을 느껴보십시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약합니다. 하지만 함께 있기에 우리는 더 없이 강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강론을 마치면서, 여러분과 함께 연대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춤의 왕’이라는 노래입니다. 용산에서도, 두물머리에서도 불렀던 노래입니다. 여러분 모두 온 몸과 마음으로 함께 불러주시기를 바랍니다.
춤의 왕
1. 이 세상이 창조되던 그 아침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었다
내가 베들레헴에 태어날 때에도 하늘의 춤을 추었다
2. 높은 양반들 위해 춤을 추었을 때 그들 천하다 흉보고 비웃었지만
어부 위해서 춤을 추었을 때에는 날 따라 춤을 추었다
3.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춤 췄더니 높고 거룩한 양반들 화를 내면서
나를 때리고 옷을 벗겨 매달았다 십자가에 못 박았다
4. 높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 춤을 계속해 추기란 힘이 들지만
끝내 땅속에 깊이 묻힌 이후에도 난 아직 계속 춤춘다
5. 어리석게도 그들 좋아 날뛰지만 나는 생명이다 결코 죽지 않는다
네가 내 안에 살면 나도 네 안에서 영원히 함께 살련다
후렴 : 춤춰라 어디서든지 힘차게 멋있게 춤춰라
나는 춤의 왕 너 어디 있든지 나는 춤 속에 너 인도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