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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5조 공납(貢納공물을 바치는 것)의 네 번째 꼭지 ‘공물(貢物)이나 토산물(土產物)은 상사(上司)에서 배정하는 것이다. 전에 있던 것은 성심껏 이행하고 새로 요구하는 것을 막아야 폐단이 없게 될 것이다.’
목민심서 봉공(奉公) 제5조 공납(貢納)
4. 공물(貢物)이나 토산물(土產物)은 상사(上司)에서 배정하는 것이다. 전에 있던 것은 성심껏 이행하고 새로 요구하는 것을 막아야 폐단이 없게 될 것이다.
정선(鄭瑄)(주1)은 말하였다.
“수령이 된 자는 새로운 사례 만드는 것을 꺼려야 한다. 옛날에 토산물을 공물로 바쳐서 그 지방에 많은 해독을 끼친 이가 있었으니, 교지(交趾)의 여지(荔枝)(주2) 같은 것이 그것이다.”
양성(陽城)(주3)이 도주 자사(道州刺史)가 되었는데, 그 주에서 난쟁이가 많이 나서 해마다 정조에 바치고 있었다. 양성은 그들의 생이별을 불쌍히 여겨 상주하기를,
“주민이 전부가 난쟁이라서 바치자니 누구를 바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더니, 이로부터 그만두게 되었다. 그 고을 백성들이 감복하여 양(陽)자를 따서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
상우(上虞) 사람 곽남(郭南)(주4)이 상숙지현(常熟知縣)이 되었는데, 우산(虞山)에 연율(軟栗)이 생산되어 백성 중에 이를 바치는 자가 있었다. 곽남이 급히 연율 종자를 없애도록 하고는
“앞으로 고을 백성에게 해가 될까 두렵다.”
하였으니, 백성을 위하여 먼 뒷날 일까지 걱정함이 이러하였다.
손백순(孫伯純) - 백순은 손순효(孫舜孝)(주5)의 자(字) - 이 해주 목사(海州牧使)로 있을 적에 조정에서 군기(軍器)를 조발(調發)하는데 노춘(弩椿)ㆍ전간(箭幹)따위가 있었다. 해주에는 본래 이런 물건이 생산되지 않으므로 백성들이 부레풀로 그것을 대충(代充)하기를 청하였다.
손순효는,
“노춘(弩椿)ㆍ전간(箭幹)(주6)이 해주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데, 만일 이곳 토산물로 그것을 대충하면 해마다 그것을 부과하여 그칠 때가 없을까 염려된다.”
하니, 유식한 사람은 이를 지당한 말이라고 하였다.
장구(張彀)(주7)가 동주판관(同州判官)(주8)이 되어 출병하여 변방을 수비하게 되었는데, 그 주에 화살 10만 개를 징발하되 독수리나 기러기 깃으로 만들어야 하므로 깃의 값이 뛰어올라 살 수가 없게 되었다.
장구는
“화살은 쏘아 버리는 물건이니, 어떤 깃인들 안 되겠습니까?”
하자, 절도사는,
“마땅히 상서성(尙書省)에 보고해야 한다.”
하였다. 장구는,
“여기에서 서울까지는 2천 리나 되며, 백성들은 살길이 급한데 어찌하겠습니까? 만일 문책이 있으면 하관(下官)이 그 허물을 지겠습니다.”
하였더니, 하루 사이에 가격이 몇 배나 떨어졌다. 상서성(尙書省)에서도 마침내 소청대로 들어주었다.
진인(陳麟)(주9)이 민현지현(閩縣知縣)으로 있을 때, 사자(使者)가 와서 취우(翠羽)를 요구하는데, 다른 고을에서는 명령에 따랐으나 그만은 응하지 않았다.
사자가 노하여,
“너는 누구를 믿고 감히 이러느냐?”
하므로, 그는,
“오직 나 자신을 깨끗이 하고 스스로를 지킬 뿐이오.”
하였다.
송택(宋澤)(주10)이 액현(掖縣)을 맡았을 때, 호부(戶部)에서 제거사(提擧司)를 보내어 우황(牛黃)을 할당하여 사들이도록 하였는데, 재촉이 성화 같았다. 백성들은 다투어 소를 잡아 우황을 취하였지만, 송택만은 글로써 제거사에게 말하기를,
“소는 돌림병을 만나면 병들어 우황이 있지만, 지금은 태평이 오래되어 화기(和氣)가 온 고을에 충만하여 소들이 모두 살쪄서, 채취할 만한 우황이 없다.”
하니, 사자도 힐문할 수 없어 온 고을이 우황 부과에서 면하게 되었다.
공규(孔戣)(주11)가 화주 자사(華州刺史)가 되었을 때, 해마다 주에서 바치는 공물을 조사해 보았더니 해충(海蟲)ㆍ협채(浹菜)ㆍ합감(蛤蚶) 등 먹음직한 것들이었는데, 바다에서 서울까지 실어 보내는 데 드는 인원이 해마다 43만 6천 명이었다. 이에 소를 올려 이 일을 그만두게 하였다.(주12)
《다산록(茶山錄)》에 이렇게 말하였다.
“제주에서 전복이 나는데 크기가 자라만 하였다. 재 속에 묻었다가 꺼내어 말리는데 대꼬챙이로 궤뚫은 구멍이 없으므로 무혈복(無穴鰒)이라 한다. 수년 이래 감사가 이를 요구하므로 점차로 민폐가 되었다.
또 강진(康津)ㆍ해남(海南) 등지에는 이른바 생달자(生達子)라는 것이 있는데, 그 나무의 잎이 겨울에도 푸르러 마치 산다(山茶) 같으며, 기름을 짜서 나쁜 종기를 치료할 수 있다. 수년 이래 감사가 이를 요구하므로 점차로 민폐가 되었다. 이런 일들을 수령이 이어받아서는 안 된다.”
조계원(趙啓遠)(주13)이 수원 부사(水原府使)가 되었는데, 그 고을의 밀면(蜜麪) - 속명으로는 약과(藥果)다. - 이 중국에서 유명하였다. 인조(仁祖)가 병중에 있을 때 어주(御廚)(주14)에는 입에 맞는 것이 없었다. 환관(宦官)이 사람을 시켜 그 약과를 구하니, 조계원은 대답하기를,
“주부(州府)에서 사사로이 헌납하는 것은 신하로서 임금을 섬기는 체모가 아니니, 조정의 명령이 아니면 안 되겠다.”
하였다. 인조가 이 말을 듣고 웃으면서,
“비록 군신의 사이라 하더라도 인척으로 얽힌 인정마저 없을 것인가.”
하였다. - 방언으로 약(藥)이란 꿀〔蜜〕이다. 그러므로 밀밥〔蜜飯〕을 약밥〔藥飯〕이라 하고, 밀주(蜜酒)를 약주(藥酒)라 하며, 밀과〔蜜果〕를 약과(藥果)라 한다. -
유정원(柳正源)(주15)이 자인 현감(慈仁縣監)이 되었는데 순찰사가 갈려 돌아가게 되었다. 신구(新舊)의 순찰사가 오고갈 때에 서피(黍皮) 3백 장을 바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다. 유정원은 다시 순찰사에게,
“서피 3백 장이면 말 3백 필을 잡는 데 해당되니, 작은 고을에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니, 순찰사는 그 수를 줄여 40장을 정액으로 해 주었다.
주광제(朱光霽)(주16)가 중경부 통판(重慶府通判)이 되어, 몸가짐을 청렴하고 검약하게 하고 일을 당하면 자기 의견을 지킴이 있었다. 하루는 감사가 은(銀)을 내어 비녀를 만들도록 하므로, 광제가 은을 가지고 들어가서,
“통판(通判)은 어려서부터 독서할 줄만 알았지 비녀 만드는 법은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감사가 노하였으나 한편 부끄럽기도 하여 그만두었다.
[역주]
[주-D001] 정선(鄭瑄) : 명나라 때의 민현(閩縣) 사람으로 자는 한봉(漢奉)이다. 의종(毅宗) 때 진사 출신으로 벼슬은 응천순무(應天巡撫) 등을 지냈고 저서에는 《작비암일찬(昨非菴日纂)》이 있다. 인용문 ‘수령이……그것이다.’는 《작비암일찬(昨非菴日纂)》 〈환택(宦澤)〉에 실려 있다.
[주-D002] 교지(交趾)의 여지(荔枝) : 여지는 나무의 높이는 5~6장(丈)쯤 되고 푸른 잎에 꽃은 푸르며 열매는 붉은데, 열매는 익으면 달고 수즙(水汁)이 많다. 《당서(唐書)》에 의하면, 양 귀비(楊貴妃)가 여지를 좋아하므로 교지에서는 해마다 여지를 바치게 되었는데 날씨가 더워서 하루만 지나면 썩어버리므로 그것이 썩기 전에 바치느라 교지 지방은 폐해가 막심했다 한다.
[주-D003] 양성(陽城) : 당나라 북평(北平) 사람으로 자는 항종(亢宗)이다. 덕종(德宗) 때 간의대부(諫議大夫)ㆍ국자사업(國子司業)ㆍ도주 자사(道州刺史) 등을 지냈다. 《唐書 卷194》 인용문 ‘주민이……모르겠습니다.’는 《작비암일찬(昨非菴日纂)》 〈환택(宦澤)〉에 실려 있다.
[주-D004] 곽남(郭南) : 명나라 때의 사람인데 자호는 미상이다. 《명사(明史)》 권281 〈순리열전(循吏列傳)〉에 “곽남이 상숙지현(常熟知縣)이 되었다가 정통(正統) 12년에 늙어서 치사(致仕)했다.”라고 하였다. 《昨非菴日纂 宦澤》 참조.
[주-D005] 손순효(孫舜孝) : 1427~1497. 자는 경보(敬甫), 호는 물재(勿齋)ㆍ칠휴거사(七休居士), 시호는 문정(文貞),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벼슬은 도승지ㆍ형조 판서ㆍ공조 판서ㆍ경기도 관찰사 등을 거쳐 영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특히 성리학에 밝고 문장에도 뛰어났다.
[주-D006] 노춘(弩椿)ㆍ전간(箭幹) : 노춘은 참죽나무 활, 전간은 화살대를 말한다.
[주-D007] 장구(張彀) : 금(金)나라 때의 허주(許州) 임영(臨潁) 사람으로 자는 백영(伯英)이다. 진사 출신으로 영릉현 주부(寧陵縣主簿)ㆍ태정군 절도판관(泰定軍節度判官)ㆍ동주 관찰판관(同州觀察判官)ㆍ상서성령(尙書省令)ㆍ무령군 절도부사(武寧軍節度副使)ㆍ습주 자사(隰州刺史)ㆍ하동남로 전운사(河東南路轉運使) 등을 지냈다. 《金史 卷128》 《昨非菴日纂 3集 解紛》 참조.
[주-D008] 동주판관(同州判官) : 동주판관(同州判官)의 동주(同州)가 원문에는 통주(通州)로 되어 있으나 《金史》 〈장곡전(張穀傳)〉과 《작비암일찬(昨非菴日纂)》에 의해 고쳤다.
[주-D009] 진인(陳麟) : 원(元)나라 온주(溫州) 사람으로 자는 문소(文昭)이다. 진사 출신으로 자계현윤(慈谿縣尹)ㆍ권절동부원수(權浙東副元帥) 등을 지냈다. 《宋元學案 93》 《昨非菴日纂 3集 宦澤》.
[주-D010] 송택(宋澤) : 청(淸)나라 때 유양(酉陽) 사람으로 자는 이경(理卿)이다. 병법(兵法)에 밝고 저서에는 《노인집(勞人集)》ㆍ《상상음(湘上吟)》 등이 있다. 《續碑傳集 卷83》
[주-D011] 공규(孔戣) : 《당서(唐書)》 〈공규열전(孔戣列傳)〉에 의하여 원문의 규(葵) 자를 규(戣) 자로 바로잡았다. 왕역조(往役條)에도 공규(孔戣)가 보인다. 당나라 사람으로 자는 군엄(君嚴), 시호는 정(貞), 공자의 38세손이다. 진사 출신으로 시어사(侍御史)ㆍ간의대부(諫議大夫)ㆍ상서좌승(尙書左丞)ㆍ화주 자사(華州刺史)ㆍ영남 절도사(嶺南節度使) 등을 거쳐 예부 상서(禮部尙書)에 이르렀다. 《唐書 卷162》
[주-D012] 공규(孔戣)가 …… 하였다 : 이 말은 《당서》 〈공규열전〉에 보인다.
[주-D013] 조계원(趙啓遠) : 1592~1670. 자는 자장(子長), 호는 약천(藥泉), 시호는 충정(忠靖), 본관은 양주(楊州)이다. 광해군 때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를 지내고, 인조 때 정언(正言)ㆍ수원 부사ㆍ충청도 관찰사ㆍ예조 참판 등을 지내고 효종 때 전라도 관찰사, 현종 때 함경도 관찰사ㆍ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ㆍ형조 판서 등을 지냈다.
[주-D014] 어주(御廚) : 임금의 음식을 장만하는 주방이다.
[주-D015] 유정원(柳正源) : 1703~1761. 자는 순백(淳伯), 호는 삼산(三山),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영조 때 지평(持平)ㆍ수찬(修撰)ㆍ판결사(判決事) 등을 거쳐 대사간(大司諫)에 이르고, 천문(天文)ㆍ지리(地理)ㆍ음양(陰陽)ㆍ복서(卜筮)ㆍ병률(兵律) 등에도 정하였으며, 저서에는 《삼산문집(三山文集)》ㆍ《하락지요(河洛指要)》가 있다.
[주-D016] 주광제(朱光霽) : 미상. 인용문 ‘통판(通判)은……못하였습니다.’는 《작비암일찬(昨非菴日纂)》 3집 〈환택(宦澤)〉에 실려 있다.
貢物土物。上司之所配定也。恪修其故。捍其新求。斯可以無弊矣。
鄭瑄曰。爲吏忌作俑。古有以土物獻貢。貽地方無窮之害者。交趾荔枝之類是也。
陽城爲道州刺史。州産侏儒。歲貢諸朝。城哀其生離。奏曰。州民盡短。若以貢。不知何者可供。自是罷。州人。感之。以陽名子。
上虞人郭南知常熟縣。虞山出軟粟。民有獻者。南亟命去其種云。異日恐爲常熟害。其爲民遠慮如此。
孫伯純。舜孝字。 知海州。朝廷調發。軍器有弩椿箭幹之類。海州素無此物。民請以鰾膠充折。孫曰。弩椿箭幹。共知非海州所産。若以土産代之。恐歲歲被科無已時。知者以爲至言。
張彀判通州。出兵備邊。州徵箭十萬根。以鵰鴈羽爲之。價翔踊不可得。彀曰。矢去物也。何羽不可。節度使曰。當須省報。彀曰。州距京師二千里。如民急何。萬一有責。下官任其咎。一日之間。價減數倍。尙書省。竟如所請。
陳麟知閩縣。使者索翠羽。他邑惟命。獨麟不應。使者怒曰。汝何恃敢爾。曰。惟潔己自守耳。
宋澤知掖縣時。戶部著提擧司科。買牛黃。急如星火。百姓競屠牛取黃。澤獨以狀申提擧司言。牛遇歲疫。則多病有黃。今太平日久。和氣充塞。縣境牛皆充腯。無黃可取。使者不能詰。一縣獲免。
孔葵爲華州刺史。明州歲貢海蟲,浹菜,蛤蚶。可食之屬。自海抵京。遞夫歲爲四十三萬六千人。公奏疏。罷之。
茶山錄云。濟州有鰒。大如鼈。置之灰中。出而曬之。無竹串之孔。名之曰無穴鰒。數年以來。監司求之。漸爲民弊。又康津海南等地。有所謂生達子。其樹冬靑。葉如山茶。取油可療瘡癰。數年以來。監司求之。漸爲民弊。若此類。守土者。不可承也。
趙啓遠爲水原府使。府之蜜麪。俗名藥果。 名於國中。仁祖違豫時。御廚無可尸者。中官使人求之。公答曰。州府私獻。非人臣事君之體。非有朝命不可。仁祖聞之。笑曰。雖曰君臣。獨無戚聯之情乎。方言藥者。蜜也。故蜜飯曰藥飯。蜜酒曰藥酒。蜜果曰藥果。
柳正源爲慈仁縣監。巡使遞歸。新舊行。當納黍皮三百張。公復言於巡使曰。黍皮三百。當刑馬三百匹。非殘邑所可堪也。巡使減其數。以四十張。爲定額。
朱光霽爲重慶府通判。自奉淸約。遇事有執持。一日監司發銀買簪。光霽遂持銀入白曰。通判自幼。但知讀書。未學造簪。監司怒且慚而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