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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조의 여왕] 05
#1. 뒷산 일각 (N)
달수, 열심히 땅 파고 있다. 꽤 넓은 자리.
지애는 냉정한 눈빛으로 보고 있다.
달수 : 여보. 다 됐어?
지애 : (끄덕이고)
달수 : 뭐할라고 그래.
지애 : 거기 누워봐.
달수 : (허걱!!) 뭐? 이...이 여자가.. 왜 이래? 누굴 보낼라구.
지애 : 누워봐.
달수 : 시...싫어.
지애 : (보는)
달수 : 당신이 아무리 무섭게 째려봐도. 그건 싫어. 내가 왜. 우리 정원은 어떡하라구. 우리 엄마는 어쩌라구. 싫어 나는!
지애, 가만 보더니. 파진 자리에 자기가 내려와 눕는다.
달수 : (당황) 여...여보. 왜 이러는거야. 나도 안되지만. 당신도 안되지. 일어나. 일어나 응?
지애 : (옆자리 탁탁 치며) 여기 누워봐.
달수 : ...
지애 : (좀 풀어진) 얼른..
달수 : (흙투성이 된 얼굴과 손으로 두려운 듯 지애 옆에 엉덩이만 붙인다)
지애 : 누워봐.
달수 : (에라 모르겠다 싶어 눕고)
지애와 달수 시선에서 하늘이 보인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달수 괜히 눈물이 난다.
지애 : (가만있다가) 당신 울어?
달수 : (쓱 닦으며) 아아니. 당신 울어?
지애 : (눈물 닦으며 코맹맹이) 내가 왜. 뭐가 힘들다구 울어.
달수 : 나도 안 울어. 힘든 거 하나 없는데. 왜 울어.
지애 : 여보. 나 살고 싶어.
달수 : ....
지애 : 사는 것처럼. 제대로. 나 살고 싶어. 죽지 못해 사는 거 아니고. 사는 것처럼.
달수 : 여보.
지애 : (일어나 달수를 일으켜 세워준다)
달수 : (부스스 일어난다)
지애 : (눈물 그렁한 채 달수를 보면서) 이제 우리... 다시 태어나는거야 여보. 방금 우린 죽었고. 이제 다시. 태어나자.
달수 : (우엥.. 애처럼 울음 터지고) 여보오. 미안해.
지애 : 여보.
달수와 지애, 흙투성이가 된 채 서로를 껴안고 펑펑 우는 두 사람. 얼굴에서 땟국물이 줄줄 흐른다.
어어헝... 스스로의 서러움과 서로에 대한 연민이 몰려와 대성통곡하며 목놓아 운다.
그들의 머리 위로 반짝이는 별.
#2. 기획실 (D)
준혁 자리에 앉아있다가 흠칫 놀란다.
군인 행진 하듯이 기가 바짝 들어서 척척척 다가오는 달수.
준혁 : (자기도 모르게 버벅) 뭐..뭡니까 온달수씨.
달수 : 어제 말씀하신 프리젠테이션 말입니다. 하겠습니다. 해내고 말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해내고 나면. 당신.. 나한테 사과해! (이글이글하는데)
준혁 : (잔뜩 쫄고)
달수off : 이러면 멋지지 않을까?
#3. 달수 집 거실 (N)
윗씬은 그저 상상이었고.
지애와 달수, 나름대로 작전 짜는 중이었던 듯 싶다.
달수 : 어때 여보? (이글이글 노려보며) 당신 나한테 사과해!! 카리스마 있어 보이지 않아?
지애 : 으이그! 그럼 안되지. 얼마나 싸가지 없어 보여. 안 그래도 미운놈이 까일라구 쌩쑈를 한다. 그러지!
달수 : 그래두 이렇게 당차게 나가야 기선제압이 되지 않을까?
지애 : 기선 제압 같은 거 필요 없고. 오늘부터 우리집은 가훈을 바꾸자.
달수 : 어떻게?
지애 : 낮게 나는 새가, 먹이를 먹는다!
달수 : 그러니까, 나보고 낮게 날라고?
지애 : 날지도 마. 기어.
달수 : (표정) 기어?
지애 : 아니다. 기지도 말고. 아예 바닥에 들러붙어. 화장실 바닥에 붙은 물 묻은 휴지 알지? 절대 떨어지지 말고. 철썩!!
#4. 회사 화장실 (D)
화장실 바닥에 지저분하게 붙어 있는 물묻은 휴지.
그걸 보면서 볼일 보는 달수. 왠지 마음이 복잡한데.
들어오는 준혁.
달수 : (볼일 보다가 흠칫 놀라서 얼른 인사한다) 안녕하십니까!
준혁 : (거만하게 고개만 끄덕하고 볼일 본다)
달수 : (준혁 보는 표정 위로)
지애off : 아부를 두려워하지 마. 그냥 무조건 띄우고 칭찬해주면 돼. 칭찬 싫어하는 인간 없다니까?
달수 : (뭘 칭찬할까 고민하다가 준혁 아랫쪽 흘낏 보며 오바하는) 우와.. 엄청.. 훌륭하십니다.
역시 사람은 겉만 봐선 진가를 모른다더니...!
준혁 : (확 기분 나빠서 보며) 뭐요?
달수 : (금방 주눅 들어) 죄송합니다.
준혁 : (바지춤 추스르고 손 씻으러 가면)
달수 : (바지 추스르고 갸웃) 역효과 같은데...? (얼른 따라가고)
#5. 화장실 세면대 앞 (또는 회사 일각으로 이어지는) (D)
준혁 손씻는데. 옆에 오는 달수. 얼른 비누 건네주고.
준혁 : (비누칠하며) 뭐 할 말 있어요?
달수 : (씩씩하게) 공영민씨가 프리젠테이션 시연을 하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부장님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잘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준혁 : (손 다 씻고 물 잠근다)
달수 : (얼른 손수건을 꺼내 건넨다)
준혁 : (흘낏 보고 자기 손수건 꺼내 손 닦으며) 시연이라고 해도, 여기서 통과가 되면 실제 프리젠테이션에 나갈 수도 있는
기회입니다. 온달수씨 같은 사람이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달수 : (울컥해서 뭐라고 하려는데)
지애off : 참어! 그거 참으면 우리 정원이 유치원비가 생긴다고 생각해!
달수 : 물론입니다. 저같은 사람이 감히 그런 기회 달라고 한다는 게, 참 우습죠. 하하하! 제가 생각해도 웃기니까요. 하하하.
준혁 : (뭔가 싶어 본다)
달수 : (어색하게 웃음 그치며) 그렇지만,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시대 아닙니까.
준혁 : (뜬금없다) 네?
달수 : (어버버) 아니 그러니까.. 평등의 시대... 흑백과.. 남녀...가 차별 없는..
준혁 : 요지만 간단히 말하세요.
달수 : 그러니까 저에게도 평등하게 기회를 주셨으면... 해서...
준혁 : 그런 어눌한 실력으로 누구를 설득하겠다고 나서는 겁니까? (차갑게 나가려는데)
달수 : 부장님! (철퍼덕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준혁 : 이거봐요 온달수씨. 무대포로 들이댄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달수 : 무릎을 꿇으라면 꿇고. 이마를 박으라면 박겠습니다. 부장님 신발을 핥으라고 하면 핥고. 기라고 하면. 그것도 다 하겠습니다.
준혁 : (표정)
달수 : (진심이다) 부장님 보기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놈이지만. 그래도 저, 우리집 가장입니다.
그러니까 죽기 살기로 매달릴 겁니다. 이렇게 아무 것도 못해보고, 찍소리도 못하고, 또 짤려나갈 순 없습니다.
준혁 : (본다)
달수 : (간절히 올려다본다)
준혁 : 열정은 잘 알겠습니다.
달수 : (!!)
준혁 :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열정만 있고 실력은 없는 사람입니다.
달수 : !!
준혁 : 그런 사람은 괜히 주변에 부담만 주거든. (하고 냉정하게 나가 버린다)
달수 : (무릎꿇은 채 앉아 있는 자신이 참 초라하다)
#6. 회사 근처 호프집 (N) - 회사 뒷편
달수와 지애 생맥주 한잔씩 앞에 놓고 심각하다. 회의 분위기.
지애 : (분통) 아니 뭐랬길래 안된대? 제대로 한거야?
달수 : 멘트 준비해간 거 다 했어. 그래도 안된다는데 어떡해.
지애 : 애드립이라도 치지 그랬어!
달수 : 나 순발력 떨어지는 거 알면서.
지애 : 그래서? 이대로 포기할거야?
달수 : 아니? 절대 포기 못하지!
지애 : 나도 포기 못해. 아무래도 봉순이 이 기지배가 가운데서 다 어깃장 놓고 있는 거 같은데.
(한모금 마시고) 걱정하지 마. 내가 다 해결할거니까! (결연하고)
달수 : 근데. 한 부장 와이프는 당신을 왜 그렇게 미워하는거야? 그래도 둘이 친구였다며.
지애 : (새삼 억울하다) 그러게 말이야. 그 기지배 아주 웃기는 짬뽕이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구!!
#7. 학교 앞 (D) - 봉순 꿈
학창시절의 여왕 지애. 교복 짧게 올려입은 채 도도하게 걸어가면.
그뒤로 지애 친구들 여왕 떠받드는 시녀처럼 따라가고.
남학생들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그 가운데는 준혁도 있다.
그 맨 끝으로 봉순, 지애 가방에 옷가방에 이런저런 선물들에 꽃다발들을 이고지고끌고 가느라 힘들다.
뭐 하나 떨어뜨리면. 그거 주우려다가 쳐지고. 다른 거 주우면 또 다른 게 떨어진다.
그러다 점점 지애 무리에서 멀어지는 봉순.
봉순 : 지애야. 같이 가. 지애야... (불러보지만 더 멀어진다)
준혁 : (지애를 따라가다가 봉순을 힐끗 보는데)
봉순 : 준혁아... (도와달라는 듯 애타게 바라보며 손 내미는데)
준혁 : (차갑게 외면한 채 지애를 따라가 버린다)
준혁 지애에게 다가가고. 두 사람 다정하게 밀어 속삭이며 멀어지면.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봉순. 비참해 눈물이 흐른다.
#8. 봉순 집 안방 (D)
새벽. 봉순, 악몽을 꾼 것처럼 소스라치면서 깬다. 땀이 송글송글하다.
옆을 보면 준혁이 잠들어 있다. 왠지 안심이 되고. 시계 보면. 정확히 6시.
#9. 봉순 집 주방 (D)
예쁘게 화장을 끝낸 봉순.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고. 맛깔나게 반찬을 만들어 완벽하게 밥상을 차리는 몽따쥬.
테이블 보 각까지 깔끔하게 맞추는 봉순.
#10. 봉순 집 안방 (D)
봉순 옷장을 열면, 완벽하게.. 눈부시게 잘 다려져 깔끔하게 정리된 채 걸려있는 와이셔츠들이 도열해 있고.
양복점에서 막 나온 것처럼 깨끗하게 잘 다려진 양복과. 서랍을 열면 잘 정리된 양말들.
또다른 서랍 속엔 정확히 각 잡힌 손수건들.
준혁을 챙겨주는 봉순의 살뜰한 모습들.
봉순 : (준혁에게 파란 바탕에 물방울 무늬 넥타이를 대주며) 오늘 중요한 미팅 있댔죠.
협상자리엔 안정감있는 블루 계열에 경쾌한 물방울 무늬가 제격이래요. (거울 보며) 봐요. 완벽하죠. (생긋 웃는다)
준혁 : (무표정으로 거울 보고)
#11. 지애 집 안방 (D)
달수, 양말 신고 있고. 외출복 입은 지애가 넥타이 고른다.
지애 : 넥타이가 맨날 이거밖에 없어서 어떡해?
달수 : 괜찮은데 뭐.
지애 : 당신 옷걸이가 워낙 좋으니까 커버는 되는데. (매주며) 내가 조만간 집에 가서 아빠 넥타이 좀 훔쳐올게.
달수 : 당신 자꾸 처갓집 가서 이거저거 훔쳐오지 좀 마. 안그래도 장모님이 나 싫어하시는데. 더 찍히겠어.
지애 : 걱정마. 욕을 먹어도 내가 먹고. 찍혀도 내가 찍혀. (하며 화장대 가서 분 열심히 두드리면)
달수 : 근데. 당신도 어디 나갈라구?
지애 : 말했잖아. 봉순이네 갈거라구.
달수 : 당신 괜히 갔다가 자존심만 다치면 어떡해.
지애 : (눈 지그시 감으며) 여보? 우리집 가훈!
달수 : 낮게 나는 새가 먹이를 먹는다...
지애 : 있지. 자존심이란 건? 배부른 새가 챙기는 디저트 같은 거야. 난 디저트 필요없고. 당장 먹을 밥이 필요하거든? (나름 비장)
* 퀸즈팰리스 앞, 지애 두 주먹 불끈 씬 삭제
#12. 봉순 집 거실 (D)
봉순 골프 치러 가는 차림. 준비 끝냈는지 나가려는데. 벨소리 들리면.
봉순 : (문 열어주며) 양과장네야?
하는데. 지애가 불쑥 들어온다.
마뜩찮은 봉순.
봉순 : 니가 웬일이니?
지애 : (완전히 나긋나긋한) 어디 나가던 길이었나봐?
봉순 : 보면 몰라? 아침부터 왜 온건데.
지애 : 어.. 할 얘기가 있어서.
봉순 : 짧게 해. (소파 쪽으로 가면)
지애 : (쪼르르 따라가며 주저리주저리) 봉순아. 내가 많이 생각해 봤어. 니가 나한테 왜 이러나. 그런데 그럴만 하겠더라구.
내가 옛날엔 참. 철이 없었잖니. 나만 세상에서 최곤줄 알고.
봉순 : (거만하게 앉으며) 다 아는 얘긴 생략하구. 그래서?
지애 : (선 채로) 니가 나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서.
봉순 : (어이없다는 듯이 픽 웃고) 내가 왜?
지애 : 알잖아. 우리 남편 목숨, 니 남편 손에 달린 거. 이번에 프리젠테이션 시연 하는 게 있는데.
니 남편이 공영민씨한테만 기회를 주고, 우리 남편한텐 안준대.
봉순 : (귀찮은 듯) 나 지금 바쁘거든? 쓸데없는 청탁같은 거 할 거면. 가줄래?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지애 : (팔 붙들고) 시키는대로 다 할께!
봉순 : (돌아본다)
지애 : (절박) 니가 시키는 거 뭐든 다 할게!! 뭐든 다!!!
봉순 : (표정)
지애 : 옛날엔 니가 내 시녀였지만... 이젠... 내가 니.... 시녀 할께! 몸종도 하고. 노예도 하고. 다 할께!
기다려왔던 순간인 듯한 봉순 표정. 만감이 교차한다.
그 표정 위로 파바박. 핍박받고 설움받던 봉순의 지난날이 컷컷으로 빠르게 스쳐가고.
봉순 : 지난번에도 한번 얘기한 것 같은데, 영 못 고치네 그 버릇?
지애 : 응? 무슨 버릇?
봉순 : 공적인 부탁을 할 땐. 인턴사원 부인과 부장 부인 사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내 말이 너무 어려운가?
지애 : (표정 있다가 확 꺾으며) 어머나. 죄송해요 사모님. 제가 그걸 깜박하다니. 저 미쳤나봐요.
봉순 : (회심의 미소) 정말 시키는대로 다 할 수 있겠어?
지애 : (간절히 끄덕끄덕) 그럼요. 제가 못하면. 천지애가 아니라 땅지애에요.
봉순 : (피식 웃고)
지애 : (최대한 불쌍하게 본다)
봉순 : 그럼... 그거 들고 따라와.
지애 : (응? 해서 돌아보면)
커다란 봉순의 골프백이 놓여있다.
지애 : 어디 가시려구...?
봉순 : 보면 몰라? 골프 치러. 네명 부킹 잡아놨는데. 한명 펑크가 나서. 설마, 골프 못치는 건 아니지?
지애 : (표정 있다가 얼른) 못치긴요. 치죠. 치긴 치는데.
봉순 : 그럼 됐네. 다른 일 없으면 같이 가. 왜. 싫어?
지애 : 시..싫은 게 아니라. 필드 나간지 좀 오래돼서. (괜히 공 치는 척 해 보며) 제 실력이 나올까 몰라.
봉순 : (비웃으며) 본실력이 어디 가겠어? 몸 좀 풀면 나오겠지.
지애 : (피하고 싶은) 아니 그런데 제가 지금 옷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서. 다음에...
봉순 : 내 옷 입으면 돼. (훑어보며) 근데 내껀 슬림해서 자기한텐 좀 끼긴 끼겠다. 은근 똥배 있네?
지애 : (흡 숨 들이쉬며) 똥배요? 똥배가 어디요?
#13. 퀸즈팰리스 주차장 (D)
지애가 봉순의 골프백부터 이런저런 짐들 들고 낑낑대면서 따라오고.
봉순은 산뜻하게 빈손으로 온다.
기다리고 있던 정란과 이슬 좀 놀란다.
봉순 : 뭐해? 뒤에 짐 실어.
지애 : (고분고분) 네 사모님.
지애, 낑낑대면서 가서. 트렁크 열고 짐 싣는다.
정란 이슬 놀라서 보고.
봉순 : (일부러) 공 좀 쳤대서, 같이 가자 그랬어.
이슬정란 : 아..네... (의외란 듯)
지애 : (진땀나는 미소)
#14. 사장실 (D)
태준 긴 다리 책상 위에 턱 얹어놓고. 열심히 게임 하고 있다.
이때 아주 조심스럽게 문이 살짝 열리고. 엿보는 듯한 누군가의 눈.
#15. 사장 비서실 (D)
비서, 누군가와 통화중이다.
비서 : 게임중이십니다.
이때 안에서 “아우!!” 하는 태준의 안타까운 탄성.
얼른 문닫는 비서.
비서 : 게임머니를 좀 잃으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어젯밤에. 고교 동창 분들과 청담동 돈텔마마에 가셔서
새벽까지 양주를 푸셨습니다. 다른 특이 사항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얼른 끊고 주변 살피고)
#16. 영숙 집 거실 (D)
전화 끊는 손. 틸업하면 영숙이다. 영국식 커피잔에 홍차 마시고 있는.
영숙 : 잘 놀고 있네. 계속 그렇게 열심히 놀아라, 꼬맹이. (의뭉스런 미소)
#17. 골프장 (D)
골프장 풍경들 잠깐 보여지고.
필드 위로 봉순, 정란, 이슬, 지애.
지애, 뭐가 뭔지 참.. 어리둥절하기만 한데.
봉순 : 핸디 줄까?
지애 : 네? 무슨 핸디.. 아~ 핸드폰요? 주세요, 제가 갖고 있을께요.
이슬정란 : (까르르 웃고) 어머 웬일이니/ 미치겠다 진짜
지애 : (아닌가 싶은데)
봉순 : 핸디캡 줄까 그 소리였어. 됐어. 먼저 쳐봐.
지애 쭈볏거리면서 나와 치려는데.
이슬 : 어머, 웬일이니! 티 꽂고 시작해야지.
지애 : (진땀 나는) 네? 티요? 무슨...티.... (두리번)
봉순이 눈짓하면. 캐디가 티를 지애 앞에 꽂아주고.
지애, 눈치 보다가 어설프게 휘둘러 보는데.
골프채는 저만치 뒤로 가서 떨어지고. 잔디만 움푹 파였고. 공은 그대로 있다.
모두 키득대고.
지애 얼른 가서 골프채 주워오며 망신스러 죽겠다.
봉순 : (무표정) 다시 해 봐.
지애 미치겠지만 한번 더 한다. 뒤에 있던 사람들 채에 얻어맞을 뻔 하고. 놀라며 피하는 사람들.
봉순 : (비웃는 기색 역력) 뭐해 지금? 두번만 채 휘둘렀다간. 사람 아주 잡겠네. 공 쳐본 거 맞어?
지애 : 그게... 채 잡은 게 너무 오랜만이라... 요새 바빠서...
이슬 : 아유 꼭. 못하면 못한다 그러지. 아는 척 했다가 딴 사람들 피해주는 사람이 있어요.
정란 : 아주 무매너야.
지애 : (봉순 보면)
봉순 : (니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웃는)
지애 : (저년이...)
봉순 : 더 해 봐야 소용없겠네. 뭐 어쨌든 여기까지 온 거, 뒤나 따라다니면서 캐디나 좀 도와주든가. (가버린다)
지애 : (표정. 파르르)
<컷 튀면>
이동하려는지 짐 싣는다. 캐디가 운전하고. 세명 타고 나자 이슬 때문에 자리가 부족해 보이고.
봉순 : 어쩌지? 자리가 좀 부족한데? 걸어와야겠다.
지애 : (표정 있다가 떨리는 한숨) 괜찮아요. 우..운동삼아 걸어가면 되..
봉순 : (말 끝나기도 전에) 출발해.
카트 출발하면. 지애, 부르르 떨면서 이런저런 짐 든 채 낑낑대고 열심히 걸어간다.
그러다 뭐 하나 떨어뜨리게 되면. 다른 것까지 같이 떨어뜨리게 되고. 주섬주섬 줍느라 봉순 일행과 자꾸 간격이 벌어지는 지애.
욕할머니처럼 입으로 중얼중얼 엄청 욕하며 따라간다.
#18. 골프장 다른 일각 (D)
봉순과 정란과 이슬이 골프치고 있다. 캐디처럼 봉순 따라다니면서 시중 드는 지애.
봉순 : (지애에게) 미안한데. 나 7번 아이언 좀 갖다 줄래?
지애 : (부글부글 끓지만) 7번요?
지애 종종거리면서 카트까지 달려가면서 무지 열받고.
지애 : 지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뭘 갖다달라 말라.. 웃기는년이야 아주.
7번 아이언 빼서 다시 종종거리면서 오는데. 거의 다 왔을 때쯤.
봉순 : 아.. 미안미안. 7번이 아니고. 5번이네?
지애 : (꾹 참느라 파르르) 5번요? 네에. 5번....
다시 열심히 가는데. 한참 거의 다 갔을 때 쯤 또 부르는 봉순.
봉순 : 아니다. 그냥 7번 다시 갖다 줘.
지애 : (뒤돌아선 채 앞머리 훅 날리며, 곧 폭발할 듯) 저게 똥개 훈련시키나... 죽을라고!!! (바르르 떠는데)
봉순 : 뭐하구 있어?
지애 : (돌아보는데, 환하게 웃는 낯이다) 잘생각하셨어요. 제 생각에도 7번이 낫지 싶더라구요? 럭키세븐이잖아요?
(까르르 웃으며 뛰어와 7번 아이언을 두손으로 이마 높이에 받들어 넘겨준다)
#19. 골프장 다른 일각 (D)
봉순이 날린 공. 해저드 안으로 퐁당 빠진다.
해저드 쪽으로 오는 일동.
봉순 : 어쩌나. 저 공. 박세리 골퍼가 직접 싸인해 준 공인데. (하고 지애 본다)
정란 : 어머나. 정말요? 그 귀한 걸.
봉순 : 그렇다고 내가 들어가서 꺼내올 수도 없고. (머리 가볍게 매만진다)
지애 : (응? 해서 보면)
봉순 : (꺼내오라는 듯 가볍게 턱짓)
지애 : (알아채고, 입술 꼭 깨물다가 애써 웃으며) 아, 제가 꺼내올께요.
봉순 : (미소) 그래줄래?
지애, 잠시 망설이다가 슬리퍼 벗어놓고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구경하듯이 빙글 웃으며 서 있는 봉순.
소매 걷어가며 물속으로 손 집어넣어 휘휘 젓는데 잘 안찾아지고.
겨우 찾아서 집으려다가 결국 발라당 넘어지고 마는 지애. 첨벙 빠지고 만다.
지애 : (꺅 소리 지르고 잠시 허우적대는)
여자들 ‘어머’ 하면서도 웃음 참느라 쿡쿡대고.
깊지 않은 물이라 지애 곧 일어나는데 그 와중에도 손에 공이 들렸다.
지애 : (그래도 자랑스러워) 찾았어요 사모님. (공을 살피며) 박세리 사인공... (하다가 표정) 사인이 없는데요?
(공을 요리조리 돌려봐도 없다)
봉순 : (아무렇지 않게) 그게 아닌가? 아~ 사인공은 집에 두고 왔네.
지애 : (뭣이??!! 하고 기막혀 보면)
봉순 : (얄밉게) 미안.
지애 : (노려본다)
봉순 : (니가 노려보면 어쩔래? 하듯이 보면)
지애 : (더이상 못참고) 야아!!!! (소리소리 지르며 봉순 머리끄댕이 잡고)
봉순 : (꺅 소리 지르며) 이게 미쳤나!!!!
지애 : 니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 이년아?
봉순 : (예전 봉순처럼) 니가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해 이년아!
지애와 봉순, 서로 머리 붙들고 진탕에서 난장판을 벌인다.
하지만 힘으로도 봉순을 당할 수 없고. 마침내 밑에 깔려서 얻어맞는다.
으아아아악!!! 비명 지르는 지애.
봉순 : 거봐 이 기지배야. 그러게 대들긴 왜 대들어! 본전도 못 건질 거!!! 니 남편은 이제 끝이야. 디 엔드. 알아들어 이 기지배야?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지애. 봉순이 멀쩡히 눈 앞에서 웃고 있다.
봉순 : 지금 나 째려보는거야?
지애 : (훅 호흡) 네? 아뇨. 그럴리가요. 제가 원래.. 사시끼가 좀 있어서. (딴 데 허공보며 까르르 웃어준다)
#20. 대형 회의실 (D)
준혁, 신제품의 홍보 전략에 대해서 몹시 논리정연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설명 듣는 임원진들의 표정.
홍식은 준혁을 흐뭇하게 보며 자료를 들춰보기도 하면서 경청하고 있다.
가운데 자리에 앉은 태준도 멋진 포즈로 경청하는 듯 하다.
하지만 태준이 펼쳐놓은 노트북을 보면. “쌩얼대결 송혜교 VS 이효리” 같은 스포츠 뉴스 기사를 보고 있는 것.
주변 눈치 한번 쓱 보고. 리플까지 단다. “본좌, 송혜교에게 한표!!”
그러다가 준혁과 눈 마주치면, 뭔가 알아듣는다는 듯 심각하게 고개 끄덕이는 태준.
그런 태준을 슬쩍 보는 홍식 표정. 비웃는 듯 하다.
#21. 복도 (D)
준혁 나오는데. 뒤따라 나오는 임원들. 그리고 홍식.
홍식 : (친근하게 다가가 준혁 어깨 감싸고) 수고했어. 요즘 트렌드랑도 맞고. 반응 괜찮을 것 같애.
준혁 : (절도 있게 인사) 감사합니다 이사님.
홍식 : 그런데 새샘 백화점 입점 프리젠테이션껀 인사부장 조카가 맡기로 했다며?
준혁 : 네. 박부장 부탁도 있고 해서요.
홍식 : 그 사람.. 사람은 좋은데. 너무 설쳐서 말이야.
준혁 : (긍정도 부정도 않고 묵묵히)
홍식 : 자기가 내 라인이라고 그러고 다니는 모양인데. 라인이 뭐, 술 몇 번 같이 먹는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서로간에 믿음이 중요한거지. 한부장이랑 내 사이처럼. 안그래?
준혁 :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홍식 : 그런데 말이야. 그런 말이 있어. 눈총도 총이라고.
준혁 : (! 해서 보면)
홍식 : 자꾸 맞으면 아프고. 때론 죽기도 한다는 거지.
준혁 : (표정)
홍식 : 인사부장 말 들어주려다, 한부장 당신 총 맞으면 어떡할거야? 그 사람 조카 들어올 때부터 이런저런 말들도 나돌고 있는데.
한부장이 직접 나서서 낙하산 케어해 주고 있단 인상 줄 필요가 뭐 있나.. 싶네?
준혁 : (표정)
홍식 : (선하게 웃으며) 잘 생각해 보라구. 인사부장한테 신의 깎이지 않으면서. 총맞지 않을 방법.
준혁 : (표정)
홍식 : (툭툭 쳐주고) 수고해. (간다)
준혁 : (깍듯하게 인사한 후 표정)
#22. 고깃집 내부 (N)
길가에 있는 작은 고깃집. 고기가 구워진다.
지애는 집게와 가위 들고 열심히 자르고 있고. 구워지자마자 낼름낼름 먹는 이슬 정란, 봉순.
봉순 : 많이들 먹어.
이슬 : 네 사모님. 허름하긴 해두 이런 집이 진짜 맛집이에요. 정말 어떻게 이런 집을 알고 계신지, 사모님을 따라갈 수가 없다니까요?
정란 : 사모님이 사주시는 거라서 그런지, 훨씬 맛있는 거 있죠.
봉순 : (힐끗 지애 보며) 자르지만 말고, 뒤집기도 좀 하지?
이슬 : 그러게. 고기는 잘 뒤집는 게 기술인데.
지애 : (이제 포기했다) 네. 죄송합니다. (뒤집는다)
(E) 꼬르륵 지애 (배고파 죽겠는데, 구우랴 뒤집으랴 정신 없어 한점도 못 먹는다)
(시간 경과)
다들 배부른지 물러나 있고, 지애 드디어 고기 한점 집어들고 막 먹으려는 찰나인데.
이슬 : (바깥 가리키며) 어머! 저기.. 어떡해요!!
일동, 밖을 본다. 지애도 먹기 직전에 밖을 보면. 견인차에 끌려가고 있는 봉순의 차.
여자들 일동, 호들갑을 떨면서 밖으로 나간다.
#23. 고깃집 앞 (N)
봉순 차 이미 견인돼 가고 있다.
이슬 : 어우 어떡해요 사모님. (발 동동 굴리며)
봉순 : (지애보고) 그러고 있음 어떡해.
지애 : 네?
봉순 : 안쫓아가?
지애 : 네? (하다가 깨닫고) 네!!
지애, ‘아저씨!!’ 소리소리 지르면서 견인차 쫓아간다.
봉순 : (나른하게) 한 삼십분 걸릴 거 같은데. 우린 커피나 한잔씩 할까?
#24. 거리 일각 (N)
한참을 쫓아온 지애. 힘들어 죽겠고. 견인차는 이미 멀어졌다.
지애, 깡총거리며 손 흔들어서 겨우 택시 한대 세우고.
#25. 차량견인소 (N)
아직도 숨차하는 지애, 견인소 직원 앞에 서 있다.
견인소직원 : 견인료 4만원에. 보관료 30분당 700원이라 1400원 나왔습니다. 총 41400원입니다.
지애 : (카드 주면)
견인소직원 : (긁어보고) 한도초과로 나오는데요.
지애 : 아..그래요?. (망신스런 표정으로 지갑 탈탈 털고, 10원짜리 동전까지 다 꺼낸다)
견인소직원 : (돈 세어보는데)
지애 : (지갑 열어보면 정말로 텅 비었다. 암담한데)
견인소직원 : 280원 부족한데?
지애 : (표정 있다가) 총각. 누나 있어요?
견인소직원 : 네? 누나 없는데?
지애 : 그럼.. 없던 누나가 생겼다 생각하고. 280원만 양보하면 안될까?
#26. 퀸즈팰리스 주차장 (N)
지애가 차를 대고. 차에서 내리는데. 가만 앉아 있는 봉순.
지애, 욕나오려는 거 꾹 참고. 뒷자리 문 열어준다.
봉순 : 고마워. 키 줄래?
지애 : (준다)
봉순 : 옷도 벗어주고 가야지.
지애 : 아. 맞다. 옷.
#27. 봉순 집 거실 (N)
지애가 원래 옷으로 갈아입고 봉순 옷 곱게 개서 방에서 나온다.
지애 : 여기..
봉순 : 그래. 잘 가.
지애 : (다급) 저기.. 준혁.. 아니 부장님께 우리 남편 얘기 좀 잘...
봉순 : (OL) 촌스럽긴. 그런 말 안해도 내가 알아서 해.
지애 : (환해지고) 고맙습니다 사모님.
봉순 : 그래. 그럼... (가라는 듯이 보는데)
지애 : (보는)
봉순 : 안가?
지애 : (표정 위로, OFF) 양봉순. 차비 좀 꿔줄래? 만원만 꿔줄래?
봉순 : 왜? 뭐 할 말 있어?
지애 : (차마 말 못하고) 편히 쉬시라구요. (꾸벅)
#28. 퀸즈팰리스 로비 (N)
지애, 가는데. 전화 오고.
지애 : 여보세요? 응. 당신이야? 나 지금 집에 가는 길. 당신은? 퇴근하는 길이야? (말하는데 괜히 눈물 나려고 하고)
봉순이네 간 일? 잘됐지. 내가 누구야.
달수OFF : 근데 당신 목소리가 왜 그래?
지애 : 내 목소리가 뭐... 어? 여보 배터리 없나봐. 끊어진다. (하고는 전화 뚝 끊어버리고 위 올려다보면서 눈물 닦아내는)
#29. 퀸즈팰리스 앞 거리 (N)
지애 걸어 나온다. 지갑 다시 봐도 텅 비었고.
할 수 없이 타박타박 걷기 시작하는 지애. 피곤하고 힘들고 발아프고 죽겠다.
이때 태준의 차가 그 옆을 지나간다.
그리고 잠시 후. 멈춰서는 태준의 차. 뒷자리에서 태준만 내린다.
지애 뒤를 따라오는 태준.
지애, 잠깐 구두 벗어서 보면 빨갛게 까져서 부어오른 뒷꿈치. 아야.. 쓰려하고 있는데.
태준 : (쓱 옆으로 오며) 아줌마!
지애 : (소스라치게 놀라고) 엄마야!
태준 : 어디 가요.
지애 : (허거덕) 태..태봉...씨?
태준 : 아줌마는 지금 병원에 있어야 할 시간 아닌가?
지애 : 그...그게 사정이 생겨서. 잠깐 외출 좀..
태준 : 내가 아까도 병원에 전화해봤는데. 아줌마 거기 안나타난지 오래라던데?
지애 : (헉! 아무 말 못하고 걸어가면서 표정)
태준 : (따라붙으며) 어떻게 할래요? 나일롱 환자 행세하다가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내가 한번 가르쳐줘봐요?
지애 : (약간 쫄아서) 아뇨? 안가르쳐줘도 되는데?
태준 : 그럼 어떡해요. 보험사에선 나일롱 아줌마 가만 안둔다고 난린데?
지애 : (금세 겁먹어) 퇴..퇴원할께요.
태준 : 합의금은!
지애 : (이씨..) 안받으면 될 거 아니에요!
태준 : 진작 그럴 것이지. 어디서 피같은 내돈 삼백을 뜯어갈라구.
지애 : 대신.. 지금까지 병원비만 좀 해결해줘요.
태준 : 그걸 내가 왜?
지애 : 아니. 나두 진짜로 뒷목 땡기고 아프구 그랬다니까? 첨부터 백프로 뻥은 아니었어요. 지..진짜루.
태준 : 내가 그걸 어떻게 믿나?
지애 : 태봉씨. 정말 이렇게 나올 거에요? 나, 그깟 돈 없어서 이러는 사람 아니에요! 나도 살만큼 사는 사람이고!
하는데, 순간 크게 꼬르륵 소리
태준 : 살만큼 사는데. 굶고 다니나?
지애 : (표정) 굶긴 누가 굶어요? 끼니땔 놓친 거 뿐이지?
태준 : 잘됐네.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일단 뭐 좀 먹으면서 얘기합시다.
#30. 길거리 떡볶이집 (N)
나무 의자에 걸터앉은 지애, 떡볶이를 미친 듯이 찍어먹고 있다.
태준 옆에서 오뎅꼬치 든 채 참 재미난 구경 났다는 듯이 보고 있고.
지애는 그러거나 말거나 떡볶이 콕콕 찍어 입에 우겨넣고. 나중엔 김밥으로 떡볶이 접시 싹싹 닦아 정말 깨끗하게 다 먹는다.
태준 : (보다가 기가 막혀) 한접시 더 시켜요?
지애 : (손 들어 제지하며 도도하게) 됐어요. 난 양이 많지 않아서, 이 정도면 충분해요. (손수건으로 입가를 곱게 누른다)
태준 : 아줌만 충분하겠지. 난 하나도 못먹었거든? (접시 들어서 보며) 우와. 2인분을 혼자 다 먹냐?
지애 : (약간 민망하고) 난 남을까봐 아까워서 억지로 다 먹은건데.
태준 : (그런 지애가 웃긴다. 턱 괴고 보며) 아줌만 뭐하는 사람이에요?
지애 : 나요? 나 그냥 전업주분데?
태준 : 언젠 여러가지로 공사다망하고. 뭐 또 바쁘고. 그렇대매요?
지애 : 전업주부가 얼마나 바쁜데요! 집에서 놀고 먹는 줄 알죠. 남편이랑 애가 다 나만 보고 있는데! 할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태준 : (수긍한다는 듯 끄덕이면)
지애 : 그러는 태봉씨는 뭐해요? (하다가 아차하고) 미안. 아픈 델 건드렸네.
태준 : 아픈 데?
지애 : 너무 힘들어하지 말아요. 백수 사백만 시대라잖아요. 언젠간 좋은 날 오겠죠. 인생사 다홍치마라는데.
태준 : 새옹지마 아닌가?
지애 : (인자한 미소) 그래요. 우리 남편도 태봉씨처럼 많이 배웠고 아는 것도 많아서 내가 틀린 말 할때마다 지적질도 잘하고 그래요.
그렇지만 얼마전까진 정말 한심한 백수였거든요?
태준 : 그런데요?
지애 : 하지만! 얼마전에 퀸즈푸드라구, 정말 좋은 회사에 취직도 했답니다.
태준 : (피식) 진짜 좋은 회사 들어갔네.
지애 : (진지하게 끄덕여주며) 그러니까 희망을 잃지 말아요. 태봉씨도 그 멀쩡한 허우대에. 금방 좋은 소식 있겠죠.
태준 : 알았으니까 그쪽이 떡볶이값 내요.
지애 : (흠칫) 네? 아니. 먼저 먹잔 사람이 내는 거 아니에요?
태준 : 아줌마가 다 먹었잖아요. 난 오뎅 하나밖에 안먹었어요. (오백원짜리 동전 탁 내더니) 됐죠? (나가려는데)
지애 : (다급) 아니 저기.. 잠깐만!
태준 : (뭐? 해서 보면)
지애 : 나 돈 좀 빌려줘요.
태준 : 난 돈 안 빌려주는데?
지애 : 내가 지갑을 놓고 와서 그래요. 만원만 꿔줘봐봐요. 갚을게.
태준 : 난 이자가 쎈데?
지애 : 이자요? 무슨 이자?
태준 : 묻지 마 이자. 나중에 내가 받고 싶은 걸로 요구할겁니다.
(만원짜리 꺼내들어서 줄 듯 말 듯) 쎈 이자 치룰거면 받든가. 아님 말든가.
지애 : (별 생각없이 확 채가며) 아으 알았어요. 땡큐에요.
#31. 봉순 집 거실 (N)
준혁, 하대리, 양과장, 공영민 등등 달수만 뺀 직원들 데리고 들이닥친다.
봉순, 전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맞이한다.
하대리 : 갑자기 들이닥쳐서 이거.. 죄송합니다.
봉순 : 괜찮아요. 어서들 오세요.
준혁 : (당당) 우리 회의가 길어져서 아직 저녁 전이야. 상 좀 보지.
봉순 : 어머 시장하시겠어요. 잠깐만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준혁 : 거기들 앉어. (후배들에겐 통크고 카리스마 있는 멋진 선배의 모습이다)
#32. 봉순 집 주방 (N)
봉순, 민첩하게 냉동실에서 등갈비를 꺼내 해동시키기 시작한다.
잘 익은 김치를 꺼내 썩썩 써는 손.
다음. 실고추며 대파 양파 같은 것들을 싹싹싹 잘도 썰어낸다.
커다란 후라이팬에 낙지와 함께 고추장 등을 볶기 시작하고.
시원해 보이는 조개국물이 우러난다. 그 위에 빨간 실고추 뿌려지고.
배추 씻어내고. 예쁜 접시 위에 보쌈양념과 싱싱한 굴.
위생장갑 낀 채 냉이 같은 봄나물을 맛있게 무쳐낸다.
한편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까지.
#33. 봉순 집 거실 (N)
뜨끈한 밥에 낚지볶음, 조개국, 어린배추굴보쌈과 냉이나물무침, 등갈비 김치찜에 월남쌈에 야채 샐러드와 각종 쌈야채까지.
예쁜 그릇들로 푸짐하게 차려진 저녁상.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언제 이걸 다 차렸나 싶어 모두들 입이 떡 벌어져 있다.
하대리 : 아니.. 저희가 갑자기 들이닥친 거 맞습니까?
양과장 : 그러게요. 부장님이랑 두분이 미리 짜고 이러시는 거죠?
봉순 : 아니에요. 집에 있던 재료들로 간단히 만든 거에요. 급하게 만든거라 맛이 어떨진 장담 못해요.
준혁 : 그래. 호들갑들 떨지 말고. 먹기나 해.
일동 : (잘먹겠습니다! 하고 걸신 들린 듯 맛있게들 먹는다/ 야 역시 사모님 최고~ 부장님은 복도 많으셔~ 등등 칭찬일색이고)
봉순 : (흐뭇하다)
(컷튀면)
깔끔한 안주에 맥주 마시고 있는 일동. 옆에서 과일 깎아내고 있는 봉순.
준혁 : 공영민씨. 내가 아끼는 거 잘 알지?
영민 : (고개 숙이고) 예 부장님.
준혁 : 이번 프리젠테이션 시연 말야. 온달수씨랑 경쟁 한번 붙어보는 거 어때.
영민 : (당황) 네?
봉순 : (멈칫 하며 표정)
준혁 : 괜히 좋은 실력으로 낙하산이니 뭐니 뒷말 들을 거 없잖아? 어차피 승부는 정해진 건데.
영민 : 그렇긴 하지만...
준혁 : (맥주 따라주며)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구! 난 내 사람은 확실히 챙기니까.
영민 : 네. 알겠습니다.
봉순 : (애매한 표정으로 과일접시를 가운데 놓는다)
#34. 기획실 (D)
준혁, 책상 앞에 달수와 영민을 불러놓은 상태다.
달수 : 그게.. 정말이십니까? 저한테도. 기회를 주신다구요?
영민 : (표정)
준혁 : 다음주 월요일 아침. 임원회의가 열립니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의 프리젠테이션 시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시연 결과는 임원단에 의해서 채점 매겨질 거구요.
달수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준혁 : 단. 조건이 있습니다.
달수 : (? 보면)
준혁 : 둘 중 한명. 더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그날로 회사를 그만 둬야 합니다. 물론 나머지 한명은 정식사원 발령 받을 거구요.
달수 : !!!
영민 : (표정)
달수 : 아니... 그건... 인턴 생활 마친 뒤에 결정한다구...
준혁 : (볼펜 탁탁 치며) 생각해 보니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을 것 같아서요. 이번 프리젠테이션 시연회야 말로
두 사람의 진짜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기회 아닌가요? 공영민씨 생각은 어때요.
영민 : (기다렸다는 듯) 전 좋습니다.
준혁 : 온달수씨는?
달수 : (지기는 싫어서) 저도 뭐...
준혁 : 그럼 됐네. 그렇게 하는 걸로 하죠.
달수 : (이건 아닌데... 싶은)
#35. 퀸즈 푸드 사무실 복사기 옆 일각 (D)
우울하게 복사하는 달수. 그 옆 하대리는 한 장씩 나오는 팩스를 받고 있고.
하참 : 그나저나. 공영민이는 벌써 보름 전부터 시장조사 다니고 자료도 엄청나게 찾아논 거 같던데. 괜찮겠어?
달수 : (절망적)
하참 : 이거 뭐 일주일도 안남았잖아. 시간적으론 택도 없는데. 괜찮겠냐구.
달수 : (더 절망적)
하참 :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때. 우리 회사에선 이런 노래가 유행했었지. (노래) 찬바람이 불면~ 내가 짤린 줄 아세요~ (하며 나간다)
달수 : (에이 진짜!)
#36. 지애 집 거실 (N)
달수 들어오는데. 파팍 폭죽이 터지고.
고깔 쓴 지애와 정원이 귀엽게 춤추면서 노래한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달수 : (미안하고 부담스런) 왜 이래.
지애 : (궁둥이 탁탁 때려주며) 여보. 축하해. 내가 뭐랬어. 잘될거랬지? 정원아. 회사에서 아빠가 지인짜 큰~ 프로젝트를 맡으셨대!
정원 : 아빠 최고!
달수 : (뭐라고 말도 못하고 쓴웃음)
지애 : (봉순에게 전화 건다) 여보세요? 봉순이.. 아니 사모님? 정말 감사드려요.
#37. 봉순 집 거실 (N)
봉순 열받은 상태지만 꾹 참고.
봉순 : 우리 그이 펄쩍 뛰는걸, 내가 어르고 달래서 어렵게 얻어낸 기회야. 열심히 하라 그래!
전화 끊더니 어디론가 전화한다. 테이블 위엔 프리젠테이션 기안들이 몇 개 쌓여있고.
봉순 : (기안 넘겨보며) 응 고운씨. 공영민씨 프리젠테이션 준비는 잘 돼 가? 내가 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우리 부장님이 해오신 프리젠테이션 기안 중에 잘된 걸로 샘플 몇 개 뽑아봤거든? 고맙긴. 우리 언제 볼까?
#38. 지애 집 침실 (N)
지애, 귀여운 헤어밴드로 머리 쫙 올리고 크림으로 클린징하던 중이고.
지애 : 뭐? 프리젠테이션에서 지는 사람을 짜르겠대?
달수 : 응.
지애 : 한준혁 이눔자식! 위해주는 척 하더니. 등에 칼을 꽂겠다 이거지?
달수 : (방바닥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그리며 몹시 우울하다) 이러다 석달도 못채우고 짤리는 거 아닐까?
지애 : (눈 잠깐 감았다 뜨며) 여보. 헝그리정신이라고 알지?
달수 : 알지. (줄줄 외듯이) 가난 속에서도 피나는 노력과 극기로 역경을 극복하는.. 바로 그 정신!!
새마을 정신하고도 일맥상통하잖아?
지애 : 밀린 월세 내고 카드값 빠져나가고 나니까. 생활비 통장에 이만구천구백원 남더라.
무슨 홈쇼핑 바지값도 아니고. 이만구천구백원이 뭐니.
달수 : ...
지애 : 난 지금 여보. 헝그리정신이 막 샘솟는 거 있지!!! (클린징을 전투적으로 하고)
#39. 지애 집 외경 (D)
새벽. 그 위로 “잘살아보세” 알람음
#40. 지애 집 안방 (D)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달수 귀에 시계 바짝 대고 있는 지애.
비몽사몽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달수.
달수 : 다섯시밖에 안됐는데...
지애, 아무말 없이 알람을 귀에 바짝 들이댄다.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41. 버스 안 (D)
첫차를 탄 달수. 꾸벅구벅 졸기도 하고. 유리창에 머리 박기도 한다.
#42. 공장 앞 (D)
문 열기를 기다렸다가, 경비에게 달려가는 달수.
달수 : (씩씩하게) 안녕하세요. 본사 기획팀 온달수라고 합니다. 자료조사 때문에 그러는데요...
#43. 점집 (D)
화자에게 설문지 뭉치 쥐어주는 지애.
지애 : 부탁한다 화자야. 여기 오는 손님들한테 한 장씩만 돌려주면 돼.
화자 : (화투장 치며) 아침부터 패가 안좋더라! 일생에 도움 안되는 몹시 불필요한 친구가 찾아올 거라더니. 그게 바로 너로구나.
지애 : 아우 기지배. 부탁해~
화자 : 갈 때. 자발적으로 소금 뿌리고 나가라.
#44. 지애 친정집 거실 (D)
지애, 친정모, 정원 앉아 있다. 정원은 과일 먹고 있고.
지애 : (친정모 손에 설문지 꼭 쥐어주며) 엄마.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통장님 파워. 응?
친정모 : 하여튼 지 아쉬울 때만.
지애 : 나 오늘 바쁘니까 정원이 좀 부탁해요. (하고 일어나면)
친정모 : 너 이년. 저번에 아빠 보약 통째로 없어졌던데. 그거 니 짓이지.
지애 : (헉 놀라며 급하게 사라진다)
친정모 : 으이구, 저 얌통머리. 저건 누굴 닮아서 저래?
정원 : (과일 야금야금 먹으며) 할머니가 이해하세요. 엄마두, 먹고 사느라 애쓰는건데.
친정모 : (기막혀 본다)
#45. 공장 내부 (D)
달수 아줌마들 틈에 섞여서 식초 원액 섞는 작업 함께 하고 있다.
달수 : 이게 식초 원액인거에요? 여기에 석류를 섞는 건가요? (어쩌고 하며)
(컷튀면) 포장 도와주는 달수.
아줌마 : 아이구. 이쁘게 생긴 총각이 일도 잘하네~
달수 : 누님. 나 총각 아니에요. 유부남이에요 유부남~
아줌마2 : 그래. 이쁜 유부남. 노래 한곡 때려봐.
달수 : 뭐 우리 누님들이 원하신다면~ (짜짜라 같은 트롯트 흥겹게 부르고)
아줌마들 : (신나서 추임새 넣고 덩실거리며 일하는)
#46. 백화점 여성전용 주차장 (D)
주차 못하며 낑낑대고 있는 여자 운전자에게 다가가. 친절하게 뒤에서 ‘오라이’ ‘왼쪽으로 붙여요’ 어쩌고 하면서 도와주는 지애.
여자 운전자 내리면 얼른 다가가서.
지애 : 새샘 백화점 자주 이용하시나봐요. 그래서 말인데. 질문 몇가지에 답변만 좀 해주시면 안될까요? 금방 끝나는데?
여자 : (쌩하니 가버리면)
지애 : 어흐.. (하고 보다가 저쪽에 또 헤매는 운전자 보이면, 오라이.. 하면서 쪼르르 뛰어간다)
#47. 백화점 비상계단 (D)
지애, 계단 난간에 주저앉은 채 종아리 통통 때려가며 빵과 우유 먹고 있다. 이때 전화 온다.
지애 : (목메는지 가슴 치며 전화 받는다) 여보세요.
태준OFF : 나일롱?
지애 : (짜증 솟구치고) 아.. 태봉씨.
태준OFF : 내 돈 안갚아요?
지애 : 꼴랑 만원 갖구.. 갚아요. 갚을건데. 내가 지금 쫌 바빠서요.
#48. 사장실 (D)
태준 : 바쁜 건 알겠는데. 내가 돈관리에 있어선 좀 철저한 편이라, 생각났을 때 받았으면 싶은데?
(진짜 궁금해서 묻는다) 아줌마 지금 어딘데요? 뭐하느라 그렇게 바쁜건데.
#49. 퀸즈팰리스 일각 (D)
영숙 잘 차려입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데.
거기 더 잘 차려입은 소현이 있다. 그 뒤론 소현의 여비서.
영숙 : (얼른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소현 : (거의 개무시다)
영숙 : (표정 있다가) 사장님도 안녕하시죠. 요즘 바쁘시다고 들었어요.
소현 : (앞만 보며) 제가 알기론. 김홍식 이사님이 더 바쁘신 것 같던데요?
영숙 : 네?
소현 : 우리 그이 빼놓고. 회장님과 김이사님만 독대하는 일이 잦아졌다던데.
영숙 : 네. 회사 일로 의논하시느라.
소현 : (OL) 괴팍하신 분이지만. 회장님 팔도 결국엔 안으로 굽는다는 걸 잊지 마세요.
애쓰신 만큼 나중에 헛물켜고 많이 허탈해하실까 걱정이네요.
영숙 : (파르르 하는데)
소현 : (미소로 마주 보는데 만만치 않다)
문이 열린다.
영숙 : (허리 굽혀 인사하며) 사모님. 안녕히 가세요.
소현 : (그대로 도도하게 나가 버리면)
영숙 : (고개 들며 노려본다)
#50. 새샘백화점 주차장 (D)
태준 차 타고 들어오는데.
지애가 저쪽에서 설문지 나눠주다가 주차요원들에게 혼나고 있다.
주차요원 : 아주머니! 여기서 이런 거 돌리시면 어떡해요.
지애 : 아니. 주차하고. 그냥 혹시 시간 남으면 해달라는건데. 그것두 안돼요?
주차요원 : 안돼요. 나가세요. (확 밀며 험악) 아 나가라구요!
지애 : 엄마야! (비틀 밀리는데)
태준 지애 앞에 차를 끽 댄다.
지애, 보고. 주차요원도 리무진의 위용에 표정 달라지며 보는데.
차에서 내리더니 뒷자리 문을 열어주는 태준.
태준 : 사모님.
지애 : 네? (깜짝) 아니 누가 사모님..
태준 : 타시죠.
주차요원 : (표정)
태준 : 회사를 생각하시는 것도 좋지만. 자꾸 이런 데서 험한 일 하시면 사장님이 걱정하십니다.
지애 : (표정) 예에? 아니 참... 내가 무슨...
태준 : 어찌나 겸손하신지 참. 하하. (지애 팔 잡아서 뒷자리에 곱게 태워주고 문 탕 닫는다)
주차요원 : (어리벙벙해서 본다)
태준 : (차 문을 탁 닫고. 주차요원 카리스마 있게 노려보며 툭 치더니) 사람 보는 안목이 그렇게 없어서, 성공하겠어 어린 친구?
(차에 탄다)
쌩하고 나가는 태준의 차.
주차요원 표정. 갸웃갸웃.
#51. 차안 (D)
뒷자리에 앉아 있는 지애. 계속 쫑알댄다.
지애 : 태봉씨. 내 자존심 챙겨준 건 고마운데요. 제가 지금 쫌 바쁘거든요.
태준 : 왜요. 그거 돌려야 돼서요?
지애 : 하긴.. 백수가 조직생활에 대해 뭘 알겠어.
태준 : (표정)
지애 : (거들먹) 우리 남편이 국내 연봉 탑텐에 들어가는 퀸즈푸드에 다닌다는 건 얘기했고.
이번에 우리 남편이 신제품 프리젠테이션을 하는데. 거기 쓸 설문조사 하는 거거든요?
태준 : (픽 웃고) 그래요? 그럼 내가 좀 도와줘요?
지애 : 그쪽이 왜?
태준 : 아줌마 말대로 난 백수라서, 시간이 남아돌거든.
지애 : 자랑이네.
태준 : 해줘요?
지애 : 됐거든요. 그 정돈 내가 알아서 합니다.
태준 : 한 백장.. 쫙 풀어줄 수 있는데?
지애 : (표정 급변)
#52. 고급 클럽 앞 (D)
지애 태준 차에서 내려 졸래졸래 오다가. 클럽 간판 보고 화들짝 놀란다.
지애 : (혼자 오바하기 시작하는) 뭐하는거에요? 사람을 뭘로 보고? 오호라. 내 얼굴이 좀 반반하다 싶으니까 이런 데로...
(핏대 세워가며 가슴 엑스자로 가리고) 나 그런 여자 아니거든요?
태준 : (좀 한심하게 보는) 본인을 너무 과대평가 하는 거 아니에요? 여기선 아줌마 받아주지도 않거든요. (먼저 들어간다)
지애 : (멀쭘해 있다가, 따라 들어가고)
#53. 고급 클럽 안 (D)
끝도없이 펼쳐진 레드카펫 복도.
룸이 열릴 때마다 늘씬늘씬한 여자들이 깔끔한 정장을 입은 채 모델워킹을 하며 지나다닌다.
태준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따라 들어오는 지애.
태준 : 평균 키. 172. 평균 몸무게 48. 월수입. 적게는 삼천. 많게는 억단위.
지애 : (허거덕) 에? 혹시.. 말로만 듣던.. 바로 그 텐프로?
태준 : 하루 일과. 오전 11시에 기상해서. 미용실 다녀오고. 오후 2시에 백화점 쇼핑.
여기 있는 여자들 80% 이상이 백화점 명품관 VIP 회원이죠.
지애 : (표정)
태준 : 우리가 만날 사람들이에요!
지애 : ??
이때 작은 마담이 오다가 태준을 본다.
마담 : 어머. 사장님!
지애 : (사장? 해서 보면)
태준 : 잘 있었어?
마담 : 아직 오픈도 안했는데.
태준 : 술 마시러 온 거 아니고. 룸 하나만 비워줘. 그리고.. (하면서 마담에게 뭔가 속닥인다)
마담 : 네. 사장님. (웃으면서 간다)
지애 : 사장...님?
태준 : 여기선 원래 다들 그렇게 불러요.
지애 : (그럼 그렇지...) 하긴.. 개나소나.. (해놓고) 아니 그쪽이 개나 소는 아니구요. (쫄래쫄래 따라들어가는)
#54. 룸 안 (D)
지애와 태준이 앉아 있고. 시크한 정장차림의 여자들 몇 명이 와서 앉아 있다.
여자1 : 여기 체크만 하면 되는거에요?
지애 : 네. 맨 아래 질문은 조금만 구체적으로다가 길게.. 적어주시면 더 좋구요.
여자들 열심히 적는 모습.
지애는 조금 들뜬 표정으로 그 여자들 보고 있고.
태준은 그런 지애가 참 별종이라는 듯이 본다.
#55. 회사 외경 (D)
#56. 회사로비 (D)
소현이 너무도 당당하게 들어온다.
있던 직원들 쫙 갈라지며, 일제히 인사하고.
경비들도 경례 부치고. 서둘러 가서 엘리베이터 잡아주고. 일사분란하다.
엘리베이터에 사뿐..오르는 소현.
#57. 복도 (D)
달수와 하대리 걸어온다. 달수는 자료를 산더미처럼 껴안고 오는 중.
하대리 : 새벽부터 공장까지 갔었어?
달수 : 네. 제조과정을 좀 보고 싶어서요.
하대리 : 역시 온달수씬 내 젊은시절이랑 닮았어. 나도 달수씨만할 때 정말 열정적이었다구.
(비밀스레) 오죽하면, 지금 사장 부인 있지?
달수 : (표정)
하대리 : 그 여자가 싱글일 때. 나한테 반해서, 울고불고 매달리는데. 와 죽겠더라구?
뭐, 난 재벌집 여잔 싸가지 없어 싫다고, 단호히 거부했지만 말이야.
달수 : 아... 예.... (하는데)
맞은편에서 또각또각 걸어오는 소현. 그뒤로 비서진들.
하대리, 허걱 놀란다. 저 여자는...?
달수도 약간 놀란다. 하대리가 옆으로 물러서자 덩달아 같이 물러서다가 서류 몇장을 흘린다.
소현, 다가오더니. 허리 굽혀 서류 줍는다.
소현, 건네주며 알듯 모를 듯한 미소 짓더니. 또각또각 사라지고.
하대리 : 봤지 봤지. 나 보고 웃는 거! 아직도 날 못잊었나봐. (깨방정 떠는데)
달수 : (표정)
#58. 회의실 (D)
디자인실 여자 실장 정도 되는 사람과 미팅 중인 소현. 뒤엔 여비서.
전시장에 걸 그림 정도를 검토하는 것 같다.
얘기중에 살짝 손목시계 보는 소현.
#59. 기획실 (N)
달수, 일하고 있는데. 문자가 온다. 보면. 소현에게 온 문자고.
“회사 옥상에서 바람쏘이는 중인데. 아무도 없어. 살짝 올라올래?”
#60. 옥상 (N)
해질 무렵. 달수 올라오는데.
소현이 바람을 맞고 서 있다가 돌아본다. 석양에 물든 얼굴이 예뻐 보이고.
소현 : 왔어? 여기까지 왔는데 얼굴 보고 가려구.
달수 : (어색) 누구 오면 어쩌려구.
소현 : (피식 웃더니 노을 바라보며) 그날 기억나?
달수 : 어? 무슨 날?
소현 : 온달수. 굴욕의 날!
달수 : (응? 하는데)
소현 : (장난스레 웃는 표정 위로)
#61. 해부학 실습실 (D) - 회상
카데바 주변에 서 있는 의대생들. 그리고 달수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그 사이에 서 있다.
교수 : 해부학 실습을 위해서 여러분 앞에 놓인 카데바는 고귀한 것입니다.
이미 핏기가 가신 달수 부들부들 떨며 겨우 지탱하고 서 있는데.
교수 : 자 먼저, 카데바를 기증해 주신 분과 가족을 위해 감사의 묵념을 올립시다.
동시에 우욱..하는 소리.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수도 언짢은 표정으로 쳐다보면.
달수 입덧처럼 우웩..하더니 뛰쳐 나가 버리고.
#62. 여자 화장실 (D) - 회상
대학생 소현 손씻고 있는데. 뛰쳐 들어오는 달수.
소현 : (꺅 놀라서 보다가) 선배. 여기 여자화장...
달수 : (개인구역으로 벌써 뛰어들어갔고 웩...한다)
소현 : 선배. 왜 그래요. 낮술 먹었어요? 괜찮아요? 등이라도 두드려 줘요?
(컷튀면)
달수 개인구역에서 나오는데.
들어오던 여자들 꺅 소리지르며. 어우 뭐야... 변태 아냐!!
얼굴 벌개져서 후다닥 도망가는 달수 보며 웃겨죽는 소현. 쫓아 나가는 소현.
#63. 학교 옥상 (N) - 회상 ----> 데이트장소
해질무렵. 노을 지고 있다.
달수 쭈그리고 앉아 있고. 소현이 옆에 서 있다.
소현 :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래요. 처음이니까 그랬겠지!
달수 : 처음 아니거든? 할 때마다 매번 그랬어. 난 아무래도 의사란 직업하곤 안맞는 성격인가봐.
소현 : 선배가 너무 여려서 그렇죠.
달수 : 알아. 내 여자친구두 맨날 나한테 그렇게 지적해.
소현 : (표정) 선배... 여자친구 있어요?
달수 : 응.
소현 : .... (실망) 그럼 안되는데...
달수 : 응?
소현 : 나 선배 좋아한단 말이에요.
달수 : !!!
소현 : (당돌) 많이 좋아하는 거 아니면. 그쪽 관두고 나랑 잘해보면 안돼요?
달수 : (얼굴 빨개지고) 어? 야 안돼. 내.. 여자친구... 우리 지애.. 얼마나 무서운데. 걔는 화나면 뵈는 게 없는 애야. 막 패구.
암튼 안되거든. 미안.
소현 : 무서워서 안된다구?
달수 : 아니? 이뻐서. 내 여자친구 무지 이쁘거든.
소현 : (표정)
달수 : (일어나더니) 있잖아. 나 갈께. 다음에 보자. 응?
소현 : (섭섭한데)
달수 : (도망가듯이 뛰어간다)
소현 : (표정 있다가 쓸쓸히 노을 보는 표정 위로)
소현OFF : 태어나서 처음 고백해본 거였는데. 그렇게 딱 잘라 거절하냐?
#64. 회사 옥상 (N)
달수 :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야 넌 별 걸 다 기억한다.
소현 : 시작이 잘못됐던 것 같애. 첨으로 좋아했던 남자한테 까이니까, 지금 봐. 남편한테도 맨날 까이구 살지.
달수 : 야.. 넌 무슨 말을.. 사람 괜히 죄책감 들게...
소현 피식 웃는데. 이때 소현 전화벨 울린다.
소현 : 여보세요? (표정 굳더니) 네 어머님. 전시회 작품 의논 때문에요, 김인애 실장 만나러 회사에 왔습니다.
금방 들어가겠습니다. (끊고) 중전마마 호출이야. 나중에 봐. (하고 산뜻하게 웃더니 간다)
달수 : (소현 뒷모습 보는 표정)
#65. 호텔 레스토랑 (N) *주방에서 레스토랑으로 수정
태준, 소현, 태준모가 밥을 먹는다.
태준모 : 임원회의 오늘도 빠졌다고 하더구나.
태준 : (열심히 먹으며 아무렇지 않게) 어!
태준모 : 니 아버지 참을성 없는 양반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래도. 마음에 안차면 무슨 짓을 하실지 몰라.
막말루 김홍식 이사 품에안고. 너 쫓아내면 어쩌려구 그래.
태준 : 쫓겨난다고 굶어죽진 않겠지. 나 있는 집 자식인데. (이거저거 열심히 먹고)
태준모 : (보다가 속터지는, 하지만 우아하게) 체하겠다, 천천히 먹어라.
태준 : 나 회사에서 쫓겨나면. 당신은 나 따라 나올거야?
소현 : (표정)
태준 : 나 위해서. 사람들한테 욕도 먹고. 설문지 같은 것도 막 돌리고. 뒷꿈치 다 까질 때까지 걷고. 그럴 수 있겠어?
소현 : (낮게) 무슨 소릴 하는 거에요 지금.
태준 : (포크 탁 놓더니, 물 꿀꺽꿀꺽 마시고) 잘 먹었습니다. 나 좀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 볼께요.
(소현에게) 천천히 먹고 와. (나간다)
태준모 : (뒷모습 째려보다가 덥고. 할랑할랑 손부채질하며) 결혼하고 벌써 3년이다. 3년 동안 남자 마음 하나 못가라앉히니?
너두 참 재주 없다. 니 엄마 닮았으면 그런 건 잘할텐데...
소현 : (모욕감) .... 죄송합니다.
#66. 태준 집 거실 (N) * 안방에서 거실로 수정
태준 소파 위에 앉아서 작은 게임기 하고 있는데.
문 열리고 소현 들어온다. 태준 보더니, 겉옷 벗고 앞에 앉는다.
소현 : 어머니 말이야. 참 재밌는 재주가 있으셔? 당신 자식이 버릇없고 못된 것도, 다 내탓으로 뒤집어 씌우시구. (빙긋)
태준 : (의외다) 너 뭐 좋은 일 있냐?
소현 : (생각하다가) 있지.
태준 : 뭔데.
소현 : 나, 같이 자고 싶은 사람 생겼어.
태준 : 뭐?
소현 : 못할 거랬잖아? 기대해. (2층으로 올라간다)
태준 : (보는 표정)
#67. 퀸즈팰리스 외경 (D)
#68. 봉순집 거실 (D)
지애, 봉순 앞에 와서 앉아 있다.
봉순 : (차를 밀어준다) 준비는 잘 돼 가?
지애 : (왜 이렇게 잘해줘? 눈치 보며) 네. 사모님.
봉순 : (좀 다정하게) 편하게 해. 지금은 부장 부인으로서가 아니구, 니 친구 양봉순으로 걱정돼서 묻는 거니까.
지애 : (약간 풀어지고) 응. 열심히 하곤 있는데. 모르겠어.
봉순 : 그냥 열심히만 해서는 안될거야. 공영민씨 쪽은 프리젠테이션 전문가한테 미니강의까지 받았다던데.
지애 : 그래?
봉순 : 얄미워 죽겠는데 그래도 친구라고. 너한테 마음이 더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네. 이럴 땐 공정해야 하는데.
지애 : (의심스러우면서도 감격) 정...말...?
봉순 : 그래 얘. 준비는 어떤식으로 하고 있어?
지애 : 준비한 시간이나 자료량이나... 우리가 많이 밀릴 것 같아서. 이번 주말엔 시식회를 해볼까 하거든?
봉순 : (눈 반짝) 시식회?
지애 : 웰빙초로 만들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조사를 좀 해봤어. (수첩 펴들더니) 의외로 많더라?
애들용으론 핫케이크, 다이어트용으로 가든샐러드, 그리고 아침대용으로 설기떡. 그리구, 디저트용 샤베트.
봉순 : (표정)
지애 : 제품을 이용해서 이런저런 요리를 해보려구. 그걸로 시식회를 하면서. 반응도 보고. 또 어떤 장점이 있는지 직접 알아보구.
봉순 : 괜찮은 아이디어네. 열심히 해 봐. 좋은 결과 있을거야.
지애 : ... 고마워.
봉순 : (따뜻하게 보며 차 마신다)
#69. 지애 친정집 동네 공원 정도 (D)
사람들 복작이는 가운데. 시식회 하고 있는 지애. 달수. 옆에서 지애모도 도와주고 있고.
어린 아이들은 핫케익을 맛있게 먹고. 젊은 새댁들은 샐러드 위주, 아주머니들은 설기떡을 좋아라 먹는다.
지애 : 드시고 나서 샤베트도 드셔보세요. 새콤달콤하거든요?
친정모 : 이거 다 우리 딸이 연구해서 만든거래. 미나 엄마! 한번 먹어보고. 여기다 대고 한마디 좀 해주고 가!
사람들, 맛있다는 둥.. 어떻게 만드는 거냐는 둥 한마디씩 한다.
지애, 가정용 홈비디오 카메라로 사람들의 반응을 담는다.
설문지에 적어주는 사람들. 설문지 거둬들이며 신이 난 달수.
#70. 몽따쥬
- 찜질방.
양머리 수건을 뒤집어쓴 지애 달수. 얼음을 둥둥 띄운 홍초액을 넣은 종이컵을 돌리고 있다.
- 등산길.
등산복 입은 지애 달수가 등산객들에게 홍초샤베트 나눠주고. 설문지도 돌린다.
#71. 지애집 주방 (N)
이만큼 쌓여 있는 설문지 뭉치.
그 옆의 지애, 우유에 먹는식초액을 타고. 맛을 보기도 하고. 나물에 한방울 떨어뜨려서 무쳐보기도 한다.
맛을 보고 표정.
지애 : 음~ 너무 맛있다. 어머. 나 전생에 장금이었나봐.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 콧노래 흥얼거리면서 하다가 시계 보면)
새벽 3시를 훌쩍 넘겼다.
#72. 지애집 거실 (N) ---> 컴퓨터 셋팅
달수, 엎드려서 자고 있고. 프린터에선 보고서가 인쇄돼 나오고 있다.
들어오는 지애. 달수 등 위에 얇은 담요 덮어준다.
#73. 임원회의실 (D)
위풍당당한 임원회의실.
윗씬의 제목이 표지로 쓰인 프리젠테이션안이 임원진의 명패가 놓인 자리 앞에 척척 놓인다.
달수가 나눠놓고 있다. 그리고 영민도 그 옆으로 자신의 기획안을 놓는다.
달수와 영민, 서로 아무 말은 안해도. 긴장감이 팽팽하다.
#74. 복도 (D)
김홍식 이사를 필두로 임원진들이 들어간다.
#75. 임원회의실 (D)
홍식, 준혁, 인사부장 등의 얼굴이 보이고.
영민과 달수는 각자 마주보는의자에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다.
준혁 : (일어나고) 지난주에 말씀드렸다시피. 올봄 새로 출시될 먹는 웰빙초를 국내 5대 백화점에 입점시키는 프로젝트가
진행중입니다. 그래서, 사내 프리젠테이션 시연을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기획팀의 두 인턴사원이 각각 준비한
프리젠테이션 기획안을 시연할 예정이니. 두가지 안 중, 어떤 안이 더 경쟁력이 있는지, 비교 심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홍식 : 바로 시작하지.
이때 문 열리더니 태준이 들어온다.
홍식을 비롯한 일동 일어나 인사하고. 홍식은 의아한 표정이다.
태준 : 나 신경쓰지 말고, 하던 거 하세요. (자리에 앉는다)
홍식 : (시작하라는 턱짓)
준혁 : 먼저, 공영민 사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영민, 앞으로 나온다.
인사부장, 흐뭇하게 영민을 보고.
영민 : 안녕하십니까. 기획팀 인턴 공영민입니다. (프로젝터를 켜며) 금번 우리 회사에서 웰빙초를 출시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가까운 일본 시장환경을 분석한 표입니다. 일본 후지경제 자료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로서.
식초, 음용식초,가공식초 등 식초를 이용한 음료는 연평균 물량 578000톤이 소비되고 있으며...
영민, 똘망똘망하게 발표하고.
프로젝터에선 화려한 도표와 그래프들이 정신없이 움직인다.
#76. 복도 (D)
달수, 슬며시 눈치 봐가며 나온다.
지애 웨건에 떡과 음료 세트를 담아 가지고 종종거리며 온다.
지애 : 시작해?
달수 : 좀 있으면 해. (가만 보면 달달 떨고 있고)
지애 : 여보. 심호흡. 심호흡. 후후후. 후우우우.
달수 : (지애 따라 심호흡 하다가) 이거 라마즈 호흡법 뭐 그런 거 아냐?
지애 : 아 그냥 해. 후후후.
달수 : 후후후.
#77. 임원회의실 (D)
준혁 : 다음은. 역시 기획팀 소속입니다. 온달수 인턴사원.
달수가 웨건을 밀고 앞으로 나온다.
달수 : 이건 제 와이프가 아침식사를 못하고 나오셨을 임원분들을 위해 만든 브런치 셋트입니다. (하나씩 나눠준다)
임원들 : (표정)
태준,준혁 : (표정)
달수 : 올봄 신제품인 웰빙초를 이용해서, 설기떡과 샐러드를 만들었구요.
또 우유에 웰빙초를 넣어서 부드러우면서도 상큼한 요거트를 만들었습니다.
일동 : (조금씩 맛을 보면서 괜찮다는 표정들)
태준 : (표정)
달수 : (조금 어눌하지만 제법 설득력이 있는 톤) 식초를 음료로 먹는다? 좀 낯설지 않으십니까. 저도 그랬는데요.
그래서.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어서 다양한 연령대의 예비구매자들에게 맛을 보여 봤습니다. 반응을 잠깐 보시죠.
달수, 비디오 플레이를 하면.
찜질방에서, 공원에서, 등산중에, 백화점에서, 다양한 장소의 다양한 사람들이 한마디씩 인터뷰한 것들이 빠른 편집으로 보여진다.
“맛이 깔끔하고 담백한 것 같아요” “신맛이 많이 날 줄 알았는데. 새콤달콤하네요”
“식초는 몸에도 좋다고 하니까, 백화점에 입점이 된다면 사먹어볼 용의는 있구요” 등등의 인터뷰.
맛을 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들. 어린 아이가 맛이 신지 귀엽게 콧잔등을 찌뿌리는 표정까지...
달수 : 그리고. 서면으로 300명의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그 결과치를 봐주시죠.
임원진들 : (흥미롭게 종이를 넘겨보고)
준혁 : (표정)
영민 : (넘겨보며 위기감 느끼고)
#78. 회사 로비 (D)
지애, 초조하게 왔다갔다.. 도저히 안되겠는지 휴게실 쪽으로 간다.
이때 맞은편에서 봉순, 고운, 그리고 한 여자가 들어온다.
봉순이 들어서자 경비는 경례를 부치고. 그 뒤를 따라서 여자도 자연스럽게 입구를 통과한다.
#79. 임원회의실 (D)
달수, 긴장이 어느 정도 풀려서 자연스럽게 마무리 멘트하고 있다.
달수 : 따라서 판매 컨셉에 따라 포장과 디자인을 달리하고, 그 연령대가 선호하는 요리의 레시피를 첨가해서 판매하는 방안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임원들 : (일리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뭔가 속삭이며, 반응 좋다)
달수 : (둘러보며 뭔가 되겠다 싶은데)
이때 문이 콰당 열리더니 여자가 들이닥친다. 윗씬에서 봉순과 함께 들어오던 여자다.
준혁 : (막아서며) 뭡니까!
여자 : 퀸즈푸드에서 시식회 했죠? (달수 보더니) 어, 이 사람 맞네.
일동 : (웅성거리고)
여자 : (달수 손가락질하며) 저 사람이 만들어서 나눠준 떡 먹고 우리애가 식중독에 걸려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기나 해요?
지금도 입원해 있어요!
달수 : (헉 놀라고) 예?
준혁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식중독이라뇨.
여자 : 퀸즈푸드에서 만든 거라고 해서. 믿을만 하겠지 하고 그냥 먹인건데. 애가 설사를 하고.
내가 오죽 열받고 억울했으면 여기까지 찾아왔을까!
준혁 : (달수를 노려본다) 어떻게 된겁니까 온달수씨!
달수 : 그게... 그럴 리가 없는데....
여자 : (앙칼진) 그럼 누가 사기치고 있다는 거에요? 여기 책임자가 누구에요? 퀸즈푸드 이름으로 시식회를 했으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에요! 신문사로 바로 가려다가 이쪽으로 먼저 와 준 줄이나 알아요!!!
달수 : (앞이 캄캄하고)
태준 : (무심한 듯 볼펜을 돌리며 보는 표정)
#80. 회사 로비 일각 (D)
지애, 전화해보는데. 여전히 꺼져 있는 전화기.
지애 : 어떻게 된거야. 아직 안 끝났나?
#81. 기획실 (D)
달수 들어서는데. 모두 조용하다. 달수만 쳐다보는 분위기고.
하참, 가까이 오더니. 안된 듯 어깨만 탁탁 쳐준다.
달수, 자리에 털썩 앉아 있는데.
준혁이 들어온다. 뒤론 공영민.
준혁 : 온달수씨는 이 시간으로 우리 회사 인턴이 아닙니다. 나가주세요.
달수 : .....! 부장님. 재고해 주십시오. 사실규명을 위해서 일단 역학조사부터..
준혁 : 그건 회사에서 할 일입니다. 온달수씨에게 더이상 법적인 책임은 묻지 않을테니. 나가세요!
식품회사는 이미지를 먹고 삽니다. 온달수씨 한 사람 때문에 우리 회사가 얼마나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는지, 알기나 해요!
달수 : ......
#82. 기획실 앞 (D)
달수, 작은 상자 안에 소지품 몇개 챙겨서 나오는데.
하참 대리 따라나온다.
하참 : 어떡하냐. 일이 이렇게 돼서. (위로하려는데)
준혁 : (뒤에서) 하대리! 회의합시다.
하참 : (얼른 가며) 멀리 못나가. 언제 소주나 한잔 하자구. 응? (들어가 버리고)
달수 : (비참하다)
#83. 엘리베이터 앞 (D)
달수, 초라하게 엘리베이터 기다리고 있는데. 띵! 멈추고. 문이 열린다.
거기 태준이 있다. 태준은 달수를 알아보나, 이미 정신줄을 반쯤 놓은 달수는 태준을 알아보지 못한 채.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뒤로 턱 기대며 한숨 쉬는 달수.
#84. 로비 (D)
지애, 전화 왜 안받지? 다시 전화해보며 서성대고 있는데.
봉순과 고운이 나오는 게 보인다.
뭔가 속닥이면서 얘기하고 있다가. 뚝 멈추는 봉순, 고운.
지애 : 봉순.. (얼른) 사모님!! (달려간다)
고운 : 언니 얘기 들으셨어요?
지애 : 응? 무슨.. 얘기?
고운 : 어떡해요 언니.
지애 : (불길하고) 뭐가... (봉순 본다) 뭐가요.
봉순 : 니 맘대로 시식회를 했다며? 회사 이름을 걸고, 사적으로 그런 걸 진행했다는 게 말이 돼? 너 참 생각 짧다.
지애 : 무슨 소리야. 너한테 얘기했었잖아. 시식회 할 거라구.
봉순 : 난 그런 얘기 전혀 들은 적 없는데?
지애 : 뭐?
봉순 : 그리구, 시식회 같은 걸 하려면 제대로 했어야지! 거기서 음식 먹고 식중독에 걸린 소비자가 회사로 직접 찾아왔대.
너 그거 어떻게 책임질거니?
지애 : 아니야.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식재료 다 신선한 것들만 썼어! 떡두 우리엄마가 방앗간에서 막 빼가지고 온 걸로만....
봉순 : 됐어. 긴 말이 왜 필요하니. 어차피 너랑 더 볼 일도 없는데.
지애 : 그게... 무슨 소리야? 더 볼 일이 없다니...
고운 : (안된 듯) 언니 남편분. 짤리셨대요. 임원회에서 좀전에 결정 났다던데?
지애 : (앞이 캄캄하다) 뭐...? 말도.. 안돼... 그게 진짜야?
봉순 : 글쎄 난 잘 모르겠고. 니 남편한테 직접 확인해. 그동안 수고했다. 잘 가라. (가려는데)
지애 : 봉순아!!
하더니. 봉순 앞을 가로막는다.
봉순 : 왜 이러니?
지애 : (무릎을 털썩 꿇고)
봉순 : (표정)
지나가는 사람들 웅성대면서 보기도 하고.
봉순 : (주변 의식하며) 너 뭐하니 지금. 안 일어나?
지애 : (손까지 모으고) 안돼. 우리 남편. 짤리면. 안돼. 도와줘 봉순아.
봉순 : 짤릴 짓 다 해놓고. 이제 와서 이렇게 막무가내로 굴면 나보구 어쩌란 거야. 일어나!
지애 : 봉순아.
봉순 : (가려고 하면)
지애 : (다리 붙들고) 너는 힘 있잖아. 내가 더 잘할께. 니가 도와만 주면... 더 잘할 수 있어!
이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걸어오던 달수. 그 뒤로 태준. 두 사람 모두 지애를 본다.
지애가 봉순에게 매달리는 걸 본 달수, 눈에서 불이 날 것 같은데.
봉순 : 니가 날 너무 오래 쫓아다녔나봐!
지애 :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다)
봉순 : 내가 도와준다고, 니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애?
지애 : (표정 위로)
봉순 : 너는 천지애야. 양봉순이 아니구. 이제 그만. 니 주제에 맞는 꿈을 꿔. 감히 기어오를 생각 말고!
지애 : (하... 기막힌데. 저절로 눈물이 흐르고)
태준 : (표정)
달수 : (파르르 떨며 눈가가 벌개지는 표정)
지애 : (입술을 깨물고 눈을 부릅뜨는 표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