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된 평화
성경 말씀: 이사야 85장; 에베소서 2:11-22
요약
성경의 평화는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타락되었음으로,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평화는 타락된 상태로 말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화는 타락된 세상의 하나님께 화해로 이루어집니다. 즉 성경의 평화는 화해된 평화입니다. 세상의 현존하는 상태로 말해질 수 없습니다. 세상에 추구되는 평화는 변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화해는 세상에 오신 예수님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께 화해를 보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하나님께 화해된 이들입니다. 따라서 그들로 평화가 세상에 보입니다.
영성의 평화
성령님의 열매로 평화는 세상에 다루어지는 평화로부터 구별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영이심으로, 세상에 어떤 것으로부터도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열매로 맺어지는 평화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평화로부터 구별됩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맺어집니다. 즉 성령님의 열매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의 결실입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을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열매는 예수님의 주와 그리스도이심의 열매입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에게 맺어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새 언약의 뜻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새 언약의 백성이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함으로, 새 언약의 삶을 삽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열매로 평화는 새 언약의 삶의 평화를 뜻합니다. 세상 삶의 평화가 아닌 새 언약의 삶의 평화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의 삶으로 평화는 하나님께 화해되는 평화입니다. 세상의 조건으로 비치된 평화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나은 조건을 가지려고 갈등을 빚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일어나는 분쟁은 조건 때문입니다. 그들은 조건적으로 살 수밖에 없으니, 조건적 갈등과 분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세상에서 평화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조건은 모든 사람들의 만족을 위해 준비될 수 없기 때문에, 세상에서 평화는 기대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갈등이나 분쟁을 미봉하는 상태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갈등과 분쟁이 미봉되기 위해 힘이 필요하니, 힘을 수반한 일시적 평화가 말해집니다.
세상에 갈등과 분쟁이 심해서 사람들이 평화를 갈구하기 때문에, 그들의 실제적 삶은 갈등과 분쟁에 빠져듭니다. 이 아이러니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서 잘 보입니다. 그들은 평화를 인사로 표현하지만, 구약 삶은 갈등과 분쟁의 삶의 전형입니다.
세상 삶이 갈등과 분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음의 내적 평화를 원합니다. 이것은 그들은, 세상은 평화롭지 않지만, 그들 마음에 평화를 누리길 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에 누려지는 것은 평화가 아닌 평정입니다.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들 마음의 평정을 추구할 뿐입니다.
종교성은 개인의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추구되는 것은 마음의 평정입니다. 따라서 평화는 종교적 통념이 아닙니다. 종교적으로 사람은 초연한 삶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살지 않습니다. 평화는 종교적 수련으로 명시되게 되지 않습니다.
평화는 세상의 지혜에 의해서도 다루어질 수 없습니다. 지혜는 자연에 순응이나 주어진 질서에 동화를 위해 가르쳐집니다. 그러나 자연이나 질서가 평화로운 것이 아닙니다. 자연은 언제나 요동하고, 질서는 엄격한 상태로 쉬이 고정됩니다. 자연이나 질서로 평화를 다루는 것은 어폐입니다. 즉 평화는 지혜의 가르침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평화
예수님은 초연함이 아닌 평화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구원을 초연함으로 보일 수 없습니다. 세상의 구원은 모든 세상 사람들의 초연함으로 말해질 수 없습니다. 개인의 구원은 초연함으로 말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구원은 종교적으로 말해집니다.
예수님으로 평화는 세상을 평화롭게 바꾸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평화로운 언약의 삶의 이루어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새 언약의 삶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새 언약의 삶은 평화롭습니다. 그러므로 평화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그분 약속을 그분 백성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의 삶은 하나님의 평화의 약속으로 평화롭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보이시는 평화는 하나님의 약속의 평화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새 언약의 삶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들려주는 복음은 새 언약의 내용입니다. 즉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 이루어지게 되는 약속으로 주어집니다. 예수님의 삶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 새 언약의 삶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주와 그리스도이심의 뜻입니다.
평화의 예수님은 다음 인용된 구절에서 보일 수 있습니다:
평화롭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평화를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화를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사람들이 평화를 세상의 상태로 설정할 수 있으면, 그들은 세상을 그 방향으로 변하도록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평화를 그렇게 설정할 수 없으면, 평화를 향한 그들의 노력은 무의미합니다. 사람들이 갈등이나 분쟁을 그들의 인내로 보이지 않게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들은 평화롭지 않습니다.
세상 상황의 배경에서 평화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신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그들을 평화롭게 하는 자들이 되게 하는 예수님의 축복이 생각 되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상태로 평화를 말씀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으로 평화를 말씀하십니다. 평화는 평화를 주시고 이루시는 분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평화는 이루어지게 됩니다. 평화롭게 사는 이들로 이루어집니다. 시람들이 평화로운 세상에 살면 그들이 평화롭게 되는 경우가 아니라, 평화로운 세상이 평화로운 사람들로 오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 조건에 종속되니, 그들은 그들 자체로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 이들이 평화로운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의 열매로 평화는 예수님에 의해 주어집니다. 거꾸로 말하면 예수님에 의해 주어진 평화는 성령님의 열매로 맺어집니다. 즉 예수님으로 말해지는 평화는 영적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평화로 이해되게 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누려질 수 있는 평화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새 언약의 평화입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새 언약의 백성에게 이루어지는 평화입니다. 새 언약의 백성은 새 언약의 삶을 사니, 그들의 평화는 세상 사람들에 의해 가늠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예수님이었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혼란을 야기한 이로 판단했습니다.
함께의 평화
성령님은 세상에 임한 하나님의 영이심으로, 성령님으로 맺어지는 평화의 열매는 하나님의 화해를 보입니다. 평화의 열매는 하나님께 화해되는 삶으로 맺어집니다. 하나님께 화해됨이 없이 평화의 내용으로 주어지게 될 것이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조건도 평화의 내용으로 주어질 수 없습니다.
아무도 하나님께 화해됨이 없이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열매는 하나님의 화해로 그분과 함께하는 이들에게 맺어집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의 열매는 세상에 평화로 드러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내용이 없으면, 세상의 조건적인 것만 말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화해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화해를 보이시고, 또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십니다. 평화는 하나님의 화해로 세상에 드러납니다. 평화의 원천은 하나님의 화해입니다. 평화는 화해된 평화입니다.
평화는 화해의 드러남입니다. 화해는 어떤 내용으로 고정되게 되지 않습니다. 화해는 규정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평화 또한 규정될 수 없습니다. 화해된 삶이 평화롭습니다. 이 때문에 평화는 지속으로 말해질 수 없습니다. 갈등과 분쟁 가운데 평화는 화해로 드러납니다.
하나님께 화해는 규정되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는 규정되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은 규정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하나님과 함께함에 대해서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것은 평화로운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화해는 하나님의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열매 맺어집니다. 따라서 예수님과 성령님은 하나님 함께의 언약의 삶을 이루십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으로 이루어지는 삶은 하나님께 화해되는 새 언약의 삶입니다.
평화는 세상이 자연적으로 보이는 한 다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상태로 말해지지 않고 화해로 말해집니다. 자연에 평화의 내용이 없습니다. 자연은 단지 지속, 변화, 그리고 요동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평화가 아닌 순응이 자연에 말해지게 됩니다.
성경에서 세상이 타락되었다고 말함은 세상을 자연적으로 보이지 않게 합니다. 세상이 타락되었으니, 그것은 갈등, 분쟁, 그리고 혼란으로 접어듭니다. 따라서 세상은 평화로울 수 없다고 말해질 수 있습니다. 세상이 타락으로 말해질 때, 그것은 언약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됩니다.
언약은 타락된 세상의 화해로 말해집니다. 언약의 삶은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었던 타락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화해로 하나님과 함께하게 됨으로 이루어집니다. 평화는 화해된 언약의 삶으로 말해집니다. 이 때문에 평화를 다루는 데 화해의 전제가 불러집니다.
이 때문에 평화는 세상의 통념이 아닌 성경의 통념입니다. 평화는 자연적 삶의 세상에 의미 있게 다루어질 수 없습니다. 언약의 시각에서 심각하게 다루어집니다. 세상에서 안정, 순응, 그리고 평정 같은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요동하는 세상 삶 가운데 개인의 지혜로운 삶이 주된 관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람들은 세상을 자연적이라고 합니다.
자연은 부단히 요동하지만 평화롭진 않습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평화를 갈구합니다.
자연적인 세상에 내재하지 않은 평화를 갈구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으로 임한 평화를 보지 못합니다.
아버지와 화해된 평화가 임함을 보지 못합니다.
아버지와 화해된 평화가 아버지의 영으로 열매 맺어짐을 보지 못합니다.
저희로 평화를 갈구하는 기도를 하게 하옵시고,
기도 가운데 아버지와 화해된 평화가 열매 맺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