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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 영성
성경 말씀: 창세기 15:1-11; 히브리서 8:7-13
요약
언약 영성을 말함은 하나님의 함께가 영성으로 보인다는 뜻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의 함께는 영성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함께는 언약적이고 영성으로 말해집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함께는 언약 영성으로 서사됩니다. 즉 하나님 함께의 궁극적 서사는 언약 영성으로 드러납니다. 새 언약은 언약 영성으로 서사됩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으로 하나님의 함께를 보입니다. 하나님의 함께는 영성을 서사되니, 새 언약의 예수님은 영성으로 서사됩니다.
고백의 영성
영성을 다루는 근거는 오순절 날에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터져 나온 예수님을 그리스도라는 고백입니다. 그 고백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의 고백이기 때문에, 영성의 근거입니다. 즉 영성으로 전개되는 내용은 그 고백에 근거합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십자가가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그리고 승천하신 후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성령님에 의한 고백은 살아있는 예수님에 대해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에게 고백으로 부여되는 주와 그리스도는 살아있는 예수님에 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영성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함으로 전개됩니다. 달리 말하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 서사하는 것은 영성입니다. 주와 그리스도는 성령님에 의해 예수님에게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예수님도 주와 그리스도로 서사되면 영성으로 서사됩니다.
복음서의 예수님은 보통 사람들 같이 생각되지 말아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활동은 사실성으로 서술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활동은 그들 활동과 같이 사실성으로 서술되게 되는 것으로 생각되지 말아야 합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의 활동 또한 주와 그리스도로 예수님에 의해 활동된 것임으로, 또한 영성을 띱니다.
복음서의 예수님은 전반적으로 주와 그리스도로 서사되는 점에서 영성을 보입니다. 복음서에 예수님 활동은 주와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의 활동입니다. 즉 예수님의 활동은 세상의 사실성을 보이지 않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인 점을 보입니다. 사실성으로 활동이 아닌 영성으로 활동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가 사실로 전개되는 한, 예수님은 개인으로 머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산 한 역사적 인물로 보아집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한 종교의 창시자로 서술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활동의 주된 부분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침은 가능성으로 가늠되게 됩니다. 예수님의 탄생이나 부활은 의문점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야기가 영성으로 전개되면,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로 활동하신 것이 보입니다. 이 경우 예수님의 활동은 영적입니다. 즉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고침은 영적 활동입니다. 예수님은 주와 그리스도로 가르치시고 고치십니다.
주와 그리스도로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고침은 개인의 가르침이나 고침과 다릅니다. 개인의 가르침이나 고침은 세상의 변화를 따른 가능성을 따라 전개됩니다. 그것은 세상에 일어나기 가능한 것을 향해집니다. 어떻든 개인의 가르침이나 고침은 세상의 좋음이나 나음에 향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주와 그리스도로 활동은 영성의 이루어짐을 보입니다. 영적으로 인도되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활동은, 무엇이든, 세상의 가능성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영적으로 인도됨의 뜻을 보입니다.
주와 그리스도는 영성으로 인도를 뜻합니다. 예수님의 주되심의 뜻이나 예수님의 그리스도로 다스림은 영적 인도를 위합니다. 이 점에서 복음서는 가능성을 따라 서술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영적으로 인도됨으로 서사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라는 고백의 뜻이 복음서에 깔려있습니다.
함께의 영성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서사함으로 드러나는 영성은 하나님의 함께로 전개됩니다. 영성은 성령님, 곧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되는 것은 하나님의 함께로 이루어짐을 뜻합니다. 영성으로 전개되는 것은 하나님의 함께로 서사됩니다.
하나님의 함께는 영성으로 분명합니다. 영성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됨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성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은 분명해집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은 영성으로 드러납니다. 이 점에서 영성은 언약으로 표현됩니다.
영성은 개인들이 아닌 언약으로 말해집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개인의 고백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개인들로부터 나올 수 없습니다. 사람이 개인으로 머물면, 성령님에 의해 인도될 수 없습니다. 그가 개인으로 머무는 한, 자신의 결정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함께로 드러나는 영성은 언약의 영성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영성은 언약 영성입니다. 영성의 기반은 개인이 아닌 언약입니다. 언약 영성으로 교회가 이루어집니다. 언약 영성은 명시적으로 교회 영성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으로 전개되는 영성은 하나님의 함께로 서사됩니다. 즉 언약의 내용으로 서사됩니다. 개인의 체험의 영성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성은 이루어짐에 보입니다. 그 이루어짐은 언약입니다. 따라서 언약 영성이 말해집니다.
주와 그리스도는 언약의 용어입니다. 주와 그리스도는 언약의 백성의 통치자에게 부여되는 직함입니다. 그러므로 주와 그리스도임의 뜻은 언약의 삶으로 드러납니다. 언약의 삶은 개인의 삶과 다릅니다. 개인의 삶의 주와 그리스도는 생각될 수 없습니다.
주와 그리스도가 성령님에 의해 예수님에게 부여될 때, 성령님은 언약의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언약의 삶에서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되게 하십니다. 즉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언약의 삶에 일입니다. 성령님은 언약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과 역사하십니다. 개인들과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예수님을 따름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보입니다. 그러나 어떤 인도도 개인에게 말해질 수 없습니다. 개인은 단지 자신의 장점의 고양에 관심합니다. 이것은 종교적 영성의 계발을 뜻합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으로 말해지기 때문에, 고백과 인도는 기본적으로 성령님에 대해 말해집니다. 고백은 예수님에게 표현되고, 인도는 예수님을 향합니다. 성령님에 의해서만 예수님에 대한 고백과 인도가 같이 갑니다. 예수님에 대한 고백은 예수님께로 인도됨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에 의해서만 말해집니다.
개인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면, 그는 자신의 의지로 예수님을 따르려 합니다. 이 경우 예수님을 따름은 인도됨이 아닙니다. 그는 인도되지 않으니, 함께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의지로 성취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는 개인의 삶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양상은 복음서에 예수님의 제자들에서 보입니다.
영적 시각
예수님과 성령님이 세상에 오셨음으로, 영성과 언약이 같이 말해집니다. 언약은 예수님으로 말해지고, 영성은 성령님으로 말해집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에 의해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언약의 주와 그리스도이시고, 예수님의 주와 그리스도이심은 영성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으로만 복음이 말해질 수 없고, 예수님으로만 새 언약이 말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성령님 함께로 복음과 새 언약은 말해지게 됩니다. 성령님 없이 예수님은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될 수 없습니다.
성령님 없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함께로 말해질 수 없습니다. 세상에 예수님은 세상에 보이는 개인으로 인식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함께로 보이게 되려면, 세상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영의 시각이 지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님으로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함께로 보입니다.
성령님은 영적 시각을 엽니다. 세상을 살면서 고정된 세상 시각으로, 예수님은 세상에 사는 한 사람으로밖에 목격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기껏 구약의 랍비 혹은 예언자로 보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세상의 시각으로 예수님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서에 예수님은 세상 시각이 아닌 영적 시각으로 서사됩니다. 주와 그리스도로 서사됩니다. 즉 예수님은 성령님에 의해 인도됨으로 서사됩니다. 따라서 복음서의 예수님은 사실성이 아닌 영성을 보입니다. 예수님은 주와 그리스도로 영적 다스림을 보입니다.
영성으로 예수님은 세상에 정착된 예수님이 아닙니다. 언약에 정착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주와 그리스도로 다스림은 언약의 삶으로 펼쳐갑니다. 영성의 삶으로 펼쳐갑니다. 그러므로 주와 그리스도로 예수님에 의해 다스려지는 삶은 영성으로 펼쳐지는 언약의 삶입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과 성령님의 언약으로 의식됩니다. 복음서에 예수님 이야기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보이는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새 언약이 성령님을 떠나 예수님으로만 말해지면, 옛 언약으로부터 벗어나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함께의 내용으로 서사되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로 역사적 예수의 해설은 복음서를 예수님의 이야기로만 극단적적으로 읽기 때문입니다. 영적 시각 없이, 예수님은 세상 시각으로만 보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 예수님은 종교적이나 혁명적 뜻에 의해 부여되게 됩니다.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는 내용은 예수님에 보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은 영성의 언약입니다. 새 언약의 새로움은 영성으로 보입니다. 영성 없이, 새로움은 옛 언약의 문자로부터 이루어지게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문자로 서술되는 한, 새로움은 보이게 되지 않습니다. 문자의 뜻은 문자에 부여된 뜻에 의해 제기됩니다. 따라서 문자의 뜻은 단지 지속됩니다. 새로워질 수 없습니다.
새로움은 영적으로 인도됨으로 보입니다. 사람이 추구함으로 보이게 되지 않습니다. 추구하는 동기는 이미 있습니다. 추구의 결실로 맺어지는 것은 새로움이 아닌 결과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더라도, 성령님의 인도하심 없이 그렇게 보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보아질 때, 새로움으로 보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와 함께하는 언약으로 살게 하옵소서.
영이신 아버지와 함께하는 언약으로 살게 하옵소서.
그렇게 영성으로 인도되는 언약으로 살게 하옵소서.
조건적인 세상에 처한 저희들이 아버지의 영으로 인도되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따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영이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언약이
조건적인 세상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따름으로 드러나게 하옵소서.
그렇게 언약 영성의 자취가 세상에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