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주택정비로 우리 동네도 탈바꿈해볼까?

주인공 칼 프레딕슨의 마을에 어느 날 건설업자가 마치 악당처럼 등장한다. 그들은 빌딩을 짓는다며 마을의 주택을 밀어버린다. 마을 여기저기서 공사가 시작되고, 주민들은 건설업자들과 승강이를 벌이다 결국 하나 둘 마을을 떠난다. 유일하게 남은 칼은 죽은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집을 도저히 떠날 수가 없어 끝까지 버티지만, 건설사의 압박은 점점 심해져만 간다.
3D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2009년 칸 영화제에 개막작으로 선정된 작품‘업’은 사실 성인용 만화다. 막무가내식 개발 허가로 거주민들을 외면하는 지자체와, 삶의 소중한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는 식으로 구는 냉정한 건설업자의 이야기는 어쩐지 낯이 익다.
이명박 정부의 비호 아래‘뉴타운’이란 이름으로 진행됐던 개발사업은 절반 이하의 원주민 정착률을 기록하며 많은 문제를 낳았다. 마포구 공덕 3지구와 관악구 봉천 4-2지구는 원주민 정착률이 각각 19%와 20%에 그쳤고, 주거환경 개선사업지구의 원주민 재정착률도 32%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9년 ‘용산 참사’를 야기 시켰던 재개발 사업지에 들어선 한 아파트 단지는 최근 주변 시세보다 7억원 가까이 비싼 3.3㎡당 4300만원대에 분양하며 다시 한번 ‘뉴타운’의 아픔을 상기시켰다.
개발이 나쁜 것이 아니다. 나쁘게 진행되는 개발이 문제다. 문재인 정부에서 50조원 투입을 약속받은 도시재생사업은 원주민 정착률을 높이는 주민 상생형이 핵심이다. 이번 ‘8ㆍ2 대책’에 투기과열지구는 도시재생사업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이 포함된 것도 장기적으로는 주민 정착률을 높이기 위한 행보 중 하나다.
이와 함께 주목받는 것이 바로 ‘미니 재건축’으로 불리는‘가로주택정비사업’이다. 넓은 대상의 대상지에서 많은 주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기존 재개발ㆍ재건축의 단점을 극복해 작은 마을 만들기를 진행할 수 있기에 LH 등 공공 디벨로퍼를 자처하는 기관에서도 핵심 사업으로 선정했을 정도다.
도심지 내에서 적당한 가격으로 내 집 마련을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가로주택정비사업지를 물색해볼 만하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이란 종전의 가로(街路)를 유지하면서 소규모(최소 20가구 이상ㆍ1만㎡ 미만)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사업을 원하는 주민들만 진행할 수 있는 블록형태의 소규모(7층 규모 아파트형 공동주택) 미니 재건축이다. 당연히 사업절차가 단순하고, 사업기간은 단축될 수밖에 없다. 일단 기존 도시정비사업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정비기본계획 수립, 정비계획 수립 및 구역지정, 조합설립 추진위원회 등의 다단계 사업절차가 필요 없다. 기존 정비사업의 평균 사업기간이 8년 6개월이라면, 가로주택사업은 2년이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우리 동네가 가로주택정비사업이 진행 가능한지 여부를 가늠할 수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기준점은 노후ㆍ 불량건축물의 수가 전체 건축물 수의 2/3 이상이어야 한다. 건축물의 노후도는 1982∼1991년 사이 준공된 5층 이상 건물은 22+(준공연도-1982)X 2년, 4층 이하의 건물은 21+(준공연도-1982)년 등의 공식으로 산출한다. 계산결과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한 건물이 계산에서 40년 이상이 나오면 노후ㆍ불량 건축물에 해당한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계획단계의 업무가 없다. 도시정비계획을 수립하지 않아도 되니 사업 추진 절차가 대폭 축소되는 것은 물론이고, 별도 용역 발주가 필요 없다. 다만 사업의 정상 추진을 위해서는 전문가를 고용하는 것이 좋다.
노후 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에서 토지 소유자 4/5 이상, 토지면적의 2/3 이상의 소유자의 동의를 얻으면 조합설립이 가능하다. 이후 바로 시공사 선정에 착수하면 되는데 조합원이 100명 이하인 정비사업지는 조합 총회에서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선정할 수 있다.
이후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으면 이후 철거와 분양만 진행하면 된다. 사업시행인가는 토지이용계획과 주민이주대책, 건축계획, 설계도서 등을 마련하는 것이고, 관리처분계획인가는 종전의 건축물에 대한 권리를 새로 건설하는 건축물에 대한 권리로 변환하는 계획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