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신격호 회장(이하 신격호·1921~2020)은 1921년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의 영산 신씨 집성촌에서 아버지 신진수와 어머니 김필순의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1944년 절삭공구인 선반용 기름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우면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2차 대전 때 공장이 전소해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그 이후 비누와 화장품을 만들어 재기에 성공하자 껌 사업에 명운을 걸고 뛰어들었으며 1948년 (주)롯데를 설립했다. 1966년 한국에 진출하여 사업을 확장하면서 롯데알루미늄과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롯데’라는 회사 이름은 재일교포였던 창업자 신격호가 독일의 문호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감동받아 소설 속의 여주인공인 ‘샤롯데’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2013년에 건강이 나빠지면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 등에서 물러나고 경영에 손을 뗐으며 2020년 1월 19일 향년 99세에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둔기리 대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산 중턱에 신격호 묘가 있다. 넓은 묘역에는 소나무와 황금측백, 영산홍 등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정갈하게 손질된 상태로 식재되어 있어 마치 수목원이나 아름다운 정원에 온 것 같은 평온한 느낌이 들었다.
묘역에는 무덤 1기와 자연석을 활용한 상석(床石), 상석 옆 와석(臥石)에 새겨진 석문(石文·돌로 만든 비석 따위에 새겨진 글)이 있다. 글의 내용은 “여기 / 울주 청년의 꿈 / 대한해협의 거인 / 신격호 / 울림이 남아 있다 / 거기 가봤나? / 二千二十年 一月 十九日 영면”이다. “거기 가봤나?”라는 의미는 고인이 생전 임직원들에게 ‘현장 확인을 하고 나서 판단하라’는 뜻으로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살아서도 검소한 삶을 누렸던 신격호는 죽어서도 고향땅에 소박하게 묻혔다. 정기(精氣·천지만물을 생성하는 원천이 되는 기운)가 충만한 묏자리가 되려면 주산(主山·뒷산)에서 뻗어 내려오는 용맥(龍脈·산줄기)이 좌우측의 계곡에 의해 ‘계수즉지(界水則止·물을 만나 땅심이 좋아짐)’하여 옹골찬 형태를 갖추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은 볼 수 없고, 좌우요동과 상하기복 또한 뚜렷하지 않은 보통의 지기(地氣)를 가진 평범한 곳이었다. 좌청룡과 우백호는 없으나 울창한 나무들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주산에서 밋밋하게 내려온 용맥이 횡룡(橫龍·직각으로 꺾이어 내려온 산줄기)이긴 하나, 묘역은 야무지고 올찬 면모라기보다 고향에 온 것 같은 편안함만 느끼게 하는 자리였다. 묘 앞의 절하는 곳을 포함한 여기(餘氣·남아있는 기운)가 있는 공간인 전순(氈脣)은 넓어서 넉넉한 맛은 있지만 너무 길어 느슨하고 게으른 모양새를 갖췄다.
안산(案山·앞산)은 적정한 높이의 ‘일자문성사(一字文星砂)’로 부귀를 뜻하는 산이었다. 안산이 멋있을 뿐만 아니라 묘역 앞에 식재한 나무들이 소안산(小案山·작은 앞산)으로 이중 안산이 됨으로써 앞쪽에서 치는 차가운 바람과 미세먼지 등을 완벽하게 막아 묘를 보호하고 있다. 묘 앞에서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흑호(黑虎·검은 호랑이) 형상의 자연석이 든든한 묘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 묘역 대부분이 무해지지(無害之地·해를 끼치지 않는 땅)이지만 신격호 묘가 있는 곳만 길지(吉地)였으며, 만일 배우자가 오게 된다면 묘 앞에서 볼 때 좌측으로 50센티미터 정도 옮겨야 생기를 두 묘가 모두 받게 된다.
울주군 언양읍 구수리에 신격호 부모 묘가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하게 설치한 석물이다. 망주석, 장명등, 문인석, 갓비석, 사자석상, 상석의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주산에서 좌우요동을 하면서 급하게 내려오던 용맥이 묘 가까이에 거의 평지 상태로 50m쯤 다가가다가 부모 묘에서 진혈(眞穴)이 맺혔다. 용맥은 과협(過峽·잘록하게 된 부분)도 있고, 말쑥하면서 용맹한 기상도 갖췄으며 전순의 끝맺음도 깨끗했다. 좌청룡과 우백호, 안산을 아름드리나무가 대신하고 있는데, 그 역할을 다 하고도 남음이 있다. 안산 너머 조산이 대단히 좋아 후손들이 부하직원을 많이 거느리게 되는 터이다. 부모 묘 모두 생기가 넘치는 길지에 있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