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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문화 탐방
일시:2012년 2월 28일 화요일~3월 3일 토요일 4박5일
탐방 도시:비엔티엔, 방비엥, 루앙프라방
2012년 2월 28일 화요일 인천 출발, 라오스 비엔티엔 도착
* 인천 공항 출발
오전 9시 출발하는 LJ 진에어 항공이다. 작년부터 라오스 직항이 생겨서 라오스 여행이 금년부터 쉽게 시작되고 있다. 오늘까지 아침 기온이 영하 5도로 쌀쌀하다. 낮부터 풀린다는데 새벽 걸음이 추웠다. 새벽 6시인데도 인천국제공항은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전 6시 30분에 공항에서 미팅하여 리오스 왕복 항공권을 받아 D32 창구에서 티케팅을 했다. 우리 부부 좌석은 29E, 29F로 창가 좌석이다. 올 때도 동일한 좌석이란다. 좌석이 3, 3제다. 모노레일을 타고 103 게이트로 갔다. 보딩타임이 8시 35분이다. 라오스 비엔티엔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정시에 이륙했다. 비엔티엔까지는 5시간 30분 소요다. 한국시각으로 오전 10시에 기내조식으로 초밥이 나왔다. 편안한 휴식과 수면으로 비행시간을 보냈다. 동남아시아의 숨겨진 보석이라 일컫는 라오스의 자연을 기대하며 출발한 여정이다.
* 라오스 비엔티엔 공항 도착
라오스 상공은 산악지대다. 산중에 민가도 간간이 보인다.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온다. 현재 비엔티엔 온도는 27도란다. 옷을 겨울옷에서 여름옷으로 바꿔 입었다. 한국은 겨울이지만 라오스는 여름이다. 비행기는 곧 정시에 도착했다. 현지시각 낮 12시 35분이다. 한국과 시차는 -2시간으로 라오스가 2시간 늦다. 공항이 한적하다. 비행기도 별로 없고, 공항이 작다. 우리 일행은 18명이고 45인승 대형버스가 마중 나왔다. 한국인 남자 가이드와 라오스 여자 가이드와 함께 시내로 이동했다. 라오스에서는 라오스인 가이드가 동행해야 관광이 가능하다. 한국인의 라오스 여행 개통이 3개월 밖에 안 되어 우리는 라오스 여행의 선두주자란다. 라오스는 아직 여행시설이 부족한 나라다. 그래서 양손은 따습게, 마음은 가볍게 떠나는 곳이란다. 관광 여행지가 아니고 사람 여행지란다. 뉴욕타임지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 봐야할 곳 53곳 중 1위인 나라가 라오스다. 사람들이 선해서 진정성이 있는 여행국이다. 방비엥 갈 때 3시간 30분, 루앙프라방 갈 때 6시간 30분 걸려서 대형 버스를 사용한단다. 한국에서 들여온 버스다. 승차감도 좋고 쾌적한 버스다. 힘든 여행국가지만 우리나라의 1950년~1960년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곳이기도 하다. 천진한 나라에 온 것이다.
* 라오스 비엔티엔 한국식당 중식
라오스와 대한민국과의 관계는 1974년에 수교했으나 1975년 라오스에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단교하다가 1995년에 재수교했다. 북한과는 1975년에 수교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선수 및 임원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라오스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산다. 1천 명 정도인데 그 중에서 5백 명이 비엔티엔에 산다. 오늘 점심 식사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한국식으로 먹는다. 비엔티엔 건축현장에 근무하는 한국 교민들이 많아서 한국인 식당이 많다. 김치찌개가 아주 맛있다. 거리에 야자수가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실감나게 한다. 겨울에서 갑자기 여름으로 넘어온 것이다. 같은 지구상에서 이토록 큰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하여 신비롭다. 비엔티엔은 라오스의 수도인데도 한국의 60년대 수준이다.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50년~60년 전으로 온 것이다. 관광이 아니고, 그냥 여행지에 왔다고 생각하란다. 순수한 인정, 미소가 보물인 나라란다. 우리의 여행 안내자 라오스 가이드 여인 랙의 미소도 참으로 아름답다.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한다. 기후와 문명 등 여러 가지로 다른 나라에 온 것이다.
* 비엔티엔 탓 루앙 사원
라오스의 가장 큰 상징물인 탓 루앙Pha That Luang 사원은 부처님 가슴뼈가 있는 위대한 불탑이다. 탓은 탑이란 뜻이고, 루앙은 위대한이란 뜻으로 탓 루앙은 위대한 탑을 뜻한다. 겉모습만 그렇다. 황금 색상의 높이 치솟은 탑이 장엄하다. 약 444년 전에 건축됐다. 탑 주변에는 원래 4개의 사원이 만들어졌었으나 현재는 북쪽의 왓 루앙 느아와 남쪽의 왓 루앙 따이만 남아있다. 전체 모습은 3층으로 된 단과 중앙의 불탑으로 이뤄져 있다. 세 개의 층은 불교 신자들이 한층, 한층 오르면서 각 층마다 여러 가지 형태로 조각돼있는 부처의 상과 불교 교리를 음미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사원안의 첨탑은 석탑의 태국 양식과 다른 강렬한 단순함을 지닌 순수 라오스 양식이다. 비엔티엔에 약 80개에 달하는 고대 불교사원이 있었으나 태국의 침공으로 현재는 20개의 사원 밖에 없다. 탓 루앙 사원 정원의 담장을 이룬 곳에 주변 사원에서 발굴된 불상들을 전시해 두었다.
라오스는 건국 신화가 없다. 어느 날 생겼다는 나라다. 우리나라 건국 신화의 단군과 같은 존재가 아니고 실제 사람이 건국자다. 1353년에 라오스를 세웠고 460년 전 루앙프라방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겼다. 비엔티엔은 루앙프라방에서 수도를 옮기며 세운 첫 번째 수도다. 수도 이전에 대한 그 당위성을 갖기 위해 세운 사원이다. 탓 루앙이라는 명칭은 셋타티랏 왕이 1560년대에 수도를 현재의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옮긴 때부터 불리게 된 것이다. 16세기 중반 셋타티랏 왕King Setthathilat에 의해 건축됐으며 따라서 6년이 지난 1566년에 요즘의 모양으로 완공됐다. 탓 루앙 앞 광장 사리탑 앞에는 그를 기리는 멋진 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동상이 서 있다. 이 왕이 죽고 나서 라오스의 슬픈 역사가 시작되었다. 1571년 셋타티랏 왕이 갑자기 실종되어 아직도 시체가 행방불명이다. 후사를 이를 아들을 두지 못하고 죽어 그의 사후 라오스는 3국으로 분열되어 혼란에 빠졌다.
라오스는 공산국가지만 불교국가다. 라오스 사람들에게 탓 루앙의 의미는 특별하다. 국가의 화폐에 들어가 있을 정도다. 이러한 역사를 가짐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귀하고 신선한 사리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타 지역의 라오스 사람들조차 이곳에서 공양을 드리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 여기는 불교 유적이며 라오스의 주권을 상징하기도 한다. 매년 11월 초 개최되는 탓 루앙 축제기간에는 승려들이 거리에 길게 늘어서며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신 수도인 비엔티엔과 구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은 각자 큰 자부심으로 산다. 축구선수들도 비엔티엔 팀과 루앙프라방 팀과는 자존심 대결을 한다. 올해는 비엔티엔 팀이 이겼다. 탓 루앙 사원은 빼어난 조형의 아름다움도 대단하지만 드넓은 광장과 아름다운 사원 건물이 더욱 사원을 빛내주고 있다.
* 비엔티엔 빠뚜사이 독립기념관
라오스는 1893년부터 1953년까지 60년간 프랑스 식민지였다. 수도 비엔티엔의 원 발음은 위앙짠이다. 그런데 프랑스 식민시절 유럽인들의 발음에 맞춰 비엔티엔으로 불리워졌던 것이다. 2차 대전 후 프랑스가 떠났다가 일본 패망 후 다시 프랑스가 들어왔다. 라오스의 독립기념탑인 빠뚜사이는 1958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파리의 개선문을 모방하여 만든 건축물로 란쌍 거리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탓 루앙 사원에서는 약 1.5km 미터 떨어진 아주 가까운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미군이 활주로 공사를 하기 위해 가지고 온 시멘트를 빼돌려서 지은 건축물이란다. 넉넉하지 못한 재료로 지어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좀 어설픈 건물이란다.
탑 바로 앞에는 둥그런 분수대가 있고 분수대 주변에는 아름다운 꽃 화분이 있다. 공원과 분수대는 중국에서 2004년 조성해준 것이며 빠뚜시아 옆에는 새로 단장한 혁명당 당사가 보이고 정면 멀리에는 대통령궁이 보인다. 기념탑 꼭대기까지 오르게 허락한다. 계단을 따라 오를 때 중간 중간 층에서는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독립기념관 안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슬픈 나라의 서글픈 대목이다. 건물 맨 위 층으로 올라가서 비엔티엔 시내를 한눈에 담았다. 길게 뻗은 도심대로와 웅장한 정부청사 건물들, 총리관저, 푸른 나무와 붉은 지붕 물결 등이 아름답다. 내려와서 본 건물 천장의 조각 작품도 예술적이다. 싱그러운 정원 대리석 벤치에 앉아서 꽃을 감상하며 라오스의 고운 정경에 젖기도 했다.
* 라오스 최대시장 비엔티엔 달랏사오
달랏사오는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의 도심에 있는 라오스 최대시장이다. 소매와 도매 거래가 이루어지는 새벽시장이다. 새벽 5시면 거의 끝나는 상기다. 과일에서부터 의류 등 모든 생활용품이 다 있다. 자유로이 시장 안을 돌아보았다. 규모가 대단히 크다. 상품 가격은 저렴한 편이지만 한국인이 사기에는 품질이 떨어져서 모두들 사지 않고 눈으로만 보았다. 라오스의 소박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정경이 더욱 시선을 끄는 시장이다.
* 비엔티엔 도심 거리
역사, 문화가 공존하는 비엔티엔Vientiane은 메콩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라오스의 수도이며 인도차이나 교통의 요지다. 라오스 전체 인구는 690만 명이다. 인구 통계상으로는 700만 명이 안 되는데 실제로는 700만 명이 넘는다. 2010년에 태국에서 몽족을 라오스로 몰아내서 10만 명이 증가한 것이다. 몽족이 와서 GNP는 930불에서 2400불로 더 늘었다. 비엔티엔 인구는 약 49만 명이다.
비엔티엔은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가 적절하게 잘 조화시켜 놓은 독특한 분위기다. 화려하지만 소박한 도시다. 나무가 늘어선 가로수 길과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거주지 그리고 각종 불교사원 등 고요하고 평화로운 도시다. 이 나라에서는 가장 큰 도시로 다른 지역에 비해 바쁘고, 요란스럽지만 수도라기보다는 시골 읍내와 가까울 정도로 포근한 느낌을 준다. 달랏사오 시장에서 나와 바로 앞 대로에서 주변을 바라보니 도로 끝에 아까 보았던 빠뚜사이 기념탑이 서 있다. 대로변에는 버스 정류장도 있다. 라오스는 기차와 전차 전철이 없다. 그런데 큰 시내버스도 별로 없다. 마을 단위로 운행하는 봉고차가 버스 정류장에 들어와 승객을 내려주거나, 싣거나 한다. 대형 시내버스는 단 한 대를 보았다. 자가용이나 오토바이는 많은 편이다. 한 나라의 수도에서 보는 소박한 풍경이다.
* 비엔티엔 호텔로 가는 길에 본 학교
달랏사오 시장을 둘러보고 비엔티엔 호텔로 향했다. 아직 여정을 풀지 않았다. 낮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시내 관광을 먼저 한 것이다. 낯선 나라, 낯선 땅이어서 모두가 신비롭지만 유난히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제복을 입은 중학생들이 보이는 불교식 건물의 학교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학교 건물 지붕이 붉은 색상으로 모양도 사원을 닮았다. 어려서부터 불심에 젖으며 배우는 학교다. 불교국가라는 것이 증명되는 대목이다.
* 비엔티엔 호텔 민속공연 디너쇼
라오스 전통 민속공연 관람과 함께 하는 디너쇼다. 우리가 유숙하는 호텔에서 짐을 풀고 로비에서 저녁 7시에 모여 버스를 타고 이동한 다른 호텔 1층 예약석에서 저녁식사와 함께 보는 라오스 민속공연이다. 음식도 라오스 전통식이다. 찰밥을 대나무 그릇에 담아 손으로 뜯어 먹는다. 테이블 곁에는 손을 닦는 물이 있다. 반찬이 라오스 향이 스며 있고 약간 간이 짜며 기름지다. 닭튀김, 돼지고기, 생선찜, 야채, 열대과일 등 골고루 풍성한 식탁이다. 무대에서는 라오스의 젊은 남녀가 나와 민속공연을 한다. 남녀 출연자들의 한결 같은 미소가 곱다. 무대 곁에는 젊은 남자들이 앉아 전통 악기로 음악을 연주한다. 고전적인 아름다운 선율이다. 라오스의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 가지를 공연하고 들어가면 한참 후에야 다음 공연자가 나온다. 공연이 다 끝나고 공연자들이 객석으로 와서 손에 끈을 매어주려 한다. 불교의식으로 그 끈을 매면 3일 간 풀면 안 된단다. 원하는 사람에게만 해준다. 민속공연 디너쇼를 마치고 밤거리를 보며 호텔로 돌아와 휴식과 수면을 취했다. 내일은 6시 모닝콜, 7시 조식, 8시 출발이다.
2012년 2월 29일 수요일 비엔티엔에서 방비엥으로 이동
* 비엔티엔 메콩강변 호텔의 아침
한국과 시차가 2시간이라서 한국시간으로는 오전 6시인데 라오스 시간으로는 새벽 4시다. 한국에서 6시에 기상하던 습관대로 이곳 시간으로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호텔은 시설이 좋다. 에어컨도 있고 아주 깨끗하고 규모도 크다. 호텔 주변을 산책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남자 종업원들이 아주 친절하다. 호텔 출입문 앞에 서 있다가 손님이 드나들 때 미소 지으며 문을 열어준다. 문명에 때 묻지 않은 그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호텔이 메콩강변에 있다. 메콩강을 국경으로 태국과 라오스가 접하고 있다. 지금 서 있는 곳은 라오스 땅이고, 강 건너가 태국 땅이다. 태국의 농카이 도시가 눈으로 환히 보인다. 강이 국경선이다. 강을 헤엄쳐서 넘어도 여권을 가지고 가야 한다. 라오스는 수도인 비엔티엔을 중심으로 길게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는 나라이다. 라오스를 찾는 여행자들의 가장 보편화된 코스는 태국 농카이에서 비엔티엔으로 국경을 넘어 방비엥과 루앙프라방을 여행한 후 다시 비엔티엔으로 돌아와 라오스를 나간다. 건기라서 물이 말라 메콩강에는 모래가 많이 보인다. 두 나라가 이렇게 가까이 마주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호텔 앞의 황토흙길이 아주 넓다. 강변도로의 느티나무가 아주 크다. 오토바이와 리어카를 붙여서 만든 것 같은 툭툭이 택시가 호텔 앞에서 승객을 기다린다. 탁발승들이 마을을 돌며 아침밥을 얻는다. 7시에 호텔 2층 테라스에서 뷔페 조식을 하고 8시에 방비엥으로 향했다.
* 비엔티엔 시가지
비엔티엔은 한국의 어느 시나 읍 정도의 도시다. 일교차가 크다. 오늘 온도가 11도에서 34도란다. 호텔에서 방비엥으로 가기 위해 거리로 나오자 대로변에 아침 출근길을 지키는 우리나라의 경찰 같은 사람이 서 있다. 그런데 복장이 공산당원 제복이다. 라오스는 아직도 공산주의 잔재가 남아있다 것이 실감나는 장면이다. 어제 공항에서도 직원들이 모두 그런 복장이었다. 라오스에서 공산주의는 1975년부터 1986년까지 11년 동안 지속되었다. 지금은 자본화가 되어서 개인 소유를 허락한다. 부자는 큰 부자다. 정부의 땅을 사거나 임대 소유한다. 외국인은 건물만 소유 가능하고 땅은 소유 불가다. 시가지에 사원 모양의 아름다운 건물이 많이 보인다.
크메르 제국이 이곳에서 가장 큰 제국이었다. 왕이 여러 부족과 결혼했다. 라오스의 부인에게서 난 아들이 용맹하여 그 왕자에게 란쌍 왕국을 허락한 것이 라오족의 라오스다. 루앙프라방이 첫 나라다. 란은 백만, 쌍은 코끼리란 뜻으로 즉 백만 마리의 코끼리를 보유한 강국이었다. 그 당시는 코끼리가 최첨단 무기였다. 엄청난 숫자의 무기 소유국이었던 것이다. 시작은 강한 나라였다. 그때의 코끼리는 모두 산속으로 달아나고 환경이 변해서 사라져 라오스 전국에 28마리 밖에 없다. 지금은 코끼리가 태국에 많다. 라오스는 1358년에 강국 태국 아유타 왕조의 속국이 되었다. 소수민족들로 구성된 다인종 다출산 국가다. 슬픈 역사를 지닌 라오스지만 오늘의 비엔티엔 아침 풍경은 참으로 부지런하다. 가게마다 문을 열었고, 오토바이로,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행렬이 아름답다. 주유소에서 버스에 주유하는데 오토바이가 줄줄이 들어와 기름을 넣는다. 검소하고 성실한 삶이 보이는 시가지다.
* 비엔티엔에서 방비엥 가는 불편한 도로
오늘은 소박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닌 소계림이라고 불리는 방비엥으로 간다. 방비엥에서 탐남 동굴과 탐쌍 동굴, 카약킹 등의 여행 일정이 기대되는 날이다. 몬도가네 시장에는 들쥐, 박쥐, 고슴도치 등도 있단다. 그런데 방비엥 가는 길의 도로가 열악하다. 현재 시각 오전 9시, 시내를 벗어나자 버스가 덜컹거린다. 도로 포장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포장 공사할 때 적은 돈을 들여 공사해서 망가졌는데 보수를 못하여 길이 이토록 험한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돈이 없는 나라여서 그렇다. 방비엥은 배낭 여행들의 천국이다. 그래서 비엔티엔에서 여행을 시작하여 방비엥으로 꼭 가는데 불편한 도로 사정으로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한다. 라오스는 귤이 유명하다. 귤을 사서 나누어 주어 먹으며 간다. 가게에 바게트 빵이 놓여 있다. 프랑스의 지재가 남간 것은 저 바게트 빵뿐이란다. 호텔 조식에서 나오는 바게트 빵이 상당히 맛있었다. 천천히 달리다가 좋은 상태의 길이 나오면 버스는 속력을 내서 달리기도 한다. 라오스 들녘에는 열대과일인 야자수와 바나나 나무가 많다. 수박, 벼농사를 짓는 농토도 많다. 파랗게 벼가 자라고 있다. 소떼들도 많다. 불편하지만 정겨운 도로다.
* 비엔티엔 휴게소
푸른 들녘의 휴게소다. 모를 심어놓은 파란 논의 풍경이 옛 향수를 부른다. 80%가 농업인 라오스다. 세금의 50%가 농업에서 거두어들인다. 1년에 3모작으로 우기에 2모작 건기에 1모작을 한다. 열대 과일이 덩그러니 매달린 나무도 있다. 라오스에서는 화장실이 모두 유료다. 단체로 가이드가 돈을 지불했다. 이곳 휴게소에서는 사탕수수 나무의 대를 갈아서 즙으로 팔기도 하고 그 수수대를 잘라서 그냥 씹어 먹게도 한다. 사탕수수 즙이 매우 달고 맛있다. 칼로 자른 사탕수수 대를 씹으니 그것 또한 상당히 달고 맛있다. 유년 시절 옥수수 대를 씹어 먹던 회억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 라오스 산마을
건기라서 길가의 나무와 풀들이 먼지로 황토색이다. 우기 때는 도로변 나무들이 초록색이라는데 산길로 접어드니 더욱 먼지가 심하게 묻어 있다. 산마을 사람들은 이런 먼지를 먹으면서도 도로변에 산다. 그것은 도로변에 살아야 전기를 공급 받을 수 있어서다. 길가에 사는 집들이 라오스의 전부다. 절대로 도로에서 떨어진 곳에서는 살지 않기 때문이다. 집들이 아래는 비워두고 윗층에서 살게 지었다. 먼지가 많은 도로를 저속 운행하며 계속 가고 있다. 동물들도 풀을 한가로이 뜯고 있다. 평균 수명이 65세다. 수명이 짧은 이유는 기후 변화가 없어서다. 겨울이 없어서 자극이 없어 세포 변화가 없어서 그렇다. 전체적인 사망률도 높지만 특히 영유아 사망률이 높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서다. 대도시를 빼고는 병원이 없다.
라오스에는 대나무가 많다. 대나무로 집을 짓는다. 지붕만 빼고는 모두 대나무로 집을 짓는다. 울티리도 대나무로 하고 정말 많은 용도로 쓰인다. 이곳 고산 지대에는 오징어 대나무라고 불리는 특이한 대나무가 있다. 정말로 대나무 줄기에 오징어 몸통이 줄줄이 매달린 모양의 대나무가 있다. 그것은 대나무가 늙어지며 껍질이 벗겨진 형상인데 아주 독특하다. 산에는 고무나무도 심겨져 있다. 어린 나무는 7년 정도 있어야 고무 수액을 채취한다. 큰 고무나무에서는 아래 부분에 통을 매달아 고무 수액을 채취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남학생들이 보인다. 걸어서 가는 여학생도 있다. 점심시간으로 집에 가서 점심을 먹으려고 가는 학생들이다. 이곳은 쌀은 많은데 가난하여서 도시락을 싸 줄 형편이 못 되어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학교로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어려운 시절의 모습과 흡사하다. 진한 감동으로 전율이 느껴진다. 학교도 많고 교육 열의도 커서 발전 가능성이 있는 나라다.
라오스에는 아직도 불발 폭탄이 많이 남아 있다. 베트남 전쟁 때 100만 발 정도의 폭탄을 쏟아 부었는데 그 60%인 약 60만 발 정도가 불발되었다. 그 중에서 10만 발은 수거했는데 나머지 50만 발 정도는 아직도 땅 속에 그대로 불발폭탄으로 남아 있다. 폭탄으로 인해 건물도 마음대로 짓지 못한다. 어느 곳이든 잘못 건드리면 폭탄이 터져서 개발이 불가능하다. 특히 라오스 남부에 많이 있다. 그래서 라오스 남부는 여행 금지구역이다. 비엔티엔에서 북쪽에 있는 방비엥과 루앙프라방을 여행지로 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5개국의 국경을 접하는 국가이며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다. 국외에 물자를 수송하려면 도로가 발달해야 하는데 라오스는 국가가 어려워서 도로가 발달되지 않았다. 타국과 교통수단인 고속도로가 없다. 지하자원이 많은데, 특히 구리가 많은데 불발폭탄으로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발달해서 기계적으로 폭탄을 제거하면 라오스가 발전할 것이란다. 참으로 서러운 국가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라오스 여정이다.
* 라오스 젓갈 마을
라오스에는 3가지가 없는데 그것은 바다, 기차, 우체부다. 전화도 유선보다 무선이 먼저 보급되어 유선이 12만, 무선이 30만대다. 우체국에서 우편물이 오면 전화로 연락해서 개인이 우체국에 와서 우편물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무선전화를 보급한 것이다. 바다가 없어서 민물 고기로 젓갈을 만들어 먹는다. 바다가 없어도 소금을 수입하지 않는다. 땅 속 암염을 채취해서 소금을 생산한다. 요오드 성분이 안 들어서 요오드만 섞어서 소금을 만든다. 또한 바다가 없어서 모든 나라를 육로로 이동한다. 그러므로 트럭이 많다.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에서 우리나라의 트럭을 수입한다. 라오스에는 14개의 수력 발전소가 있어 전력을 많이 생산한다. 라오스에는 전기가 많아 태국으로 수출한다. 생산량이 많아서라기보다 라오스 국내는 제반 시설 미비로 전기 사용량이 적기 때문이다.
이곳 젓갈 마을은 한국의 청평호 20배 크기의 호수 상부에 위치해 있다. 라오스의 최대 호수다. 버스가 이곳 마을에 들어설 때 큰 호수의 상단만 조금 보였다. 물가에는 동물들이 풀을 뜯고 풍요로운 정경이다. 젓갈 시장에 내려서 둘러보았다. 민물고기로 만들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생선들로 만든 수산물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커다란 마른 물고가 걸려 있고, 작은 마른 물고기들도 있고, 젓갈로 만들어 그릇에 담아놓은 것도 있고 젓갈 시장은 규모가 상당히 크고 장관이다. 길 양편으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라오스 버스가 오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 젓갈 상가로 들어간다. 민물 생선을 사러 온 라오스 현지 사람들이다. 바다가 없어도 해물을 먹을 수 있는 라오스의 지혜를 보는 소중한 장터다. 길은 더 험해진다. 산길이 꼬불꼬불하다. 여기서 40분 정도 가면 방비엥이다. 내일은 이보다 더 험한 길을 간단다.
* 라오스 공동 묘지
방비엥에 가까워졌을 때 도로변에서 공동묘지를 보았다. 불교국가인데 십자가를 나타낸 비석이 하나 있다. 그것은 소수의 그리스인 묘지인 것이다. 탑 모양의 불교인 비석 곁에 있다. 리오스인들에게 죽음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않는다. 삶과 죽음을 축제로 여기는 나라다. 결혼 풍습은 자유연애로 하는데 조혼이다. 초경을 치르면 결혼하기도 한다. 대개 여자 나이 18세에 결혼하여 다산한다. 가장 높은 신분인 라오 통족은 동갑끼리만 결혼이 가능하다. 그래서 나이를 먼저 물어 보고 사귄다. 초청장을 받아야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다. 3일간 결혼식을 치르는데 첫날은 일가친척을 모시고, 둘째날은 스님을 모시고, 셋째날은 가족끼리 모여 식을 행한다. 바쁜 집에서는 하루에 이 세가지 절차를 마치기도 한다. 결혼식장은 없다. 이벤트 회사에서 나와 세팅해주는 것이 전부다. 라오스의 이색적인 결혼과 장례 문화다.
* 방비엥 도착
비엔티엔을 출발하여 3시간 반을 지나, 소박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라오스의 중부 작은 도시 방비엥Vang vieng에 도착했다. 방비엥은 비엔티엔에서 100km 떨어진 자연도시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유명한 곳이다. 우람한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모습이 방비엥임을 알려준다. 중국의 계림과 유사한 풍경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방비엥은 비엔티엔 근교의 자그마한 마을에 불과했으나 해마다 여행자들이 증가하고 있어 마을은 여행자 천국처럼 변모해 있다. 방비엥의 시골 향수가 서린 학교도 지나간다. 활주로를 만들려다 돈이 모자라서 그냥 놔둔 광장도 있다. 버스에서 내려 먼저 식당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했다. 방비엥 중심 도로에는 음식점을 비롯한 여러 상가가 많다. 이곳은 배낭 여행자들이 많이 오는 곳이어서 그렇다. 툭툭이 택시도 많다. 높고 구불구불 아름다운 산봉우리들이 비경인 도시다.
* 방비엥 호텔로 이동
중식 후 호텔로 갔다. 방비엥 호텔은 아주 중후하다. 입구에 진열해 놓은 조각품들이 곱다. 내부도 나무 향기 그윽하며 넓다. 우리 부부의 방은 4층 308호다. 베란에 나가보니 우람한 산이 바로 앞에 있고 큰 나무와 붉은 지붕의 마을이 참으로 예쁘다. 모든 풍경이 수려한 한폭의 수채화로 뜨는 비경이다. 소계림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오늘 방비엥의 여행 일정을 위해 각자 방에다가 짐을 풀고는 반바지와 샌달을 착용하고 다시 로비에 모였다.
* 방비엥 농촌 마을
호텔에서 트럭을 개조하여 만든 쌩때우라는 차량을 타고 탐남 동굴과 탐쌍 동굴을 보기 위해 길을 달린다. 그리고는 쏭강 강가로 가서 카약킹을 즐길 것이다. 우리 일행은 두 대에 나누어서 탔다. 길은 울퉁불퉁하여 차량이 덜커덩거리고 먼지 자욱하게 나는 도로인데 창문이 없는 차라서 온통 먼지가 다 들어온다. 마스크 또는 화장지로 코를 막고 간다. 이곳도 우리나라의 50~60년대 도로 풍경이다. 즐거운 향수로 웃으며 간다. 한참을 달린 차량은 강가에 우리를 내려준다. 이곳에서부터는 걸어서 이동하는데 시골 마을을 지난다. 그야말로 방베엥의 시골 민가를 다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다. 어쩌면 저리도 닮았을까. 어린 시절 보았던 시골 정경을 옮겨 놓은 듯하다. 어미닭과 병아리떼가 마당에서 거닐고 병아리를 키우는 덮개가 놓여 있다. 유년의 추억이 떠오른다.
마을을 지나자 들길이 나온다. 벼를 베어낸 논길을 걸어간다. 논 옆에는 밭도 있는데 울타리 안의 밭에는 한국의 채소와 동일한 파와 호박 등을 재배하고 있다. 라오스 방비엥의 농촌 풍경응 참으로 정겹다. 석회암 지역의 특징으로 병풍 또는 꼬깔모자 형태의 특이한 산들이 늘어서 있다. 수많은 동굴이 있는데 지금 우리는 탐남 동굴로 가고 있다.
* 방비엥 탐남 동굴 튜브 타기
방비엥 시골길을 한참 걸어서 동굴 앞에 이르렀다. 순박한 자연의 들길을 걸어오는 그 순간도 행복한 여정이었다. 탐남 동굴에서 탐남은 물을 뜻한다. 즉 탐남 동굴은 물이 흐르는 동굴이란 뜻이다. 수중 동굴이다. 동굴의 문은 아주 낮고 동굴 안에 물이 가득하다. 맑은 물가에 오리가 있다. 가방을 맡기고 반바지와 샌들 차림으로 튜브를 타고 굴속으로 들어간다. 라오스 현지 안내자가 여행객을 보호하며 앞장서서 동굴 벽에 매어둔 줄을 잡고 우리를 이끌며 동굴 깊숙이 들어간다. 줄을 놓치면 바위벽에 몸을 다칠 수 있어 줄을 꼭 잡고 당겨야 한다. 처음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는데 몸을 다 적시며 동굴 안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이색 체험에 모두들 즐거운 비명이다. 튜브 위에 몸을 얹었기 때문에 다리와 목을 들어야 해서 불편한 자세인데도 줄을 놓치면 안 되므로 줄줄이 그런 동일한 자세로 움직이는 모습이 아주 재미있다. 가다가 바위가 눈앞에 이르면 자세를 한 바퀴 돌려서 위치를 바꿔야 한다. 한동안 들어간 후에 다시 되돌아 나온다. 아주 독특한 동굴 탐험이다.
* 방비엥 탐쌍 동굴
방비엥은 카르스트 지형으로 많은 동굴이 있다. 탐남 동굴에서 가까운 거리에 탐쌍 동굴이 있다. 이곳 동굴은 코끼리 동굴이다. 입구에는 용상을 두 개 길게 놓았다. 탐쌍 동굴 근처의 자연 경관도 대단히 아름답다. 동굴 안 입구의 바위벽에 코끼리 모양을 한 종유석이 있다. 탐쌍에서 쌍은 라오스 말로 코끼리를 뜻하는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처와 불상을 굴 안에 두어 사원 같은 느낌이 든다. 바닥에 길게 누워 있는 커다란 불상도 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동굴이다.
* 방비엥 쏭강 카약킹
방비엥은 산과 물이 잘 어우러진 절경의 도시다. 동굴에서 나와 다시 차를 타고 쏭강으로 왔다. 여기서 카약을 타고 호텔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부부 끼리 두 명이 타고, 뒤에는 우리를 지켜주는 라오스 청년이 앉는다. 강으로 카약을 밀어 넣고는 앞에 앉은 사람과 뒤에 앉은 사람이 함께 노를 저어 물 위를 미끄러져 나간다. 가끔씩 가운데 앉은 사람이 노를 젖기도 한다. 우리 배에는 맨 앞에 남편, 중간에 나, 뒤에 인솔자가 앉아서 남편과 라오스 청년이 주로 노를 저어 나가고 가끔은 나도 노를 저었다. 요령을 알면 힘들지 않고 아주 재미있게 노를 저을 수 있다. 한 동안 폭이 넓었다가 좁아지는 강을 따라 카약킹을 하다가 도중에 내려서 맥주를 조금씩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또한 곁에 설치되어 있는 리버점프대에 올라가 희망자에 한해 강으로 뛰어내리기도 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쾌감이다.
쏭강에서는 이런 것들 말고도 튜브를 타는 사람, 그네를 타고 강물로 점프하는 사람 등 물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 그런 시설을 갖추어 놓아서 방비엥을 여행자의 천국이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강변 중간 중간에 여행자들이 놀 수 있는 무대도 만들어 놓았다. 우리가 카약킹을 할 때, 무대에서 젊은이들이 환호하며 손을 흔든다. 우리도 함께 손을 흔들며 환호한다. 유럽 등 서양에서 온 배낭 여행자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즐기고 있다. 다시 카약을 타고 내려간다. 일행 끼리 물장구를 치며 간다. 상대편 배에 물을 퍼붓는 것이다. 온몸이 다 젖도록 물을 맞거나 물을 던지거나 아주 흥겨운 물놀이를 하며 간다. 웃고, 또 웃고 모두 동심으로 돌아간다. 호텔 근처의 강변에 내렸다. 카약킹 및 리버점프로 2시간 30분 정도의 긴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더 머물며 쏭강에서 천진한 강물과 함께 고요한 여유를 갖고 싶다. 쏭강의 비경은 속된 마음을 다 비우게 하고 하얀 자유를 선사한다. 후일에라도 꼭 다시 찾고 싶은 곳, 방비엥 투어의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아름다운 여정이다.
2012년 3월 1일 목요일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이동
* 방비엥 호텔의 아침 산책
어제의 아름다운 여정이 새벽 일찍 잠을 깨우고, 쏭강으로 아침 산책을 나갔다. 우람한 산과 강이 비경이다. 방비엥은 순수의 나라 라오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계림이라는 이름으로 칭하기에 충분하다. 오늘 아침 새벽안개에 묻어있는 풍경은 정말 장관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관광객에게 다가와 편안한 쉼을 베풀어준다. 강변을 걷고, 나무다리를 타고 강 건너 마을에도 가 보았다. 열대의 울창한 나무 사이로 대나무 집도 있다. 강을 따라 올라가는 카약도 있다. 청정한 강의 물줄기가 잔잔하다. 호텔에서 베풀어주는 아침 식사도 이곳 강변식당에서 했다. 강변에 접하여 지은 식당이다. 쌀국수와 계란 프라이, 야채 등 풍성한 식탁에서 고요한 산과 강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식사다.
* 방비엥 호텔 출발
아침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로 가는 마을길이 참으로 아름답다. 어느 곳을 보아도 명화다. 게스트 하우스와 잘 가꾸어 놓은 잔디 정원, 우람한 나무들, 열대 식물들, 호텔 뒤 뜨락의 수영장, 바나나 열매 등 고운 풍경이다. 호텔 정면에서도 아름다운 경치는 여전하다. 호텔 앞 방비엥 시가지가 조용하다. 밤을 사르는 관광객들로 붐비던 거리도 고요하다. 호텔 4층 복도에서 조망하는 방비엥은 어느 곳이든 다 수려한 명화다. 새벽에 울던 민가의 닭도 보인다. 이제 방비엥을 떠나야 한다. 다음 여행지인 라오스 북부 도시 루앙프라방으로 간다. 가는 길에 몬도가네 시장과 라오스 소수민족 학교, 고산족인 몽가족 마을을 들린다. 가슴 깊은 곳에 방비엥에서의 고운 추억을 담고 간다.
* 방비엥 몬도가네 아침 재래시장
몬도가네 시장은 원래 아침에만 여는 시장이었으나 관광객의 증가로 하루 종일 여는 시장으로 발전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바나나 꽃등의 야채와 함께 도마뱀, 개미, 박쥐 등 다양한 곤충과 동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시장은 상당히 컸다. 골목마다 돌며 여러 가지를 많이 보았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구경거리는 동물이다. 들쥐와 박쥐, 고양이 등을 잡아서 진열해 두었다. 여인은 도마뱀의 껍질을 손으로 벗기고 있다. 어떤 가게는 이방인의 눈에 흉측하게 보여서 그런지 천으로 덮어 두었다. 안으로 들어가 오늘 방문할 학교와 몽족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쌀과자, 학용품, 칫솔 등을 샀다.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의 행복은 동일하다. 모두들 흐뭇한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하고 버스에 올랐다.
* 방비엥 소수민족 몽족학교 방문
라오스의 소수민족인 몽족 아이들이 다니는 현지학교를 방문한다. 한국의 위상은 세계적으로 높다. 이곳 방비엥에 한국에서 직업학교를 세워줬는데 몽족 학교로 이동하는 길에 볼 수 있었다. 태극기와 라오스 국기를 그려놓은 안내 팻말괴 함께 하얀 벽과 붉은 지붕의 깨끗한 건물이 세워져 있다. 흐뭇한 광경이다.
버스가 몽족 학교에 도착했다. 벌써 아이들은 버스를 보고는 달려 나온다. 방문하는 여행자마다 이곳에 온정을 베풀어 왔기에 이들은 먼저 알고 마중 나오는 것이다. 가난한 흔적이 고스란히 배인 아이들, 누추한 옷차림과 굶주린 얼굴에서 뜨거운 연민의 정이 교차한다. 우리 부부는 쌀과자를 골고루 나우어 주었다. 집단으로 뭉쳐서 누가 받은 손인지, 누가 안 받은 손인지 구별이 어려워 약은 아이는 계속 받는다. 어릴적 미군이 던져준 담배껌과 사탕을 받아먹던 기억이 떠올라 씁쓸하다. 이제 한국은 큰 발전으로 받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로 이렇게 성장한 것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기쁘다. 하지만 저 천진한 어린이들에게 겨우 이런 물건으로 위안을 준다는 것에 대하여는 회의적이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여 저들에 희망의 끈을 심어주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라오스 정부에서 주관해서 풀어야 할 과제다.
교실로 들어가 보았다. 몽족 아이라 해서 다 우르르 나온 것은 아니었다. 더러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의 자리에서 조용히 앉아 공부하고 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우리 부부를 반긴다. 함께 사진 찍자 하면 좋아라 곁으로 다가온다. 순수한 이 아이들을 올바로 이끌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칠판에 써 놓은 라오스의 글자가 낯설지만 희망의 빛으로 화사하게 교실을 밝힌다. 허름한 교실이 유년의 회억을 상기 시킨다. 서로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뜨거운 정을 나누며 보람된 시간이었다. 교문까지 따라 나와 작별을 고하는 아이도 있다. 그저 잘 자라주기를, 희망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길 기원하며 떠나왔다.
* 방비엥 고산족 마을 풍경
깊은 산속 마을이다. 라오스에는 수박이 많다. 이곳 가게에도 수박이 진열되어 있다. 사원도 있다. 차도에서 경운기를 몰고 가는 젊은이가 있다. 화장 문화인 라오스의 불교식 공동묘지가 산중에 있다. 작은 탑 모양이 줄지어 서 있으면 그것은 공동묘지라는 것이다. 아주 많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다. 죽음이 아름답다는 상징일까. 망자의 탑들이 곱다. 우람한 고산을 배경으로 학생들이 보인다. 학교인데 꽤 부자인 학생들이 다니는 것 같다. 자전거가 아주 많이 놓여 있다. 민가 주변에는 바나나 나무가 있다. 야자수도 있다. 저들에게 자연이 주는 큰 양식일 것이다. 산 사이로 흐르는 강변에도 마을이 있다. 작은 배를 신선처럼 타는 사람도 있다. 고기잡이 배일 텐데, 고운 낭만으로 보이는 것은 이방인의 눈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들에게는 고단한 삶의 현장일 것이다. 밭을 일궈 농사를 짓는다. 양배추가 자라고 있다.
산봉우리들이 예술 작품처럼 줄지어 서 있다. 누렁이 소가 버스가 지나가는 차도를 서성인다. 두려움 없이 사는 천진한 동물이다. 물이 흐르는 주변에 토란이 자란다. 라오스 사람들은 토란을 먹지 않는단다. 한국에서는 항암 식품이며, 단백질이 풍부하여 좋은 음식 재료인데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고산 노변에 과일 장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가게마다 라오스에서 많이 나오는 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우리 버스도 잠시 주차하고 가이드가 내려 귤을 사왔다. 귤을 나누어 먹으며 갔다. 귤 맛이 한국산처럼 상큼하진 않다. 더운 기온에서 자라서일까, 보드라운 단맛이다. 산자락을 깎아 농사짓는 화전 밭이 보인다. 정부에서는 못 하게 하는데도 불법으로 산불을 내어 밭을 일군 것이다. 물 없이 찹쌀 농사를 짓는다. 벼를 벤 자국이 있다. 저렇게 산에서 물 없이 길러서 라오스의 찹쌀밥이 차지고 맛있다고도 한다. 산속에 작은 집이 있다. 산만 바라보고 사는 고산족의 집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진정한 라오스를 보는 보람된 여정이다.
* 방비엥 휴게소
여기는 분지라서 평지다. 화장실에 수도 장치도 있다. 도로 건너 넓은 밭의 양배추 재배지가 파랗다. 농촌 마을이 가까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 길가에 토란이 자란다. 고운 꽃이 그 곁에 있다. 자생 토란이 탐스럽다. 대나무도 많다. 우리를 태우고 다니는 버스는 라오 버스라는 표식이 전면 창에 붙어 있다. 한국에서 들어온 중고차다. 좌석 번호 옆에 창측, 내측이라는 한글이 그대로 있다. 그래서 더욱 정겨운 버스다.
* 방비엥 깊은 산중 도로
방비엥에서 40Km 왔다. 루앙프라방까지는 173Km 남았다. 산길도로를 오르락 내리락 가야하는 힘든 주행이 이제부터시작이다. 1500m 고지에 오르고서야 내려가는 산길이다. 몽족마을까지는 1시간 소요된다. 오늘의 중식식당이 그 근처에 있다. 휴게소를 떠나자 잠시 논과 화전 밭이 보이더니 산길로 접어든다. 점점 높아지고 가파른 언덕길이다. 산 옆구리를 빙그르 돌아가는 깊은 산중 도로다. 억새와 갈대는 우리나라 것보다 훨씬 크다. 산 곳곳에 하늘거린다. 우람한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산 풍경이 비경이지만 마주 오는 차와 교행할 때는 두렵기도 하다. 이것도 라오스의 잊지 못할 순수한 한 도막의 여정이다.
* 방비엥 고산족 몽족마을 방문
고산족 몽족은 라오스의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60여개의 소수민족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부족으로 고산지대에 핵가족의 형태로 부족생활을 한다. 라오스는 라오족 등 3개 민족이 있다. 최고 신분인 라오룽, 중간 신분인 라오통, 고산족인 라오쑹이다. 태국에서 건너온 몽족은 라오스에서 차별 대우를 받는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편을 들어서 그렇단다. 미국이 베트남 땅을 일부 떼어 몽족에게 준다는 말을 믿고 따랐는데 몇 명만 미국으로 데리고 갔고 나머지는 미국이 몽족을 책임지지 않아 이탈하게 되었다. 라오스가 자본주의였으면 보호가 가능했을 텐데 그냥 내버려둔 것이란다. 몽족은 숫자상으로는 많아도 지도자가 없어서 가난하게 산다. 몽족은 가진 것이 없어서 산에서 찹쌀 농사를 지으며 산다. 이 나라는 화전 농사를 불허한다. 산에서는 농사도 못 짓는다. 루앙프라방으로 갈 때 그 화전 터전을 보게 된다.
몽족마을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먼저 달려 나온다. 버스 앞에까지 배웅하듯 나와 손을 내민다. 이미 외부의 손님이 올 때는 무언가 준다는 생각이 있어 반사적으로 뛰어나오고 손을 내미는 것 같다. 몰려드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난다. 어쩔 수 없이 가져간 선물을 마을 입구에서부터 풀기 시작했다. 굶주리고 초라한 행색의 아이들이다. 어른들도 나와서 받길 원한다. 상인도 있고, 원시적인 집들도 비스듬한 마을을 이루고, 돼지, 소, 닭, 오리가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며 산다. 그래도 TV 안테나가 있어 조금은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음에 흐뭇했다. 마을 위로 올라가는데 계속 곳곳에서 나온 아이들이 손을 내민다. 과자를 주고, 학용품을 주고, 칫솔 치약을 주는 것이 작으나마 행복을 준다면 우리 방문자에게도 기쁜 일이다.
그러나 학교 방문 때와 동일한 생각은 여전하다. 국가 차원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여 잘 사는 백성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공동 지하수 물 시설이 있고 바나나 나무에는 꽃과 열매가 덩그러니 매달렸고, 나름대로 갖추고 행복하게 산다. 바깥세상을 모르니 이곳의 생활에 대하여 불만도 모르고 아름다운 미소로 처연하게 산다. 잘 사는 나라만 가는 것이 여행은 아니다. 관광 명소만 가는 것도 여행은 아니다. 이런 행사야말로 이번 라오스 여행에서 가장 보람되고 가슴 훈훈한 여정이다. 천진한 아이들, 순박한 어른들 저들 모두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며 살길 빈다.
* 방비엥 고산의 도로변 풍경
버스는 점점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높은 산봉우리가 고산 시선과 나란하다. 구불구불 돌고 돌아 힘든 운전으로 산길을 탄다. 우리의 운전기사는 노련하여서 불안함을 주지 않는다. 발달한 나라라면 터널로 길을 내었을 텐데 수많은 산을 옆구리 타고 길이 뽀얗다. 도로변에는 불태운 흔적이 많다. 아마도 고산족의 삶의 터전으로 그리 한 것 같다. 그 주변에는 바나나 나무가 많다. 바나나를 재배하는 것 같다. 다른 산속에는 바나나 나무가 안 보인다. 이 깊은 산중에서 노변 상인이 호박을 판다. 어떤 남자는 산속에서 들쥐를 잡아 가지고 들고 온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저렇게 들짐승을 잡아먹는다. 참으로 신비로운 광경이다.
* 방비엥 산정 중식식당
가파른 산길을 달릴 때 바로 눈앞 1500m 고지의 산정에 붉은 지붕의 집이 보인다. 저곳이 오늘 우리가 먹을 중식 식당이다. 넓은 주차장이 있다. 1500m고지의 아름다운 푸피양퍄산 휴게실에서 현지식으로 중식 식사를 한다. 산정은 온통 운무로 가득 싸여 있다. 구름 속에 떠 있는 느낌이다. 우리가 온 아득한 산길이 멀리 아스라이 보인다. 식단이 참 좋다. 상추, 야채국, 돼지고기 요리, 밥 등 풍성하다. 동서양의 많은 여행객들이 식사를 한다. 차도 많고, 방문객도 많다. 여러 나라 사람과 함께 맛있는 식사와 평온한 휴식을 취한 고마운 산정 식당이다.
* 루앙프라방 가는 산길
여기서 루앙프라방까지는 아직도 4시간을 더 가야 한다. 멀어서가 아니고 길이 험해서 시간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차츰 하산하고 있다. 산에 몽족 집들이 간간이 보인다. 몽족 고지 마을의 가장 큰 시장도 있다.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물건을 구입한다. 깊은 산중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은 저런 장터가 열리기 때문이다. 사람 향기가 물씬 난다. 차장으로 내려다보이는 고산지대가 절경이고, 소박한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는 흐뭇한 여정이다.
* 라오스 산중 휴게소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 가는 길은 정말 멀다. 먼 것이 아니고 길이 험해서 그렇다는데 아무튼 오랜 시간을 달려온 산길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산길은 산허리를 휘감고 있다. 이곳은 아득한 산이 에워싼 산중 휴게소다. 고지인데도 과일가게, 생필품 가게가 있다. 상가 부근의 민가에는 어미닭이 병아리를 데리고 산언덕에서 먹이를 찾는다. 산비탈에 나무를 세워 세탁한 옷들을 널어놓았다. 토란도 몇 포기 있고 가난한 집이지만 참으로 정겨운 풍경이다. 저 멀리 우리가 가야할 구부러진 산중 도로가 아슬하게 보인다. 다른 차들이 지나가는 모습도 보인다. 이곳이 얼마나 높은 곳인지 거의 눈높이에서 마주 보이는 산봉우리들이 말해주고 있다. 병아리와 어미닭은 이방인이 곁에 있어도 재미있게 논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라오스 북부 도시 루앙프라방을 향해 산길도로를 달린다.
* 라오스 산중 강변 마을
방비엥에서 보았던 그 우람하고 높은 산들을 줄기차게 넘어가고 있다. 이제 거의 산길도로가 끝날 무렵 산 사이로 흐르는 강물이 보인다. 그리고 강변을 따라 뽀얀 길과 함께 마을이 있다. 사람들도 있다. 참으로 반가운 풍경이다. 산만 바라보다가 포근한 물과 민가를 보니 평화 그윽하다. 강변 마을을 지나 산길을 돌라갈 때 고산 노변에 바나나 나무가 많다. 마을 사람들이 재배하는 것 같다. 산길 옆 곳곳에도 바나나 나무가 보인다. 고산족들이 살아가는 삶의 진솔한 풍경이다. 자연에서 얻어지는 천진한 양식거리다. 산길 옆 비탈진 언덕에 까만 염소 두 마리가 풀을 뜯는다. 줄이 없이 방목하는 염소들이다. 버스가 지나가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낮은 지대의 논에는 방목하는 소도 있다. 잊지 못할 먼먼 산길 여정이다. 내일은 이 길을 비행기로 지나간다. 루앙프라방에서 여행을 마치고 비엔티엔으로 돌아갈 때는 항공으로 간다. 가이드는 말한다. 그때 우리가 버스로 온 길이 얼마나 험한 산이었는지 보라고. 산을 넘으며 라오스의 내면을 아주 깊숙이 들여다본,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가슴 훈훈함을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다.
* 루앙프라방 도착
방비엥을 떠나 6시간 30분 달려와서 도착한 라오스의 북부 도시 루앙프라방Luangprabang이다. 18세기까지 옛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은 라오스에서 가장 많은 역사적, 예술적, 문화적 유산을 가진 제 2의 도시이다. 1353년 라오스의 수도가 된 이후에 약 600년 간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문화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1995년 12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원, 왕궁, 전통민가,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의상과 풍습, 1930∼40년대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 등이 후세에 남길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 결과다. 이 도시에 라오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 있다. 인구는 6만 3천명이다. 루앙프라방은 불상 이름이다. 루앙은 위대한, 프라방은 불상이란 뜻으로 즉 루앙프라방은 위대한 불상이란 뜻이다. 도시 이름이 위대한 불상이란 말만으로도 이 도시가 얼마나 불심이 깊은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도로변에 툭툭이 택시가 보이고 차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곳 도시의 노변에도 토란이 자생하고 있다. 소박한 도시다.
* 루앙프라방 호텔 도착
사원처럼 지은 아름다운 호텔이다. 붉은 기와지붕과 야자수, 울창한 나무들이 이국적인 향수를 자아낸다. 호텔에 일단 짐을 풀고 저녁 식사와 몽족 야시장 관광을 위해 다시 나간다. 루앙프라방은 거리를 보호하는 도시다. 대부분 소형차를 운행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대형버스는 루앙프라방 시내에서는 운행할 수 없다. 비엔티엔에서부터 우리를 태우고 온 버스는 오늘은 늦어서 못가고 내일 아침 빈 차로 비엔티엔에 간다. 우리가 루앙프라방 관광을 마치고 이틀 후 비엔티엔에 갔을 때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만나게 된다. 지금은 12인승 봉고차 2대에 나누어 타고 가고 있다. 프랑스 식민 건축물이 아직도 남아 있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루앙프라방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해발 700m 고지의 도시다. 라오스 북서부 메콩강 유역에 위치하고 있다. 메콩 강변에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가고 있다.
* 루앙프라방 메콩강변 석식
메콩강변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쌀밥, 돼지고기, 야채쌈, 된장찌개, 나물, 후식으로 망고까지 푸짐한 식단이다. 꼬마전구가 불을 밝힌다. 어둠 속에서 메콩강은 잠잠하고 강물 위에서 몇 개의 불빛만 반짝인다. 큰 나무가 곁에 있다. 오랜 나이로 몸통에는 이끼류의 식물이 가득 붙어 함께 산다. 아주 아름다운 나무다. 이 집 식당 이름도 Big Tree Cafe다. 네덜란드인을 남편으로 둔 한국인 여자가 남편과 함께 일군 식당이다. 부부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식당 벽에는 남편이 찍었다는 라오스의 사진을 걸어두었다. 메콩 강변의 이 거리는 아주 큰 낭만을 선사한다.
* 루앙프라방 몽족 야시장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가는 길에 루앙프라방의 몽족 야시장에 들렀다. 아주 큰 야시장이다. 말 그대로 저녁에만 열리는 시장이다. 공산주의 영향일까. 상가마다 거의 동일한 물건들이다. 나는 머플러, 남편은 유년의 추억으로 새총을 샀다. 1시간 정도 자유로이 시장을 구경했다. 야시장에서 스님과 부딪히면 절대로 안 된다. 이곳 스님은 세인과 부딪히면 스스로 파계승이 된단다. 스님이 종종 야시장에 나오기도 한단다. 정말 스님이 있었다. 부딪힐까 염려스러워 멀리 떨어져 갔다. 어린 아이가 가게를 지키길래 영어로 물건 값을 물었더니 웃으며 고개를 젖는다. 아직 영어를 모른다는 듯 계면쩍게 웃는 모습이 참으로 천진하다. 어떤 가게에서는 라오스 청년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며 능숙하게 한국어를 읇는다. 순간 나의 시집을 갖다 줬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오스를 보는 야시장이다. 새총도 이들에게는 장난감이 아니라 정말 새를 잡아먹고 살아야하는 생존의 도구다. 색상은 화려하지만 가격은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시장이다.
야시장에서 봉고차로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은 5시 30분에 모닝콜이다. 6시에는 라오스 스님들의 탁밧 행렬을 참관한다. 그리고 나서 호텔로 다시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고 시내 관광한다. 차를 타고 넘어온 오랜 시간으로 좀 피곤하지만 천진한 도시 루앙프라방에서의 첫날 여정이 참으로 행복하다.
2012년 3월 2일 금요일 루앙프라방
* 루앙프라방 새벽 탁밧 참관
루앙프라방의 아침을 여는 탁밧, 우리말로 탁발은 라오스에서 가장 큰 탁밧 행사다. 루앙프라방 스님들의 탁밧 보시도 볼 수 있다. 라오스 스님들이 최고 많이 온다. 참관하는 여행자도 불교 신자는 탁밧 보시 행사에 참여 가능하다. 불교가 국가인 동남아 국가에서 아침이면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탁밧 또는 딱밧, 우리말로 탁발이라 부르는 것은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중요한 규율 중의 하나이며 음식을 공양 받는 것을 말한다. 루앙프라방에서는 새벽 6시가 되면 탁밧을 나온 승려들의 기다란 행렬과 무릎을 조아리고 승려들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신도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차로 이동하여 갔다. 쌀쌀한 새벽 기온이다. 길가에 많은 사람들이 탁밧에 참관하기 위해 모여 있다. 보시 하고자 하는 사람은 쌀밥이나 과일을 사서 인도에 자리를 펴고 맨발로 앉아 있다. 오렌지색 승복의 수백 명의 스님들의 새벽 탁발공양 행렬이 줄지어 온다. 노변에서 탁밧 행렬을 관람했다. 300여 명의 스님이 온다. 스님은 1일 2식으로 산다. 조식과 중식만 먹고 낮 12시 이후부터는 금식이다. 밥을 해먹지 않고 모두 탁밧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모두 사원에 거주한다. 루앙프라방의 스님은 모두 새벽이면 이곳에 온다. 받은 밥을 다시 가난한 라오스 아이들에게 보시하기도 한다. 스님이 되는 길이 쉽지 않다. 283가지 계율을 통과해야 스님이 된다. 모두 통과하기가 어렵다. 스님이 담배 피우는 것은 가능하다. 여자관계는 안 된다. 라오스 스님은 자유로운 편이다. 주황색 의상의 스님들의 긴 행렬이 맨발로 계속 밀려온다. 참관자도 반드시 앉아서 맨발로 음식을 주어야 한다. 스님보다 높은 자세는 절대 금지다. 대부분 스님들이 젊은이들이다. 나이 든 분은 거의 없다. 라오스의 진한 불심을 보는 순간이다.
* 루앙프라방 아침 재래시장
라오스 스님들의 탁밧행렬 참관 후 루앙프라방의 아침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쌀, 야채, 과일, 생선, 옷, 등 모든 생활용품을 판다. 메콩강에서 잡은 메기, 붕어 등 물고기가 많다. 여자들이 좌판을 벌이고 앉아 장사한다. 긴 골목 양편을 다 메우고 있다. 역시 어제 야시장에 이어 라오스를 보는 체험이다. 가난하지만 그래도 풍성한 먹거리들이 즐비하다. 땀으로 얻은 소산물이겠지만 행복과 희망이 빛나는 아침 재래시장이다.
* 루앙프라방 시가지의 아침 풍경
어제 보았던 우체국 건물을 지난다. 나무 숲 사이로 라오스의 일출이 비경이다. 거리에는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하얀 제복을 입은 남녀가 여러 명이 뭉쳐서 걸어가고 있다. 오토바이도 혼자 또는 둘씩 타고 대로를 지나간다. 도로변에는 관광객을 위한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활기차게 열리는 루앙프라방 시가지의 아침 풍경이다.
* 루앙프라방 호텔 주변 풍경
조식 후 호텔 주변을 돌아보았다. 호텔이 아름답다. 사원 풍의 건물이다. 울창한 열대식물 나무들이 많다. 호텔 차량이 여러 대 주차해 있다. 돌 의자와 테이블이 인상적이다. 연못에 인어상과 부처상이 있다. 실내에도 나무 장식과 잉어 수조 등 은은한 향기다. 호텔 바로 앞은 대로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간다. 차량과 툭툭이 택시가 질주한다. 먼지가 많이 난다. 소박한 거리다. 내일까지 이 호텔에서 머문다.
* 루앙프라방 푸시산
루앙프라방의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산이다. 328개의 계단을 올라야 푸시산 정상에 오른다. 오랜 연륜의 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내며 계단 옆에서 오르는 걸음을 편안하게 맞이 해준다. 푸시산에 올라가서 루앙프라방 시내를 조망한다. 푸시산은 루앙프라방에서 꼭 가야할 산이다. 해발 100m의 작은 동산이지만 높은 건물이 없는 루앙프라방에서는 꽤 높은 곳에 속한다. 언덕 정상에 오르니 루앙프라방이 한눈에 들어오며 메콩강과 칸강이 보인다. 루앙프라방을 둘러싸고 있는 푸른 숲과 붉은 기와지붕의 집들이 시원하게 전개된다. 산정의 고운 꽃과 바위 등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산의 정상에 오롯하게 치솟은 탓 촘 푸시That Chom Phousi라는 높이 28m의 탑이 있다. 1804년에 건축되어 1914년에 개축한 사원이다. 아침 햇살이 부처를 환하게 비춘다. 푸시산 계단을 오르내리며 우람하고 아름다운 나무들을 보는 것도 이국적인 풍경이다. 계단이 끝날 무렵 푸시산 바로 밑, 길 건너편에 있는 왕궁 박물관의 모든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루앙프라방 왕궁 박물관
왕궁 박물관은 1975년까지 왕궁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그 다음해부터 박물관으로 전환되었다.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 되는 불상인 파방을 보관하고 있다. 이곳은 라오스 마지막 왕이 거주하던 곳이다. 메콩강 강변에 시사방봉왕Sisavangvong의 재임기인 1904년~1909년에 왕궁으로 건축되어 왕과 왕족들의 주거지로 사용했는데 1975년 공산혁명 이후 왕의 존재가 없어지면서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현재는 란쌍 왕조의 유물과 종교유물을 전시하는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은 메콩강 둑에 위치하고 있으며, 푸시산Phousi의 바로 맞은편에 있다. 왕궁에 들어서니 큰 야자수와 울창한 나무들이 정원에 가득하다. 마지막 왕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태국의 에메랄드 왕궁 같은 건물도 있다.
라오스 왕정에서 쓰이던 물품과 루앙프라방의 문화재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다. 금불상 부처의 진품이 있다. 도시의 이름을 유래한 황금 불상인 파방, 또는 프라방Phra Bang이라는 이 불상은 가장 중요한 유물이다. 원래 이 불상은 80%가 금으로 되어 있고, 83cm 높이에 무게가 50kg이 나갔다. 10세기 이전 스리랑카에서 만들어져 앙코르 왕국에 보관하던 불상을, 11세기에 이르러 크메르의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된 라오스 왕이 라오스로 가져오게 되었다. 이후 세타티랏왕이 비엔티안을 수도로 정한 이후에 그가 불상을 이곳으로 옮겨다 놓았다. 한때 1779년 태국에 강탈당했다가 1839년에 반환된 이후에 현재는 라오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불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접견실, 침실, 왕의 식당, 장구 겸 의자 등 여러 가지를 보았다. 유네스코에 등록 중이란다. 뒤편에는 왕이 타고 다니던 자동차와 행사용 마차가 전시되어 있다. 왕궁이 그리 크진 않지만 아름다운 건물과 잘 가꾸어진 식물들이 라오스의 진한 향수를 자아내고 있다.
* 루앙프라방 왓 마이 사원
왓 마이 사원은 왕궁 박물관 왕궁 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왕궁 박물관을 관람하고 걸어서 갔다. 정식 명칭은 왓 마이 쑤완나 푸마함이다. 5층 지붕의 목조건물로 전통적인 루앙프라방 양식이다. 파방을 모셔놓았던 사원으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루앙프라방에서 왓 씨앙통 사원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1821년에 세워졌고 라오스 큰 스님의 거주지이기도 했다. 내부는 18~19세기의 아름다운 금장식이다. 금장식 기둥과 부처의 화신이라는 베르산트라Versantra의 일생을 상세히 설명해 놓은 툇마루와 호화롭게 금으로 양각 장식된 문틀이 있다. 전면은 전통적인 라오스의 생활상 가운데 부처의 성육신을 묘사했다. 현재 왕궁 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파방이 한때(1894~1947) 이곳에 안치 되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사원의 한편에 에메랄드 불상이 모셔져 있다. 그러나 이 불상은 모조품이다. 진품은 태국 왕궁에 있다. 방콕 왕궁 사원에 있는 에메랄드 불상은 라오스에서 가져 간 것이다. 슬픈 역사다. 지금도 신년 행사의 삐 마이 라오Pi Mai Lao 기간에는 파방을 왓 마이 사원에 옮기고 물에 씻으며 소원을 비는 행사가 열린다. 루앙프라방이라는 지명도 저 위대한 불상에서 유래한 것이라니 라오스의 종교 불교가 얼마나 깊이 작용하는지 알게 하는 대목이다.
* 루앙프라방 왓 씨엠통 사원
왓 마이 사원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두 사원을 걸어서 이동하며 보았다. 사원 입구에는 찹쌀밥을 둥글고 얇게 펴서 말리는 모습이 있다. 쌀이 많이 나는 라오스의 진풍경이기도 하고 탁밧 보시가 떠오르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 사원은 1560년에 건립이 되었다. 이곳 루앙프라방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사원에 속한다. 왓 씨엥통은 라오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다. 여러 가지 색상을 입힌 유리와 금으로 모자이크 처리된 장식은 매우 아름답다. 본당은 수리 중이어서 지붕 위에는 설치물이 있고 내부의 부처는 천으로 덮어 두었 다. 홀로 수행하는 곳이라는 아주 작은 사원이 본당 앞에 있다. 사원 뜰 안의 아름다운 꽃과 야자수 등 우람한 나무들이 비경이다. 메콩강과 칸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사원에서 나와 바로 길을 건너니 메콩 강변이다. 사원을 둘러싼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 루앙프라방 메콩 강변 풍경
푸시산 등정에서부터 왕궁 박물관, 왓 마이 사원, 왓 씨엠통 사원을 모두 도보로 이동하며 관람하고 이곳 메콩 강변에 도착했다. 루앙프라방이 그리 크지 않은 도시임을 알게 해준다. 메콩강은 계단 저 아래에서 흐르고 있다. 꽤 긴 계단이지만 메콩강을 가까이에서 보려고 계단을 내려갔다. 강가에 유람선도 있고 강 건너에는 마을도 있고, 높고 우람한 산들이 겹겹이 강줄기를 따라 에워싸고 있다. 아름다운 강변 풍경이다.
* 루앙프라방 메콩 강변 찰밥중식
메콩 강변 식당에서 중식을 현지식으로 먹었다. 찰밥과 물고기 찜, 돼지고기 요리, 샐러드, 소시지 등 푸짐한 식단이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찹쌀밥이다. 대나무 그릇에 뚜껑을 덮어 나오는 밥그릇도 운치가 있고, 그 밥을 꺼내 먹는 것은 더욱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찹쌀밥을 젓가락으로 먹었지만, 나중에는 이곳 풍습대로 손으로 떼어서 먹으니 더욱 맛있다. 이상한 일이다. 손에 붙을거라고 생각했던 밥알이 손에 하나도 안 붙는다. 그런데도 꼬들꼬들한 밥알을 입안에 넣고 씹으면 말랑말랑한 인절미처럼 보드랍게 된다. 양도 많아 먹어도, 먹어도 대나무 밥그릇에는 찰밥이 차 있다. 밥을 하는 것이 아니고 쪄서 그런 것이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음식이다.
* 루앙프라방 도심 풍경
루앙프라방은 건물의 높이 제한이 있다. 절대로 고층 건물을 허락하지 않는다. 라오스의 옛 수도로서 구시가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에서 참으로 보기 드문 풍경이다. 도로변의 대부분 건물들이 낡고 허름하지만 고전적인 향수가 배어 있다. 어쩜 세계인들은 저런 때 묻지 않은 현대 속 고전을 체험하고자 이곳을 찾는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가난하지만 역사적 유물을 도시에 한가득 담고 있으니 환산할 수 없는 보물을 지닌 셈이다. 특히 메콩 강변의 카페들은 고전적인 향기 그윽한 분위기다. 라오스의 커피는 유명하여서 여정 중 한 코스로 찾아오기도 한다. 이국적인 야자수와 울창한 나무가 넘실거리는 도심 풍경은 여행자에게는 지나는 길마다 큰 선물이다.
* 루앙프라방 쾅시 폭포
호텔에 잠시 들려서 휴식하고 쾅시 폭포로 간다. 시내에서 약 32km떨어진 곳에 있다. 봉고차로 호텔에서 40분 소요된다. 쾅시 폭포는 자연림이 우거져 있고 여러 단으로 구성된 폭포가 비경인 곳이다. 코발트빛의 황홀한 물 색깔을 띠고 있어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에게도 매우 인기 있는 관광지다. 쾅시 폭포에 도착하니 주변은 온통 기념품 가게로 화려하다. 민속 마을처럼 꾸며놓은 상가들이 건물 자체만으로도 이색 풍경이다. 쾅시 폭포라는 입구의 문을 통해 입장하여서 숲길을 오르며 간다. 산속에 사육하는 곰도 있다. 싱그러운 산길을 따라 계속 폭포가 나온다. 걸어서 오르다가 폭포를 보고, 또 오르다가 새로운 폭포를 만나고 닳아진 산길을 계속 걷는다. 세계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어 오르내린다. 어떤 젊은이는 나무에 올라가서 폭포 호수로 뛰어 내린다. 석회수라서 물빛이 비경이다. 한참을 오르니 가파른 언덕이 있고 가이드의 도움을 받다 무섭게 내려간 곳에서 장엄한 폭포를 만났다. 왜 그리도 숨 가쁘게 올랐는지 하얀 포말로 우렁차게 쏟아 내리는 잘 생긴 폭포 앞에서야 알았다. 물속에 들어가 물장구도 치고 한 움큼 쥐어 하늘에 날려보고 천진한 기쁨의 환호다. 폭포가 만든 시내의 강다리를 건너 하산하며 발도 닦고, 오를 때 못다 본 폭포를 다시 바라보며 라오스의 깊은 절경을 담고 왔다.
* 루앙프라방 농촌 풍경
쾅시 폭포를 오가며 본 루앙프라방의 농촌 풍경은 참으로 정겨웠다. 여전히 집들은 길가 있다. 비엔티엔에서 방비엥으로 갈 때 본 것과 동일하다. 전기 혜택을 받으려면 도로변에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야자수와 울창한 나무들이 집을 에워싸고 있다. 농토가 많다. 산자락을 일군 농토도 있고 평지의 농토도 있다. 주로 논농사다. 벼를 벤 흔적도 있고 파랗게 벼가 자라는 풍경도 있다. 2~3모작을 하는 라오스를 보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벼를 베었고, 다른 쪽에서는 벼를 심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라오스에는 물이 없이 산에 심는 찹쌀도 있다. 그것으로 밥을 지어서 그리도 차진 것 같다. 조금 높은 둔덕에 사탕수수 재배지도 있다. 비엔티엔 휴게소에서 먹었던 사탕수수, 참 달고 맛있던 그 사탕수수 나무다. 시골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운동장을 돌아다닌다. 모든 것들이 여행에서 얻는 소중한 풍경이다.
* 루앙프라방 메콩강 선셋 크루즈
루앙프라방의 젖줄 메콩강 선셋 크루즈는 저녁 5시~7시까지 2시간 동안 일몰 비경을 보는 유람이다. 지난밤 저녁식사를 했던 메콩 강변에서 크루즈 배를 탄다. 도로가 높이 있어서 언덕진 길을 한참을 걸어 내려갔다. 강변 모래밭에 토마토를 심어 놓았다.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렸다. 배에 승선하여 2층 갑판으로 올라갔다. 벌써 해는 고운 빛으로 바다 같은 강을 물들이다. 폭도 넓고 길이도 긴 아주 우람한 강이다. 배는 유유히 흐르고 일몰과 함께 강변 풍경이 비경이다. 한쪽은 루앙프라방 도시가, 건너편은 높은 산줄기가 메콩강을 더욱 빛내고 있다. 강 건너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민가도 보인다. 아이들이 놀고 있다. 건기로 모래벌판이 드러나 있다. 모래사장에 승복을 벗어놓고 수영하는 동자승들이 보인다. 스님이어도 아이는 아이라서 천진하게 놀고 있다. 붉은 빛으로 물들던 메콩강은 해가 산으로 넘어가자 서서히 어둠이 드리우고 배는 승선했던 곳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메콩 강변 식당에서 치킨 스테이크와 든 스테이크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다. 꽃과 조명 장식으로 아주 분위기 좋은 식당이다. 석식 후 야시장을 지나 봉고차로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은 다시 비행기로 비엔티엔에 간다. 오전 6시경 호텔을 출발한다. 그래서 밤에 머리를 감고 짐을 완전히 쌌다. 겨울옷과 여름옷을 구분해야 한다. 라오스와 한국의 계절이 정반대여서 여기서는 여름옷을 입지만 한국 공항에서는 겨울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휴식과 편안한 취침으로 루앙프라방의 마지막 밤을 행복하게 보냈다.
2012년 3월 3일 토요일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엔으로 이동
* 루앙프라방 호텔 출발
오늘은 루앙프라방 여정을 모두 마치고 비행기로 다시 비엔티엔으로 간다. 호텔에서 루앙프라방 공항은 가깝다. 5시에 모닝콜, 6시에 조식, 6시 20분 호텔 출발이다. 오전 7시 50분 비행기라서 서둘러 루앙프라방 공항에 가야 해서다. 6시 정각에 호텔 식당에 가서 급히 아침식사를 했다. 캄캄한 아침이다. 더운 라오스인데도 아침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각에 열리고 있다. 이틀 밤을 유숙하며 정든 숙소를 떠나려니 아쉽다.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서둘러 봉고차를 타고 루앙프라방 공항으로 이동한다.
* 루앙프라방 공항 출발
라오스 항공 오전 7:50 비엔티엔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루앙프라방 공항에 왔다. 아담한 공항이다. 짐을 부치고 대기실로 갔다. 공항 마당에 비행기가 있다. 이곳 공항은 탑승 복도 시설이 없다. 걸어가서 탑승해야 한다. 비행기 후미에 라오스 국화인 참파꽃이 그려져 있다. 아침 해가 떠오른다. 정시에 이륙했다. 2, 2 좌석제에서 우리 부부는 5A, 5B 창가 좌석이다. 나무로 가득한 루앙프라방 도시가 예쁘게 전개된다. 또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올 때 버스로 넘어온 그 산줄기도 장엄하게 비행기 창문에 서린다. 기내식 서비스로 건과일과 물을 준다. 라오스 국내선으로 비엔티엔까지는 40분 소요된다. 짧은 비행거리지만 상공에서 보는 라오스 풍경, 이것도 소중한 여정이다.
* 비엔티엔 공항 도착
오전 8시30분 정시에 도착했다. 루앙프라방에서 오전 7시 50분 비행기였고 40분 소요되었다. 라오스 남쪽으로 날아온 것이다. 비엔티엔 공항은 국제 공항으로 사람들이 많이 왕래한다. 검색 절차도 철저하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짐 벨트에서 가방을 찾아 밖으로 나왔을 때 처음 우리가 탔던 45인승 버스가 마중 나와 있었다. 반가웠다. 꽃과 나무가 많은 공항에 아침 햇살이 곱게 내린다.
* 비엔티엔 국립 박물관
라오스의 역사와 현재 상황이 담긴 박물관이다. 비엔티엔의 중심부 문화의 전당인 인민공화국 공연장 건물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은 1925년 프랑스 식민시절 건축되었다. 프랑스 식민지풍의 건축양식으로 프랑스 지배하에 사용되었으며 1945년 라오스가 독립함에 따라 새 국가에 대한 건국회의가 이곳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왕궁으로도 잠시 사용되었으며 각 정부 부처로 사용을 하다가, 1985년 혁명 박물관으로, 2000년에는 국립 박물관으로 되었다. 이곳에서는 일체 가방이나 카메라를 가지고는 입장 불가다.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다. 짐을 보관소에 넣고 각자의 열쇠로 채우고 들어갔다.1층과 2층을 관람하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관람한다. 1층은 란쌍 왕국 이전의 모습을 2층부터는 란쌍 왕국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역사를 연도 별로 전시해 놓았다. 라오스는 마지막 왕이 사망하자 비극이 시작되었던 나라다. 슬픈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건물도 슬퍼 보인다. 낡은 건물이다. 정원에 있는 오랜 연륜의 나무뿌리에 조각한 작품이 대단히 아름답다. 박물관 곁에는 사원 2개가 마주 보고 있다.
* 비엔티엔 왓 호파깨우 사원
왓 호 파깨우 사원WAT HO PRAKEO은 에메랄드 불상을 모셨던 사원이다. 본당 내부는 사진촬영이 안되며 입장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1565년 왕도를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엔으로 천도할 때 옛 란쌍 왕국의 상징이었던 에메랄드 불상을 모시기 위해 건축되었다. 현재는 그 불상은 없고 사원용품을 보관하고 있다. 1779년 태국의 샴 왕국과의 전쟁 때 건물은 소실되고 에메랄드 불상은 약탈당했으며 아직도 이 에메랄드 불상은 태국 방콕의 왕궁사원에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36년 프랑스에 의해 재건되어 박물관이 되었다. 국내 각지에서 모아진 많은 불상을 비롯한 역사적, 종교적 예술품인 야자잎에 쓴 필사본, 크메르 비문 등을 전시해 놓고 있다. 외부에 커다란 불상들이 많다. 이 불상을 만지면서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로 사람들의 손길로 부처가 맨질맨질하다. 남방 불교에서 원래는 부처를 만져서는 안 되는데 이곳에서는 허락하고 있다. 뜰에는 잔디와 고운 꽃들을 잘 가꾸어 놓았다. 야자수와 나무들이 푸른빛으로 꽃과 함께 사원을 빛내고 있다.
* 비엔티엔 왓 시사켓 사원
왓 시사켓 사원은 불상이 아주 많이 전시된 사원이다. 공시적으로는 6800여개의 은제 혹은 토기의 불상들이 있고 작은 불상까지는 정확히 1만 36개 있다. 작은 것이 8천 개, 그 외는 중간 것, 큰 것, 그리고 부서진 것들이다. 벽면에 구멍을 내어 놓고 한 구멍에 작은 불상을 2개씩 보관해 두었다. 큰 불상들은 그 앞에 두었다. 사원을 빙 둘러 에워싸며 진열된 크고 작은 불상들이 장엄한 행렬이다. 우리나라에서 몽고 침입시 팔만대장경을 만든 것처럼 이 나라에서도 그런 의미로 불상을 만들었다. 현재 비엔티엔에 남아 있는 사원 중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1818년~1823년까지 5년 동안 건축했다. 1828년 태국의 샴 왕국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935년에 재건되었다. 본당은 파과가 안 된 사원이다. 내부의 탱화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본당 내부는 촬영금지다. 신발을 벗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왓 호파깨우 사원과는 마주 보고 있어 담장 너머로 왓 호패깨우 사원의 지붕이 보인다.
* 비엔티엔 공항 가는 길
오늘 아침 일찍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엔으로 와서 국립 박물관과 두 사원들까지 관람으로 러오스의 공식적인 여행을 다 마쳤다. 한인 교포 식당에서 베풀어주는 쌈밥, 쌈장, 돼지고기 수육, 오징어 볶음, 김치, 콩나물, 고사리 등 진수성찬으로 라오스의 마지막 점심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마트에도 잠간 들려 라오스의 건과일을 둘러보았다. 시내 큰 건물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일을 한다. 라오스에는 한국의 건축 근로자들이 많이 와 있다는 말이 떠올라 한참을 보았다. 시가지 도로에 리오스의 국화 참파꽃 나무가 있다. 꽃도 하얗게 피었다. 나무도 꽃도 우아하다. 도심에는 낮인데도 자가용이 많다. 아름다운 사원을 지난 곧 공항에 도착했다.
* 비엔티엔 공항 출발
공항 주변에 라오스의 유적지 사진을 세워두어 아름답다. 비엔티엔 국제공항은 외경과 내경 모두 깨끗하다. 진에어 LJ702 항공 13:30분 인천행 출발이다. 13시에 보딩이다. 우리 부부의 좌석은 올 때와 동일한 좌석으로 29E, 29F로 창가다. 공항 건물이 사원 모습이다. 활주로에 파란 풀들이 곱다. 정시에 이륙한다. 상공에서 본 비엔티엔은 나무들로 울창하다. 하얀 구름이 뭉실뭉실, 창공의 구름이 비경이다. 쥬스, 물, 콜라를 마시며 간다. 한국시각으로 오후 6시 망망한 창공이다. 흰 구름바다가 장관이다. 하얀 낮달도 높이 떠 있다. 저 높은 곳에 있는 달을 지상에서도 어디서나 보는 것이다. 우주의 신비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다. 창공의 일몰 비경도 장관이다. 수없이 보아온 하늘길인데 유난히도 이번 여정에서 본 하늘은 곱다.
* 인천 공항 도착
나의 조국 대한민국 인천 국제공항 도착에 정시에 도착했다. 한국시각으로 19:55에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했다. 진에어, 처음 타 본 비행기인데 상당히 안정적이고 좋다. 진에어가 라오스 직항으로 금년부터 운항을 시작했다. 그로인해 한국과 라오스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여행문이 열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우리는 거의 선구적인 여행을 다녀온 셈이다. 라오스, 참으로 정겨운 나라다. 가난하지만 정감어린 나라다. 열심히 사는 모습,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천진한 미소, 기름진 들녘 모두 라오스의 발전을 기약하는 신호가 아닐까 싶다. 라오스의 순수한 빛으로 나는 또 한동안 행복하리라.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가고 싶은 나라다. 15번 벨트에서 짐을 찾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하나의 여정이 닫히면 또 다른 여정을 구상한다. 다음 4월에는 서지중해 크루즈를 계획하고 있다. 가장 적은 투자로 가장 큰 교육 효과를 얻는다는 여행, 그 말은 아주 정확한 사실이다. 나는 가장 적은 투자로 온 세계를 다 배우고 있으니 말이다. 내 기력이 쇠잔하는 날까지 이루어질 보물과도 같은 세계 탐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