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 뛰는 가슴 그리고 유년기의 설렘
윌리엄 위즈워스(1770~1850)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은 뛰누나.
나 어릴 적에도 그러했고
어른인 지금도 그러하네.
늙어서도 그렇지 못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나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건대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경건함에 이어지기를
[시가 주는 여운]
늙어서 무지개를 보아도
가슴이 뛰지 않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낳다고
시인은 말한다.
죽기 싫으면
감정에 무뎌져서는 안되고,
경이로움에 머리 숙여야 하리라.
유년기적 설렘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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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감상]
내 마음 속의 무지개
- 칠정(七情)과 지나온 여정(旅程)에 대한 아쉬움
정환웅
기쁨으로 가슴 열어 제치고 웃어도 보았어요.- 喜
까닭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하얗게
밤을 지새워도 보았어요.- 怒
서지도 앉지도 못하며 안절 부절
미련한 인생을 걱정해 보기도 했어요.- 憂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구긴 종이
수북이 쌓아가며 편지도 써 보았어요.- 思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 속에서
슬픔이란 단어를 보았어요.- 悲
논둑길 걷다가 문득 마주친 물뱀을 보고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 한 적도 있었어요.- 驚
밤길을 홀로 걷노라면 제 발자국 소리에 절로 놀라
줄달음치던 지난날이 발밑에 묻혀 있습니다.- 恐
생각하면 홀로 미소 짓게 되는 사랑하는 이와
한집에 살면서 수정같이 맑은 눈을 가진 아이들도
낳았으니 一慾은 달성했고,
삼시 제때 식사 거르지 않고 찾아 먹으니
二慾도 성취했다.
스스로 잠들고 싶을 때 잠들어
아침 햇살 가득한 새 날을 맞이할 수 있으니
三慾도 나의 것이다.
다만, 푸르렀던 젊은 날
치열하게 살지 못한 아쉬움에
출세와 명예 그리고 부는
남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무심한 세월이 흐르는 눈물 닦아줄 날
기다리는 수밖에...
2004.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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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 산 너머 떠오른 당신의 눈물
이홍섭
서산 너머에서 밤새 운 자 누구인가
아침 일찍 무지개가 떴네
슬픔이 저리도 둥글 수 있다면
내 낡은 옷가지 서넛 걸어놓고
산 너머 당신을 만나러 갈 수 있겠다
아픔이 저리도 봉긋할 수 있다면
분홍빛 당신의 가슴에
내 지친 머리를 파묻을 수 있겠다
서산에 뜬 무지개는
당신의 눈물처럼 참 맑기도 하지
―시집『터미널』(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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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1 - 몰래한 첫사랑과의 해후상봉(邂逅相逢).
무지갯빛 사랑을 꿈꿔 온 죄의 고백과 사면을 청함.
넘 보지 말라는 화사한 금(禁)줄
임영조
소나기 떼 쓸고 간 동녘 하늘 끝
매봉산 형제가 줄넘기를 한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일곱 빛 색실로 꼰 동아줄 잡고
내 마음도 들썩들썩 따라 넘는다
줄을 돌려 산 너머 산 너머 가면
그 옛날 몰래 가슴만 두근대다
놓쳐버린 절반의 첫사랑이 있을까
일곱 빛 레이스로 열린 하늘 문
저 두렵고 환한 돔으로 들어가면
에덴동산 마루엔 고해소가 보일까
푸른 망토 두른 사제라도 만나면
내 당장 무릎을 꿇으리라, 아직도
까닭 없이 설레는 무지갯빛 사랑을
신의 나라로 망명을 꿈꿔온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사면을 받으리라
하늘로만 솟다가 지친 그리움
땅에 박고 휘영청 활처럼 휘어
팽팽하게 당기는 칠현금 소리
빨 주 노 초 파 남 보
함부로 손타거나 넘보지 말라고
천지간에 쳐놓은 화사한 금(禁)줄이다
매봉산 형제가 친 쌍끌이 그물이다.
임영조 시전집『그대에게 가는 길 1
(제6시집 시인의 모자)』(천년의 시작,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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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2 - 반쪽 가락지 그리고 파혼(破婚)의 아린 징표
임영조
전생에 이루지 못한 사랑
이승에서 다시 만나 맺자고
서로 나눈 반쪽 가락지
오늘 홀연 서산 위에 떠 있네
사랑의 증표 아직 녹슬지 않고
일곱 빛깔 섬섬히 눈이 부신데
볼수록 내 가슴 마냥 뛰는데
그대는 어찌 안 보이는가?
그 동안 나는 한 점 뜬구름으로
마을에서 산으로 들고 강으로
그대 찾아 섬도 가고 절에도 갔네
오늘도 매봉에 혼자 올라 야호!
앞산이 무너져라 불러도 감감
그대는 지금 어디에 숨어 있나?
말 못할 그 무슨 속사정 있길래
둘이 나눈 무지개표 가락지
그 반쪽 사랑이 이제야 보여주나?
저무는 하늘가에 슬며시 내건
저 눈 아리게 빛 부신 파혼(破婚)
-임영조 시전집『그대에게 가는 길 1
(제6시집 시인의 모자)』(천년의 시작,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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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 여름날 저녁 피어오르던 엄마의 사랑
이시영
그 옛날 제가 어렸을 적
웃냇가 노둣돌 틈서리에서 물장구치다
느닷없는 천둥소나기에 놀라 벌거숭이로
들가운데를 향해 냅다 뛰었을 때
바로 옆 밭에서 김 매다
갑자기 없어진 나를 찾아
어머니는 가름쟁이 온 들판을
호미 들고 헤매셨다면서요?
들판 가득 무지개 곱게 피어오르던
그 훈훈한 여름날 저녁
시집<사이 >(창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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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 찬연(燦然)하고 음울(陰鬱)했던 오욕칠정
최승호
흰 대머리바위들을 적시며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가더니
인왕산 위에
무지개 떴다
동물원 우리에서 보았던
앞뒤가 영 딴판인 공작새
부채 같은 꼬리 깃털들 떠오른다
굳이 새삼스럽게 말을 하자면
내 몸 안에도 무지개가 있는데
다름아닌 五慾七情이 나의 무지개
찬연할 때 있다
음울할 때 있다
* 최승호시집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열림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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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 핍진(乏盡)한 노부부의 굽어진 등 위로 피어난 언덕
최동은
노부부가 짐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간다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자 개미들이 밀어준다
지하철 공사장 옆
누군가 파놓은 구덩이에 한 바퀴가 빠졌다가
다시 굴러간다
울퉁불퉁한 길은 자기가 걸어온만큼 망가져 있다
얼마쯤 지났을까
소나기가 한줄금 쏟아진다
리어카를 초등학교 담 밑 등나무 아래 세우고
빗물 흘러내리는 얼굴을 서로 쳐다본다
허리를 반쯤 편 채
그 아래로 떨어진 등꽃들이 흘러간다
젖은 꽃잎이 발등을 타고 올라온다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오고
소나기도 지나갔다
노부부는 리어카를 끌고 다시 언덕을 오른다
저만큼 밀고 당기는 굽어진 등 위로 피어나는
저녁 무지개
** '시안' 2002년 겨울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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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그리고 무지개 -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은빛 칼날
설태수
스테인레스 은빛 칼날에
어느날 무지개가 서 있었다.
고추 파 마늘 김치, 두부와 고기를 썰고
사과와 배를 깎으며
때론 손비어 피흘릴 때도 있으나
이 온갖 먹거리가 닿는 곳에
물로도 지워지지 않고
해가 져도 없어지지 않는
무지개가 서 있었다.
먹거리가 목숨에게로 건너갈 땐
무지개를 타고 건너가는 건가.
썰리고 깎이는 소리를 벗삼아
아롱진 빛깔로 건너가는 건가.
또한, 일곱 색깔 그 사이사이엔
쓰리고 아린 꿈들도 녹아있겠지.
그들의 빛깔도 서려 있겠지.
목숨이란 이렇게
무지개를 건너가기도 하고
꿈도 지니게 되는 건가.
그대와 내 꿈을 이어주는 것도
이승과 저승을 잇는 다리도
어쩌면 무지개 빛깔일지 몰라.
적요 속에 떠오르는 무지개일지 몰라.
** 現代詩學 2001년 11월 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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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 일곱 빛깔의 꿈과 희망
김정화
소나기 멈추고
검은 구름 물러난 뒤
남겨진 가슴에 무수한 포물선을 그어대며
길을 다듬는 너는 누구냐
어린 날 투명한 눈을 들어 바라다보던
신비스러운 먼 하늘 끝에서부터 끝까지
다듬어진 길 위를
맨발로 달려가는 너는 누구냐.
네가 잃고 살아온
나 또한 잃어버리고 살아온
우리 모두 잃고 다시 찾기 위해 살아가는
세상 밖으로 멀어져간
일곱 빛깔 꿈이더냐
보이는 길은 가깝고 가보면 끝 모를
멈출 수 없는 둥근 바퀴를 굴리면서
찾아가는 희망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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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 외 사랑 그리고 서러운 눈물
임미연
그렇게도 많은 날들을
바라보면서 웃고 있었지만
그대는
손끝조차 닿지 않는 곳에 계셨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기다림의 나날은
온 가슴을
나 홀로의 사랑으로 채우게 했습니다
어느날
먹구름이 나 대신 울어주던 날
청아한 햇살 타고 내려온 그대 맞고
이내
서러워 울었습니다
眺覽盈月軒 (보름달을 멀리 바라보는 집)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