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자유의 종(自由鐘: Liberty Bell)전설
산업사회가 고도화되고 물질 만능의 시대가 도래하니 정부기관과 산업조직의 부패와 비리도 비래 하여 역사 이래 많은 정권이 뿌리 뽑고자 노력했지만 잊힐만하면 부패 비리 사건이 터지고 있다.
중국 고대 사회에서 이상 사회로 손꼽히는 요임금, 순임금의 시절에도 눈물겨울 정도로 부패와 비리를 바로잡기 위하여 ‘감간지고(敢諫之鼓)’라는 제도 등을 만들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도둑 한 명 열 사람이 못 당한다고 부패와 비리 근절은 못했단다.
우리나라 조선 태종 때인 1401년 7월 송(宋)의 제도를 따라 등문고(登聞鼓)를 설치한 후 8월 신문고(申聞鼓)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1월에 신문고를 통한 청원·상소·고발 등의 처리규정이 마련되었으나 세종 때 잠시 승문고(升聞鼓)로 이름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대궐 안 문루에 설치하고 순금사가 관리하다가 의금부 당직청으로 옮겼다. 소원할 때 서울은 주무 관사에 올리고 지방은 관찰사에게 올렸는데, 그 뒤 억울한 일이 있으면 사헌부에 고하고, 그래도 억울하면 신문고를 쳐서 왕에게 직소했다. 한때 폐지되었다가 성종 때인 1471년 다시 설치되었고, 또다시 폐지되었다가 영조 때인 1771년 복구되는 등 여러 차례 변화를 겪으면서 말기까지 이어졌다.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제도로 설치되었으나 이용이 엄격히 통제되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효율성이 없었단다.
서양의 ‘자유의 종(Liberty Bell)’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에 있는 종이다. 예전에는 펜실베이니아 주립청사(현재는 독립기념관으로 명칭 변경)의 첨탑에 있었으며, 이 벨은 런던에 있는 래스터 앤 팩(오늘날의 화이트 체펄 벨 폰드리)에게 1752년 주문 제작한 것으로“ 모든 땅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를 공표하라”(Proclaim LIBERTY throughout all the land unto all the inhabitants thereof)라는 문자가 새겨져 주조되었단다.
1776년 7월 8일 〈미국 독립선언〉 낭독을 표시하기 위해 종이 울렸으며, 1830년대 노예제도 폐지론자 학회에서 상징으로 채택되었고, 그들은 ‘자유의 종’(Liberty Bell)이라고 불렀단다.
이 종은 냉전기에는 ‘자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고, 1960년대에는 항의집회의 장소로 인기 있는 곳이었으며 1976년 오랫동안 있었던 인디펜던스 홀에서 근처의 인디펜던스 몰 내의 유리관 속으로 이전되었고, 그 후 2003년 근처의 더 큰 공간인 ‘자유의 종 센터’(Liberty Bell Center)로 옮겨져서 미국의 독립과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세계시민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종(鐘)이다.
그런데 세계 여러 나라에는 유사(類似) 자유의 종도 많고 또 자유의 종에 관한 얽힌 이야기도 종소리처럼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서양 어느 나라에서는 임금이 시민의 억울함, 고통, 원성 등을 들어보고 해결하는 방법으로 자유 종의 종각(鐘閣)을 세우고 종을 매달아 종 끈을 당겨 종을 치면 민원(民願)을 즉시 해결해 주었단다.
처음에는 시민들은 진정 억울함이나 소송 거리 등이 대부분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웃 간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모함의 내용으로 바꾸어 가는 경향이 보여 국가에서는 아예 종을 치지 못하도록 병사를 배치하여 절대 종각 출입을 금지시켰단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고 이 나라에는 공교롭게 가뭄이 지속되어 기근(饑饉)과 질병의 창궐(猖獗) 속에서 가렴주구(苛斂誅求)로 생활이 어려워도 감히 누구 하나 자유의 종을 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무더운 여름날 오후에 몇 년 동안 잠자던 자유의 종이 한낮 뙤약볕을 찢어 놓을 듯 ‘자유의 종’이 광야에 댕~댕~댕~......... 울려 퍼져 많은 시민들은 불편한 몸을 추스르고 종각으로 몰려들었고 임금도 금지된 종을 누가 쳤을까 하며 신하들을 대동하고 황급히 종각으로 달려왔다. 그때까지도 종소리는 그치지 않고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임금과 시민들이 종각을 에워싸고 종각 속을 들여다보니 그때까지 종을 치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비루먹고 뼈만 앙상한 말(馬)한 마리가 포도 넝쿨로 꼬아 엮어 만든 종 줄을 연신 물어뜯으니 쉽게 끊어지지 않아서 종소리는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고을은 몇 년 동안 가뭄과 질병으로 시민들의 생활이 어렵게 되자 집에서 기르던 말도 내쫓으니 이 말은 며칠 동안 먹지도 못하고 더위에 지쳐서 종각의 시원한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말 눈에는 포도 덩굴로 매달아 놓은 종 줄을 보고 한 줌의 요깃거리라도 채워보자고 계속 물어뜯어 흔드니 포도 넝쿨 종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고 종소리만 계속 울려 퍼졌던 것이다.
이때 임금은 비루먹은 말을 보고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 저 정도로 죽을 지경인데 하물며 시민들은 삶이 얼마나 어려울까를 판단하고 자유의 종에 의해서 선정을 베풀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민주정치에는 민의에 가장 충실하다는 직접 민주정치가 있고 현대국가의 광역성, 복잡성 등 때문에 유일한 간접 민주정치가 실시되고 있으며 두 정치제도를 절충한 혼합 민주정치가 많은 국가에서 실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직접 민주정치제도로 국민(주민)투표제, 지방 자치제 그리고 주민발안 제도 등이 있다.
현재 청와대 홈페이지(home page)에서 설치 운영되고 있는 ‘국민청원 및 제안'도 직접 민주정치의 한 형태로 그 옛날 신문고와 자유의 종과 엇비슷한 느낌이 든다.
청와대는 지난 8월 국민청원 게시판을 개설하면서 한 달 동안 2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참여한 청원에 대해서는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급 관계자가 공식 답변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요건으로는 욕설 및 비속어를 사용한 청원,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담은 청원,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을 담은 청원, 허위 사실이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포함된 청원 등은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국민적 이슈([issue)가 되는 사건들을 청와대 홈페이지를 두들겨 마비될 정도의 국민들의 참여가 대단하다.
최근 청와대는'꼭 (30일 이내에) 20만 명 이상이 동의하면 답한다'는 기준을 갖고 하지 말고 그 정도로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갖고 청원하면 답하라는 취지로 융통성을 부여했단다.
제발 신문고의 결말과 자유종의 우스꽝스러운 용두사미 (龍頭蛇尾)는 절대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