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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석대 남릉, 왼쪽은 차일봉
산은 정말 이상하다. 무릎이 녹아날 만큼 많이 걷고 내려와도 돌아서면 또 가고 싶으니 말이
다. (…) 어느 때는 진흙이 등산화에 묻어오고 어느 때는 낙엽이 배낭에 붙어 오고 어느 때는
산행하다 캔 더덕이 등산복 주머니에 넣어져 서울까지 따라왔다. 바로 전 산행에서 찍은 사
진과 일기장을 정리하는 동시에 다음 구간 지도를 보면서 앞으로 갈 일을 상상하며 즐거워
했다.
――― 한비야, 『1그램의 용기』에서
▶ 산행일시 : 2016년 1월 23일(토), 오후에는 맑음, 엄청 추운 날
▶ 산행코스 : 화엄사 원점회귀 산행, 화엄사 주차장에서 노고단 남릉 타고 형제봉, 매막등
넘어 노고단 올랐다가 코재 지나 종석대 남릉 타고 차일봉, 원사봉 전위봉 넘
어 화엄사로 내려옴
▶ 산행인원 : 12명(모닥불, 스틸영, 악수, 대간거사, 소백, 상고대, 사계, 두루, 신가이버,
대포, 모두, 메아리)
▶ 산행시간 : 10시간 50분
▶ 산행거리 : 도상 15.6km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2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3 : 53 ~ 04 : 25 - 화엄사 주차장, 차내 계속 취침, 산행준비
05 : 00 - 산행시작
06 : 56 - 형제봉(908m)
08 : 08 - 918m봉
09 : 24 - 1,097m봉
10 : 15 - 매막등(1,202m)
11 : 37 - 지리주릉, 노고단(1,502.2m) 아래 KBS 송신소
11 : 50 ~ 12 : 35 - 노고단대피소, 점심
12 : 50 - 코재(무넹기)
13 : 06 - 종석대(鍾石臺, 1,356m) 아래
14 : 20 - 차일봉(遮日峰, 1,006m)
15 : 10 - 원사봉 전위봉(673m)
15 : 50 - 화엄사, 화엄사 주차장, 산행종료
16 : 10 ~ 18 : 45 - (구례, 남원) 사우나, 저녁
23 : 50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노고단 가는 길, 앞은 소백님
2. 코재에서, 왼쪽부터 상고대, 대간거사, 모두, 신가이버, 모닥불, 대포, 메아리(앞), 스틸영,
사계, 소백, 두루
▶ 형제봉(908m)
화엄사 너른 주차장. 새벽 03시 53분 도착. 차내 계속 취침. 04시 25분 기상. 차문 열고 밖에
나서자 찬바람이 콧날 시큰하게 맞이한다. 우러르는 하늘에는 흐린지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다. 화엄사 이 너른 주차장에 승용차 한 대와 우리 버스뿐이다. 오늘은 우리가 지리산을 독차
지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산행시작부터 흐뭇하다.
주차장에서 곧바로 콘크리트 포장한 대로(나중에 알고 보니 금정암, 보적암 가는 길이었다)
따라 올라간다. 대로 한가운데로 씩씩하게 횡대 지어 가다 빙판에 넉장거리할 뻔하고 나서
조신하게 갓길로 간다. 대로는 천천히 오른쪽 산허리를 돌아가기에 우리는 당연히 대로 벗어
나 시누대밭 옆의 가파른 수로를 거슬러 오른다.
박석 깔린 수로 위는 잡목 숲이다. 나뭇가지는 꼭 눈 주위를 가격한다. 그것도 왼쪽 눈을 연
타로. 고개 숙여 기다시피 한 피치 올라 방금 전에 헤어진 대로와 만나고 조금 더 간 산모롱
이에서 얕은 골짜기를 오른다. 내쉬는 입김이 눈앞을 흐리게 가려 헛발질이 잦다. 너덜지대
를 잠깐 오른다. 눈이 살짝 덮여 있어 더듬거려 지난다.
넙데데하던 설사면은 능선으로 이어지고, 능선에는 칼바람이 춤을 춘다. 나뭇가지 끝 훑는
소리부터 차디차다. 오늘도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 2004, 미국)’적 강추
위라고 하여 전에 없이 중무장한 차림이라 걷기에 여간 비둔하지 않다. 등줄기에는 땀이 배
는데 발은 시려 동동 걸음한다. 서산에 지는 열나흘 둥근 달은 추워 잠을 못 잤는지 붉게 충
혈 되었다.
전망 좋은 바위에 들려 내려다보는 구례가 야경으로는 상당한 대처다. 그 틈 노린 칼바람 위
협에 얼른 숲 속으로 피한다. 이런 날 선두로 내빼다가는 (후미 오기 기다리는) ‘대인난(待人
難)’적 곤욕을 치르기 마련이라 뭉쳐간다. 가쁜 숨 좀 돌리려는 휴식이 어정쩡하다. 배낭 멘
채 잠시 서성일 뿐이다. 배낭을 벗으면 더 춥다.
지능선 모아 등로가 더욱 탄탄해진다. 보잘 것 없던 눈이 능선에는 더러 발목 덮는다. 스패츠
맨 터라 함부로 간다. 바윗길이 나온다. 외길이다. 더 오를 데 없다 하여 형제봉 정상인 줄 안
다. 정상 암반은 전망 좋은 경점이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 흐릿한 왕시루봉, 문바우등, 노고
단, 종석대, 차일봉, 원사봉을 육안에 담는다. 왕시루봉이 우리를 지켜보는 공터에서 휴식 겸
해 아침 요기한다. 대포 님이 지난주에 이어 준비해 온 쌍화차가 이구동성으로 특미다.
3. 922m봉 넘은 야트막한 안부에서, 휴식 마치고
4. 지나온 능선, 왼쪽이 형제봉
5. 왼쪽이 왕시루봉(1,204m)
6. 멀리 가운데가 왕시루봉
7. 종석대(1,356m)
8. 노고단(1,502.2m), 앞 봉우리는 1,132m봉인데 오른쪽 능선이 노고단으로 이어질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로는 골로 간다. 왼쪽 도드라진 봉우리가 매막등(1,202m)이다
9. 차일봉
10. 종석대
11. 종석대
12. 종석대
13. 종석대
▶ 지리주릉, 노고단(1,502.2m) 아래 통신 중계시설
헤드램프 소등하고 눈빛(雪光)으로 간다. 등로는 선답의 산행 표지기들이 안내한다. 바위 나
오면 기어이 기어올라 발돋움하고 장쾌무비한 노고단 남릉 우러른다. 873m봉 넘고 뚝 떨어
져 바닥 친 안부는 밤재다. 오를 때는 길게, 내릴 때는 짧게 반복하며 고도 높인다. 해는 왕시
루봉 왼쪽 어깨 너머에서 솟는다. 솟자마자 눈부시다. 이제는 한기도 한결 누그러지리라.
준봉인 918m봉도 경점이다. 종석대에서 차일봉에 이르는 능선이 미끈하다. 저 능선을 줄달
음하다 보면 아래 시조에서처럼 차일봉이 발끝에 채여 왜깍대깍할 것 같다.
대붕을 손으로 잡아 번갯불에 구워먹고
곤륜산 옆에 끼고 북해를 건너뛰니
태산이 발끝에 채여 왜깍대깍 하더라
―― 작자 미상(조선시대)
어쩌면 동 시대 일인지도 모르겠다.
명 태조 주원장이 지었다는 다음 시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하늘은 나의 장막이고, 땅은 나의 양탄자이며 天為羅帳地為氈
일월성신이 나와 함께 잠을 잔다 日月星辰伴我眠
밤이 깊어 꿈속에서 나는 감히 발을 뻗을 수 없으니 夜來不敢長伸足
산하를 발로 밟을까 두렵다네 恐把山河一脚穿
주원장이 어린 시절 황각사의 탁발승으로 있었는데, 어느 날 밤에 돌아오다 시간이 늦어 절
의 문이 이미 닫혀 있어 어쩔 수 없이 문밖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그가 땅바닥에 누워서 하
늘에 가득 찬 별들을 바라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이 시 한 수를 읊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
지 전해 내려오는 주원장의 ‘황제 조서’로 추측해보면, 그 정도의 지식수준으로는 이와 같은
시를 결코 지을 수 없다고 하여 날조라는 의심이 든다고 한다.
922m봉 내린 야트막한 안부에서 휴식하여 겨울산행의 별미인 어묵 끓인다. 이때 사계 님이
복분자를 내놓으며 몸에 좋다고 여러 사람과 분음하였는데 정작 본인이 탈이 났다. 이후 어
려운 산행을 하다가 차일봉 넘고 상고대 님으로부터 탈출할 것을 종용 받았으나 분연히 떨치
고 완주하는 투혼을 보였다. 아무래도 복분자보다는 지난주에 중국 차마고도(4,620m)를 다
녀와 저소(低所)에 부적응한 탓이 아니겠느냐는 하는 설이 우세했다.
산죽 숲을 자주 지난다. 긴 오르막의 끝인 1,097m봉은 암봉으로 전후좌우 빼어난 경점이다.
박무로 원경은 가렸지만 지리주릉 노고단을 향하는 능선들의 경주는 장관이다. 암릉이 나온
다. 날등 눈 쓸어 살금살금 기어가다 왼쪽 사면으로 길게 트래버스 하여 넘는다. 개화병에 걸
려 떼로 죽은 산죽 숲을 지난다. 매막등 오르면서부터 눈이 깊다.
능선은 산죽 숲 커니스다. 한 사람 발자국으로 여러 사람이 간다. 겨우 이만큼 겨울산행 맛
난다. 암봉 넘어 노고단 바로 아래 통신 중계탑이 가깝고 칼바람이 세차게 부는 설원이다. 생
눈물이 찔끔 나더니 금세 눈꺼풀이 얼어 끈적끈적 달라붙는다. 눈 뜨기가 힘들다. 노고단 정
상까지 100m쯤 될까? 웬만하면 나 혼자만이라도 가보겠는데 강풍 뚫기가 버겁다. 그냥 노고
단대피소를 향한다.
노고단대피소는 드나드는 등산객들로 북새통이다. 버너 불 피워 취사하느니 라면 일색이다.
우리도 용케 한 자리 차지하여 라면 끓인다.
14. 종석대 남릉과 차일봉
15. 종석대 남릉과 차일봉
16. 노고단 가는 길, 앞은 사계 님
17. 노고단
18. 노고단
19. 오른쪽이 우리가 올라온 능선
20. 우리가 올라온 능선
21. 종석대
22. 노고산대피소 가는 길
23. 노고산대피소
24. 코재, 종석대 가는 길
▶ 종석대(鍾石臺, 1,356m), 차일봉(遮日峰, 1,006m)
코재 가는 길. 다져진 눈밭 대로다. 걸음걸음 눈밭에 박히는 아이젠 발톱 소리가 경쾌하다.
화엄사계곡으로 내리는 코재 지나 종석대를 향한다. 우리들뿐이다. 그래도 말소리 발소리 숨
소리 죽이고 금줄을 넘는다. 길 좋다. 며칠 전 선답의 발자국이 분명하다. 동축케이블과 함께
간다. 노고단대피소 관리공단직원이 지켜볼지도 몰라 잰걸음 하여(그러는 게 예의일 것) 산
등성이 넘는다.
등로는 종석대를 직등하지 않고 왼쪽 사면을 돌아 넘는다. 우리는 종석대 잠시 우러르고 얌
전히 둥로 따른다. 차일봉 가는 길은 부드러운 능선 길이다. 산죽 성긴 펑퍼짐한 사면에서
‘더덕불고 필유린’을 확인했지만 그뿐, 눈 헤친 땅은 꽁꽁 얼었다. 왜깍대깍 넘을 것 같던 차
일봉이 준봉이다. 두 차례나 암릉 비켜 사면을 돌아 오르고도 갈지자 한참 그린다.
차일봉 정상. 노송 몇 그루가 지키고 있다. 산 모양이 차일(遮日)을 쳐 놓은 것 같다고 한다.
조망 좋다. 노고단 남릉과 종석대 남릉이 요연하게 보인다. 차일봉 내리는 길은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905m봉에서 멈칫하고 다시 쏟아져 내린다. 능선의 칼바람은 여전히 기세등등하
다. ┫자 갈림길인 안부는 법성봉재다. 그렇다면 앞의 768m봉은 법성봉이 아닐까?
등로는 768m봉을 오르지 않고 안부 그 고도에서 왼쪽 사면을 길게 돌아간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다. 소나무 숲길은 화엄사 절집에 내려설 때까지 이어진다. 봉봉을 직등하지 않고 사
면으로만 돌아 넘나보니 왠지 손해가 막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능선 눈길이 조용한 것으로
보아 아무도 가지 않았다는 확증이 다소나마 위안이다.
원사봉(院紗峰) 전위봉인 673m봉은 ┫자 갈림길이 나 있다. 왼쪽이 화엄사 절집으로 내린
다. 우리는 원사봉을 일별하고 왼쪽으로 간다. 솔잎 낙엽이 푹신하여 걷기에 아주 좋다만 급
박하게 떨어진다. 이리로 오르려면 된 고역께나 치르겠다며 연신 소나무 휘청하게 붙잡아 제
동한다. 화엄사 적멸보궁 공사장 지나고 동백나무 숲길 내리면 각황전 앞이다.
오지산행에 이런 때가 다 있구나 싶게 절집 구경한다. 각황전, 석등, 대웅전, 동오층석탑, 서
오층석탑은 국보 또는 보물이라 하니 눈비비고 다시 본다. 절집 나서 다리 건너고 주차장이
다. 멀리 바라보는 노고단이 흰 구름 이고 있는 설산이다.
(부기) 오늘 영락없이 영화 ‘투모로우’를 빼닮을 뻔했다. 구례에 들려 사우나 하고, 남원으로
이동하는 중 가루눈이 뿌리더니 남원에서 그 지역 특산물로 저녁을 먹고 귀경하는데 논산천
안고속도로 정안에서부터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기까지는 눈이 쌓이고 얼어 거대한 주차장
이었다. 차들은 꼬리를 물고 엉금엉금 기고 갓길에는 방향 잃은 차들이 수두룩했다. 우리 차
가 자정 전에 동서울에 도착한 것은 순전히 두메 님의 노련한 운전 솜씨 덕분이었다.
25. 종석대
26. 노고단
27. 노고단 북서릉
28. 종석대
29. 노고단
30. 노고단
31. 종석대
32. 섬진강
33. 차일봉 내리는 길에서 남쪽 조망
34. 남원 가는 길에서 차창 밖으로 본 종석대와 노고단(오른쪽)
35. 남원 가는 길에서 차창 밖으로 본 종석대와 노고단(오른쪽)
첫댓글 산행기를 본으로
당장 다시 가고 싶습니다 ~~
으 ^^^ 이 마음을 어찌 할까요 ~~
산행기로 다시한번 다녀온 기분..룰루랄라
역시 사진기 위력을..어쨋든 감사드리며
함께한 산행을..더욱 기쁨을 줍니다.
앞으로 사진 찍을 때는 가능하면 남에게 부탁하고 형도 함께 모두 모여 찍는 게 어떨까요. ㅋㅋ 형은 거의 없잖아요.
대붕을 손으로 잡아 번갯불에 구워먹고~
옛사람 호연지기가 장쾌합니다.
정말 또 가고 싶게 만드는 사진들의
파노라마네요.
감사합니다.
기가막힙니다..차안에서 찍은 사진도 잘 포착이 되었네요..역시 형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