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읽는 강론
평화, 정말 우리 삶에 꼭 필요할까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한 '평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평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단순히 싸움이 없는 상태일까요?
평화, 대체 뭘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는 뭘까요? 보통 조용하고 싸움이 없는 상태를 떠올리죠. 그런데 평화의 한자 뜻을 보면 좀 더 깊은 의미가 숨어 있어요. 평평할 평(平)자에 서로 화합할 화(和)자를 쓰거든요 . 특히 화(和)자는 쌀 미(米)자와 입 구(口)자로 이루어져 있대요 .
이게 무슨 뜻일까요? 바로 사람들이 먹을 것을 균등하고 평평하게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먹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해요 .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죠? 만약 삶에 위기나 폭력, 갈등이 있다면 밥상에서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 없을 거예요 . 집에서 마음 편하게 밥을 차려 먹는 일도 당연히 어렵겠죠 .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그만큼 서로에게 마음이 열려 있고 편안하다는 뜻이랍니다.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평화'를 빌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제자 72명을 둘씩 짝지어 보내시면서 중요한 말씀을 하셨어요 . 어떤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라고 하셨죠 . 왜 하필 평화였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신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우리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 즉 모든 굴레와 죄의 흔적, 삶의 갈등과 고통, 분열 같은 현실에서 해방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에요 .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서로 평화와 위로를 얻도록 말이죠 . 평화는 단지 싸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삶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상태를 의미하는 거랍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평화를 얼마나 갈망하고 있을까요? 걱정 없는 집안도, 세상도 없기에 평화는 더욱 간절해졌죠 .
낯선 곳으로 갈 때, 왜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했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아주 독특한 지침을 주셨어요 . "너희는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고 하셨죠 . 여행 갈 때 꼭 필요한 것들을 다 내려놓으라는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바로 진정 나를 지키기 위한 순례가 아니라 그 누군가를 위한 순례가 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어요 . 제자들이 가는 목적지는 늘 낯선 집과 낯선 가정이었고, 그곳에 먼저 평화를 빌어주는 일이었죠 .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전해주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세상적인 것을 내려놓으라고 하신 거예요.
거절당해도 괜찮아요!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세요?
하지만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모두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었어요 . 어떤 집에서는 평화를 갈망할 수 없을 만큼 상처받고 갈등을 겪고 있는 곳도 있었죠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말라고 하셨어요 . 우리가 누군가에게 좋은 마음으로 다가갔는데 거절당하면 속상하잖아요 . "네가 나를 반대해? 너도 한번 당해봐라" 같은 마음이 들 수도 있죠 .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마음을 갖지 말라고 가르치셨어요 . 만일 거절당하거나 반대받으면, 마치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듯이 그 평화가 다시 너희에게 되돌아오게 하라고 말씀하셨답니다 . 즉, 상대방의 반응에 흔들리지 말고, 내가 전하려던 평화로운 마음은 고스란히 나에게 남겨두라는 뜻이에요.
진짜 기쁨은 어디에서 올까요?
제자들은 마귀들까지 자신들에게 복종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어요 .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기쁨이 있다고 말씀하셨죠 . "너희는 그것에 대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라고 하셨답니다 .
세상적인 성공이나 능력을 자랑하는 것보다, 내가 하느님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에 기쁨을 누리는 것이 진짜라는 거예요 . 우리가 하는 봉사나 희생, 선교가 하느님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음의 힘이라고 말씀하셨죠 .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이 더 크다는 의미예요.
왜 사람들은 성당에서 평화를 찾을까요?
현대 사회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어 한대요 . 천주교에 입교하는 예비 신자들과 이야기해보면 가장 큰 이유가 마음에 평화를 좀 얻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 이는 우리 사회가 평화를 얼마나 목말라 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죠 .
먹고 사는 문제,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위로받고 싶은 마음 . 성당의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위로받는다고 느끼는 것 . 이런 경험들이 예비 신자들에게 작은 마음의 평화를 준다고 해요 . 우리가 불안과 두려움, 상처와 슬픔으로부터 벗어나 평화와 위로를 얻는 것, 이것이 오늘 독서와 복음의 핵심 메시지랍니다 .
이사야 예언서 속 '평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이사야 예언서에는 예루살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 "예루살렘아, 너희는 진정 기뻐하고, 그리고 그를 두고 즐거워해라" . "내가 예루살렘의 평화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겠다" .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이 내가 예루살렘을 위로하고 너희는 위로를 받을 것이다" .
이 말씀은 어떤 배경에서 나왔을까요? 유대인들이 하느님을 떠나 우상에 빠지고 다른 민족에 흩어져 살다가, 결국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바빌론으로 유배를 가게 돼요 . 정말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이었죠 . 그때 페르시아 황제의 칙령으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성전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그들은 정체성을 잃고 낙담해 있었어요 . 이사야 예언자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실망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느님께서 용서하시고 다시 평화와 위로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실 거라고 전한 거예요 . 이 말씀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죠 .
바오로 사도는 왜 십자가만 자랑했을까요?
바오로 사도의 삶도 정말 놀라워요 . 그는 원래 잘나가는 바리사이였고 로마 시민권자였으며 사람들에게 내세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에게 바치죠 . 숱한 박해와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다고 고백했어요 .
세상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실패와 좌절의 상징이었지만 . 바오로 사도의 믿음의 눈에는 달랐어요. 그는 십자가가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진정 하느님 나라를 우리에게 선포하신 표징이라고 믿었죠 .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평화와 자비의 힘이었답니다 .
한국의 종교들은 어떻게 평화를 이야기할까요?
저는 얼마 전 한국의 7대 종단 지도자분들과 중앙아시아를 순례할 기회가 있었어요 . 낯선 문화를 만나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서로 다른 종교적 생각을 가진 분들이 함께 지내면서 누렸던 진짜 평화였죠 . 이건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한국만의 독특한 종교 문화라고 해요 .
천주교와 개신교는 같은 그리스도교로서 십자가 안에서 평화와 자유를 체험하고 그것을 나누는 도구가 된다는 믿음을 공유하죠 . 불교는 세상의 고통이 집착에서 온다고 보고 그것을 내려놓는 용기에서 평화를 찾는다고 믿어요 . 유교는 서로 존중하고 질서를 지키는 것이 평화의 기본이라고 가르치죠 . 원불교는 물질 개벽에 맞춰 정신도 개벽해야 참된 평화를 얻는다고 하고 . 천도교 같은 민족 종교는 사람의 소중함을 강조하며 서로 이해하고 일치하려는 이상을 지킨답니다 . 이렇게 서로 다른 교리를 가졌지만, 한국의 종교인들은 교리 논쟁 대신 삶의 이야기를 나눈대요 . 그래서 종교를 넘나드는 것이 더 자유로운 것 같다고 느꼈어요 .
나의 평화만 중요할까요, 이웃의 평화도 중요할까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누리고자 하는 평화와 행복은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제자의 삶에 있어요 . 예수님은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어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처럼 우리를 부르셨죠 . 우리는 단순히 내 안에 있는 상처와 아픔만 치유받기 위해 부름받은 것이 아니에요 .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평화와 위로를 얻은 사람으로서, 이제 가서 우리의 가족과 상처받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와 위로를 선포하도록 부름받았답니다 . 즉, 나의 평화와 행복에 만족하는 것을 넘어, 나와 함께 사는 이웃의 평화를 일구어주는 도구로 파견되었다는 거예요 .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해요 . 나는 나 자신만의 평화에 만족하는가, 아니면 가족과 이웃, 사회, 나아가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기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미사 안에 평화의 답이 있다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사회와 인류가 분열과 폭력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답이 바로 미사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 미사 때 우리가 제단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밥상 공동체에 모인 것이에요 .
이곳은 예수님의 밥상이죠 .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를 제자들에게 나눠주시면서 말씀하셨어요 . "너희는 먹고 마셔라, 그리고 가거라. 내가 너희에게 내 살과 피를 주었듯이 너희도 주어라." 이것이 우리가 미사에 참여하는 이유랍니다 . 그리스도의 평화가 너희 마음을 다스리게 하여라 . 이 말씀을 기억하며, 미사 안에서 우리는 평화를 배우고 나누는 방법을 깨닫게 된답니다.
아멘.
송용민 사도요한 신부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