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에 기대다
이청미
새들보다 먼저 일어난 새벽이다
아침 해를 기다리는 서쪽 달빛이 아직은 밝은데
찬바람 마주하며 기다리는 바다를 향해 쌩쌩 달려본다
어제 저녁 티브이로 푸른바다거북이 산란을 봤다
소금기 절인 눈물을 주루룩 흘리며 150여 개의 알을 낳는
산통의 신음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밤에만 알을 낳는다는 어미 거북이들
바위틈에서 어둠오기를 기다리다 밤이 되면
모래밭으로 향한다
육십 센티를 파헤쳐 알을 낳고 모래를 덮고
또 낳고 덮는 어미의 모정,
드디어 모래밭에서 아기거북이들 아장아장 기어 나온다
생존의 바다 소리를 알까
먼동이 트는 곳을 알까
모성의 기억에 기댄 아기거북이들이 바다를 향해 달린다
----애지 겨울호에서
우리 인간들은 아버지에게서는 이성과 의지를 배우고, 어머니에게서는 감성과 인내를 배운다. 아버지는 그의 이성으로 모든 사건과 현상들을 탐구하고, 어머니는 그의 감성으로 모든 사건과 현상들을 받아들인다. 아버지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며 그 주인이 되려고 하고, 어머니는 그 어떤 고통이나 슬픔마저도 다 받아들이며 어머니의 길을 가려고 한다.
우리 인간들은 포유동물이고, 따라서 어머니는 모든 존재의 기원이자 그 삶의 터전이라고 할 수가 있다.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부성애가 없는데, 왜냐하면 아버지는 씨를 뿌리고 떠나가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혼자서 아이를 낳고 젖을 먹여 기르고, 그 아이가 스스로 먹이사냥을 하고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모든 열과 성을 다하여 그 아이를 가르치게 된다. 하지만,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부성애가 지극히 강하여 아버지가 외부의 적을 물리치고 자기 자신의 가정을 위하여 경제활동을 하게 되고, 어머니는 아이를 낳고 기르며, 가정의 살림을 맡아하게 된다.
이청미 시인의 [모성에 기대다]는 모든 존재는 어머니에 의해 태어나고, 어머니의 바다에서 살다가 어머니의 강(대지)으로 되돌아와 죽는다는 ‘삶의 철학’을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것은 종족의 명령이지만, 그러나 이 종족의 명령은 너무나도 감쪽같이 개인주의의 탈을 쓰고 수행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을 모두들 다같이 개인의 행복으로 생각하지, 종족의 명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종족의 수호신이자 종족의 명령의 가장 충실한 수행자라고 할 수가 있다. 푸른바다거북이의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처절한 산란과정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준다. 푸른바다거북이의 산란과정은 모천으로 되돌아와 산란을 하고 죽는 연어의 모습과도 같지만, 그러나 푸른바다거북이는 연어와는 수명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산란과정을 몇 번이고 되풀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금기 절인 눈물을 주루룩 흘리며 150여 개의 알을 낳는” 푸른바다거북이, 이푸른바다거북이들은 어둠이 오기를 기다려 밤에만 알을 낳는데, 그것은 수많은 천적들로부터 그의 자손들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위틈에서 어둠오기를 기다리다 밤이 되면/ 모래밭으로 향한다.” “육십 센티를 파헤쳐” 150여 개의 알을 모래로 덮고, 그리고, 그가 왔던 바다로 되돌아간다. 푸른바다거북이의 산란과정은 천형의 형벌과도 같지만, 이 천형의 형벌과도 같은 고통이 있기 때문에, “모래밭에서 아기거북이들 아장아장 기어” 나와 바다를 향해 가게 된다. 고통은 기쁨으로 승화되고, 천형의 형벌은 어머니의 영광으로 더욱더 아름답게 승화된다.
모성은 탯줄이고 젖줄이며, 모성은 건강이고 부귀영화이며, 그 모든 것의 원천이다. 모성에 기대는 시간이 가장 거룩하고 순수해지는 시간이며, 어느 누구도 모성에 기대지 않고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다. 어제 저녁 티브이를 통해 푸른바다거북이의 산란과정을 지켜본 후, 새들보다도 먼저 일어난 새벽에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이청미 시인의 [모성에 기대다]는 진정으로 고귀하고 거룩한 ‘어머니의 시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어머니의 말씀으로 아침해가 떠오르고, 어머니의 말씀으로 푸른 바다의 물결이 밀려온다. 어머니의 말씀으로 푸른바다거북이가 푸른 바다로 되돌아가고, 어머니의 천형의 형벌을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삶으로 승화시키며, 이청미 시인이 그 역사를 이어나간다.
모든 어머니는 성모이고, 전인류의 행복을 주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