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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4월 28일 고 이건희 회장 유산의 상속세 납부 계획과 의료사업 지원 및 미술품 기증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언론은 12조 규모의 상속세에 주목하는 등 많은 보도를 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4월 28일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 4사 저녁종합뉴스, 4월 29일 6개 종합 일간지와 2개 경제 일간지의 고 이건희 회장 유산 상속 관련 보도를 확인해 문제 보도를 추렸습니다.
이건희 유산 상속, 신문·방송 일제히 ‘톱기사’
삼성 측이 유산 상속 계획을 발표한 후 8개 신문과 7개 방송 저녁종합뉴스 모두 관련 보도를 냈습니다. 발표 당일 KBS·MBC·JTBC·채널A·MBN은 톱기사로 소식을 전했고, 하루 뒤 8개 신문 모두 1면에 머리기사로 실었습니다. 신문마다 7~9건의 기사를 실은 가운데 매일경제가 11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향신문이 5건으로 가장 적었습니다. 방송 저녁종합뉴스에서는 KBS가 2건으로 가장 적었고, 나머지 방송은 3~4건씩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고 이건희 회장 유산 상속을 더 적극적으로 보도한 매체는 신문이었는데요. 8개 신문 모두 한 면 이상 할애해 소식을 다뤘습니다. 하지만 신문별 제목은 큰 시각 차이를 보였습니다.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는 “기부 역사 새로 쓴 삼성”, “삼성가 통큰 사회 환원”, “이건희의 ‘마지막 선물’” 등 우호적 제목을 붙였습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는 상속세 납부와 기부를 합쳐 “사회 환원”이란 긍정적인 표현을 썼습니다. 한겨레, 한국일보는 “이건희 유산 상속”이란 사실을 중심으로 제목을 뽑았고, 경향신문은 좀 더 구체적으로 “삼성가, 상속세·기부 발표”로 표현했습니다.
과도한 띄우기, “마지막 선물” “기부 역사 새로 써”
가장 눈에 띄는 문제보도 유형은 상속세 납부와 일부 기부를 과도하게 띄워주는 경우입니다. 한국경제 [이건희의 마지막 선물…유산 60% 국민 품에] (4월 29일 송형석 기자)는 상속세 납부와 기부를 합쳐 “이건희의 마지막 선물”로 표현했습니다. 한국경제는 “26조원의 유산 중 60%를 세금과 기부 등을 통해 사회에 되돌려주기로 했다”며 “전례를 찾기 힘든 규모의 사회 환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중앙일보 [이건희의 선물, 기부 역사 새로 쓰다] (4월 29일 최현주·문희철·권유진 기자)는 1면 머리기사 제목에서 의료사업 지원과 미술품 기증을 “이건희의 선물”로 표현했습니다. 중앙일보는 “기부 역사 새로 쓴 삼성”으로 제목을 단 3~5면에서 [삼성 일가 상속세 잡스의 3배…국내 3년 징수액보다 많아], [기부 작품 한 달에 100점씩만 전시해도 20년 걸릴 규모] 등을 실었습니다. 고 이건희 회장 유산에 대한 상속세 규모가 높다는 점을 부각하고, 기부 미술품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기사입니다.
비율·규모 부각, “재산 60% 사회 환원”
‘선물’처럼 노골적으로 긍정적 표현을 사용한 보도와 더불어 “유산 60% 환원” 표현도 다수 등장했습니다. 매일경제 [이건희 재산 60% 국민에게…의료·예술 통큰 기부] (4월 29일 전지현·이종혁·노현 기자)가 대표적입니다. 매일경제는 “삼성 총수 일가는 세금과 문화·의료공헌을 합쳐 15조원 중반대에 이르는 재산”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고인의 추정 재산 26조1000억원 중 60%에 달한다”며 비율을 한 번 더 강조했습니다.
동아일보 [이건희 26조 유산의 60% 내놓는다] (4월 29일 김현수·손효림·김상운·김태언 기자), 조선일보 [이건희 유산 26조원… 60%를 사회환원] (4월 29일 이성훈·신은진·허윤희·정상혁 기자), 한국일보 [이건희 재산 60% 국가·사회에 돌려준다] (4월 29일 채지선 기자), MBN [유산 60% 사회환원] (4월 28일 길기범 기자)도 ‘60% 환원’을 부각한 보도입니다.
동아일보 [삼성가, 감염병-소아암 치료에도 1조 기부…“사회공헌 뜻 이을 것”] (4월 29일 김현수·서동일 기자)는 ‘60% 사회 환원’의 뜻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재계에서는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도 이 회장의 ‘사회 환원’으로 해석된다”며 “세금도 결국 국민을 위해 쓰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26조 원 유산의 60%에 해당하는 15조~16조 원이 사실상 사회에 환원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60%’, ‘26조 중 15~16조’ 등 비율과 납부 규모를 부각한 이런 보도는 삼성이 마치 재산 대부분을 자발적으로 내놓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합니다.
팩트체크: 상속세 제외하면 11%~15% 기부
일부 언론이 삼성의 유산 상속에 대해 ‘마지막 선물’, ‘60% 사회환원’ 등으로 과도하게 띄워주거나 미화한 보도의 진짜 문제점은 사실이 틀리다는 것입니다. 고 이건희 회장 유가족은 상속세 12조 원을 5년간 분할 납부하고, 1조원을 감염병 대응을 위한 전문병원 건립, 희귀질환 어린이 지원에 내놓고, 미술품 2만여 점을 기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2조 원의 세금을 내고, 의료산업 지원금 1조 원과 수조 원으로 평가되는 미술품을 기증하겠다는 것입니다. 법에 따라 모든 국민이 납세해야 하는 상속세를 제외하면, 기부액은 3~4조원으로 재산의 11~15% 수준입니다.
납세는 헌법이 정한 국민의 의무입니다. 모든 국민은 법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합니다. 고 이건희 회장의 12조 상속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산 규모에 따른 세금 액수일 뿐입니다. 누구나 지켜야 할 납세의무를 두고 ‘마지막 선물’ 같은 표현이 적절할까요? “세금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라는 삼성 측 발표에도 언론 스스로 미화하거나 과대포장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전 재산의 60%를 환원한다’는 보도도 사실이 아닙니다. 앞서 설명한대로 상속세 납부를 제외하면 자발적 기부금은 전 재산의 11~15%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경향신문 [삼성가, 상속세 12조대 신고·‘이건희 컬렉션’ 기증] (4월 29일 조미덥 기자)은 “상속세를 국세청에 신고했다”면서 제목에도 ‘신고’란 표현을 썼는데, 세금 납부와 자발적 기부를 분명하게 구분한 객관적 보도입니다. 탈세, 편법증여가 여전한 한국에서 최고 규모의 상속세를 절차대로 내겠다는 삼성 발표는 분명 보도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속세 납부계획 발표만으로 대서특필하고, 정확하지 않은 보도로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보도는 재벌 편들기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의료 1조 및 미술품 기부
의료 분야 1조 원대 기부는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에서 비롯됐습니다. 삼성그룹 출신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로 시작된 당시 삼성 비자금 특검 수사는 4조 5천억 원 규모의 고 이건희 회장 차명재산을 찾아냈습니다. 불법 비자금이 드러나자 이건희 회장은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나며 실명 전환한 차명재산 가운데 벌금과 세금을 제외하고 남은 돈은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13년이 흘러 이 회장이 사망한 후에야 이행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된 것입니다.
의료분야 기부의 결정적 배경이 차명재산 보유 범죄였지만, 이를 제대로 짚어준 보도는 한겨레 [거액 기부 뒤엔 비자금 흑역사…이건희 사후에야 일부 환원] (4월 29일 김영배 기자) 외에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겨레는 “1조원 상당의 사재 출연은 13년 전 이 회장이 비자금 사건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한 약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서 “거액 기부라는 통 큰 결정의 밑바탕엔 대형 범죄와 지연된 약속 이행이라는 어두운 그늘도 드리우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미결 숙제”로 남아있던 약속이 “일부나마 이행된 것”이라고 평가하고, 상생을 강조한 이 회장 유지를 받들겠다는 삼성 측 입장에 대해 “비자금 사건에 뿌리를 둔 사회 환원 약속을 이행하는 차원이라는 일반적인 평가와는 거리가 있는 성격 규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KBS [사사건건/채이배 “삼성 1조원 환원? 2008년의 1조원은 현재 9조원 가치, 과연 약속 지키는 것이냐”] (4월 29일)도 이번 의료분야 기부의 배경과 적절성을 지적했는데요. 방송에 출연한 채이배 전 민생당 국회의원은 “당시 평가액이 1조 원인데 지금은 그 금액이 9조 원에 달한다”면서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킨 것이냐”고 따졌습니다. 지연된 약속 이행에 경제상황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반면 중앙일보 [감염병 병원·연구소 건립 7000억, 어린이 암·희귀질환 퇴치 3000억] (4월 29일 이에스더 기자)는 의료 분야 지원을 두고 “이 회장이 인류사회 공헌과 아동 복지에 각별한 관심”이 있었다면서 고인의 유지를 살려 “감염병과 소아질환 퇴치에 기부”했다는 유족의 의견을 부각해 전달했습니다.
객관적 정보 지우기: 미술품 기증 ‘차명재산’ 배경 외면
미술품 기부와 관련된 보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고 이건희 회장의 불법적인 차명재산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미술품이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찌감치 제기되었고,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에서도 사실로 드러났지만,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는 거의 없습니다.
삼성의 미술품 기증 배경엔 재벌가의 수상한 돈세탁 창구로 고가 미술품 구입이 의심되었고, 실제 차명재산 보유 과정에 악용된 현실이 있습니다. 한겨레 [“이건희 회장 부인, 삼성 비자금으로 미술품 사”] (2007년 11월 26일) 등에 따르면 당시 김용철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수천억 원 대의 불법 비자금이 삼성가의 미술품 구매로 사용됐다고 폭로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삼성특검, 이건희 회장 등 10명 불구속 기소] (2008년 4월 17일)에 따르면 삼성특검은 “비자금으로 구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미술품 구입 대금을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대부분 언론은 미술품 기부에서 ‘차명재산 불법활용’ 배경을 지우고, ‘유명작가 작품’, ‘국보급 수준’, ‘수조 원 규모’ 등에만 몰두했습니다. 심지어 “한국의 메디치가”라며 영예로운 타이틀을 수여하는 발언을 그대로 인용하는가 하면, 이건희 회장이 소유한 2만 3천여 점의 미술품을 ‘이건희 컬렉션’으로 표현하기에 바빴습니다.
한국경제 [모네·달리·겸재 명작 세기의 기증…초일류 ‘LEE 컬렉션’ 빛 본다] (4월 29일 성수영 기자), 조선일보 [모네·고갱·피카소부터 이중섭·김환기·박수근 명작까지…] (4월 29일 허윤희·정상혁 기자), SBS [국보·모네·샤갈 2만3천 점 기증…6월부터 전시] (4월 28일 이주상 기자), TV조선 [겸재부터 모네까지…‘미술품 10조’ 기증] (4월 28일 오현주 기자) 등은 유명 작가의 작품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중앙일보 [이건희 컬렉션엔 국보·보물 60점…이중섭·모네 대표작도] (4월 29일 이은주·김호정 기자), 매일경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400억원 “인왕제색도, 갑매기는 게 무의미”] (4월 29일 전지현 기자)는 기증품 중에 국보가 포함돼 있고, 작품 가치가 높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규모와 퀄리티에서 유례가 없는 세기의 기증”이라고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그나마 JTBC [모네·달리 등 ‘이건희 컬렉션’…2만3천점 기증, 왜?] (4월 28일 최하은 기자)가 미술품 기증의 원인을 짚으려 시도했습니다. JTBC는 “원만한 상속을 위해 피카소를 내놓았다”, “이번 기증으로 이 전 회장의 재산 중 과표가 줄어든다”고 보도한 외신을 소개한 뒤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신할 수 없고, 또 물려받을 경우 50%가 넘는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을 들여다 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국민들이 국가의 문화재를 볼 수 있으면서 본인들도 상속세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대안이었다”는 김대종 세종대 교수의 분석을 전했습니다.
삼성의 미술품 기부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국민의 몫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유족이 주장한 이건희 회장의 ‘인류사회 공헌’에 대한 마음뿐 아니라 사실로 드러난 불법 비자금 문제가 기부배경에 있는 점을 동시에 짚어야 형평성 있는 태도일 것입니다.
또 ‘이재용 사면론’: 매경·문화 상속세·기부와 사면론 엮기
고 이건희 회장의 유산 상속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을 언급하거나 요구하는 보도도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이 부회장이 지난 1월 18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된 직후부터 일부 언론을 시도 때도 없이 사면론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이번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상속세 납부액’을 띄우며 다시 한 번 사면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매일경제 [사설/이재용 풀어줘 경제헌신 기회 주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4월 29일)는 “이 회장 유산에 대한 정리계획은 그의 시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삼성의 첫발을 내딛는 이정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며 “이런 시기에 ‘뉴 삼성’을 진두진휘할 이 부회장이 자리에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자 “많은 국민이 이 부회장을 풀어줘 우리 경제에 헌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이런 주장은 삼성전자가 고 이건희 회장 유산 상속 계획을 발표한 당일부터 나왔습니다. 석간신문인 문화일보는 [사설/‘반도체 세계 1위 잃을 수 있다’는 재계의 일치된 우려] (4월 28일)에서 “고 이 회장의 최대 업적”인 “반도체 산업이 중대기로에 처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이 부여한 특별사면 권한의 취지를 심사숙고하고, 사면 문제를 결단하기 바란다”며 고 이 회장의 상속세 납부, 미술품 등 기증을 노골적으로 사면과 연결 지었습니다.
마땅히 내야 할 상속세 납부를 근거로 사면을 촉구하는 대목도 ‘억지 주장’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더구나 신문사 입장을 담은 사설을 통해 나왔다는 사실은 문화일보와 매일경제에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사회적 책무와 공적 역할마저 기대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이재용 부회장은 건강상 이유로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합병 재판 연기를 신청했고, 검찰과 재판부의 수용으로 연기됐습니다. 이번 재판 결과에 따라 허위자료로 기업 가치를 부풀려 합병을 진행한 중범죄가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출처 - https://slownews.kr/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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