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다른 나]
주말이면 경비행기 조종하는 원레이저
권태원(54) 사장
취재·정리=신동흔 기자/조선일보 : 2012.03.21.
"회사 운영 압박감, 하늘과 180도로 만나며 풀죠"
산업용 레이저社 세운 지 15년… 축구 부상으로 '안전 레저' 찾아 창공 한가운데 두둥실 뜬 느낌… 수칙만 지키면 사고 위험 적어 270시간 비행, 조종사 자격증도… 부품 만들며 취미가 사업 기회로
프로펠러 도는 소리와 귀가 먹먹할 정도의 엔진 굉음, 그리고 한순간 '붕' 하고 몸이 뜨는 느낌…. 몇 번 기우뚱하던 비행기는 가볍게 중력의 저항을 이겨내고 하늘로 올랐다. 2분쯤 날자 발아래 시화호가 보였다. 멀리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것이 바다인지 하늘인지 구분이 안 됐다. 높은 고층빌딩에 가려 보지 못했던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매주 주말이면 경기도 화성시 신외리비행장으로 달려가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는 것이 나의 요즘 일상이다.
나는 직원 12명의 레이저 가공 회사를 운영한다. 우리 회사는 레이저로 자동차나 반도체 장비 부품, 자동화 기기 등을 만든다. 나는 젊은 시절에는 7년 동안 중동의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34세에 한국에 들어와서 기계회사에 다녔다. 당시 회사가 일본 도시바에서 레이저 기계를 들여왔는데, 내가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알았던 터라 나한테 레이저 관련 업무가 맡겨졌다. 그러다가 39세 때인 1997년 안산 반월공단에 '원레이저'를 세워 독립했다.
나는 원래 축구를 무척 좋아해 30년 가까이 주말마다 공을 찼다. 하지만 축구는 꽤 과격한 운동이어서 부상 위험이 상당했다. 실제로 크게 다쳐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있다. '어떤 운동을 해야 하나…' 좀 더 안전하면서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레저스포츠를 찾다가 경비행기 조종과 인연을 맺게 됐다. 경비행기는 주말에 한 시간 정도 타고 나면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다. 나는 스트레스는 그때그때 풀어주는 편이다. 특히 채권 회수가 잘되지 않을 때나 좀 불확실한 어음을 받았을 때 스트레스가 심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부도 직전까지 갔던 기억은 항상 나를 긴장하게 한다. 그래서 짬짬이 시간을 내 경비행기를 몰면서 이런 스트레스를 날리고 있다.
권태원 원레이저 사장이 붉은색 CH-601 기종 경비행기에 앉아 비행을 준비하고 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권 사장(왼쪽)이 공장에서 직원과 함께 레이저 가공 장비를 점검하는 모습./권태원씨 제공
2007년 봄 경비행기 조수석에 앉아 처음 시화호 상공으로 올라갈 때는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하늘 위에서 만난 세상은 그때까지의 불안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첫 비행 한 시간 만에 나는 완전히 반해버렸다. 타 보니 안전수칙만 지키면 사고 위험도 거의 없을 것 같았다. 하늘에서 보는 광경이 대형 여객기를 타고 가면서 조그만 창으로 내려다보는 것과 비슷하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가 모는 경비행기 CH-601 기종은 전투기처럼 조종석에 '케노피'라는 투명 덮개가 씌어 있다. 그러니까 시야가 머리 위와 앞뒤옆으로 180도 열린 것이다. 그래서 그 안에 앉은 느낌은 말 그대로 하늘 한가운데 두둥실 떠 있는 것 같다. 가을에 단풍이 붉게 물든 산에 밀착해서 비행을 하다 보면 땅에서는 보지 못했던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에 벅찬 감동을 느끼게 된다.
조종사 자격증은 2009년에 땄다. 지금까지 비행시간은 270시간 정도이다. 보통 1주일 1회, 한 번에 한 시간 정도 항공기를 빌려서 비행한다. 가끔 '크로스컨트리'라고 해서 다른 지역으로 날아갈 때는 2시간~2시간 30분 정도 비행하는 날도 있다. 경비행기를 몰면 생각보다 많은 지역을 여행할 수 있다. 경북 안동이나 영덕, 충남 공주, 전남 나주 등 전국적으로 22곳의 경비행기 활주로가 있다.
지난해 경기도에서 열린 국제항공전에선 우리 회사가 KAI(한국항공우주산업) 및 공군조달본부와 함께 산업전시회에 참가했다. 국내의 경비행기 소유자들은 비행기가 고장 나면 부품을 전부 외국에서 가져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격이 무척 비싸다. 그래서 간단하고 안전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부품을 몇 차례 시험 삼아 만들어 납품했다. 우리 공장의 산업용 레이저는 직진도가 뛰어나서 절단에 자주 이용되는데, 이 장비를 이용하면 거의 모든 기계류의 부품을 만들 수 있다. 그게 알려졌던지 공군조달본부 관계자들이 우리 회사를 방문해 장비와 인력 시스템을 점검하고 돌아갔다. 어쩌면 경비행기 조종 취미가 사업 기회로 연결될지도 모르겠다. 원래 한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 3만달러로 가게 되면 요트나 경비행기 같은 레저 수요가 증가한다. 아직 우리나라에 있는 경비행기는 300~400대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숫자가 더 늘어났을 때 비행기 부품을 만들면 꽤 고부가가치 제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요즘은 취미 삼아 보는 항공 전문서적도 좀 더 꼼꼼히 읽고, 관련 전문잡지도 구독하고 있다.
젊어서 중동에서 일할 때 지중해나 홍해 연안으로 낚시를 간 적이 있다. 당시 보았던 요트나 경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의 삶은 내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불과 30년 만에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런 스포츠를 즐기게 되다니…. 내가 하늘을 날 때 좀 더 뿌듯해지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