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먹을 것인가?
-우병녀(월요일 오전반 46주차)-
오늘 나의 뱃속을 채운 것들은 무엇이었나? 한 번도 따져 생각해보지 않았던듯하다. 집어넣기만 바빴지 그것을 일일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스스로는 가리는 것 없이 무엇이나 잘 먹는 사람이라 자부하며 그것이 마치 좋은 인격과 일맥상통하는 듯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완전 잡식성이다.
아침에 사과 반쪽, 점심 전에 커피 한 잔과 와플(밀가루, 생크림) 반쪽, 점심으로 쭈꾸미 볶음과 수구레 국밥(밥, 쭈꾸미, 콩나물, 김, 김치, 돼지고기 등), 후식으로 포도와 매실 주스, 저녁에 계란 토마토 볶음(계란, 토마토, 양파, 파, 마늘, 오일 등)과 호빵(밀가루, 팥, 설탕) 한 개와 우유 한 잔, 그리고 커피 한 잔.
다이어트 식단을 짜는 것도 아니고, 하루 중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일일이 생각해보지는 않는다. 그저 닥치는 대로 먹고, 입맛에 맞는 것은 더 먹고, 싫어하는 것은 피할 뿐. 그런데 하루 중 내가 먹어 치운 것들을 열거해 보니 얼마나 많은 식 재료들을 먹어치웠는지 가히 놀랍다. 내가 먹어치운 저것들을 키우거나 생산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할까? 그리고 얼마나 무한대로 생산이 가능할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식물과 동물을 잡아먹었을까?
최근에 완전한 채식주의자를 위한 비건 카페를 운영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당연히 자신도 비건이다. 일본인이지만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그녀도 이전에는 고기도 먹고 했다지만 여러 계기로 비건에 동참하게 되었고 요리를 좋아해서 지금은 비건 카페와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 2000년대에 들면서 심심찮게 비건을 말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세계적으로도 비건니즘이 유행을 하여 미국은 인구의 3%가, 이스라엘은 5%가 비건이라고 한다.
채식주의자도 먹는 음식에 따라 여러 단계로 구분된다. 빨간 고기(red meat)는 안 먹고 닭고기와 생선은 먹는 부분적인 채식주의자(pollo-vegetarian), 고기 중에서 생선만 먹는 사람(pescetarian), 날 음식만 먹는 채식주의자(raw vegan), 식물의 생명을 방해하지 않고 그 결과물인 과일과 견과류만 먹는 프루테리언(fruitarian), 아주 가끔 육류를 섭취하기도 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arian), 동물의 알은 먹어도 유제품은 거부하는 오보베지테리언(ovo-vegetarian), 유제품은 먹어도 동물의 알은 거부하는 락토베지테리언(lacto-vegetarian), 유제품과 동물의 알은 괜찮다고 보는 락토-오보 베지테리언(lacto-ovo vegetarian), 지구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먹다 남은 음식만 먹는 프리건(freegan) 등 매우 다양하다.(다음 백과 참고) 그 중 비건은 과일, 곡식, 채소 등 식물 재료만은 섭취하는 완전 채식과 더불어 가축 불매 운동과 동물 실험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말한다고 한다. 동물을 이용한 모피나 동물성 제품을 사용하는 것, 인간의 치료를 위한 의학용 동물 실험을 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일체의 동물 학대 행위를 반대하는 것을 비거니즘이라 한다.
사람들은 건강상의 문제, 불평등의 문제, 환경 파괴 등 여러 이유로 채식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인간의 먹거리를 위해 동물을 집단으로 사육하고 도살하는 것이 옳은가 라는 철학적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전 세계 인류가 먹어치우는 육류를 제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희생되어야 할까? 그리고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소, 돼지, 닭들이 좁은 공간에서 그저 살만 찌우며 인간의 먹이로 가공되고 있을까? 그걸 생각하면 쉽게 육식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그 생각은 접어두고 맛있는 돼지고기를 먹는다.
과연 무엇을 먹어야 할까? 인간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고, 무엇인가는 먹어야 한다. 알약 몇 알로 살아갈 수는 없다. 그리고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러나 동물의 생명도 분명 소중하다. 대안은 없을까? 비건 카페 주인장에게 동물만 생명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식물도 생명으로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래서 더욱 육식을 하면 안된다고 했다. 동물 한 마리를 키우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식물을 먹여야 한다고. 그녀의 말에 설득 당했다.
빌 게이츠는 비건은 아니지만, 인류적 차원에서 채식 위주의 식사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각종 강연을 통해 공장식 육류 생산 시스템이 야기하는 환경적 · 윤리적 문제를 알리며, 그 해결책은 ‘비건 푸드’에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현재 육류 대안식품을 개발하는 회사들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 도축장 앞에 선 소들의 눈물을 본 적이 있다. 소들도 그들이 죽을 순간을 알고 눈물을 흘린다. 마당을 자유롭게 뛰노는 닭이 아니라 좁은 공간에 층층이 쌓인 닭장에서 오물을 뒤집어 쓰면서 구구대던 닭을 본 적도 있다. 어릴 적 마을 뒷산에서 개를 나무에 묶어 때려잡던 기억은 너무나 잔인하고 선명했다. 그저 인간의 먹이가 되기 위해 길러지는 동물들, 그리고 그들의 비참한 생존 환경과 무자비한 도축과정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나는 아직 비건을 실행할 자신은 없다. 육식을 하는 사람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조금은 육식을 줄이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해야겠다. 나를 위해, 식물을 위해, 동물을 위해, 그리고 지구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