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활기 넘치고 활성화된 공동체를 보면 이런 사람이 꼭 한 명씩 있습니다. 전면에서 드러나게 활동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몫을 다하며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 말주변이나 재력과 같이 인간적으로 대단한 능력이나 지위는 없었지만 마음 따뜻한 사람. 난처한 일이나 형제들 간에 시시비비가 붙었을 때 홀로 일치와 화해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 귀찮고 불편한 일들이 공동체에 맡겨졌을 때 가장 귀찮고 불편한 몫을 택하는 사람. 사랑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유나 변명을 앞세우기 보다는 얼굴 미소로 말하는 사람. 공동체 상황이 어수선하고 문제에 직면했을 때 희망과 믿음을 품고 조용히 기다리며 인내하는 사람. 편이 갈린 사람들이 찾아 온갖 넋두리를 쏟아내어도 다 들어주고 격려의 한 마디로 응답해 주는 사람. 장상에게 순명하는 가운데 그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공동체의 활성화와 성숙을 이루는 숨은 리더, 진정한 봉사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자기 의욕과 열정에 타올라 시작한 봉사는 많은 사람들이 부딪히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편협하고 완고하고 차가운 마음이 되기 일수입니다. 그런 사람은 공동체 안에 문제가 생기거나 난처한 일이 생기면 누군가에게 탓을 돌리고, 자기 방어를 위해 변명하고, 책임감 없이 도망가듯 그 자리를 떠나갑니다. 문제를 문제로만 볼 뿐, 그 문제가 시작된 순간 동시에 시작된 하느님의 능력과 섭리는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갈릴래아 카나에서 열린 혼인잔치에서 생긴 문제, 곧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아시게 됩니다. 혼주와 어떠한 관계가 되는지는 모르지만 혼주를 도와줄 목적과 함께 혼인잔치라는 인생의 가장 소중하고 즐거운 자리와 사람을 지켜주시기 위해 그 답을 찾으셨습니다. 답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일꾼들에게 간접적인 신앙고백을 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이 고백을 바꾸어 표현한다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 삶의 모든 일의 답이시다.’ 이는 성모님께서 수태고지 때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들은 진리이기도 합니다.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으시다.(루카 1,35.37)” 성모님은 은총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지, 참된 기쁨과 충만함이 누구에 의해 우리 안에 가득 채워질 수 있는 지를 잘 알고 계셨고, 그 앎을 오늘 다시 신앙으로 고백하신 것입니다. 그 신앙대로 예수님은 물독에 물을 가득 채우라 명하시고 그 물을 포도주로 만드십니다. 물독의 물은 그저 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신앙 속에 담긴 하느님의 은총과 권능이 그 물을 포도주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성모님을 ‘은총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이 믿음과 순명으로 은총 자체이신 주님을 받아들여 그 은총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답(答)이신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중개자라고 성모님을 부르는 것은 그분이 전생애를 통해서 사도들과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주님의 은총과 진리 안에 머물 수 있는지를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모습을 성찰해 봅시다. 활기가 넘치고 매일 성숙되고 있다면, 우리 안에 성모님과 같은 숨은 리더-봉사자가 은총과 선물로서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 단 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단 한 사람은 누구여야 할까요? 스스로 답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