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물이 다시 위로 올라가는 가상의 논리 세계
네덜란드 화가 에스허르(Maurits Cornelis Escher, 1898~1972)의 그림 〈폭포〉는 매우 역설적인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분명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면서 물레방아가 돌아가지만, 밑으로 떨어진 물은 다시 위로 올라가고 있다. 얼핏 보면 충분히 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그림은 실상 비현실적이다. 중력의 지배를 받고 있는 현실 공간에서는 밑으로 떨어진 물이 다시 위로 올라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 이 그림이 우리의 일상적인 현실세계를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에스허르의 그림은 현실이 아닌 역설적인 사태, 즉 가상의 논리적 사태를 묘사하고 있다. “모든 크레타인은 항상 거짓말을 한다고 한 크레타인은 말했다.”라는 문장이 그러하듯 에스허르의 그림은 논리적 법칙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에스허르, 〈폭포〉 Waterfall, 1961이 작품은 역설적인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언뜻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비현실적인 그림인 셈이다. 이 그림은 “어떤 것은 P이면서 동시에 –P이다.”라는 모순명제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 또한 사실은 하나의 인위적인 논고에 불과하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인위적인 논리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만약 어떤 명제가 언제나 참일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진리’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논리학의 견지에서 볼 때 이렇게 언제나 참일 수밖에 없는 것은 어떤 현실적 함의도 갖지 못하는 공허한 형식에 불과하다. 가령 “어떤 것은 P이거나 -P이다.”라는 명제가 그러하다. “철수는 사람이거나 사람이 아니다.”라는 명제는 항상 참일 수밖에 없다. 이 명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절대적으로 참인 명제이다. 그렇다면 이 형식이야말로 태고부터 인간이 그토록 갈망하던 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이 명제는 현실에 대해서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은 자신의 대표적인 초기 저서인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21, 이하 《논고》로 약칭함)에서 항상 진리인 이러한 명제를 ‘항진명제(Tautology)’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항진명제는 인간이 추구하던 현실의 진리가 아닌 그저 인간 사고의 법칙에 불과한 것이다. 말하자면 항상 참의 값이 나오는 항진명제란, 현실의 구체적 진리가 아니라 논리적 사태에 불과하다. 항진명제는 항상 진리가 될 수밖에 없는 사고의 법칙으로 현실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러한 항진명제는 하나의 인위적인 법칙이다.
모순명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모순명제란 항진명제와 반대로 항상 거짓이 될 수밖에 없는 명제이다. “어떤 것은 P이면서 동시에 -P이다.”라는 명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철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아니다.”라는 명제는 현실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항진명제가 항상 참이듯이 모순명제는 항상 거짓이다. 여기서 철수 대신 어떤 것을 대입시켜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더군다나 모순명제는 현실과 전혀 대응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아닌 것을 충족시키는 현실대상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순명제는 하나의 인위적인 논리적 형식 혹은 법칙에 불과하다.
비트겐슈타인의 《논고》는 이러한 인위적인 논리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흔히 말하는 ‘인공언어(artificial language)’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이 이러한 인공언어를 구축하고자 한 데에는 뚜렷한 목적이 존재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논리적 형식에 의해서 제약된다고 확고하게 믿었다. 언어로 표상할 수 없는 것은 확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참된 경험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비트겐슈타인은 가장 확실한 논리적 형식을 구축함으로써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에 대한 참된 모습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물론 후에 언급하겠지만 그의 이러한 생각이 결코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전통적인 철학 문제들, 가령 신과 영혼의 문제 혹은 아름다움을 다루는 예술의 세계나 도덕적 판단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떨어진 물이 다시 위로 올라가는 가상의 논리 세계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2015. 08. 25., 박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