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 착한 아이 콤플렉스?! / 김의태 신부
발행일2020-10-11 [제3214호, 3면]
사목자가 되어야 할 신학생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신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고, 선배와 후배 그리고 동기와의 적절한 관계부터 신부님들과의 올바른 관계까지 신학생은 마치 ‘대인관계 마스터’(?)가 되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관계성에 큰 신경을 쓰다 보면 타인의 시선에 집중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지게 된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한국사회가 지닌 전통적 소통문화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일명 ‘고 맥락(high context) 사회’라고 칭한다. 말하는 사람이 표현을 명확하게 하지 않아 듣는 사람이 ‘눈치’로 알아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아이고, 너무 덥다!”라고 표현하면 자식들은 눈치껏 알아서 더위를 없앨 행동을 한다. 신학생들도 본당 공동체와 신학교 공동체, 그리고 사제단 내에서 살아가기 위해 눈치를 많이 볼 수밖에 없는 환경에 산다. 그래서 가슴속에 계속 묻어 두는 것이 쉽고 안정적일 수 있다.
나 역시 이런 고 맥락 사회에서 30여 년 동안 살다가 로마로 유학을 하러 가게 됐다. 사실 학업보다는 생존을 위해 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한국문화와 다르게 내 감정, 상태, 의견에 대해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배고프면 배고프다, 아프면 약국 가서 내 상태를 정확히 이야기해야 했다. 본격적으로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내가 생각하는 의견과 문제 제기를 정확히 파악해야 제대로 주장할 수 있었다. 냉혹하게도 내 감정, 상태, 의견을 표현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사회였다. 그래서 지금도 중얼중얼 혼잣말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과거 신학생 시절부터 보좌신부 시절까지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상대방에게 미움을 받을까 봐, 혹은 거절하면 관계가 단절될까 봐 노심초사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 신학생들도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는 듯하다. 신학생이라면 이 사회가 고 맥락 사회라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솔직한 면을 바라보고 표현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자신 내면에서 올라오는 감정과 욕구들을 끊임없이 억누르고 감추며 살 수 있단 말인가? 병이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또 신학생 대부분은 예수님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착한 목자의 이미지’로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말 솔직하셨다. 죽음 앞에서 하느님께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고백하셨다. 그리고 자기주장도 확실하셨다.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지 말라’며 성전 앞에서 ‘깽판’을 치셨고, 하느님 나라 선포를 위해 대중을 울리고 율법 학자들을 두렵게 만드셨다.
모든 일에 있어 바보처럼 착하게 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현대인들이 정신적으로 아파하는 이유에도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이 곪아 터지기 전에 그 콤플렉스에서 빠져나오길 기도한다. 분명 똑바로 사는 것보다 솔직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김의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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