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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raise me up
-- Secret Garden
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
내 영혼이 힘들고 지칠 때
When troubles come and my heart burdened be
괴로움이 밀려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할 때
Then, I am still and wait here in the silence
당신이 내 옆에 와 앉으실 때까지
Until you come and sit awhile with me
나는 여기에서 고요히 당신을 기다립니다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에 우뚝 서 있을 수 있고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도 건널 수 있습니다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당신이 나를 떠받쳐줄 때 나는 강인해집니다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당신은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날 세우시네
소 향
나의 영혼 연약하여 지치고 근심 속에 내 마음 눌릴 때
주 오셔서 나와 함께 하시길 잠잠하게 나 기다립니다
날 세우사 저 산에 우뚝 서리 풍랑 위를 나 걷게 하시리
주님 품에 나 안기어 있으니 이전보다 더 강하게 되리
이 노래 안 들어보신 분이 없을 것입니다.
TV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길을 걸어도 이 노래가 들려옵니다.
연주회에 가서도 들을 수 있고 전화를 걸어도 들려오고
인터넷 블로그에도 수없이 올라와 있습니다.
가사 속의 ‘You’가 누군지, 아니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경제난, 취업난, 과도한 경쟁 등으로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꿈과 희망을 주는 가사로 한반도를 조용히 강타한 노래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노래는 원래 뉴에이지 그룹인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이 2002년
아일랜드의 민요가락을 토대로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작곡가인 브렌던 그레이엄의 가사로
만들어 부른 노래였는데 역시 아일랜드의 유명 그룹 웨스트 라이프가 불러 더 유명해진 곡입니다.
특히 911 참사 추모식에서 이 노래가 불려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많이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불려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은 가수들이 불렀고 최근에는 브아걸(브라운아이드걸스)이 불렀습니다.
유명한 CCM 가수들도 많이 불렀습니다.
주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가사의 ‘You’를 ‘ 주님’으로 바꿔서 불렀지요.
교회에서도 엄청난 인기곡입니다.
베이징 올림픽 역도 금메달 리스트 장미란이 좋아하는 노래라 해서 더 유명해졌습니다.
메가처치에서 동네 상가 지하실 교회에 이르기까지
앞에서 찬양사역자분들이 열창을 하시고 손을 들고 또는 가슴에 손을 얹고
감동해 눈물을 흘리면서 부릅니다.
이 노래만큼 요즘 교회들의 트렌드를 잘 말해 주는 노래가 없습니다.
세상에 부디끼고 상처입고 지치고 고단한 교인들에게
감동과 위로와 희망을 주는 대표적인 찬양이 아닌가 합니다.
단지 한가지 유감스러운 점은 세상과 교회에서 그토록 사랑받는 이 노래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사람들은 타고난 본성에 따라 우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태양신, 달 신에서부터 부엌에 산다는 주왕신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온갖 종류의 신과 우상들이 역사에서 나타나고 사라지고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신들과 우상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틈만 나면 주위에 힘있고 잘사는 나라들이 절하는 우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도 틈만 있으면 그 백성들에게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
우상을 섬기지 말아라, 불살라라, 찍어서 가루로 만들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지껏 사람들이 허깨비를 섬기고 있는 것일까요?
단군상 목 자르고 절이 무너지도록 기도하듯
하나님을 믿는 교인들이 볼 때 간단히 부정하고 부숴버릴 수 있는
있지도 않은 신, 돌, 나무, 짐승, 자연물에 그토록 정성을 들이고 절하는
웃기는 쇼에 불과한 것일까요?
세상에는 수많은 신과 우상들이 나타나고 사라졌지만
죽지않고 변함없이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신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 라는 신입니다.
이들은 최초의 조상들때부터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이 신은 스스로 자신을 보존하고, 스스로 자신을 나타내고,
스스로 자신을 확장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존재하고, 내가 먹고 살고, 내가 나를 드러내고, 나의 영역을 넓히는 일이
그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현실에 한계가 있습니다. 마음대로 안됩니다.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보존해 주고, 자신을 드러내 주고,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데
유익하고 도움을 주는 것에는 무엇이든 환영하고 어떤 값이든 치르고 희생도 합니다.
그것이 해를 비롯한 자연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던 바알이건 아스다롯이건
상관이 없습니다.
나를 살려주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또 다른 신이고 우상입니다.
꿩 잡는게 매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로 대표되는 하나님 전문가들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민족으로 태어나
종교생활을 누구보다도 철저히 하는 사람이라 자신했기에
하나님이 모든 어려움과 방해물과 적들과 원수들을 물리치고
세상 민족들을 누르고 자신들을 우뚝 세워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대망하던 메시아는 오지 않았습니다.
뜬금없이 나타난 가난한 시골 목수가 행하는 병고침 기적에 놀라고
귀신을 쫓는 광경에 놀라고
그가 만든 기적의 떡을 먹고 잠시 배불렀을 뿐
그가 자신들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공든탑을 여지없이 헐고
급기야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자 분노에 몸을 떨며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을 뿐이었습니다.
거룩하고 존귀한 나를 세워주기는 커녕
나를 부정하는 메시야는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목수를 따르던 졸개들도 그가 세상에 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성령이 그들을 뚫고 들어가 알려주기 전에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를 그리스도라 따르면서도
십자가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도무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를 먹여 살려 주고, ‘나’를 인정해 주고, ‘나’를 세워줘야 할 그리스도가
왜 참혹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고 죽어야 하는지
그리고 내가 왜 그 잔인한 형틀인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라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면 잃고 그를 위해 죽으면 산다는 말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나’의 역사는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수많은 교회들에서 불려지는 찬양이라는 노래 속의 하나님은
‘나’에게 유익이 되고
‘나’에게 도움이 되고
‘나’를 강하게 해주시고
‘나’를 세워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내가’ 실패하고 쓰러질 때 ‘나’를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
‘내가’ 상처받고 힘들어 할 때 ‘나’를 치유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
'나'의 꿈을 쫓아가다가 넘어져 자존심이 상하고 연약해지고 근심에 싸일 때
‘나’를 세워주시고 ‘나’를 강하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나’의 꿈과 비전을 이뤄주시는 하나님,
‘나’를 산에 우뚝 세워주시고 풍랑 위를 걷게 하시는 하나님,
'나‘를 합격시켜주시고, ’나‘를 승진시켜 주시고. ‘내’ 사업을 번성시켜주시고
‘나’를 성공시켜주셔서 영광 돌리게 하시는 하나님
어디서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리는 것은 하나님 뒤에 숨어 있는 ‘나’입니다.
위 노래가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든지 간에
교인이 아니든 교인이든,
알지 못하는 ‘You'로 부르든,
‘주님’으로 바꾸어 부르든
수많은 사람들을 전율케 하고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나’를 세워주는 그 이유입니다.
세상이나 교회나 별 다른게 없습니다.
절에 가서 철야로 삼천배를 하며 비는 기도제목이나
정동진에 가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비는 기도 제목이나
송구영신예배 때 목사님께 ‘구체적으로’ 써내고 비는 기도 제목이나 다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 애 합격시켜 주시고,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주시고, 부동산, 주식 오르게 해주시고.
사업번창하게 해주시고, 성공하게 해주시고, 이름 내게 해주시고, 경제를 살려주시고...
구색을 맞추느라 교회부흥이나 신앙성장도 6번째나 7번째 쯤 들어가긴 합니다.
사람들 몰리는 교회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교인들이 뭘 좋아하는가 본능적으로 알아봅니다.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도움주시는 하나님을 위해 할 일을 주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십자가도
교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소원과 비전을 이뤄주기 위해 인용됩니다.
‘당신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존귀한 자다.
하나님이 당신을 세우시니 세상에서 꿈과 비전을 이루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자.
나는 못해도 하나님이 하신다...'
설교하는 일도 쉽습니다.
적당한 성경구절을 찾고
실패, 연약함, 고단함, 괴로움을 들추고
성공한 사업가, 관료, 스포츠 스타, 연예인 등등
하나님의 세워주심으로 역경을 딛고 승리한 성공담을 엮고
당신들도 그렇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다고 하면
아멘, 아멘 은혜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찬양하는 겁니다.
‘날 세우사 .... 이전보다 더 강하게 되리’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십자가는
정확히 이 ‘나’를 부수고 택하신 백성의 속으로 뚫고 들어옵니다.
선한 ‘나’ 이건 악한 ‘나’이건 여지없이 격파해 버립니다.
마음을 뚫는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사람들은 십자가 복음을 본성적으로 거부하게 되어 있고 그것이 또 당연합니다.
"너는 무엇을 하든 죄 덩어리다.
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다.
너는 존재가치가 없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너 대신 죽고 너를 살렸다! "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로 내가 파괴되어 없어진 사람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입니다.
파괴되어 죽은 나 대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선 사람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사는 사람입니다.
그가 아는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와 십자가 뿐입니다.
그가 말하는 것, 그가 자랑하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뿐입니다.
그가 세우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의 십자가뿐입니다.
그가 노래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이전에 목이 쉬어가며 구하던 ‘나’의 비전과 꿈과 계획은 간데 없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생명이며 그의 소원이며 그의 기쁨이며 그의 비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혼잡하기만 합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에 기쁘고 좋은 것이라는 이유로
이런 저런 일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행하여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이 아닌 것을 복음이라 하고
복음을 복음이 아니라고 거절합니다.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십자가가 있는가, 없는가,
나를 바라보게 하는가,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는가,
나를 세우는가, 그리스도를 세우는가 살피는 것입니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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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적해 주신 문제넘들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가 주는 감흥은 (개인적으로) 아주 깊습니다..... 그리고... "나" 중심의 CCM에 비친 "나" 중심의 기독교 문화에 대한 신랄한 지적, 옳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예리하고요. 감사합니다.
'나'를 세워준다는 것이 나의 안위를 위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도 '나'는 바로 서야 한다 여깁니다....나의 바로 세워짐(일깨움) 없이는 십자가를 제대로 세우는 일을 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아닌게 아니라 요즘 기독교가 복을 받기 위한 종교가 되어감은 참으로 씁쓸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동의합니다. 기도의 내용이, 정한수 떠놓고 비는 내용과 다를 바가 없다면, 나는 내가 누구의 이름을 부르던지 상관없이,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세상종교와 완전히 다릅니다. 이렇게 너무나 철저히 다르기 때문에, 복음을 가진 자는 세상의 핍박와 외면을 필연적으로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좋아하고 따릅니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전하고 있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수도없이 파선하고, 수도없이 침몰하는 배, 그것이 바로, 복음의 바다를 항해하는 '自我의 배'가 될 것입니다.
그 배가 산산조각나 흔적도 없이 가라앉고.. 주님이 그물망으로 그 조각조각 떠다니는 더러운 찌꺼기조차 건져 바다 밖으로 내어 던지시는 날을 강렬히 소망하며.. 오늘도 군사님의, 담담하고 조용한 외침, 그러나 강력한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감사합니다. ^^
이곡은 대표적인 뉴에이지그룹인 시크릿 가든의 곡입니다. 저도 MP3로 듣고 악보를 다운받아 섹소폰으로 연습을 몇번 해봤는데 곡 자체가 영적인 느낌은 주지 않습니다(개인적생각). 어떤 찬송들은 지은이의 영감이 크게 작동되어 영적인 힘을 불어넣어 주지만 이 곡은 왠지 집중할 수록 스산함이 베어 있더군요. 그냥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시크릿가든은 조용하고 서정적인 명상음악 스타일을 많이 불렀지요.
raise up ㅡㅡ >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즉 부활하신 주님에게 사용된 용어가 아닌지요. raise me up ㅡㅡ> 나도 부활의 소망이 있다 나는 그렇게 와 닿았는데여.
공감합니다. 자아를 위한 기독교(번영복음),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깊이 물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