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와 듣기 ]
복잡한 주제에 관한 논의가 텍스트가 아닌 동영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현상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저명인의 강의를 통해 압축된 개념으로 전달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서 구술(口述)된 말에 대한 소비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동영상과 팟캐스트를 통해 지식을 소비함으로써 텍스트는 점점 더 부차적인 지식의 전달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글로 쓰인 언어와 말해진 언어 사이에서 ’말‘의 우위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지식을 생산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글 쓰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화자(話者)가 되는 편이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으는 데 유리합니다. 그래서 유튜브나 팟캐스트의 유명 인사들은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방대한 양의 책과 텍스트의 바다 위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항로를 찾아가는 능력을 상실한 데 따른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스스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읽는 행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하고 듣는 것을 더 선호합니다.
근본적으로 읽기와 듣기는 질적으로 서로 다른 주의력을 요구합니다. 읽기는 일정한 수준의 집중뿐만 아니라 잡다한 일상의 문제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텍스트를 읽어주는 사람들은 듣는 사람들에게 정신을 집중하여 자신의 얘기를 들어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팟캐스트와 동영상을 통한 듣기는 음악 감상, 운동, 문자 메시지 확인 등과 같은 다른 활동들과 동시에 행해질 수가 있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 등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사용자를 완전히 자유롭게 해줍니다.
이에 반해 글을 읽는다는 행위는 텍스트와 책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가능합니다. 종이책은 물리적 공간을 점유할 뿐만 아니라 독서를 통해 일정한 두께를 가진 책의 현존성이 공간적으로 바뀌어 가는 경험을 독자에게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공간화‘를 전제로 합니다.
더구나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독서는 앞뒤로 넘나들기를 끈질기게 반복해야 합니다. 책의 물리적 형태는 직선적이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로 이어진 구불구불한 미로를 정신 바짝 차리고 탐색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순수 오디오 콘텐츠인 팟캐스트의 경우 사용자들에게 최소한의 주의력만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귀는 소리를 받아들이지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손과 눈은 다른 목적의 동작을 수행할 수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청각적으로만 몰입할 뿐 주변 환경에 개방된 신체적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읽기의 경우 우리의 신체는 부동의 자세로 머리에 유입된 지식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에 몰입합니다. 하지만 듣기의 경우 우리의 신체는 담론 소비에 헌신할 필요가 없으므로 가상의 공간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인간이 문자를 발명한 이후 복잡한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반드시 일정한 수준의 몰입을 전제로 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듣기가 보편화된 요즘은 독서에 필요한 몰입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읽기와 듣기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은 ’읽을 수 있음‘과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음‘ 사이의 간격을 의미합니다. 팟캐스트의 청취자와 유튜브 동영상의 시청자들은 스스로 읽을 수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이 읽어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역사적 전례가 없을 정도로 문해율이 높고, 원하는 텍스트는 거의 아무런 제약 없이 볼 수가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무언가를 읽기를 원하지 않고 그저 누군가 자신을 대신하여 읽어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집단이 읽기를 대신해 주고 인공지능이 쓰기를 도맡아 하는 인류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