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과 중국의 제조 혁신 ]
1976년 창업한 이래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1996년까지, 애플(Apple)은 대부분의 컴퓨터를 자체 생산했습니다. 그러나 1997년부터 애플은 이러한 전략을 폐기하고 해외 협력업체에 생산을 위탁하는 '오프쇼어링(offshoring)'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애플의 초기 해외 생산 거점은 한국과 대만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저임금, 저복지, 저인권“에 기반하여 다국적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던 중국을 핵심 생산 거점으로 선택했습니다.
애플은 해외 위탁생산을 통해 공장을 직접 운영하지 않으면서도 제조공정을 철저히 통제했고, 동시에 비용 절감과 생산의 유연성이라는 장점까지 모두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애플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부품을 구매하는 대신 맞춤형 부품을 직접 설계하고 그것의 제조공정을 협력업체와 함께 개발하는 새로운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를 위해 애플은 수억 달러 규모의 장비를 직접 구매한 다음, 이를 협력업체의 공장에 설치하고 ‘애플 전용’으로 지정했습니다.
아이폰이 출시되기 전까지 애플이 보유한 장비는 11억 달러였지만 아이폰의 폭발적 성장에 힘입어 이 수치는 5년 후 160억 달러까지 증가하게 됩니다.
애플은 생산 장비를 직접 구매하여 협력업체에 공급함으로써 안정적인 부품 공급망을 확보할 수가 있었고 협력업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사 소유의 생산 장비를 다른 협력업체 공장으로 옮김으로써 그 회사를 공급망에서 배제했습니다.
아이폰의 유려한 디자인과 정교한 성능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부품을 공급받기 위해 애플은 자신들이 직접 장비를 구매하고 핵심 엔지니어를 파견하여 필요한 부품들을 개발하여 사용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전략 때문에 애플은 경쟁사들을 압도할 수가 있었지만 그 전략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애플의 생산 거점이 중국에 집중되면서 애플이 ‘중국화’되어 버린 것입니다.
아이폰의 판매가 급격히 늘어나자 애플은 중국에서의 공급망을 이중, 삼중으로 구축했고 본사 엔지니어들을 파견해서 이들 업체를 지속적으로 교육했습니다. 애플의 엔지니어들은 중국업체들과 새로운 생산 공정을 함께 개발하며 안정적인 생산 역량을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애플은 중국의 협력업체를 쥐어짜 업계 최고의 영업 이익률을 구가했습니다. 중국업체들은 애플과의 거래에서 경제적 이익을 보지는 못했지만,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엄청난 지식과 정보를 넘겨받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불공정한 거래 조건을 기꺼이 감내했습니다.
애플에서 근무했던 산업디자이너는 이러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전략적으로 정보를 숨긴 일은 제 기억에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의도치 않게 엄청난 지식, 놀라운 노하우와 경험을 중국업체에 전수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애플과 계약을 맺은 중국의 공급업체들은 이전에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기술과 제조공정을 배울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애플의 핵심 협력업체의 뛰어난 인재들이 샤오미, 비보, 화웨이 같은 중국 기업으로 대거 이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중국의 ‘붉은 공급망’과 ‘제조 혁신’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애플이 오늘날의 애플이 되는 데 중국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듯이 중국 또한 애플 없이 제조 혁신을 이루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애플은 처음부터 공급업체들의 혁신을 촉진할 목적으로 공급망을 설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이 실현된 셈입니다.
게다가 애플의 투자는 첨단산업 분야에 집중되었으며 이는 시진핑이 무엇보다 원하던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애플은 이제 빠져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중국과 깊이 얽혀버렸습니다. 애플은 배를 다 불태우고 나아가는 식으로 되돌아올 수 없는 지점까지 가버렸습니다.
애플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아무리 몸부림쳐도, 단 한 줄의 명령으로 애플의 가치 대부분을 날려버릴 수 있는 중국 공산당의 권력을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애플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중국에 포획당한 채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미래와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