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아홉 살 때 과부가 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혼자 남겨져 힘들게 1남1녀의 자녀를키우며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주위에서는 재가하라는 권유를 끊임없이 받았지만, 그녀는 아이들이 혹시 억울해 하거나 슬퍼 할까봐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아들은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 직장을 따라 다른 도시로 나게 살게되었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사정이 좋아지면 어머니와 여동생을 그곳으로 모셔와 함께 살겠다고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일찌감치 어머니를 위해 새 옷과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낮은 굽의 편안한 신발 한 켤레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행복한 그 날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한 번, 두 번....... 어머니와 여동생을 데리고 올 기회를 놓쳤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여동생이 보낸 전보를 받았습니다. 전보에는 어머니가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뜨셨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급히 고향으로 돌아가 직접 어머니에게 새 옷을 입히고, 발에 신발을 신기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후회하는 마음은 바늘이 되어 그의 온 몸을 상처투성이로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무는 고요하게 있고 싶어 하지만 바람은 그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일도 모든 것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되지는 않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모시고 싶어할 때, 어쩌면 부모는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은 부모님을 위해 무슨 일을 할 때, 항상 좋은 날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연로하신 부모님께는 자녀들이 선택한 좋은 날을 기다리기는 것은 큰 도박과 같습니다.
오늘이 우희 외조모님 발인날이군요. 좋은데 가시게끔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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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 외조모상을 애도하면서..
운수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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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2.0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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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그렇게 멀리도 아닌.. 팔을 뻗으면 와닿을만한 그곳에.. 항상 우리의 부모님은 계십니다.. 자그마한 선물도 바라지 않는.. 우리들의 부모님은 아들 딸 볼수있는 그 순간이 곧 기쁨입니다.. 잘해드릴 부모가 계시다는것 또한 당신에겐 행복이라는것 또한 잊지말기를.. 부모님 떠나신지 어언 20년이 흐른 어느날.. 칭구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하나 늘어놓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외할머니란 호칭하나만으로도 왠지 따스해지는 그런말이지 우희야 그랬었구나 오늘에서야 확인했다 어머니가 많이 슬퍼하시겠네 내가 22살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그날 무지 많이 울었던 기억이난다 좋은곳에 가셨으리라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