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공관복음
가 예수의 탄생
예수 탄생에 관한 이론은 1. 동정녀 탄생, 2.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하여 살다가 로마 병사에게 겁탈을 당하여 사생아로 탄생, 3. 15세 때 성전을 지키던 로마병사 사이에 정분이 생겨 미혼모가 낳은 사생아 등 세 가지가 있다.
이 중에서 마리아와 로마병사 판델라와 정분을 통해(성폭행설도 있음.) 금지된 불장난 끝에 임신하자 판델라는 마리아를 버리고 군으로 가버렸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 마리아는 당시 부모가 모두 유개교의 절대 권력층인 레위인들이었고 아버지 요아킴이 대제사장이었던 관계로 성전에 있게 되었고 성전을 지키던 병사와 정분이 난 것 같다. 그래서 15세 된 마리아는 가난한 목수인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예수가 태어날 당시의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의 지역정세는 로마군의 지배 하에 약탈과 강간이 자행되던 시기였다. 로마의 전쟁사에 의하면 그 당시에는 로마 병사들에 의해 대부분의 유대 여인들이 강간을 당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는 당시 유대를 지배하던 점령군 로마 병사로서 성소를 지키던 판델라가 당시 대제사장의 딸이었던 마리아를 강간하여 낳은 자식이라는 것이 유대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유태 5천년의 종교. 사상. 철학. 역사. 법률. 사회. 민속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많은 정보가 전승된 유태 구전 율법 미슈나를 기록한 탈무드에는 예수의 행적에 대해 로마 병정 판데라의 아들 예수 (Jesus Ben Pandira)의 설교 전파에 대한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실제로 판델라의 묘비까지 발견되었다. 그리고 제5복음서로 지칭되는 외경 빌라도 행전에 보면 예수의 사생아 부분에 대한 논란이 기록되어 있는데 유태인 원로들이 예수 당신은 간통으로 태어났다고 외치는 기록도 남아 있다. (숨겨진 성서 109페이지, 세계의 종교 342페이지 참조)
아래 9 항목들을 참고할 것.
1 예수가 판델라의 아들 이라는 것은 유대 기록 [Toledoth Yeshu] 에도 있다.
2 1세기 후반 로마학자 셀수스도 예수는 로마병사 판데라의 아들이라 했다.
3 삭제된 요세프스의 문서에도 예수는 로마병사 판데라의 아들이라 했다.[루브르 박물관]
4 독일 바트그로이츠나흐 마을에서 발견된 판델라묘비에도 예수는 판델라의 아들이라 했다.
5 골고다로 끌려가기 전 대제사사장들의 법정에서 예수의 사정에 밝았다고 알려진 안나스가 "이 판델라의 자식아" 라고 조롱했다는 풍문.
6 일부 유대인 경전이 판델라를 예수의 아버지라고 주장한다.
7 제인샤버그도 예수는 판델라의 아들이라 했다.
8 세계의 종교 342P 에서도 예수는 판델라의 아들이라 했다.
9 사해사본 중 '빌라도 행전1장' 에도 예수는 간통으로 태어났다는 소문에 시달린다.
10. 판텔라는 에디오피아 출신 로마 용병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석 학자들이 재현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흑인과 유대계의 혼혈로 보이며 나중에 예수가 골고다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갈 때 대신 짊어진 사람이 에디오피아인 시몬이었기 때문이다.
레위 미혼녀 사생아가 성령에 의한 동정녀 탄생으로 둔갑하게된 경위를 알아보자.
1. 우선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확정된 시기가 예수가 탄생한지 350년이 지난 콘스탄틴 집권 이후인 교황 율리우스 1세(재위 337~352)때였음을 미루어 이때 비로소 예수 탄생에 대한 로마 정권과 레위인들과 기독교인들 간의 합의가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2. 로마 정권으로써는 아무리 그래도 메시아는 로마인의 핏줄이니 반대할 이유가 없고 유대교 측은 위대한 레위의 혈통에서 메시아가 나고 그것도 성령으로 잉태되는 것이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고 기독교도들은 처음부터 찬성했을 것으로 본다.
3. 이렇게 되면 레위인들에게는 로마가 원하는 예수가 메시아가 되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었을 것이어서 끝까지 반대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로마는 그 동정녀를 위대한 성모로 1천년을 모시는 것을 조건으로 일괄 합의했을 가는성이 크다. 즉 로만 가톨릭의 성모 숭배는 레위의 미혼녀 숭배인 것이다.
나. 예수의 청년 시절
"독실한 불교도였던 예수의 불교식 이름은 이사(ISSA). 그는 13세 때 유대 법에 따라 가장권(家長權)을 갖고 결혼을 해야 할 입장에 처한다. 당시 소년들 가운데 유난히 준수한 '이사'를 사위로 삼고 싶어하는 어느 부호의 끈질긴 요구가 있자, 그는 비밀리에 인도 상인을 따라 인도지역으로 떠났다. 이사는 14세 때 아리아인들 속에 정착, 힌두교 거장들에게 베다, 우파니샤드 등을 공부하나, 4성 계급을 주장하는 브라만교에 실망을 느끼고 '이사'는 만인의 해탈 가능성과 평등사상을 부르짖는 불교에 매료돼 불교도들 틈에 들어가 부다가야, 녹야원, 베나레스 등지에서 6년 간 불교의 교리를 배우며 수도생활을 한다. '이사'의 불교공부는 캐시미를 거쳐 라닥크의 레에서 팔리어,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며, 이어 티벳에서는 그곳 밀교계 고승 멩그스테에게서 기적을 일으키는 비법과 심령치료 비방 등을 집중적으로 익혔다. 불교의 고승인 이사대사(大師)의 이스라엘 귀국은 페르시아를 거쳐 불교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29세 때 이루어진다. 이사는 이스라엘로 돌아와 불교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간음한 여인의 예)하며 새로운 민중의 희망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렇듯 불교적 연대기에 신라 원효, 혜일대사 등과 같이 이사대사의 자세한 활동기록이 소개돼 있는데 반해, 기독교계 문헌(누가복음)이 다만 '그때까지(30세) 예수는 사막에 있었다'고만 막연히 기록되고 있다. 전 한양대 비교종교학 석좌 교수인 민희식 교수는 "불교 측 문헌이 정확한 이유는 순교 당시의 견문기록임에 반해, 기독교 측 문헌은 오랜 세월이 경과된 뒤 여러 시기에 걸쳐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까닭"이라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제자들은
기독교 교리의 확립을 위해 예수의 기록을 비교적 정확히 기술한 『토마스(도마)복음서』 등이 지나치게 불교적 색채를 띠고 있어 바이블 편집에서 삭제했다는 것. 기독교의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이 불교의 법화경(法華經: 석가의 구도 입문 과정에 관한 기록)의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하는 민교수는 장자궁자(長子窮子)와 기독교의 탕자의 비유 외에도 삼위일체의 삼신불에서의 유래 등 많은 부분을 예로 들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세주의 뜻인 메시아의 어원은 불교에서 말세중생을 구제하러 올 미래 불인 미륵(마하트리아 혹은 메테아)에서 유래했다는 일화를 비롯, 예수에게 세례를 준 요한의 이름은 한역불전(漢譯佛典)의 정반왕(석가모니의 부친)의 서양식 발음(이태리'조바니', 프랑스'장', 영국'존')에서 나왔다는 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라는 이름은 석가의 어머니 마야부인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고 민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
예수 생애의 밝혀지지 않은 부분을 되찾으려는 노력과 이들 불교적 자료는 한때 리처드 보크가 실제로 인도, 티벳 등을 답사, 다큐멘터리 필름(The Lost years of Jesus)에 담겨진 적도 있다고 한다. [ 주간중앙 1986. 10. 26 ] 그리고 예수가 이렇게 동양으로 구도의 여행을 다닌 사실은 리바이 도우링이라는 목사가 천상 영계의 기록방법인 아카샤(akasha)라는, 우주심(宇宙心)에 의해서만 전달되는 기록(아카식 레코드)을 그대로 베껴 썼다는 제3의 복음서 『보병궁 복음서』에도 나와 있다. 1884년 미국에서 출생하여 18세에 목사가 되었고, 20세에 종군목사(종군목사)로 남북전쟁이 끝날 때까지 목사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천재적인 목사 리바이 도우링(1911. 69세 사망)이 쓴 『보병궁 복음서』(성약성서)에는 4대 공관복음서의 내용을 대부분 포함하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출생과 세례요한의 어린 시절, 예수의 어린 시절 등 4대복음서에 나타나지 않은 부분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보병궁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가 인도에 가게 된 동기는 인도의 오릿사주의 왕족인 라반나가 유대의 제례에 참석했다가 총명한 예수를 보고 인도로 데려간 것으로 되어 있으며, 그 당시 예수는 12살이었고, 인도의 쟈간나스 사원에 승려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인도의 최고가는 명의(名醫) 우도라카의 제자가 되어 자연의 법칙을 배우고 치료법을 배우며 베다 및 불경을 공부한다. 그러나 인간의 절대평등을 주장하던 예수는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파괴한다는 명목으로 승려들의 정죄에 걸려, 죽음을 피해 라마스의 도움으로 네팔로 피신하였다. 그 뒤 성인 피자빠찌의 소개로 밀교(密敎)의 대성자인 멩그스테에게 찾아가서 제자가 된다. 여기서 이 절에 소장되어 있던 수많은 고전(古典)의 필사본을 그의 도움을 받아 직접 읽었으며 이 곳을 떠날 때 광명의 부처라는 찬사를 받은 예수는 고향으로 향하는 길에 24년 전에 자신을 찾아준 동방박사 3인의 마기교 승려를 찾아뵈었다. 이윽고 요단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온 예수는 어머니의 애정 어린 환대를 받지만 다른 가족들로부터는 환대를 받지 못한다. 어머니 마리아와 여동생 미리암에게만 지난 날 구도의 과정에서 겪었던 사연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희랍으로 떠났다. 희랍의 교사 중에서 아폴로라는 성자와 함께 교사들을 가르치며 희랍의 정신세계를 들었다. 25세에 다시 이집트 조안에 가서 '헬리오폴리스'(해의 도시)로 가서 성자들의 모임인 형제단이라는 신전에 입회하기를 원하여 허락을 받았다.
여기서 6단계의 시험을 진실과 용기로 극복하고 거룩한 스승의 제자가 되어 애굽 밀교의 비밀, 생사의 문제, 또한 태양계 바깥의 비밀을 배웠다. 그리고 사자의 방에서 일을 마친 뒤에 '보랏빛 방'에서 일곱 번째의 시험을 이겨내어 '그리스도'라는 법명을 받았다. 이상이 『보병궁 복음서』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한 것인데 인도에서의 행적 등 학자들의 연구내용과 많이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석가와 공자가 그러했듯이 한 사람의 성인(聖人)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정과 시련을 이겨내야 하고 또 많은 스승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은 종교회의를 통해 일부 사람들에 의해 왜곡된 기독교 교리가 아닌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이 진정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 예수의 죽음
- 예수의 사망 확인 관련 사건
유럽에서는 1982년 성혈과 성배라는 책이 발간되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고 프랑스에 망명하여 80여세에 사망하였고 현재까지 예수의 후손이 존재한다는 책 내용으로 논란이 되었고 급기야 영국의 기독교와 천주교인의 사실 확인 소송이 영국 법정에 제소되어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대대로 예수를 믿어온 가문의 기독교인이 주심판사를 맡아 3년 간에 걸쳐 심리를 하였으나 프랑스에 사는 예수의 27대 후손 피에르 프랑타르씨 등 많은 증인과 증거들을 비롯해 조상이 예수로 되어 있는 족보 책과 프랑스의 렌느 르 사토에 예수의 묘비명이 있는 예수의 무덤까지 현지 답사하여 확인하고는 무덤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책의 내용을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심판사는 판결을 미뤄오다 빨리 판결하라는 법원의 독촉을 받고 판결하기를 "나도 3대째 예수를 믿어온 집안의 자손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습니다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84살까지 살다 죽었습니다. 예수는 로마 병사 판델라의 아들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라고 판결을 하였다.
이에 이러한 판결을 지켜보던 신부, 수녀, 목사들은 법정 방청석에서 옷을 찢고 통곡을 하였으며 기독교인이 목을 매고 자살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지고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란이 영국전역에서 확대되어 영국정부에서는 이러한 혼란이 지속되고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판결문의 공개 및 해외 유출을 금지시키고 언론에 보도를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재판과정을 지켜본 영국의 기독교인들은 약 80%가 회교 등 타종교로 개종을 하였으며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동이 이어졌다. 1982년 처음 책이 나와 세계적인 화제가 되자 대한 민국에서는 전 언론(동아, 조선, 중앙, 부산일보등)에서 보도(사진3 :1982.2.20자 동아일보 )를 하였으나 재판과 판결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보도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가 급격히 퇴락하던 그 당시의 세계적 추세와 달리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에 편승하여 계속해서 급성장하는 이변을 낳았다.
- 예수무덤 발견 기사 2007.2.27 [중앙일보]
캐머런 감독 `유골함 이름 예수 가족과 일치`
성경 학자들 `당시엔 예수, 마리아는 흔한 이름`
영화 타이타닉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제임스 캐머런 감독 등이 2007년 2월26일 미국 뉴욕에서 예수의 유골이 보관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석관을 공개했다. 이들은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며 "1980년 예루살렘 남부 탈피오트에서 발견된 이 석관에는 그들의 유골이 들어 있음이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뉴욕 AP= 연합뉴스] "여러분 눈앞에 있는 두 개의 유골함에는 예수와 그의 아내 마리아 막달레나의 뼈가 담겨 있었을 겁니다."25일 오전 미국 뉴욕 맨해튼의 뉴욕공공도서관 홀. 영화 '타이타닉'으로 유명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과 고고학.통계학 교수, 신학자 등 8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설명해 나갔다. 이들은 "27년 전 예루살렘 남부 탈피요트 지역에서 발견된 무덤이 예수와 그의 가족들의 묘가 거의 확실하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폈다. 특히 예수와 막달레나의 유골함이라며 작은 석관 두 개가 공개되자 300여 명의 취재진은 크게 술렁거렸다.
이 설명대로라면 예수가 부활 후 승천했다는 기독교의 근본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지기 때문이다. 캐머런 등은 자신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예수의 잃어버린 무덤'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으며 다음달 4일(한국시간) 월드 디스커버리 채널, 영국의 채널4, 캐나다의 비전, 이스라엘의 채널8 등을 통해 각국에 방영될 예정이다. 석관에 고대문자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스라엘 문화재 당국이 26일 공개한 것이다. [AP=연합뉴스] 문제의 동굴무덤 속에는 10개의 유골함이 있었다. 그런데 이 중 여섯 개에 '요셉의 아들 예수' '마리아' '마태' '요셉' '예수의 아들 유다' '매리엄'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것. 요셉은 성경에서 예수의 형제로 나오며 매리엄은 '마리아 막달레나'의 원래 이름이다. 하나같이 예수와 그의 주변 인물들이다. 이로 인해 캐머런 등은 이 무덤이 예수 가족의 묘가 틀림없다고 믿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예수와 막달레나가 부부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캐머런 등은 "유골함 내 DNA 검사 결과 예수와 막달레나 사이의 혈연 관계는 전혀 없다는 게 밝혀졌다"며 "이는 이들이 부부였음을 시사하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성경 학자들은 "1세기 당시 예수와 마리아 등은 무척 흔한 이름이어서 속단할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석관이 묻혀 있던 예루살렘 남부의 동굴 무덤 입구. [AP=연합뉴스] 이에 캐머런은 "무덤에서 발견된 이름들이 흔했던 건 사실이나 성경에 나온 예수의 주변 인물들과 우연히 일치할 확률은 극히 적다"고 응수했다. 캐나다 토론토대 앙드레이 퓨어버거 교수는 "통계학적으로 문제의 무덤이 예수 가족의 묘가 아닐 확률은 600분의 1에 불과하다"며 캐머런의 주장을 지지했다. 한 미국 여기자가 "그 주장이 맞다면 예수가 승천했다는 성경 얘기는 어떻게 되느냐"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에 종교학자인 제임스 타보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예수에게는 영적인 신체와 육체적 신체가 공존해 있었을 것"이라며 "육체적인 부분은 남았으되 영적인 신체는 승천했을 것이므로 성경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주) 다빈치코드 : 다빈치 코드에서는 기독교 교회는 예수는 결혼하지 않았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였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비판하는 기독교도들도 이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 다빈치 코드의 비밀》(ISBN 8991124178)에서 저자 마가렛 스타버드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했던 것이 틀림없으며, 성배는 예수의 후손을 잉태한 막달라 마리아이며 남프랑스로 피신했다고 쓰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심각한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마가렛 스타버드 자신도 책 서문에서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설을 반박하기 위한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다가 자기 자신이 그 설을 믿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문제가 된 책은 《성혈과 성배》(ISBN 8954403425)이며, 이 책에 기반한 소설이 다빈치 코드다.
예수의 부활에 한 가장 과학적인 추론은 당시 레위 제사장의 딸과의 정략 결혼을 통해 엄청난 부자가 된 요셉이 로마 당국에 뇌물을 주고 골고다로 이동 중 사람을 구스 사람 시몬으로 바꾸고 예수는 뒤로 빠진 것이 분명하다. 사흘 후 다시 나타나 제자들에게 보린 예수는 죽지 않은 예수에 불과하며 마리아는 이 연출에 끝까지 조연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라. 예수의 공생애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는 그가 공식적인 사역을 한 3년 반의 기간 중 사역 기간을 말한다. 예수의 공생애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대단히 크다 서양인들은 단순히 그들의 모든 죄악을 해결하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데 해줄 메시아가 나타난 것이지만 사실은 인본주의 하나님을 그들에게서 쫒아 내기 위해 자연주의 하느님이 오신 것이다 예수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비롯하여, 그 이름을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당시 하느님,
중동 발음으로는 아누님을 거룩하게 부르지 않고 여호와 또는 수메르의 전쟁승리신인 말뚝 신인 멜기세덱만 거룩하게 부르는 유럽인들을 경계하신 기도문이고 공생애에서 거의 모든 교훈, 비유, 기적인 “들에 핀 백합화”, 치료은사, 포도주로 결혼 축복, 마음이 복이다(산상 수훈). 병 고침, 물 위를 건느심, 오병 이어, 칠병 이어의 기적, 부자에 대한 비난, 죽은 자를 살리심 등등“은 모두 당시 인간이 만든 로마의 제도나 유대인의 법규에서 온 것이 아니고 자연을 예를 들어 말 한 것이다. 그럼에도 유대인들과 백인들은 예수를 자신들의 신인 대문자 갓(God)이나 자식과 재물을 많이 주는 재물의 하나님으로 이름을 바꾸어 성경을 기록하고 후대에 전하여 신약의 하느님도 유대인의 돈과 백인들의 인본주의의 하나님과 혼합되게 만들었다. 한 번 상상해 보라 유대의 나사렛에 어떤 신비스러운 청년이 나타나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병자를 고치고 죄를 사해 주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고 오천 명을 먹이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했고 자신은 하느님에게서 왔다고 말했고 이 소식이 부근 마을에 두루 퍼져 나갔음을 상상해보자 물론 유대교의 실권을 쥐고 있는 래위인들은 그를 죽이려 했고 결국 죽이고 말았으나 그에 대한 경외심과 그의 말은 서민들에게 힘이 있어 측근들을 통해 자꾸만 퍼져나갔다.
즉 예수에 관한 이러한 소문은 유대를 중심으로 기워 후 33년 이후 지중해 지역에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약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이 신약에서 예수의 공생애만 믿을 수 있고 나머지는 이러한 현상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보태거나 빼거나, 추가한
-1. 예수를 따르던 기독교인들과
-2. 예수를 유대인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구약을 신약에 추가하거나 예수의 모든 행적이 구약에 이미 예언되어 있다고 신약을 조작한 레위인들과
-3. 예수 믿는 현상을 국가 권력 유지, 강화에 이용하려고 정치적으로 묵인하고 이들과 합세한 콘스탄틴 등 로마 정권에 의해
조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공생애 부분에 기록된 그의 교훈, 비유, 이적들이다
1) 예수의 교훈
1.회개와 주께로 나아옴
2.복음을 믿음
3.거듭남
4.성령받음과 병고침
5.예수님을 따름
6.기도
7.믿음
8.성경에서 찾음
9.너희 빛을 비취라
10.그리스도의 재림
11.하나님을 향한 특별한 사랑
12.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의무
13.이웃에 대한 우리의 의무
14.탐욕
15.위선
16.온유
17.형제에 대한 우리의 사랑
18.온전한 사랑
19.죽도록 충성함
20.복음전파
21.지혜
2) 예수의 비유
등경 위의 등불(마5:14-15, 막4:21, 눅8:6,11:33)
반석 위에 지은 집(마7:24-27, 눅6:47-49)
낡은 옷에 붙이는 생베 조각(마9:16, 막2:21, 눅5:36)
낡은 가죽 부대에 담은 새 포도주(마9:17, 막2:22, 눅5:37-38)
두 명의 빚진 자의 비유(눅7:41-43)
표적을 구하는 자의 비유(마12:38-45, 눅11:16, 24-32))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눅12:16-20)
혼인 잔치의 비유(눅12:36-38)
지혜로운 청지기 비유(눅12:42-48)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비유(눅13:6-9)
씨뿌리는 자의 비유(마13:3-9, 막4:3-20, 눅8:4-15)
알곡과 가라지 비유(마13:24-30)
겨자씨 비유(마13:31-32, 막4:31-32, 눅13:18-19)
누룩 비유(마13:33, 눅13:20-21)
감추인 보화 비유(마13:44)
값진 진주 비유(마13:45-46)
그물 비유(마13:47-51)
잃은 양의 비유(마18:12-14)
무자비한 종의 비유(마18:23-35)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10:25-37)
밤중에 찾아온 친구 비유(눅11:5-13)
선한 목자의 비유(요10:1-17)
좁은 문 비유(눅13:23-30)
큰 잔치의 비유(눅14:15-24)
잃은 양의 비유(눅15:1-7)
열 드라크마 비유(눅15:8-10)
돌아온 탕자의 비유(눅15:11-32)
불의한 청지기 비유(눅16:1-13)
부자와 나사로 비유(눅16:19-31)
종의 의무 비유(눅17:5-10)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눅18:1-8)
바리세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눅18:9-14)
포도원 품 군의 비유(마20:1-16)
므나의 비유(눅19:13-25)
두 아들의 비유(마21:28-32)
악한 농부의 비유(마21:33-41, 막12:1-9, 눅20:9-16)
혼인 잔치의 비유(마22:1-14)
열 처녀의 비유(마25:1-13)
달란트 비유(마25:14-30)
양과 염소의 비유(마25:31-46)
참포도나무 비유(요15:1-11)
3) 예수의 이적
문둥 병자 치유: 갈릴리 지방: 마 8:2,3; 막 1:40-42; 눅 5:2,13
베드로의 장모가 치유된 직후 예수님 일행을 섬김 마 8:14,15; 막 1:30, 31; 눅 4:38,39
중풍병자 치유: 친구들의 믿음과 우정, 열정이 강조되고 주님의 죄 사하시는 능력이 강조됨 마 9:2-7; 막 2:3-12; 눅 5:18-25
혈루병 앓는 여자 치유: 예수를 향한 여인의 간절한 심정 강조 됨 마 9:20-22; 막 5:25-29; 눅 8:43-48
두 소경 치유: 마 9:27-31
한 편 손 마른 자 치유: 안식일 논쟁을 야기시킴 마 12:10-13; 막 3:1-5; 눅 6:6-10
바디매오와 다른 한 소경 치유: 마 20:29-34; 막10:46-52; 눅 18:35-43
귀먹고 벙어리 된 자 치유 마 15:29-31; 막 7:31-37
벳새다의 소경 칭 : 막 8:22-26
고창 병 든 자 치유: 눅 14:1-6
열 문둥 병자 치유: 치유된 자 중 한명만 예수님께 돌아와 사례함
눅 17:11-19
귀 잘린 말고 치유: 눅 22:50,51
왕의 신하의 아들을 보지 않고도 말씀으로만 고쳐주심 요 4:46-54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 오래된 질병도 단숨에 고치심 요 5:1-9
나면서 소경된 자도 고치심 요 9:1-41
정신적 질환 치유 및 축사(逐邪): 돼지 떼 몰사 사건이 뒤따라 일어 남 마 8:28-34; 막 5:1-15; 눅 8:27-35
귀신들린 벙어리 치유: 마 9:32-34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 치유: 바리새인들의 비방을 받음 마 12:22; 눅 11:14
가나안 여자(이방인)의 딸 치유 마 15:21-27; 막 7:24-30
간질하는 소년을 변화 산 근방에서 아비의 믿음을 보고 치유해 주심 마 17:14-18; 막 9:17-29; 눅 9:38-43
회당의 귀신들린 자, 귀신들이 예수를 알아봄 막 23:26; 눅 4:33-35
꼬부라져 펴지 못하는 여인 18년 된 귀신을 단숨에 쫓으심 눅 13:11-13
4) 자연 현상에 대한 이적
갈릴리 호수 풍랑을 잔잔케 하심 마 8:23-27; 막 4:37-41; 눅 8:22-25
갈릴리 호숫가에서 오천 명을 먹이심 마 14:15-21; 막 6:35-44; 눅 9:12-17; 요 6:5-13
갈릴리 호수의 물 위를 걸으심 마 14:25; 막 6:48-51; 요 6:19-21
사천 명을 먹이심 마 14:25; 막 6:48-51
가버나움에서 물고기 입속에서 돈을 꺼냄 마 17:24-27
예루살렘에서 무화과 나무를 마르게 하심 마 21:18-22; 막 11:12-26
갈릴리 호수에서 제자들로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심 눅 5:1-11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 요 2:1-11
부활 후 갈릴리 호수에서 많은 물고기 잡게 하심 요 21:1-11
가버나움의 야이로의 딸을 사망에서 구하심 죽음을 잠으로 묘사하심 마 9:18-25; 막 5:22-42; 눅 8:41-56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 눅 7:11-15
베다니에서 나사로를 살리심 요 11:1-14
마. 공관복음의 정경화 과정
초기 기독교도들에게 있어서, 예수의 어린 시절이나 예수의 출생 장소 혹은 출생 방법들은 전혀 불필요한 것들이었다. 지구의 종말은 곧 올 것이었고 전달자 예수는 그 사실과 살아 있는 동안 오게 될 새로운 세계를 준비하라는 것을 경고했을 뿐이다. 예수의 계시적 메시지와 회개하고 주를 기다리라는 지시를 감안할 때, 누구의 후손이라는 전기는 그다지 불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구전에 의해 예수의 가르침이 짤막하고 간결한 pericopes(짧은 경구)로 보존되었고, 예수의 추종자들은, 당시에 일어난 묵시적 운동의 특성 때문에 처음에는 그것들을 적어 놓는 것에 대해 별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자, 위기를 느끼기 시작한 초기 기독교도들은 그동안 간결한 pericopes(짧은 경구)로 전달되었던 예수의 가르침이 하나씩 모아져서 신약성경이 형성되게 한다.(신약성경은 기원후 1세기 이후에나 등장함. 가장 빨라도 기원 후 90년 이전에 등장하지는 않았음) 구전으로 전승되던 짤막한 예수의 가르침의 조각들이었기에, 예수의 가르침이 우선이지, 그의 출생 같은 것은 언급이 없었다. 이러한 점은 공관복음서인 마가복음에서 볼 수 있다. 당시 마태복음은 그 당시 초대교회 사람들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복음서들이었으며 마가복음이 가장 많이 퍼져 있었다. 예수의 재림이 계속 미루어지자, 계속해서 등장하는 개종자들과 로마제국의 탄압에 그때부터 복음서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헬레니즘의 로마제국 내에 전파하기 위해서 그들의 신과 같은 것들을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사실상, 히브리의 가르침에는 메시아가 동정녀에게서 나야 한다는 조건을 달지 않았다. 이사야서 역시 위에서 언급했지만, 젊은 여인이 메시아를 잉태한다고 적혀있는걸, 고의적으로 처녀가 잉태했다는 그리스 판 70인 역을 인용했다. 결국 초기 기독교도들은 유대인들에게 전도한다는 방침에 등을 돌리고 예수를 이방인들에게 소개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가장 많이 알려진 마가 복음은 요르단 강의 세례자와 예수가 거기에서 세례를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리스인 그리스도교도들 사이에서 유포되었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초기 버전들도 역시 세례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예수를 이방인들의 신과 동등하게 만들기 위해 예수의 생애를 그리스의 구세주들처럼 손질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마가복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고 유포되어 있었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의 어린 시절 전기를 추가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마태복음의 처음 두개의 장과 누가복음의 처음 세 개의 장은 이교도들의 신비 종파의 신들과 같이 신성하게 태어난 구세주 신만을 받아들이려는 그리스 화 된 사람들에 의해 2 세기에 추가되었다. 그러나 두 복음서에 서로 독립적으로 글을 추가되면서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그들은 사소한 내용에서는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 예수의 족보가 두복음서가 천차만별을 보이고 있고,
마태복음에 따르면 천사는 요셉에게, 누가복음에 따르면 마리아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천사 가브리엘의 마리아의 임신선언은 누가복음에는 마리아가 임신하기 전에, 마태복음에는 그 후에 나타난다. 또, 마태복음의 이사야서의 인용은 고의적으로 70인 역을 인용했을 뿐만이 아니라, 이사야서의 본문만 가지고서는 그 구절이 예수에 대한 예언이라는 사실은 근거가 없다. 이사야는 특별히 예언자가 아하스 왕에게 이야기하고 있고 그에게 시리아와 에브라임이 유대와 전투를 벌이지 않게 될 것임을 확신시키면서 시간과 장소를 언급한 것이다.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지금은 동정인 한 여인이 곧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시간이 되면 정치적인 힘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구절일 뿐이다. 마태복음의 기자는 예수의 동정녀 출생의 구약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70인 역을 인용하고,
이사야의 구절을 맥락에서 잘라내어 예수의 동정녀 출산을 통해 성취된 예언이라는 식으로 끼워 맞춰 버린 것이다. 우리는 그 어린아이가 아직 아기일 동안에 다마스커스의 보화와 사마리아에서 빼앗은 전리품이 아시리아에 의해 약탈될 것이라고 한 점에서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하는 이사야 8장3~4절에서 맥락이 잘렸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침략과 그 결과인 노획은 기원전 7 세기에 실제로 일어났다. 결국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의 탄생이 후에 덧붙여졌으며, 헬레니즘의 로마제국 내에서 쉽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예수의 동정녀탄생에 대해서 셀수스(Celsus, 기원후 180)와 같은 이교도 철학자들이 초대기독교도들을 공공연히 비난하기도 했는데, 셀수스는 예수의 동정녀 출생 설화 뒤에 담긴 동기를 간파하고 이교도 구세주 신들을 모방하기 위해 예수가 동정녀 출생을 했다고 한다며 그리스도교인들을 비난했다. 첼수스의 신랄한 비난에 기독교도의 변명은 방어적인 자세를 완전히 벗어 던지지 못했다.
유세비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초기 교부들은 예수를 이교도 신들과 비교하거나 강하게 대비시키면서, 만일 예수가 거짓이라면, 미트라와 헤라클레스도 그렇다고 주장하였다. 이 시기 동안,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은 여전히 이교도적 뿌리에 매달려 있었고 어째서 자신들의 신이 미트라, 디오니소스, 혹은 기타 그리스나 로마 신들과 동등하게 간주되지 말아야 하는 지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보수적인 위치에서(conservative status quo position) 기독교에 반대되는 주장을 펴던 로마 비평가들과 신플라톤주의 철학자들은 어째서 기독교도들이 자신들의 신을 지위가 확인된 그리스, 로마신들의 표준적인 레퍼토리를 가진 신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기를 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구세주 신이 동정녀 출생이라는 이교도적 생각은 매우 완고했다. 그러한 이야기(동정녀 출생)가 종교적인 파벌들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준 한 가지 요인은 Gilbert Murray가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교의 구세주 신들이 종종 동정녀 출생임을 지적했다. 아버지 신이 인류에게 구세주인 자신의 아들을 주는데, 이는 여신이나 인간을 임신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 하지만, 인류의 위대한 구세주를 출생을 위해서 임신은 육욕적인 관계를 갖지 않고 행해져야만 했다. 그래서 이오는 신성한 손위에 누움으로써 임신하게 되었고, 다나이는 황금빛 태양광에 의해 임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디에서도 공관복음의 가필이 심하게 뿌리내렸던 그리스-로마 세계에서처럼 동정녀 출생이 강하게 강조되지는 않았다. 동정녀 출생의 교리는, 그것 없이는 어떠한 예언자나 구세주 신도 신성하게 수태될 수 없기 때문에, 그것 없이는 어떠한 종교의 설립자도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불가능했고, 그래서 고대 종파들 가운데에서 그토록 흔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예수가 태어났다는 동정녀 출생은 나중의 이교도인이 첨가한 것으로, 그리스도교의 구세주를 추가로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유일한 목적에서 가필된 것이다. 유태인들에게 이단으로 배척받았던 초기 기독교도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이방신들의 특성과 사건들이 자신들의 구세주에게도 일어났다고 함으로써 그를 숭배할만한 가치가 있는 신으로 전통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외경인 도마 복음에서도 예수의 설교중 한 여성이 다음과 같이 외쳤다.
당신을 지니고 있던 자궁과 당신을 먹여 주었던 가슴들은 축복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과 그것을 진실하게 지키는 사람이 축복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임신하지 않았던 자궁과 젖을 내지 않았던 가슴들은 축복받았습니다라고 하게 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Nag Hammadi, Gospel of Thomas, II, 2, (79)) 복음서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마가복음은 예수가 유태인 메시아이며, 다윗과 같은 메시아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성행위에 의해 태어났음을 이야기한다. 다윗의 아들이 와서 재림을 이루고 왕좌에 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던 영지주의적인 금욕주의 교파들은 그가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마가복음이 기반을 두고 있는 그 이전 문헌들은, 예수가 그곳이 아닌 나사렛의 갈릴리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공관 복음들 중에서 마지막 두 개, 마태복음과 누가 복음은 예수의 출생을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림으로써 마가복음의 실수를 바로잡으려 시도한다.
메시아에 대한 유태인들의 기대에 전혀 무관심했던 요한복음은, 오로지 그로 말미암아 군중 가운데에는 분열이 생겼다[요한 7:43]면서 소개한 갈등의 원인을 위해서 예수를 다시 나사렛으로 돌려놓았다. 이 갈등은 예수가 태어났을 때 나사렛이라는 이름의 마을이 갈릴리에 없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사소한 것이었을 것이다. (현재의 나자렛은 예수의 출생지라는 소식이 유명해 진 후 기원후 3 세기경에 세워졌다.) 예수를 나사렛과 연관짓는 이러한 기묘한 주장은 그리스도교의 구전보다도 오래된 것이며 태양 숭배의 한 형태를 수행하고 있던 에세네파와 같은 묵시적 집단 사이에서 전해지고 있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를 태양신으로 간주한 것일 수 있다. 나자렛은 히브리어에서 (12궁도의) 열 두 표식인 Nazaroth과 상당히 유사하게 만들어진 말이다. 어근이 된 동사 nazar는 둘러싸다는 의미이며, 이는 매일 밤 머리 위를 지나치는 12궁도의 열두 별자리들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22] 욥은 자신의 인간적 한계와 야웨의 거룩한 천계의 힘을 깨닫게 되었고, 야웨는 맹렬한 사막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그에게 이야기를 한다. 너는 좀생이를 끈으로 묶을 수 있느냐,
또 오리온자리를 매단 밧줄을 풀 수 있느냐? 너는 열 두 궁성(Nazaroth)을 제 철에 이끌어 낼 수 있느냐?[23] 이 이론은 플리니우스가 에세네파라고 한, 사해 근처 쿰란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전통적인 태음력에 기초를 둔 유태교의 달력이 아니라 태양력에 기초를 둔 달력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지지된다. 소 플리니우스는 112 CE에 Trajan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교도들은 새벽녘에 만나는, 그리스도 quasi deo(그리스도, 마치 그가 신이라는 듯이)를 존중하며 찬가를 부르는 무해한 사람들로 보입니다하고 보고했다. 참고삼아 덧붙여 말하면 1 세기 모든 문서들은 십자가 얘기가 나와도 배반자 "가롯 유다"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예수는 열 세 살까지 요셉의 두 번 째 부인으로 들어간 마리아의 사생아로서의 삶을 계부인 목수 요셉 밑에서 장자 노릇을 하면서 레위인 외가의 보호 아래 고단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사. 공관복음 바로 보기
1) 개요
공관 복음을 바로 읽기 위해서는 우선 객관적으로 “예수”라는 사람이 메시아로서의 삶을 살았는가 하는 부분을 밝혀야 하고 그 다음에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신약의 내용 중 이 예수의 메시아적 삶을 어떤 인간적인 목적으로 빼거나 첨가하거나 조작한 부분이 없는 지를 확인하고 수정한 사람들과 그 목적을 확인하여 진실된 부분만 찾아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밝히는 것이다.
2) 기록에 대한 반론
가) 우선 공관복음의 명칭과 순서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예수와 함께 3년 반 동안 공생애를 산 사도 요한의 증언은 무슨 신학이라고 하면서 복음서의 맨 부분에 두고 동생 야고보, 12제자 중 한 사람 유다, 수제자 베드로의 글은 짧게 한 귀퉁이에 별 볼일 없이 정리하고 배치했는가? 하는 것이다.
나) 둘째는 공관복음서의 저자가 요한을 빼고 모두 왜 바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며 모두 레위인일까? 하는 점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레위인은 모세 종교의 주인들로서 농사, 병역, 납세 의무를 면책 받으면서 영원히 제사장, 서기관, 회당 장, 가르치는 일(랍비, 레위, 라오니, 선생)의 특권을 가진 자들이고 특히 십일조를 굴리고 돈을 관리 축적하여 이스라엘의 왕권 보다 우위의 정치 권력과 함께 경제 권력을 독점해 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바로 성전 공사 노동자들(자유 석공 조합 소위 현대의 프리메이슨)을 만든 사람들이다
다)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왜 예수와 만난 적도 없는 바울이 자칭 사도가 되고 그가 신약 27권 중 13권을 쓰고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 중 레위인들이 쓴 복음서가 요한복음보다 우선이 되어 앞 부분에 자리 잡았을까? 하는 점이다.
이러한 의문을 전제로 하면서 신약 성경의 진실을 파 해쳐 본다. 요약하면 신약 성경 중 예수의 공생애만 진실이고 나머지는 아래 사람들이 조작하고 가감한 것으로 보인다.
-가.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
-나. 바울과 레위 등 예수를 그리스도화 하여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려고 한 사람들
-다. 예수의 인기를 이용하여 지중해 연안을 안정시키고 통일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콘스탄틴 등 로마 정치가들
다) 예수의 기록 중 조작된 부분
이 부분을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그의 행적에 관한 연상이 필요하다. 즉“ 로마의 압제에 시달리던 어느 날 이스라엘 갈릴리의 어느 마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빈들에서 오천 명이 먹을 떡과 물고기를 만들고, 물 위를 걷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이한 청년이 나타났다. 자연히 따르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를 믿는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전체 지중해 연안으로 퍼져 갔다. 이에 당황한 레위인들은 처음에는 그를 레위의 제사장 중 한 명으로 취급하여 그를 랍비, 또는 라오니, 선생이라고 부르게 했다가 나중에 그가 반 레위를 지칭하는 반 율법, 반 부자주의자라는 것을 알고 그를 로마 정권에 고발하여 죽여버린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를 믿는 무리가 전 지중해 국가들로 많아지자 그의 덕으로 유대교와 유대인도 살리고 돈도 계속 벌어보자 라는 욕심으로 머리 좋은 지식인 중 개종자 중 한사람인 바울을 나중에 용납하고 바울의 친 레위성을 이용하여 레위의 부와 교권을 용납하는 범위에서 로마 권력과의 결탁을 묵인 한 것이다. 그래서 신약은 실재 예수의 공생애를 빌미로 예수교인 들과 레위인들과 로마 정치권력이 만든 합작품으로 조작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진실된 부분: 공생애 3년, 죽음 등
2) 조작된 부분: 탄생(?) 피난, 사도 신경, 부활(?)
3) 없는 부분: 청소년기
그래서 신약에서 우선적으로 믿어야 할 부분: 베드로전후서, 야고보 서, 유다 서, 요한 복음, 요한 1, 2, 3 서, 요한계시록이고 신약에서 없어도 되는 부분은 등이다. 또 신약에서 참고해야 할 부분은 들이고 신약에 추가되어야 할 부분은 예수의 유년, 청년 시절이다. 이러한 판잔을 근거로 예수가 진실로 지구 인간들에게 와서 하고자 한 일이 무엇인지 종합해 본다.
사. 예수가 믿는 대상:
1) 예수의 하느님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아니다 삼신의 하느님이고 혈육의 아버지이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 6:9) 즉 하느님이 맞다. 서양 기독교와 서양 신학자들에 의해 변조된 하나님 즉 Only One God가 아니고 하늘에 계신 혈육의 아버지 Heavenly Father가 맞다. 그래서 성경은 하늘에서 “내가 오늘 날 너를 낳았다”(히 5:5, 시편 13:33)고 했고 또 하늘에 있는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눅 9:35)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성경을 번역한 로스목사의 성경에도 하느님으로 쓰여져 있고 2013 년 현재 천주교에서도 하느님으로 쓰고 있으며 애국가에서 하느님으로 쓰여 있다.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하늘님 즉 우주에 계신 우리를 낳은 하느님으로 우리 민족사의 시원(始原)인 그 하느님(한인)이 맞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은 우리 민족이 조상들이 지혜를 가지고 현대 과학이 진화론 적으로 말하는 지구의 생성 과정이 우주에서 비롯되었음을 미리 알려준 것이다.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식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우리 민족의 하느님께서 1만년-7만 년 전에 인도에 힌두교를 통해 전하신 자신을 청년 예수의 인도 수행 중에 나타내시고 중동과 서양인들을 위한 메시아 역할을 우선 하시도록 역사 하신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단군 상 건립에 관한 기독교 내부의 시비는 이러한 관점에서 보고 단군을 제사장으로 여기면 될 것이다.
* 하나님: 최고자(God)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호칭들 중의 하나로, 만물의 창조자이자 주재자를 말하며 천주교나 한국의 애국가에는 하느님으로 되어 있다.
* 존 로스 목사(John Ross, 1841-1915)
1841년 8월 9일 스코틀랜드, 닉(Nigg)에서 출생하여 글래스고우 대학을 졸업하고, 1862년 에딘버러 연합장로교회신학교를 졸업. 1872년 목사 안수를 받고 만주로 파송, 그 곳에서 조선어로 성경을 최초로 변역 1882년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간행되었고, 1887년에 이르러 <예수셩교젼서>라는 이름의 신약전서가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만주 선교의 혁혁한 공로자인 로스 목사는 한국에 주재한 선교사는 아니었지만 한국 선교의 개척자이다.
2) 예수의 하늘 나라:
예수의 하늘 나라는 아버지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드리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 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는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풀들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 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아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네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태복음6:24~34) 예수의 하늘 나라는 자연주의 하느님이 다스리는 세상으로 소위 4대강 문명 이후 인간이 하나님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와 다르다. 배가 고프면 열매나 과일을 먹고, 물고기를 잡거나 동물을 사냥하는 죄를 모르는 삶을 사는 나라를 말한다. 마치 조선(朝鮮)처럼 말이다. 조선이라는 말의 뜻이 해를 두고 땅과 하늘을 연결하면서 제사를 지내고 백성들은 물가에서는 고기를 잡고 육지에서는 가축을 기르는 나라라는 뜻으로 어디를 보아도 강의 물(물水)이나 농사라는 말이 없다.
그래서 인간의 전쟁이나 집성농사를 위한 집단 생활을 하느님은 죄로 여기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6) 홍수로 심판하신 것으로 보이며 우리나라에는 아예 쓸어버리는 수단을 지금도 비를 움직이는 자루라고 해서 빗자루라고 하는 단어가 남아 있다.
선과 악도 그래서 생기는 괴로움도 모두 인간이 만든 세상 살이에서 오는 것으로 인간의 욕심이 만든 것이나 성경에서 모세는 이를 하와와 아담의 원죄로 돌렸고 고대에 인간 문명(메소포타미아)이 자초한 것임을 간과하였다. 예수의 하늘나라는 천국이다. 천국은 영생하는 곳으로 이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고 마음 속에 있는 것이며(눅 17:21)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계 21:4)
여기서 마음을 강조한 것은 불교 법화경의 무념(無念) 사상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예수의 하늘나라는 영생이다. 기독교의 영생은 곧 영원히 사는 것으로 천국과 상통한다. 예수는 제자들을 데리고 변화산상에 올라가서 실제로 빛나고 흰옷을 입고 살아 있는 고인(故人)들(모세와 엘리야)의 모습을 베드로, 요한, 야고보에게 보여 주었다. 이러한 천국의 모습은 우리 민족의 고대 수명인 일천 년(1996년 미국인 일본 미술사학자 카터 코벨의 만주인골 유전자 검사 결과 참조)과 차이가 있으나 이는 예수의 천국은 인간의 집단 생활을 전제로 사람이 죽으면 영원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아 희게 빛으로 보이는 상태를 보여준 것 같다. 요한계시록의 천국에서도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다) 예수의 아버지의 나라
1. 예수의 아버지의 나라는 을 찾아 해매는 목자의 나라이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마태 18:12-13)
2. 예수의 아버지의 나라는 배반하고 나간 아들을 맞아주는 아버지의 나라로써(눅15장) 품 군 만 있지 종은 없는 인본주의 4대 농경문명이 아니고 그 이전 가족끼리 자연의 삶을 사는 나라이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눅 15:19) 하고
3. 예수의 아버지의 나라는 주인은 없고(하느님이 주인) 청지기만 있는 나라이다.(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눅 16:2 등 전체 신구약에서 9회 인용)
4. 예수의 아버지의 나라는 예수가 하나님 안에 내가 예수 안에 있는 나라이다.(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14:20외 10회 인용)
5. 예수의 아버지의 나라는 예수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인 한 생명으로 연결된 나라이다.(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6. 예수의 아버지의 나라의 지상의 예표는 계급이 없고 홍익인간, 제세이화를 국시로 한 고조선(古朝鮮) 이다. 다른 점은 고조선의 하느님은 인간 문명을 인정하지 안으신 반면 예수님은 이를 인정하신 것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는 것은 이러한 공통적인 하느님을 가지고 있어온 때문이고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한국인을 통해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전 세계에 전파하라는 뜻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고대의 제사장 나라 조선을 조선의 한 가지인 아리안 족으로 예수의 하느님을 믿도록 하여 이들을 통해서 한국을 인본주의의 극치(북한 침략)에서 구한 뜻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인 것이고 그 징조가 지금 2013년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소 결론: 예수의 하느님은 불교를 모르면 알 수 없고 불교는 삼신사상을 모르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