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병 없애고 스트레스까지 날려”… 산행·산책 크게 늘고 지압보도까지 등장
서울 수서경찰서 청문감사관(민원 및 감사 담당) 최동선(崔東善·54·서울 강동구 길2동)씨는 매일 아침이면 ‘맨발의 청춘’이 된다. 5년째 주말뿐 아니라 출퇴근 때에도 맨발로 관악산, 구룡산 등을 오르내리는 것이다. 양손에 등산화 한 짝씩, 운동복 차림으로 집을 나서는 최씨는 구룡산에서 한시간 동안 1만보 가량(약 8km)을 맨발로 뛰어다닌 뒤 내려와 경찰서에서 샤워를 한다.
“맨발로 뛸 때의 무상무념(無想無念), 뛰고 나서의 성취감이 내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루만 맨발 산행을 쉬어도 좀이 쑤실 정도가 됐습니다.” 이 덕분인지 최씨는 마라톤 풀코스를 3년 새 22회 뛰었을 정도로 건강에 자신이 넘친다고 말했다. 그동안 발가락 관절을 다치거나 캔 뚜껑, 유리조각에 발을 벤 적도 없지는 않았다. 지금은 산행시 집게와 비닐봉투를 들고 다니며 병조각 등을 줍는다. 그는 “맨발 산행을 하면 땅의 기운을 흠뻑 받는 기분”이라면서 무좀과 허리 아픈 것이 나았다고 했다.
마음껏 자유로움 만끽
최근 ‘맨발 인생’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주말이면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등 수도권 지역뿐 아니라 걷기 좋은 산길이면 어디에서나 맨발로 거니는 부부나 중년층 산행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또 도심에는 맨발 보행자를 위한 지압보도도 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추세에 맞추어 맨발을 위한 산업도 덩달아 발전하고 있다.
충남 천안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박종률(朴鍾律·55·천안시 대흥동)씨도 10년째 맨발 산행을 즐기고 있다. 2년간 주말을 이용해 백두대간 종주를 했을 때에도 맨발이었다. 요즘은 맨발로 인근의 태조산을 즐겨 찾는다. 그는 “어느 날 등산화가 너무 갑갑한 기분이 들어 신을 벗은 뒤로 맨발 등산 습관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엔 돌부리에 부딪치고 가시에 찔리는 등 다친 적도 있었지만 어느 새 익숙해졌다고 한다.
제일 염려스러운 건 파상풍. 박씨는 그럼에도 “발에서 느끼는 자유스러움과 가뿐한 감촉 때문에 맨발 산행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한다.
“양지를 밟을 때와 음지를 밟을 때의 느낌이 다릅니다. 낙엽이나 풀을 밟을 때의 부드러운 느낌에 스트레스가 절로 풀립니다.”
세무사 박동선(朴東宣·62·서대문구 홍제동)씨도 맨발 산행파. 위궤양 때문에 시작한 산책이 맨발산행으로 바뀐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등산화를 배낭에 넣고 맨발로 전국의 명산을 누볐다. “이제는 등산화를 신고 다니면 발이 너무 뜨겁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박씨는 “호기심 반 부러움 반의 시선을 종종 받는다”면서 “같이 산에 다니는 사람에게는 조금씩이라도 맨발로 산길을 걸어보라고 권유한다”고 말했다. 맨발로 걸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활력을 얻고 잔병들도 없어졌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소감이다.
아이들 지능·정서 개발에도 좋아
맨발 산행의 유행과 함께 최근 도심에는 맨발 보행자를 위한 지압보도(步道)가 등장했다.
시내 공원의 산책로 중 일부가 지압보도로 바뀌거나, 아예 개장 이전부터 지압보도를 고려해 설계되는 것이다. 지압보도는 지난해 7월 서울 여의도공원과 영등포공원을 시작으로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작년 9월에는 보라매공원과 용산가족공원 내에 맨발코스가 들어섰다. 올 9월쯤엔 남산공원에 맨발코스가 만들어질 전망이다.
영등포공원관리소에서 근무하는 안순호씨는 “건강지압 효과를 몸소 느껴보려는 시민들이 아침 운동 시간에 공원의 맨발코스를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평일 아침 이용객은 약 300명 정도. 여름엔 저녁 나절에 더 붐빈다고 한다. 보라매공원의 경우나 공원 인근에 주택가가 들어서 있는 영등포공원, 용산가족공원도 마찬가지다. 여름에는 선선한 초저녁에 운동하는 시민들이 몰린다. 여의도공원 같은 경우는 평일 점심 무렵에 직장인들이 짬을 내 맨발코스를 즐긴다. 이 공원들에 설치된 200m 안팎의 ‘맨발 길’엔 호박돌, 해미석, 화강암, 목재, 자갈 등이 바닥에 깔려있어 맨발이나 양말을 신은 채로 지압효과를 만끽할 수 있다.
이제 ‘맨발 캠페인’도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한 달에 하루를 ‘아무 것도 안 사는 날’, ‘시계 안보는 날’ 등으로 정해 캠페인을 벌여왔던 환경잡지 ‘작아’(‘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준말, 녹색연합 발행)는 5월 중 하루를 ‘맨발로 흙 밟는 날’로 정해 본격적인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환경·자연친화적 삶, 소박한 삶의 문화를 몸소 실천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아’는 오는 5월 5일 어린이날 경기도 가평군에서 유기농법 포도밭을 찾아 독자들과 함께 자연과 땅이 어떻게 만나는지 몸으로 체험하는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대전과 광주에서는 나물 캐기와 맨발 밟기 행사를 벌일 예정이다. ‘작아’ 관계자는 “갈아엎어 놓은 부드러운 흙을 밟으면서 꿈틀거리는 봄기운과 생명의 호흡을 느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발에 대해 새삼스런 관심이 몰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발의 형태를 전문적으로 연구해 ‘발박사’로 불리는 이영숙(51·전남대 의류학과) 교수는 진화론으로 설명한다. ‘인류가 물에서 뭍으로 올라왔다’는 이론을 지지하는 이 교수는 “인간은 처음엔 네 발로 기어다니다가 두 발로 똑바로 서서 걷게 되고, 성적 기능과 걷기 기능이 퇴화하면서 지팡이에 의지해 세 발로 걷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 이 교수는 “하이힐을 신지 말라, 손발로 기는 운동을 하라, 운동화는 맨발로 신어라, 꼭 좋은 신을 신어라…”고 권했다. “요즘 아이들과 젊은 여자들은 구두를 잘못된 방법으로 신거나, 걸음 습관이 나쁘거나, 발 자극이 적어 엄지 발가락이 휘는 등 부작용을 겪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아이의 지능과 정서를 개발하는 데도 발에 자극을 주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맨발로 걸을 경우에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발 전문가들에 따르면 맨발 산책은 훌륭한 운동이긴 하지만 당뇨가 있는 사람에겐 위험하다. 맨발에는 부드러운 황토나 흙, 풀밭이 좋다. 무엇보다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유행성 출혈열도 요주의 사항. 사소한 상처라도 적절하게 소독하고, 발을 씻고 말리는 것이 중요하다.
발에 대한 전반적 관심 고조와 함께 발 관리산업도 크게 발전하고 있다. 피부관리학과나 미용학과 등 발관리 과정이 개설된 곳만 해도 대학 부설 사회교육원, 전문학교 등 전국에 50여개. 백화점들이 여는 문화센터에서도 발 관리 코스를 흔히 볼 수 있다. 사랑의 전화 등 봉사기관에서도 발관리자 양성 코스를 두고 있다. 전국에 문을 연 발 관리실은 약 500여개. 발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반영하는 사회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경기가 살아나면서 발 관리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고, 일본인과 미국 유럽 등지에서도 발 서비스를 받으려는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업체의 홈페이지나 광고 책자에도 일어와 영어를 병기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발 관리산업도 크게 발전
발 관리 업체에서 받는 발 관리 서비스는 먼저 굳은 살, 티눈을 제거하고 깨끗한 물로 씻은 다음 마사지를 하고 반사요법(지압봉으로 발의 특정부분에 자극을 주어 건강을 다지는 요법)을 받는 순서로 진행된다.
발에 대한 관심은 의료계도 예외가 아니다. 발 전문 의사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연세대 의대 재활의학과 전세일 교수는 “미국에는 족과의사(足科醫師·podiatrist)가 따로 있으며 의예과 졸업 뒤 족과대학 4년을 다시 이수해야 족의학 전문의로 인정받는다”면서 “국내서도 발만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의사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맨발로 즐길 수 있는 곳
●과천:서울대공원 내 산림욕장(02-500-7351)
●&경기도 안양:수리산 산림욕장(0343-467-4511) 안양9동 병목석탑에서 안양6동 한마음 약수터까지
●전남 담양:대나무 테마공원(0684-383-9291)
●&경남 창원:용호동 용지호수공원(0551-280-2511) 6월쯤 완공 계획. 산책로를 걷고난 뒤 발을 씻을 수 있는 시설과 숲 그늘 조성 예정
●&경남 거제:학동몽돌해수욕장(0633-553-2206) 흑진주 같은 몽돌이 해변에 깔려 있다
●&전남 진도:영등제(0632-544-0151) 바다가 갈라진 뒤 고군면 회동마을과 의신면 모도 사이에 드러난 뻘밭 걷기
●&전남 신안섬:우이도 돈목해수욕장 옆 모래산(0631-278-1866) 사막 같은 모래산을 맨발로 오르내릴 수 있다
●&경기 성남:중원구 금광동 남한산성 산림욕장(0342-729-5341) 산림욕장 안의 성천약수터를 중심으로 맨발로 걷는 숲길이 있다
●충북 충주:상모면 수안보 건강 산책로(0441-850-5703)
◈집 안에서의 발 관리법
●매일 꼼꼼하게 잘 씻어라. 발문제의 절반이 해결된다.
●&발에 신선한 바람을 선사하라. 안되면 헤어드라이어로 발에 바람이라도 쏘여주라.
●집에서는 가능하면 양말을 벗고 다녀라.
●&눅눅해진 커피나 차로 우려낸 물로 발을 닦아라. 냄새가 제거된다.
●&땅바닥, 풀, 흙을 밟아라. 대뇌가 자극을 받아 집중력이 높아진다.
●낮은 신을 신고 산보를 즐겨라.
●&신이 언젠가 작아져 잘 안맞는다고 느낀다면 건강에 이상이 온 것이다. 피가 정체돼 발이 퉁퉁 부어 신이 작아졌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가족끼리 서로 발 마사지를 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로 발을 만져주면 친근감이 더해지고 가족의 건강도 지킬 수 있으니 일석이조. 발 마사지는 특히 고3 수험생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발 관리전문가 김수자씨
“가죽 신발은 발의 敵”
발 관리전문가 김수자(金洙子·47·김수자 발관리실 대표)씨는 90년대 중반 이후에야 발이 관심거리로 떠오른 이유로 식생활 수준 향상을 들었다. “소득 1만달러 이하일 때는 발에 신경을 쓸 수가 없어요. 더구나 맨발로 걷는 농경사회에선 발에 대해 별도로 관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김씨는 이집트 왕릉의 발 마사지 그림을 보여주면서 발에 대한 관심은 귀족문화의 소산이라고 말했다. 발 관리사와 발 관리업체가 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영양 섭취가 늘어났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우리 몸의 피가 혈관을 통해 가장 멀리 가는 곳이 발이다. 발까지 내려간 피가 다시 심장으로 되돌아오기 위해선 발에 자극을 줘야 한다. 그래서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은 운동 부족과 지나친 영양 섭취로 발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는 것이 김씨의 진단이다. 심장에서 뿜어 나간 피가 다시 돌아오게 되는 혈액 순환 과정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심장에서 나갔던 혈액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으면 소화불량, 불면증 등 여러 이상이 오게 된다고 한다.
발 문제를 일으키는 두 번째 주범으로 김씨는 가죽신을 들었다. 짚신을 신을 때는 발가락이 자유로웠지만 가죽신 안에서는 발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한다는 것이다. 발의 운동이 원활하지 못하면 성인병, 당뇨 등이 찾아올 수 있다. 당뇨병 환자의 경우 제대로 발 관리를 안하면 발에 합병증이 오기 쉽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인간의 발이 자연에서 멀어질 때 병원 문과 가까워진다는 법정 스님의 말은 지당하고 옳은 말씀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