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가는 싼 비행기편을 이용하는 나는 베이징과 상하이 공항에서 만 맨 돌다
이번에 2002년을 맞이하여 첨 중국을 가게 되었다.
일정이 긴 것도 아니고 중국을 횡단 한 것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듣던 강남 갔던 제비 왔다는 그 강남 상하이, 항저우(항주), 쑹저우(소주)를 다녀왔다.
권총각은 내가 이 곳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로 일하는 조선족이다.
그를 보면 내가 애국자가 된다.
왜냐...
우리나라의 민족성이 얼마나 질긴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 총각에 대한 애정을 가지는 가는 그 없이는 내가 알게 된 중국을
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만주생으로 할아버지가 경상도에서 일제시대에 이주한 중국인 3세이다.
그의 전형적인 둥근 얼굴은 이영희의 종이 인형과 똑같이 찌저진 눈과 오목한 입,
겨울에 터진 것 같은 빨그레한 빰을 가졌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경상도 사투리와 그리고 연변 사투리(이북사투리)를 섞어서
섰으며 한국에서 태어난 아버지의 끝없는 조국에 대한 염원으로 한국어를 집에서는
꼭 써 야 했다.
그는 중국의 50여개의 소수 민족이 겪는 서러움과 정말로 찌저지게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우리나라 돈 2만원으로 4식구가 한달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가 초등학교 때 말로 만 듣던 조국 대한민국에서 88올림픽을 하게 되어
아버지가 선착순으로 한국에 가게 되었다.
"우더레 아버지가 그 때 큰 가방 세 개에 인삼, 녹용, 한약재를 가지고 갔었드랬지요.
그래도 울 아버지는 하나도 안 팔았지요. 다 친척들 나누어 주었지요.
그 때 울 아버지가 집에 오면서 테레비를 가지고 오셨는데
그게 하이 파이브데 새것이었지요..
온 동네가 날 리가 났지 ~ ~ ~요.
난 학교 가방에 모나미 제품을 가득 가지고 갔는데.. 그게 자동 연필 (샤프를 그렇게 말했다)인데, 연필을 칼로 깍다가... 우쩨 이건 누르면 심이 나왔지요.
제가 학교에서 좀 까불었지요 "
그는 축구를 아주 좋아하는데....
올림픽 때 중국을 응원하다가..
오마니가
" 이 놈에 새끼가 어띨 응원하노 니가 짱꼬라 쌔끼가(이것은
아주 심한 중국 욕이다)"
"아이고 어무이 난 중국에서 태어나 인민증을 가졌는데..."
퍽퍽... ( 맞는 소리)
"울 조선족이 한족한테 설움 받다가 이제는 한국이 잘 살아
그곳에서 조선족이 돈 벌이도 하고 또 관광객도 마니마니 와서
구박을 안 하지요. 요새 연변은 화장실보다 노래방이 많고
연변 개 보다 가이드가 많다는 말이 있습네다. .. 찐짭네다.
전 거짓 말 안하네다... 글쩍글쩍..."
권 총각도 장가가야지 하는 나의 말에
"집을 장만을 해야지요. 중국은 땅은 다 국가의 소유이고
건물은 개인의 소유데 아주 비싸지요. 대분분이 월세를
내면서 사는데 22 - 23살에 결혼하기도 해요 여기는 연애가
자유롭거든요 ( 이것은 내가 상하이의 황포강이 흐르는 외탄에 갔을 때
온 천지에 쪽쪽새가 우는 것을 목격을 했었다.)
허지만 이혼도 많이 해요.
저는 자리잡고 조선족이랑 해야 해요."
"요즘도 내가 강남에 와서 가이드 하니까 울 어마니
'니가 한족하고 결혼하믄... 아니 연애라도 하믄 다리
몽둥이가 부러질 줄 알아라' 라고 말씀하심네다"
"근데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많이써요.
저희는 일본어가 제 2외국어고 중국인은 영어를 몰라요.
요즘은 중학교 들어가면 한족들은 배우지요."
" 한번은 손님이 '키'찾은 다고 해서 뭔 소리지 몰라 사전을 찾으니
'키: 채를 치는 것으로 곡식의 껍질을 골라낼 때 쓰는 것.' 라고 되어 있어요.
그래서 손님이 중국의 '깨' 같은 것을 사가지고 가시려는 줄 알았어요.
허 허...
그 날 '경'치는 줄 알았어요???"
그와 헤어지던 홍교 국제 공항에서 내가 보던 책과 먹던 김, 고추장을
내 핸폰 번호와 함께 주었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
재 빨리 출국장으로 향하는데...
" 저 ... "
" 아니 .. 왜요..."
" 그냥 .. 여권 챙기셨나하고요...."
상기된 얼굴로 쳐다보는 넙데데한 그의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