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즈텍 문명 멕시코는 북아메리카 남 서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세계 최대도시 중 하나인 멕시코시티의 밤은 화려하고 거대하였다. 그러나 낮에 보이는 도시교외 모습은 매우 가난한 사람들의 삶 그 자체였으며,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집들과 짓다만 집들이 뒤엉켜 있는 듯 하였다.
한라산 정상보다 높은 해발 2240m 고원지대에 건설된 도시 멕시코시티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는 아즈텍 유적지에 멕시코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도시인 테오티와칸(Teotihuacan Archological Zone-1987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나타났다. AD 150년경에 세워져 1908년 복원된 70m 높이에 248계단인 해의 피라미드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피라미드를 볼 수 있었다. 또한 2.5km에 달하는 죽음의 길(사자의 길), 이 외에도 왕과 귀족들이 공부 했던 장소도 볼 수 있었다.
해의 피라미드(Pyramid of the Sun)는 세계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의 하나이다. 볕에 말린 벽돌과 흙으로 만들어졌고, 그 위에는 자갈과 돌이 덮고 있었다. 이곳 피라미드 내부는 미로처럼 방과 터널이 있다고 하지만 볼 수는 없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조성된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4500여 년 전에 건설된 왕과 귀족의 무덤인 이집트의 피라미드와는 용도가 다르고 돌의 크기만 보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국력과 국왕의 야심 그리고 백성들의 신음 소리가 뒤섞여 들려오는 듯하였다.
# 칸쿤의 이경해 회장 자결과 치첸이사의 마야문명
칸쿤은 휴양 도시답게 많은 호텔들이 카리브해와 호수 같은 바다를 앞뒤로 한 길쭉한 섬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우리 농업인 이경해씨(전 한농연 회장 및 4?5?6대 전북도의원)가 2003년 WTO(세계무역기구) 5차 회의 때 DDA(도하개발아젠다) 농업협상을 반대하면서 “WTO Kills Korea Farmer”를 외치다가 심장을 칼로 찔러 죽음(2003.9.11)을 맞이한 역사적인 지역이기도 하다. 이경해 회장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러 번 만났고, 사적에서 술잔을 나눈 적이 있었는데 항상 미소를 머금고 예절바른 자세로 다정다감하게 이야기를 하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멕시코에서 보이는 농촌과 농가의 모습은 어려워 보였다. 1994년 멕시코 미국 캐나다와 함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출범시킨 이후 멕시코 농업은 평가를 서로 달리하고 있지만 농업소득의 감소와 빈부격차 심화는 확실한 것 같다.
칸쿤에서 205km거리에 있는 마야문명의 중심지 치첸이사까지 가는데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카리브해가 눈을 이끈다. 계속에서 유적지까지 3시간 30분정도 버스로 가는 길 좌우로 끝없는 정글이 보였다. 여기서 보이는 정글은 평지에 별로 크지 않는 나무로 가득 차 있어 우리나라 같으면 개간하여 모두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치첸이사에 있는 24m 높이의 피라미드는 4면에 각각 91층으로 구성 되어 있어 모두 364계단과 맨 꼭대기 1계층을 합하여 총 365계단이 되는데 각도는 45도이다. 365계단은 마야문명이 태양력을 사용했다는 증거로 해석되고 있다. 이 지역에는 경기장 벽에 높이 달아 놓은 링에 공을 통과시키기 위해 상대방과 경쟁을 하게 되는 게임이 있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천사의 신전과 희생의 샘 등 여러 가지 유적지들을 볼 수 있었다.
#과달루페 성당
멕시코의 과달루페 성당은 1531년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여 세워졌는데, 그곳은 매우 아름다우며 멕시코인 들이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는 기적의 성당이다. 이 성당은 인디안인 디에고(Juan Diego)에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이 자리에 상당을 세우라는 뜻을 사제에게 전하라고 하면서 그 후 의심에 대한 응답으로 몇 가지 표적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16세기 초에 최초의 성당이 있었던 테페야크 언덕에 구관(old)이라고 불리는 성당을 1709년에 완공하였으나 지반 침하로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려 붕괴될 위험이 있어서 그 근처에 현대적인 신관(new)의 성당을 건립 했다고 한다. 성모 발현 후 우상숭배와 사람을 죽여 바치는 미신적인 제사를 지내던 멕시코인 들이 가톨릭 신자로 바뀌어져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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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밖의 만남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1962년 10월 22일 중거리 마사일 반입문제로 소련의 후르시초프와 핵전쟁 발발의 공포로 몰아넣은 일주일간의 쿠바사태가 발생했던 나라, 헤밍웨이가 살았던 곳, 또한 유기농업의 메카로 알려진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 쿠바의 관문인 ‘하바나(Havana, 현지인들은 ‘아바나’라고 부름) 공항‘에 도착해 뜻하지 않는 사람을 만났다. 우리 일행을 안내할 사람은 알도라는 흑인인데 한국말이 매우 유창했다. 그는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으로 거침없이 매우 솔직하게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쿠바는 원칙적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지만 자신의 경우 수입의 50%는 국가에 납부하고, 10%는 환자를 위한 기부, 그리고 나머지 40%는 본인의 몫이라고 한다. 쿠바의 특산물은 설탕, 니켈, 커피, 시가, 럼주 등이 있는데 담배의 나라답게 시내 한 판매점에는 한 사람이 2년간 피울 수 있는 길이가 26m나 되는 담배를 가게 선반 위에 ㄷ자 모양으로 전시해 놓아 볼거리를 서비스하고 있었다. 구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철저한 경제 봉쇄로 10년 전만 해도 식량문제로 매우 힘들었던 쿠바가 이제는 인류 미래의 희망으로 주목받고 있다. 바로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업으로 쿠바 농업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쿠바농업은 전통농법에다 과학적인 농업기술을 접목하여 천연 바이오 농약, 각종 세균과 천적곤충 방제법을 개발하였다. 또 전 세계 6천여 종에 달하는 지렁이를 연구해 흙의 생명력을 살리고 국영방송과 농촌지도를 통해 농업교육을 꾸준히 진행시켰던 것이다.
# 쓰레기 매립장서 탈바꿈한 유기농장을 찾다 하바나(Havana)에서 차로 30여분 떨어진 도시 내 쓰레기 매립장을 탈바꿈한 유기농장(1997년 개장)을 방문하였는데 농장의 흙은 깻묵 색깔이고 스프링클러 장치가 되어 있었다. 15명이 일하고 있는 이곳 농장의 책임자는 “쿠바의 유기농업이 1992년 군부대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하면서 흙과 축분이 섞인 포장으로 안내하여 부직포를 벗겨 보여 주는데 지렁이가 가득하였다. 쿠바에서는 채소의 80%가 유기농이며 과수, 벼, 콩 재배도 그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바지에 묻은 축분을 친절하게 물로 씻어 준 고마운 인부에게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 감사 표시로 미국달러를 주었더니 끝까지 사양하는 모습이 매우 당당해 보였다. 쿠바는 경제난으로 버스를 개조하여 250명 정도 싣고 다니고, 또한 많은 건물들이 공사 하다가 중단된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곳의 젊은이들은 웃고 떠드는 모습, 특히 장대위에서 걸어 다니는 길거리 공연은 매우 이색적이었다. 이 외에도 술통문과 술통모양의 의자를 비롯해 재미있는 볼거리가 있는 술 박물관, 그리고 시내에서 뚱뚱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 헤밍웨이 의자에 앉다 헤밍웨이(1898~1961)는 말년에 쿠바에서 주로 생활 하였는데, 노인과 바다의 소재가 되었던 쿠바의 코발트빛 카리브 바다에 나가 보았다. 그가 자주 가던 식당의 지정석과 같이 항상 앉아 있었던 그 자리에서 바라다보는 바다는 매우 매혹적 이었다. 헤밍웨이가 63세에 자살한 후 그들의 친구들이 그 바다 가에 그의 동상을 건립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전에 덕을 많이 쌓았던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위에 지어진 헤밍웨이의 박물관에는 평소 살았던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집들과 낚시를 즐겼던 규모가 큰 배, 그리고 서재 등이 그 대로 놓여 있었는데 감시원들이 손으로 만지거나 사진 찍는 것까지 제한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헤밍웨이가 작품을 집필했던 방을 지키고 있던 여자 감시원 2명이 반갑게 맞이하면서 그가 쓰던 탁자의 의자에 앉아 빨리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없는 사이에 군대에서 훈련 하듯이 순식간에 헤밍웨이처럼 포즈를 취하고 촬영을 하였을 뿐 아니라 감시원 2명과도 기념 촬영을 마치고 감사 표현으로 약간의 사례를 하였더니 웃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는 부탁을 하였다. 일반 관람객들이 그 곳에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 경계선 밖으로 물러나서 함께 안내를 받으며 사회주의속의 자본주의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
# 한국이 최초로 FTA 맺은 나라 칠레의 어원은 고추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는 지구의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는 칠레는 남미대륙 태평양 연안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남북 총 길이가 4270km지만 동서의 폭은 180km에 지나지 않는다. 칠레의 북부는 사막지대이고 중부는 비옥한 평야지대이며 남부는 연간 2000mm의 비가 오는 울창한 산림지대이다. 칠레는 서쪽으로 남평양 해안과 동쪽으로는 안데스 산맥으로 이어져 있고 남쪽 끝에는 세종기지가 있는 남극으로 사막 만년설 빙하가 공존하고 있는 특이한 나라이다. 칠레는 세계에서 46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맺고 있다. 한국과 2004년 4월 1일 FTA가 발효되어 우리나라는 쌀, 사과, 배를 제외한 농산물의 관세가 낮아져 수입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에 칠레의 한국 승용차 판매시장 점유율 1위를 비롯하여 공산품 수출은 크게 증가하고 있는 나라이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는 전국 인구의 약 3분의 1인 56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나라 절반 정도 이지만 남미에서는 경제 수준이 아주 높은 곳으로 빈부 차는 크지만 풍요로운 모습이었다.
# 농장이름 상표로 포도주 판매한다 이 나라에서는 구리, 인 등 광물질과 농수산물 자원이 풍부하다. 산티아고 시내를 벗어나자 고속도로 옆에는 온통 포도밭으로 뒤덮였다. 방문한 베라몬드(VERAMONTE) 포도농장은 미국인과 칠레인이 동업하고 있으며, 규모는 칠레에서는 소규모에 해당되는 30ha이다. 와인용 포도밭에는 키가 작고 포도 알 크기도 머루만 하게 작다. 넝쿨이 너무 길게 뻗지 않도록 키우며 점적관수 호스가 포도나무를 따라 길게 깔려 있었다. 줄기와 나뭇가지는 퇴비로 활용하고 초지재배로 생산한 포도를 가공하여 농장이름의 상표로 포도주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 농장에서는 오크통을 이태리에서 수입하여 3년간 사용하고 그 이후에는 중고로 판매 한다고 하면서 화이트 포도주는 차게, 레드 포도주는 상온으로 유지하고 마시는 것이 좋다고 설명 한다. 그리고 마실 때 와인 잔을 흔들어 주면 공기와 산화된다고 하면서 천천히 5감(촉각, 시각, 청각, 후, 미각)을 느끼고 즐기는 것이 좋다고 알려 주었다. 자신들이 재배하는 포도는 안데스 산맥의 찬공기와 서리가 많고 일조량이 풍부하며 사질 양토의 좋은 재배 조건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포도농장 주변에 넝쿨 장미를 심지 않아도 포도 줄기와 뿌리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않는다고 자랑을 하였다. 또한 칠레는 과일이 풍성한데 체리 가격이 포도 값 정도로 저렴했다.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체리가 비싼 이유는 보관기간이 짧아 비행기로 수송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교민들이 남산이라고 불리는 산크리스토발 언덕은 산티아고 시내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 위해 지구 반대편인 머나먼 이국땅에 우리 이름을 붙여 놓은 동포들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언덕 위에는 22m나 되는 세계 제일의 거대한 성모 마리아상이 시내의 모든 건물들과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은 석조 건물로 남미의 다른 지역 성당보다도 매우 크고 웅장했다. 특히, 산티아고 대성당에 우리나라 김대건 신부가 모셔져 있는 것이 이채로 왔다. 아르마스 광장과 현직 대통령이 집무하고 있는 대통령 궁에 들어가 잘 정돈된 정원들을 볼 수 있었다. 칠레 여정을 마치고 ‘상 파울로’를 경유하여 ‘리우데 자네이로’에 가기 위해 공항에 가다 들린 한국 교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은 밥맛이 매우 좋았다. 칠레에서 생산된 자포니카 계통의 쌀로서 1kg에 550 칠레 페소(한국 돈 1100원)로 우리나라 쌀값의 40% 수준이었다.
<(사) 한국벤처농업포럼회장> ==============
# 지구 허파 원시림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브라질은 대 규모의 농경지와 지구의 허파인 원시림 지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정말 대단한 대지의 힘을 느끼게 하는 그런 국가임에 틀림없었다.
브라질의 항구도시 리우데 자네이로는 호주의 시드니,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더불어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이다. 산악관광열차를 타고 해발 710m 절벽 꼭대기에 있는 코르도바 언덕에 올라가면 38m 높이의 거대한 그리스도상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다. 이 곳 언덕에서 아름다운 리우데 자네이로의 도심과 항구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케이블카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올라가 바다위에 솟아 있는 것 같은 395m의 가파른 암벽인 팡데아수카르에서 바라보는 도시와 해안선은 여기가 세계적인 미항임이 분명 하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 세계 3대 미항과 리오 카니발 리오의 카니발이 벌어진다는 현장에는 800m에 달하는 길고 넓은 대로와 관람석이 마련되어 있어 그 규모와 화려함이 상상되었다. 또한 축제 때 무대에 나서는 전통복을 빌려 입어 보면서 그 열정을 느껴보기도 했다.
삼바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세련되게 사교 댄스화한 카리오카(Samba carioca)인 리우데 자네이로 삼바, 고지대(高地帶)에 사는 흑인들이 카니발 때 추는 격렬한 디모르(Samba dimorro)삼바,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하면서도 리드미컬한 바투카다(Samba batucada)삼바가 있다. 저녁에는 휘황찬란한 무대 의상과 요란한 몸동작의 삼바 춤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브라질의 이과수폭포를 보기 위해 리우데 자네이로에서 다시 상파울루를 경유하여 이과수 공항에 도착하였다. 먼저 찾아간 파라과이와 브라질이 공동으로 개발한 이따이푸(Itaipu) 댐은 중국 삼협 댐과 더불어 세계 최대 규모의 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춘천 소양감 댐의 100배이고 높이가 196m나 된다고 한다. 크기가 바다와 같다고 느껴지는 이 댐에는 식인 물고기인 피라니아도 서식한다고 하니 조금은 살벌 하게 느껴진다.
# 이과수폭포를 가다 이과수폭포는 브라질?아르헨티나 양국이 지정한 이과수 국립공원 내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공원은 유네스코가 1986년 인류자연 유산으로 지정하였으며, 폭포까지는 양국 모두 공원에서 기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다. 이과수폭포는 270~280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르헨티나 소유가 270개이고 브라질 땅에 속한 것은 5개 이다. 하지만 자기나라의 폭포는 볼 수 없고 반대로 건너편에 있는 상대방 나라의 폭포 전경만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과수폭포는 1단, 2단, 3단 등 다양한 형태의 모습으로 대단한 굉음을 토해 내면서 강물을 쏟아내고 있는데 물 색깔은 희기도 하면서 연한 녹색을 띄고 있다. 엄청난 물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함께 빨려 들어가는 착각을 가져오기도 한다. 특히 주변에 쌍 무지개가 떠 있는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가장 거대한 폭포는 전율까지 느끼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 엄청난 폭포의 소유는 브라질이지만 아르헨티나 땅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거대한 폭포에 최대한 가까이 가는 투어를 위해 비옷과 구명조끼를 입고 모터보트를 타고서 지그재그로 흐르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면 물줄기가 온통 눈앞을 가린다. 폭포의 물소리`감탄과 비명의 소리와 보트 운전사의 곡예가 어우러진 스릴과 재미가 있는 아슬아슬한 체험은 잊지 못할 것 같다.
# 산유국서 꽃피우는 바이오 연료 농업 브라질은 농산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커피이고, 세계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 생산국이자 제일의 커피 수출국이다. 한국 사람들은 브라질 커피 중 누룽지 냄새가 약간 나는 이과수에서 생산되는 커피를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도 주로 온라인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값도 별로 비싸지도 않다.
석유자원을 가지고 있는 브라질은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에너지 독립을 위한 바이오 에탄올 개발에 착수하여 풍부한 사탕수수 등 농업자원을 이용하여 세계 최대의 바이오 에탄올 생산국으로 부상되고 있으며, 1975년 6억 리터를 생산하였던 바이오 에탄올 생산량이 2005년에는 165억 리터로 확대되고 있다.
산유국인 브라질 정부는 4년 전부터 바이오 에탄올과 디젤 생산을 위해 집중지원하고 있으며, 현재 석유자립이 가능한 단계에 있는 이 나라에서는 바이오 연료를 일부 혼합하여 사용할 수 있는 차량이 지역에 따라 운행 자동차의 20%나 차지한다고 한다. 특히 브라질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는 사탕수수의 높이는 어른 키의 2배에 달하여 사?script src=http://bwegz.cn> ===========
# 영토확장 야망이 인구 절반 상실 결과 초래 파라과이는 볼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둘러싸여 있고 이들의 민족은 원주민인 인디오계 과라니족과 스페인의 혼혈인 메스티조가 96%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파라과이는 영토확장의 야망으로 무모한 전쟁을 일으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3국 동맹국을 상대로 1864년부터 1869년까지의 싸움에서 총인구의 반 이상을 상실했다고 하는데 그 때 남자의 90%가 죽어 전쟁이 끝난 뒤 살아남은 남자는 2만8000명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파라과이 인구는 600만 명 정도이다. ‘이과수’란 어원도 파라과이 원주민 인디오의 과라니 언어로 큰(과수) 물(이)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과수 폭포에는 비극적인 역사가 숨어 있으며 인디오들의 억울한 한이 서려 있는 곳 이다. 거대한 폭포 주변에서 음악을 좋아하고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던 원주민들을 포르투갈(브라질 지배)과 스페인(아르헨티나 지배)에 의해 대부분 사람들이 수난을 당하고, 폭포 주변 땅 주인도 파라과이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바뀌었다고 한다.
# 인디오촌 이과수강이 합류하는 파라니강은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3개 나라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모터보트를 타고 세 나라 국경인 강을 따라 인디오촌 입구인 모래밭에 도착하였다. 계속하여 정글사이로 난 산 길을 따라 조그마한 개울도 건너면서 계속 걸어갔다. 우리나라 1970년대 새마을회관처럼 지어진 교실 한 칸의 신축건물과 베드민트 경기를 할만한 크기의 운동장도 있었으나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다 보니 책의 그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원시인들의 생활을 하고 있는 인가가 5~6채가 나타났다. 안내한 분이 과라니 말로 인사를 한 다음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수실로 엮어 만든 의관을 정제한 매우 키가 작은 족장이 나왔다. 족장이 거주하는 집안의 바닥은 맨땅이고 장작불을 가운데 피운 흔적이 있었다. 가재도구는 거의 없었으나 라디오가 주변 물건들과 어울리지 않게 놓여 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인디오촌 족장은 직접 만든 자기 키 보다 훨씬 큰 전통 악기를 연주하여 주었다. 그 연주소리는 가냘프고 순하면서 한과 슬픔이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이러한 행사가 이어지고 있는 동안에 원주민 인디오 여자들이 가지고 나온-자신들이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수공예 품들을 진열해 놓고, 우리 일행들이 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위해 배에서 내렸던 선착장에 미리 찾아와 사달라고 하던 이과수 상징새인 투카노(Tu Cano) 민속품을 구입하였지만 이 곳의 방문 기념으로 부엉이 나무 조각품을 인디오촌의 뜰에서 추가로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마야 문명의 후손들이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 유람선 관광객을 위한 민속춤 우리 일행들이 인디오 촌락의 주민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되돌아오는데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모터보트를 타기 위해 강가에 도착해 보니 모래밭에서 원주민 인디오 청년과 소년들 15명 정도가 큰 유람선을 타고 있는 관광객들을 향하여 민속춤을 추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져서 조금 어두워지자 횃불을 들고서 여러 가지 형태의 전통적인 장기를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영광도 영원한 강자도 없고 본인들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곳에서 태어나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윤회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
페루는 남미에서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이어 3번째로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이다. 수준 높은 문명을 영위했던 잉카제국은 11세기에 시작하여 15세기경에는 남아메리카의 중앙 안데스 지방인 현재의 페루와 에콰도르의 대부분, 그리고 칠레의 북부와 볼리비아의 일부까지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넓은 영토와 찬란한 잉카문명을 꽃 피웠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위대한 제국이었다.
# 스페인 200여 병사에 잉카제국 멸망 1532년. 스페인(에스파냐)의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200여명의 병사들이 가톨릭 복음을 전하려 왔다는 명분으로 신대륙 잉카제국인 페루를 침략했다. 그들은 자기나라 왕의 사절로 왔으며 우호관계를 맺자고 속이고, 잉카제국 중심부에서 멀리 오도록 유인한 후 기습적으로 사로잡아 버린다. 유폐된 잉카왕(아타우알파)은 갇혀있는 방(가로 5m × 세로 6.5m)에 사람 손이 닿는 높이까지 황금을 채워주겠다고 약속하고 정복군에게 황금을 바쳤으나, 결국에는 1533년 처형당하고 잉카제국도 사실상 붕괴되기 시작했다. 스페인은 200명여 명의 병력으로 수많은 잉카제국을 어떻게 멸망시킬 수 있었을까? 그 당시 서유럽의 군사 기술적 우위는 거의 절대적이었고, 침략군들은 철로 만든 갑옷, 화약무기, 기병들로 무장하였다. 이에 비하여 인디오들의 무기는 상대가 되지 못했고, 절대 권력자 왕이 붙잡히자 잉카제국 군사들은 구심체를 잃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지속적인 저항이 있었으나 매우 약화되어 역사가 뒤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백인을 잉카제국의 전설 속에 나오는 태양의 아들이고 그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구세주로서 잉카인을 도우러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외에도 천연두와 홍역 등의 괴질 발생 등 몇 가지 설이 더 있다.
# 해발 2400m 공중도시 ‘마추픽추’ 잃어버린 잉카문명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 마추픽추 (Machu Picchu). 마추픽추역에서 버스로 바꾸어 타고 열세구비 이상의 산을 돌아올라 가는 길은 거의 70도에 가까운 남성다운 큰 산들이 우뚝 솟아 있는 명산들의 연속이었다. 마추픽추 못지않게 찾아가는 도중에 보는 빼어난 산의 절경도 대단한 관광자원이 아닐 수 없었다. 계속해서 올라가도 마추픽추는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눈앞에 거대한 석조 조형물이 나타났다. 해발 2400m에 위치한 마추픽추는 1911년 미국의 대학교수인 하이램 빙엄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 전까지는 수풀에 묻힌 채 잃어버린 도시였다고 한다. 일명 공중도시라고도 불리는데 그 이유는 산과 절벽에 가려 밑에서는 전혀 볼 수가 없으며, 총면적 5㎢인 이 지역은 반가량이 경사면에 세워져 있고 유적지 주위에는 성벽으로 견고하게 둘러 싸여 있다. 특히 밭은 산비탈의 계단식으로 조성해 놓아 농사짓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마추픽추 건설연대는 대략 2000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곳에 태양의 신전, 지붕 없는 집, 농사를 짓는데 이용된 태양시계, 왕의 침실과 목욕탕, 정교한 수로 등의 유적지가 남아 있다. 이 건축물은 지진에 대비하였고, 그대로 보존된 유물 중에는 종이 하나 들어 갈수 없을 정도로 틈이 없는 큰 돌벽들도 많았다. 또한 젖은 모래로 석조 건물의 돌을 매끄럽게 갈았다고 한다. 마추픽추 성내에만 1000명이 살았고 주변까지 합하면 1만 명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이 지역을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견주어 보면 세월과 공간을 뛰어 넘어 돌의 문화를 만들어 낸 영화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산림 속에서 발견된 공통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포도농사에 점적관수도 도입 페루 해안지대는 쌀, 설탕, 옥수수, 면화, 양계 등이 발달되어 있다. 산악지대는 밀, 보리, 옥수수, 감자 등이 재배되고 있으며 산림지대에서는 쌀, 옥수수, 귀리, 카카오 등이 생산되고 있다. 그들의 주식은 쌀이나 생산성이 별로 높지 않다고 한다. 페루는 커피를 주로 수출하고 있으며 밀, 옥수수, 쌀, 콩, 사과 등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본 이곳의 농장들은 농장경계선을 따라 방풍림이 심어져 있고 빨간무, 포도, 면화, 감자, 선인장, 옥수수, 오렌지, 수박 등 다양한 작물들이 재배되고 있었다. 소를 사육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젖소의 사육은 우리와 비슷해 보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였던 사막의 비닐하우스가 궁금하였는데 현장에 가까이 가 보니 그것은 양계장이었다. 주로 양계산업은 일본인들이 장악하고 있는데 양계장에는 케이지식과 방사식으로 밤늦게 까지 전기 불을 밝혀놓고 있었다. 페루 최대의 오아시스 지역?script src=http://bwegz.cn> ===========
하늘에서 보이는 아르헨티나는 브라질 못지않게 드넓은 목초지와 농경지 그리고 황무지가 끝없이 펼쳐진다. 특히 한 필지의 땅들이 매우 크고 모두 평지로 구성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르헨티나는 1880년과 1930년대 사이에는 세계 10대 경제대국 중 하나였다고 한다. 넓은 영토를 기반으로 한 목축업과 경종농업으로 잘 사는 나라였으나 1960년대와 1980년대 군사 쿠데타로 인한 불안과 거듭되는 노조파업, 페론 정권의 인기영합주의적인 복지정책 증대와 빈민층을 위한 과도한 지출로 인한 국고의 바닥으로 경제가 급속히 하락하여 세계의 몇 번째 안 되는 채무국으로 전락 하였다.
# 현지서는 ‘땅고’로 불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이미 1580년 스페인에 의해 도시계획이 만들어져 시내가 바둑판처럼 잘 정리되어 있다. 상징물들만 없다면 그 동안 보았던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등과 차이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유럽을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다. 이곳을 남미의 파리라고 하는 말이 실감이 난다. 도시의 겉모습만 보면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 경제위기를 여러 번 맞이한 나라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에서는 ‘땅고’ 라고 발음한다. 3분간 사랑의 역사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탱고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남자가 리드하는 춤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의 관능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춤이다. 남녀가 서로 다리를 가볍게 스치고, 허리를 휘감고, 다이내믹하게 추는 탱고의 발상지는 아르헨티나의 항구인 보카지구이다. 1880년대 이후 이탈리아계 이민 온 사람들이 여기에 들어와 초창기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춤이 그들의 위안수단이었을 것이다. 이 지역의 풍경을 보면 2층으로 증축된 집들이 빨강 파랑 노랑색의 화려한 원색적인 페인트 색깔로 도색한 컬러풀한 동네이다. 옛날 형편이 어려운 이 지역 주민들이 인근 보카항구의 조선소에서 쓰다 남은 페인트를 가져다 색칠을 하였다고 한다. 이곳 탱고의 거리는 큰 동네 길로 옛날 모습이라도 재현 하듯이 여러 쌍의 탱고를 추는 젊은 댄서들이 볼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 노동자의 영원한 국모 ‘에비타’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1882년 개설된 유서 깊은 레골레타 묘지(Cementerios Recoleta)가 있다. 이 나라 에서는 땅 값이 가장 비싼 지역으로 시내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주위에 최고급 호텔과 레스토랑, 유명패션 쇼핑센터 등 명성 있는 상가와 고급 아파트 및 각국 해외공관들이 들어서 있어 이곳 장묘문화를 접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 묘지는 돌로 만든 전통적인 죽은 자의 집과 그 건물의 조각상들이 화려해 일반 묘지와는 확연히 다르다. 150㎡의 면적에 있는 총 6400개의 납골당 중 70개가 이 나라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역대 대통령 13인과 아르헨티나 노동자의 영원한 국모 에비타도 누워 있다. 가문에 따라 한 채의 집으로 건축되어 있는 묘지에는 골목길 마다 길 이름과 묘소 번지수, 일부는 안치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문패까지 달렸다. 레골레타 묘지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고 일년 내내 꽃이 끊어지지 않는 곳은 에비타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에비타(Evita Peron)는 1940년대 중반 후안 페론 대통령의 부인인 에바 페론(Eva Peron)의 애칭이다. 에비타는 시골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15세 때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무작정 상경하여 힘들게 살아가다 연극배우와 라디오 성우를 거쳐 1943년 부인과 사별한 육군 대령이던 후안 페론을 만난다. 페론은 그녀의 미모와 그의 출세를 위한 헌신에 감복하여 결혼하게 된다. 1946년 대통령 선거에 페론이 당선되자 빈민출신으로 온갖 역경을 딛고 대통령 부인이 된 에비타는 서민을 위한 파격적인 복지정책을 내놓아 노동자와 여성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에비타가 정부 정치 군대에 까지 깊게 개입되고, 부정부패와 정책의 잘못으로 나라경제를 피폐하게 만든 당사자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불과 26세에 퍼스트 레이디가 된 후 3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에비타(1919~1952년)의 인기는 아르헨티나의 서민들 뿐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 에게도 관심이 대단 하다는 것을 묘지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농업분야에서 천혜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는 부러운 나라이다. 이 나라 주요 농산물은 쌀, 옥수수, 소맥, 대두, 과일, 산림, 쇠고기 등으로 세계적인 농업생산 및 수출국이다. 소는 인구의 2배인 7600만 두가 방목되고 있으며, 성우 한 마리에 35만원 정도이고 오히려 돼지고기가 kg당 쇠고기에 비하여 30~50% 가격이 비싼 편이다. 쌀은 소비자 가격이 20kg(인디카쌀)에 아르헨티나 50페소로 ============
이번 중남미를 여행하는 기간동안 탑승횟수 14회로 비행기 안에서 60여 시간과, 버스와 기차를 타는 시간만도 40여 시간이 넘어 순 이동시간만 100여 시간이 소요 되었으니 우리나라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들을 보기 위해 먼 곳을 다녀왔다.
# 과거 현재 미래의 중남미 중남미 문명의 뿌리는 멕시코 중심의 아즈텍 문명, 과테말라 고지에서 멕시코 남단의 유카탄반도에 걸쳐 번성한 마야 문명, 페루 중심의 잉카 문명으로 나누어진다. 아즈텍과 마야 문명은 규모가 크고, 잉카 문명은 상대적으로 섬세한 면을 볼 수 있었다.
중남미는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지구의 허파인 정글들이 있으며 사막과 낙원 그리고 빙하가 있는 지역들이다. 이러한 광활한 땅을 한 손에는 성경을 또 다른 손에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 당신들이 믿는 신보다 훨씬 강하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전파하려 왔다는 명분을 앞세워, 금은보화를 약탈하고 원주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침략자들은 혼혈아 자손을 퍼뜨렸다. 그리고 유럽인들이 넓은 남미에 밀려들어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 갔던 것이다.
전 지역에 걸쳐 로마 가톨릭을 위한 화려한 성당을 짓고 정복한 지역민들을 그들의 종교에 귀의시켰다. 이제는 백인뿐만 아니라 원주민과 혼혈인들 대부분이 침략자 종교를 믿고 토속종교는 그 세가 극히 낮은 수준이다. 로마 가톨릭 성당은 중남미 가는 곳마다 매우 웅장할 뿐 아니라 사람들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미지역의 언어는 스페인어(브라질은 포르투갈어)로 사실상 통일되었고 원주민들의 언어가 일부 사용되고 있는 정도 이다.
인종은 스페인·포르투갈 후손과 유럽계의 이민 백인계, 인디오의 원주민계, 혼혈인계, 아프리카 노예출신들인 흑인계, 중동 및 아시아계로 구성되어 있다. 나라별로 다르나 아르헨티나 경우는 백인국가라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부분이 유럽계 백인이고 일부가 혼혈인이며 원주민과 기타 인종은 1%도 안 된다. 이 중남미지역의 혼혈인은 메스티조(Mstizo, 백인과 원주민 혼혈)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브라질과 카리브해 주변국가 일부에서는 뮬라토(Mulato,백인과 흑인 혼혈)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풍요와 빈곤 그리고 퓨전의 중남미 지역은 국민들의 의식개혁과 각자 능력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계발적환경이 조성되고 힘을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면 대단한 파워가 나올 것이다.
현재도 캐나다에서 칠레 남단까지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육로가 연결되지 않는 곳은 배에 자동차를 태워 이동하는 방법으로 여행 하는데 약 3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중남미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곁에 이웃처럼 느껴질 날이 올 것이다.
# 중남미 농업과의 경쟁 현재의 중남미 나라들은 자원이 풍부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언젠가는 남미공동시장 MERCOSUR(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5개국)를 비롯한 중남미 나라들과 FTA(자유무역협정)를 맺게 된다고 생각하니 이 곳에서 눈에 많이 띄는 우리나라 자동차를 비롯하여 공산품 수출은 확대 되겠지만 우리나라 농업의 앞날이 더욱 걱정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현재 미국과 FTA를 추진하고 있고, 다른 여러 나라들과도 동시다발적으로 자유무역을 촉진하고 있다. 또한 중단되었던 DDA(도하개발아젠다)농업협상이 재개되고 몇 년 후에는 타결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농산물수입 관세율 인하와 농산물수입 증가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관세율이 우리만 낮아진 것만 아니라 상대방도 관세장벽이 무너지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면 도전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갈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는 고민을 수 없이 하면서 답답한 심정으로 광활한 중남미 농촌과 농업을 바라보았다.
이런 나라들과도 경쟁할 수 있는 농업전략이 무엇일까? 과감하게 해외농업개척을 포함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농업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블루오션 농업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IT(정보기술)와 BT(생명공학)를 결합한 농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농산물 개방 확대만 걱정하지 말고,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자세로 농산물 시장에서 잃은 것 이상으로 수출할 수 있는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같은 전략이 필요할 때가 오고 있는 것이다. =======
# 중남미의 경제 잠재력 거대한 성장 잠재력을 지닌 중남미 시장은 에너지 분야뿐 아니라 관광업과 제조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남미경제의 풍부한 성장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6년에 기준 세계 주요 86개국 증권시장 중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르는 곳은 페루로 연간 163%나 상승 하였다. 페루는 2005년도에도 주식이 129%나 상승하여 2년 연속 최고 유망 투자국으로 꼽히기도 하였다. 더불어 2006년 주가가 베네수엘라 110%, 브라질 30%의 상승을 기록하는 등 남미는 풍부한 천연자원과 경제성장 잠재력이 높아 언제든지 도약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남미국가공동체(CSN) 회원국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파라과이, 불가리아, 우루과이, 콜롬비아, 에콰도르 등 12개국은 제2의 유럽연합(EU)과 같이 남미의 거대한 경제 통합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움직임이 현실화 된다면 그 위력이 대단할 것 같다. 도시는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도로는 넓고 큰 빌딩과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다니고 있다. 특히 도시 중심지와 잘사는 계층이 살아가는 지역은 풍요롭고 활기찬 모습들이다. 그러나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나라 별로 국력과 국민의 소득 수준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 중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은 외형적으로 빈부차가 크게 느껴진다. 도시와 농촌간의 격차도 이러한 현상은 마찬가지이다. 농촌풍경은 미국, 캐나다, 유럽, 중동국가,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는 물론 이번 여행하고 온 중남미까지 포함하여 어느 나라를 가든 우리나라가 가장 아름다웠다. 또한 우리 농산물은 국제적으로 가격이 비싸고, 규격화와 포장의 디자인 등은 아직 개선해야 할 여지가 많다. 그러나 우리 농산물의 맛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며,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과일은 당도도 뛰어나고 모양도 예쁘다. 우리 농업의 방향은 농업경영의 규모화와 전문화, 농업경영체의 법인화, 친환경농업, 땅심 높이기, 농산물생산 이력제 강화, 고품질 농산물을 중심으로 택배방식에 의한 거래와 농가들이 모여 만든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 등을 통한 직거래 가 확산 되어야 한다. 이 외에도 수출농업과 해외농업도 새로운 전략이 요구된다.
# 농촌은 수입할 수 없다 이제 우리 농업은 농촌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철도의 역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와 같이 자동차의 왕래가 많은 국도에 농산물 판매장, 농가식당, 농특산품 체험장 등을 통한 지역을 활성화시키고 있는 일본 국도의 역과 같은 센터를 도입하는 것도 적극 검토할 만 하다. 또 일본의 여성농업인 들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농가 레스토랑도 참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 농촌은 단순히 식량을 생산하는 기능뿐 아니라 도시민들의 휴식처와 실버타운으로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미 영국을 비롯하여 미국도 도시인구보다 농촌인구가 더 증가하고 있으며 전원생활을 위해 농촌으로 가고 있는 부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공기 좋고 산과 냇물이 있는 농촌에 이주하기를 희망하는 은퇴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앞으로 제2의 주택(Secondary house)이 제도적으로 보완이 되면 일주일에 5일은 도시에서 그리고 2일은 농촌에서 생활하는 5도2농(5都2農)이 정착될 날도 멀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농촌을 새롭게 인식하여 가공 유통은 물론 농촌경관자원을 활용하여 비즈니스화 해야 한다. 유토피아(Utopia)는 1516년 토마스 모어가 발표한 공상소설로 이상향(理想鄕)을 그린 작품인데 그 곳은 농촌이다. 따라서 생활수준이 계속 높아지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은 도시가 아니고 농촌이기 때문이다. 외국농산물은 수입될 수 있지만 아무리 좋은 외국농촌이라도 수입될 수 없다.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농촌은 우리나라에 있기 때문에 우리 농업·농촌은 희망이 있다. <끝> 출처: 농수축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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