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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훌쩍 어디런가 떠나고 싶을 적이 있다. 만사를 다 체 쳐 놓고 하염없이 떠난다는 것은 너무 슬프고 자존감이 허락하지 않지만 씨줄과 날 줄처럼 촘촘하게 얽히고설킨 소요를 피해 훌쩍 떠나는 일은 자유를 향한 일탈이라 그런대로 좋아하는 편이다. 평생을 여행의 방랑자로 남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가 바로 이 녀석이다. 거창하게 여행이란 단어를 빌릴 필요도 없다. 그냥 Back - pack 등짐 하나 만들어 걸망처럼 지고 길을 나서면 되는 일이다. 떠나서 주행하다 돌아오면 되는 일인데 무엇을 주저하리. 가는 길을 알고 오는 길을 알아 길을 잃고 방황할 일도 없다. 어디 그뿐인가! 가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지내야 하는 일 전부 익숙한 일인데 걱정거리도 없다. 떠나는 일, 사계(四季)가 모두 좋고 시간 또한 선택의 여지도 없다. 생각이 나면 그 즉시 행색을 갖춰 떠나면 그만이다. 대명천지에도 좋고 달빛이 고요한 오밤중도 좋다. 이슬이 내리는 새벽이라도 좋다. 9월, 순례 중 마음의 그물에 걸린 이야기가 있었다.
가을 야생화를 마음 화병에 담아 두고 싶다는 이야기~~ 마다 할 일이 없는 지극히 보편적이면서도 타당한 대화중에 나온 주문이다.주문이라 하여 자세하게 살필 일도 아니다. 선택지(選擇地)를 단숨에 결정해 버렸다. 50여년의 행선중 내 자신이 최고로 치는 천화(天花) 가득한 천상의 화원이면 그만 아니겠는가! 그리고 소(牛)를 닮아 너른 잔등이를 갖고 있는 산이다. 그래 늘 나는 그곳을 갈적마다 내 스스로 소로 변신하여 오르게 된다. 느릿 느 릿 소 걸음으로 오르다 보면 꽃 여물이 지천이라 마음에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다. 그리고 추야생화평전에서(秋野生花平田) 돌아 온후에도 향기와 자태와 원형의 질감이 묻어나는 색감 등등이 되새김으로 나를 즐겁게 해주므로 소(牛)의 착한 눈망울 인성과 품성만 가진채 오른 후 평전을 거닐다 돌아와야 하는 곳이다. 모두가 우보(牛步)로 걷되오르고 내리는 모든 순간 순 간은 우보(友步)의 걸음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 도반들과 함께 가고 오는 길 전부가 우정의 걸음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일정을 스케치한 후 차편을 궁리하다 아끼는 악우(嶽友) 후배에게 연락을 취했다. 대선배인 나를 무척 어렵게 생각하는 녀석이다. 늘 겸양하면서 명쾌하게 내 일에 전력한다. 고마운 일이다. 오랜만에 몰아 보는 승합, 옛적 많이 몰고 다녔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왔다. 펜타콘 사진클럽 회원들을 싣고 전국 방방곡곡 산야와 해안선을 뒤지고 다녔었다. 숱한 악우 들 과도 장거리 산행을 얼마나 많이 하였는지 모른다. 서두르지 않고 계획된 도로 선 따라 도착하였다. 새평마을 그 안부 어의 계곡으로 첫발을 딛었다. 원시적 숲의 환경이 쌓였던 도시의 구질한 것들을 전부 쓸어가니 온몸은 샤워하고 난 마음과 몸처럼 가벼웠다.
평일에는 근무자가 없는 곳이다. 그만큼 인적이 드문 곳이다. 국립공원 현장근무자들, 직업을 떠나 일단 고행이다. 수도자같은 신분적 인내가 없으면 견디기 힘든 직업군에 속한다. 교대로 업무를 수행하지만 고산을 오르락 내리락해야 하고 작은 출입관리소에 앉아 산 지킴이 생활, 쉬운 일이 아니다. 도시 사람들 대부분은 자연환경이 너무 좋으니 행복에 겨운 사람들이라 치부하기 쉽지만 드 넓은 숲을 배경 삼아 고독을 이겨내야 한다. 다가 가 반갑게 인사를 청한 후 함께 사진을 찍었다. 밖으로 나와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어디서 오셨는지요? " 네 서울~~" 몇시에 출발하셨기에 이른 아침에 오셨는지요?" 서로 주고 받으며 인사를 나누고 우리 산객중 한 사람이 아주 작은 행동식 하나를 드렸다. 돌아 오는 길에 다시 인사를 나누고 귀경하겠다는 인사를 전하고 오르기 시작하였다. 손을 들어 배웅해 준다.
소백산맥 세(脈勢)는 태백산에서 분기할 때에 서주(西走) 하고 다음에는 서 남주 하나 속리산에서 부 터는 남주하고 덕유산 이남부터는 네 갈래로 갈라져 남에서 남 서간을 달린다. 소백산맥은 산세가 험준하고 줄기가 뚜렷한데 이는 독자적인 지반운동에 의해 형성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소백산맥에는 희다. 높다, 거룩하다의 뜻을 지니고 있는 데에서 유래된 백산(白山)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 작은 백산의 의미로 불리는 산이 바로 소백산이다.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과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봉화군 물야면 걸쳐 있는 웅장하고 길고 너른 산이다. 본래는 단양군 북이면 지역이었으나 1914 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어의곡리 라하여 매포읍에 편입되었다. 어의라는 뜻은 엉이실, 응실로서 두 골짜기가 어우러져 있다는 뜻이다.
원시의 계곡과 숲 사이를 돌 길, 돌계단, 나무 계단을 이용하여 한참을 올랐다. 평상에 앉아 잠시 쉬며 행동식을 챙긴 후 마지막 나무 계단을 치고 올랐다. 그제야 갈 참나무와 잣나무 대립 능선에 섰다. 소나무를 몰아내고 자기의 터전을 잡는 녀석은 바로 참나무들이다. 소나무들을 싸우다 참나무에 쫓겨 외진 곳으로 물러난다. 그래서 결국 산 정상 부근 오묘한 바위틈을 자리 잡고 자라는 녀석들도 참 많은 것이 소나무 운명이다. 오른쪽은 잣나무 군락이 자리를 잡고 있고 왼쪽 능선 가까이에는 참나무 군락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좁은 산길 안으로 무수한 도토리기 쌓여 길이 무척 미끄럽다. 등산화로 밟으면 도토리는 금방 바퀴 역할로 돌변하여 산객을 가차 없이 쓰러트린다. 수림 한계선에 도착하자 시야가 툭 터지면서 여러 종의 야생화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쑥부쟁이, 구절초, 담양 구절초는 명성이 자자한 녀석이다. 그리고 남보라 빛 용담이 자주 보이고 땅굽성 단풍은 가을빛으로 벌써 붉게 물들었다.
둥근 이질풀도 보였다.
오름에서 무척 천천히 걷더니 평전에 도착하자 가을빛에 금새 취해 안색이 참 편안하다.
나는 이곳을 평전(平田)이라 부르는 곳이다. 편편한 밭처럼 생긴 평지란 뜻이다. 평전으로 유명한 산은 덕유산이다, 여름날 덕유평전을 지나다 보면 노오란 원추리 꽃이 장관이었는데 요즈음 형편은 어떤지 모르겠다. 거센 바람의 영향으로 수림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초목이란 단어 중에서 목(木) 자는 빼고 초지(草地)라 부르는 것이다. 이곳엔 만초가 어울리며 자란다. 그리고 계절마다 다양한 야생화가 청초하게 피고 지다 계절이 바뀌면 백설이 이 공간을 채우고 긴 겨울을 난다. 유난히 겨울도 길다. 4월 하순이나 5월 중순기부터 새싹이 돋고 봄 야생화가 피기 시작하는데 피나물 꽃이나 동자꽃이 유세를 떤다. 노란색과 주황색이 돋보이는 꽃들은 천동계곡 코스인 야영장 지나 언덕을 오르면서 양 경사면 나무 밑으로 지천을 이룬다. 봄의 철쭉도 소백의 이름값을 하고 물가에 피는 꽃들도 많은 곳이 소백이다.
국망봉, 비로봉, 어의계곡의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바위가 우측으로 무더기를 만들어 놓은 언덕을 넘어야 비로소 비로봉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0, 4km. 정도 오르면 정상을 알리는 정상석이 있다. 충북과 경북의 접경 지역이 바로 비로봉 정상이다.
산, 산, 산 산 안에 산이 있고 그 산에 또 산이 있고..... 산은 행렬을 이루고 있다. 금수강산이라 했던가 딱 맞는 말이다. 그러나 환경 영향으로 점점 오염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 부끄럽다. 창조적인 질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는가, 너무 흔하고 아무렇지 않게 주는 사랑의 물질들이라 고마움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창조적 질서를 만드신 분께서는 분명 누구보다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근본적을 지니고 계신 분이시다.
용담이 보기 좋게 배열을 이루고 있어 눈길을 끌어 나도 모르게 파인더를 통해 조합한 후 찍어 보았다. 와우~~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낼 수 없는 색이다. 자연색에 도취되어 가는 자신을 탓할 만큼 여력이 없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 그림인데....
무척 힘이 드는 표정이신데, 마음속은 즐거움이 넘지 것 같았다. 오르지 않는 자는 천상의 화원을 죽어도 구경할 수 없고 걷지 않는 자는 앞으로 나갈 수조차 없다. 수고가 바로 천상화원의 보상으로 다가온 것이다. 걸으면 사소한 병들은 치유가 된다. 중병은 어림없는 일이겠지만 걷는 일은 중병으로 나가는 것을 방해하는 건강의 수호신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출발지점에서 비로봉을 배경으로 데레사 자매님을 돌려세운 후 셔 다를 눌렀다. 이 지점에 서면 참 힘들게 느껴진다. 0.4km 정도 불과한데 마음에서 받아들이는 감정은 약 4km 이상을 걸어 오르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산에 오르는 일은 바로 극복에 대한 훈련을 쌓는 일인지 모르겠다. 힘든 인자를 하나 하 나 씩 꺼내 무너트리는 행위가 바로 등산의 묘미다. 처음 걸으며 몰아쉬던 호홉도 어느 정도 걸으면 강도가 낮아지기 마련이다. 적응은 그렇게 사람을 조금씩 순치시켜 준다.
벌 나비를 강력하게 유혹하기 위하여 꽃술은 화려한 색으로 치장한다. 벌 나비가 꽃술에 앉았다 일어나면 다리와 몸 하부에 잔뜩 꽃가루가 묻는다. 수정을 하기 위한 유혹의 대가가 바로 꿀이다.
헬레나, 데레사 자매님, 그리고 함께 오른 후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으로 모이도록 한 후 인증 셔터를 단양, 순흥, 봉화, 풍기, 영춘까지 날렸다. 이상한 일이다. 바람이 없었다. 늘 바람이 불어 체온을 떨어 틀렸는데... 잔잔한 바람 덕분에 비로봉 탑 북향에서 점심을 챙기기로 하였다. 각자 성찬으로 준비해 오신 덕분에 오름에서 빼앗긴 열량을 충분하게 다시 충전할 수 있었다. 릿다 자매님이 준비해 오신 양주 서너 잔을 넘겼다. 몸 안으로 타고 넘는 흐름도 좋고 향기가 가득하게 피어오른다. 짙은 구름이 정상 부근 정수리에 떴다. 그렇다고 비를 몰고 올 그런 구름은 아니다.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준 구름이 보행을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가시거리가 길어 사방을 마음 놓고 조망할 수 있어 좋았다. 점심 식사 후 잠시 촬영 시간을 가졌다.
우선 마틸다 자매님을 앞 세우고 구도를 잡아 보았다.
데레사, 헬레나 자매님도 초대하여 함께 찍은 후
국망봉을 배경으로 길을 넣은 후
갈대숲으로 초빈하여 몇 장의 사진을 건져 올렸다.
울타리 곁에 붙어 서서 시선을 보내는 모습을 다시 잡고, 천상의 화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단 한 시간의 머뭄이지만 정상에서의 촬영과 점심시간, 아주 요긴한 휴식시간이 된다. 이젠 내려갈 시간이다. 지체 없이 바람처럼 길을 가르며 사람들이 부딪히며 살아가는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단 하루의 삶만 가지고 산중에 머물 수는 없는 일이다. 산중 생활을 하려면은 육신 모든 것이 바람이 되고 물이 되고 스스로 나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견딜 수 있지 도회지 생활을 흉내 내며 살아갈 수 없는 곳이 산중 생활이다. 스스로 자연이 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어야 견딜 수 있는 삶이 바로 산중의 삶이다. 오르면서 느낌이 없지만 내려갈 때 유난히 돌이 많다 짜증을 부리게 되는 곳이 어의곡리 길이다. 그만큼 피로도가 쌓였다는 증거가 된다. 밝음이 건재할 때 그곳을 통과해야 한다. 오름 환경에서 찜해 두었던 화원이 있어 우선 그리로 안내하였다. 포기 꽃이 좋고 향에 충분하게 취해 야생화가 주는 진정한 사랑 내음을 느끼게 되는 곳이다. 풀숲을 다치지 않게 조신하게 다가가 앉았다가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돌아와야 한다
첫 손님으로 모니카 자매님을 모셨다. 이번 출행을 원하셨던 분이시다. 가을빛 따라 걷고 싶다 조르신 분이시다. 그래서 결심하고 이곳으로 모시고 왔다. 역광의 기미가 있어 좀 어둡지만 사람과 꽃과 만초를 표현하는데 무리가 없는 곳이다. 조리개를 조금 더 열거나 약간 입자를 거칠게 만들면 된다. 생각한 대로 멋지다. 좋다. 좋아하시며 주문한 대로 포즈를 잘도 취하신다. 향이 진동한다. 들꽃의 전형적인 향은 묵직하게 마음에 내려앉는 흙 냄 새를 많이 닮았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향이다. 이 세상에 흙을 딛고 살지 않는 생물은 없다. 창공을 나르는 새들도 흙을 딛고 사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는가, 가을 하면 국화가 대표 꽃으로 떠오른다. 가을의 독특한 향이 바로 흙 향임을 알 수 있었다. 만초들도 이젠 아이들이 자라면 엄마 품에 달려 있는 젓을 찾지 않는 것처럼 곡식과 만초들도 흙의 자양분을 원하지 않는다. 흙에게 긴 휴식기의 첫 출발이 바로 가을이다. 가을! 흙의 본 모습인 흙의 향취를 맛볼 수 있는 시기가 바로 가을이다. 평전에 널려 있는 꽃은 지금 쑥부쟁이, 구절초, 단양 구철 초도 많이 보였다. 이 녀석들 전부 국화과다. 천상화원에서 맛보는 향취는 바로 소백의 살아있는 흙냄새인 것이다.
아늑하고 편안한 상태가 도시에서 분주했던 마음을 안심시킨다. 개별적으로 부른다면 소나무, 갈참나무, 잣나무, 궁궁이, 물봉선화, 금 꿩 다리, 쑥부쟁이, 구절초 등으로 부르지만 단 한 번으로 표현하면 자연이다. 자연 안에서 나의 인간성 모든 것들도 자연의 한 개체화로 편입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그래서 행복한 것이다..
지금이 자신의 영성을 표현하는 순간이다. 가난, 겸손 등 이것저것 끌어다 설명하려 들지만 다 그것들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그것들이 결국에 요구하는 것은 영원한 자유다. 진리를 통해서만 자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순이 없는 자연 안, 스스로 이뤄나가는 것을 자연이라 말한다. 바람답고 물답게 흐르는 순리를 사랑하며 온갖 식물들이 어울려 존재하는 숲처럼 똑같은 조건 안에서의 삶, 그것이 바로 진리다. 진리는 항상 너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말처럼 평화가 그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본인도 모르게 즉흥적으로 동요가 흐른다. 가식이 없다는 사실이 참 좋다. 화초는 영악한 면이 보인다. 사람이 카우고 사람이 사서 키우기에 상품가치라는 것이 최고의 인식 때문에 인위적으로 조형화시켜가지만 들꽃은 자연 스스로 생멸해 간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느님께서 키워 주신다 말하는 것 아닌가.
용담 두 송이가 보여 그 방향에 앉아 계신 데레사 자매님을 담았다. 나의 의도는 카메라 위치를 낮춰 용담을 제대로 넣은 후 주제인 데레사 자매님을 잡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려면 내가 엎드려야 한다. 잔혹한 일이 된다. 짓이겨지는 꽃은 어쩌란 말인가! 포기하고 지금 이대로 남겨 두었다.
여러 가지 행동식으로 즐겁게 도와주신 수산나 자매님! 산 소녀이시다. 산이 좋아 산에 사노라 할 만큼 산 마니아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행동식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소처럼 우직하게 행렬의 뒤를 챙겨 주시는 덕분에 마음 놓고 즐거운 산행을 할 수 있었다. 노심초사(勞心焦思)에서 초사만 빠져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형제님에게 감사드린다. 늘 찍는 자의 위치라 나의 사진은 없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 이 사실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데레사 자매님이 그분이시다. 요즈음 스마트폰을 나에게 자주 정조준하시는데.. 아래 사진들이 그 결과물이다. 근사한 사진 감사드립니다
원점회귀! 소중한 단어다. 돌아가야 한다. 달이 보이고 별이 보이는 시간도 아름답지만 행동에 제약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런 행위를 하려면은 준비를 다른 방법으로 한 후 올라야 한다. 잠시 내려놓았던 마음도 추수려 갖고 다시 도시를 향해 떠나야 한다. 그 속으로 돌아가 어제처럼 그제처럼 같은 생각과 행위를 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자연에서 얻은 배움은 잊지 말아야 한다. 간결하면서도 갖출 것은 전부 갖추고 있는 거대한 숲, 그 너른 마음을 닮아야 한다. 그리고 생각과 행위에 있어 조금씩 흉내 내고 살아도 충분한 여유로움이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평화의 인사를 나눈다. 항상 언제 어디서나 거대한 숲에서 익힌 마음을 빌려 평화를 나누겠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샬롬~~
하늘만 빼고
가을 볕이 들었다.
가을색의 바탕은 갈색이다
흰빛, 남보라빛, 분홍빛이 갈색 위에서
가을 동무하고 있다.
바람마저 가을을 닮았는지 선선하다
영글면 다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가을 내음이 몸서리치도록 진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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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천상의 화원으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번개팅 덕분에 꿈에 그리던
비로봉 정상에 오르니
그 높은곳에 외로이 피여있는
야생화들이 일행을 반겨주고
한폭에 수채화 처럼 아름답게
펼쳐진 전경은
가을정취에 매료되어 자리를
떠날수가없었다....
댓가는 톡톡히 치렸지만
수고하신 세베리노님과 함께한 분들과 오래 오래 간직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