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신평 원머리 성지순례
한국천주교는 남인 중심으로 시작된 서학 탐구로서 발전되어 1784년 3월 이승훈이 세례를 받고 돌아 아 동료들에게 세례를 주며 명례방에서 공동체를 결성하고 태동의 기회를 갖지만 1785년 초 명례방 김범우 집에서 관헌들에게 발각된다. 이를 을사추조사건이라 하는데 이 사건으로 신앙 공동체가 와해된다. 그 당시 권일신의 제자였던 이존창과 유항검은 고향으로 낙향하여 유항검은 전주에서 이존창은 자신의 고향 충남 여사울을 중심으로 삽교, 무한천 지방인 내포를 중심으로 신앙을 전파하고 이어서 원머리 지역 음섬, 신당으로 도 권역을 점차 넓혀 나간다. 이를 두고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를 내포의 사도라 하는 것이다. 이존창의 역활로 내포는 신앙의 못자리로 거듭나게 되고 조선천주교사의 중추적인 역활을 하게 된다. 또한 4대 박해를 통하여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를 당한다. 당시 관찰사였던 박종악은 (1791- 1792) 장궤에 이렇게 적고 있다. - 내포의 강문리, 우평리는 덕산, 면천, 아산 접경지역의 포구로서. 홍주 신당(新堂), 신평리(新平里)의 엄도(奄島, 현지명 음섬)는 또 이웃에 있는 큰 마을입니다. 사는 백성이 거의 다 사학(邪學)을 하고 온 마을이 거의 다 물들어 같은 형극입니다 -
일시: 201년 04월 21일 06:00. 반포 구 현대증권 앞.(시간엄수)
준비물: 미사 참례준비, 순례와 걷기에 편한 복장과 신발, 모자, 방풍쟈겟, 가벼운 보온성 쟈겟, 색안경,
스틱, 장갑, 생수, 보온통에 담긴 차류(녹차, 커피 기타 등), 행동식(크래커, 쵸코렛, 사탕, 육포, 치즈, 건바나나 등 기호대로 적당량 준비)
일정표
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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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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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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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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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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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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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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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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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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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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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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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흥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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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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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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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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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휴식 후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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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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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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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기도 후 부근 걸음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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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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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머리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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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맷돌 포구 – 음섬포구
-원머리성지 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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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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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리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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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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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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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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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내에서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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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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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리성당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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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 -17: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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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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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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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 –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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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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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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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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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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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나눔 후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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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선! - 현지
사정에 따라 일정 순서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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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머리 성지에서 미사가 없어 그 부근에 있는 공세리 성지로 이동하여 미사참례와 점심식사를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중간 화성용주사와 사도세자, 정조 능을 들러 탐방 후 귀경할 계획입니다.
참가 신청자 명단 - 선착순 신청을 받습니다.
김정자 아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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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숙자 율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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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ver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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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경 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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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희 카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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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란 마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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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순 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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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체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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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재 마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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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분 프란치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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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기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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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금 바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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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순 바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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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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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숙 스테파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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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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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희 아나타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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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머리 성지는 당진군 신평면 한정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평 성당에서 북쪽으로 약 3Km정도 떨어진 곳으로 과거 지명은 원머리이다.
원머리라는 지명은 바닷가에 둑을 쌓기 시작한 곳이라는 뜻에서 나온
언머리가 변형된 것이며 염전과 농사를 주로하며 살던 박씨, 양씨, 조씨, 문씨 등이
신앙을 받아들여 병인박해 때는 이미 상당히 큰 교우촌으로 성장하였다.
마침내 이곳에도 박해의 광풍이 몰아쳐 1866년부터 1868년까지 3년여에 걸친 박해로
많은 순교자를 배출하게 되는데 지금 한정리에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박태진(마지아)과 박선진(마르코)은 무진년(1868년) 수원 감옥에서 순교한 분이다.
순교자 박 선진(마르코)의 아우 박 요셉은 1920년대에 형의 순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마르코는 모친의 뜻을 따라 착실히 수계하면서 모친과 함께 동네 교우들과 연락하고 지냈다.”
신부님이 오시어 성사를 받으려하면 부친이 금하는 고로
이를 마음속으로 꺼리더니 무진년(1868년)에 수원 포교에게 체포되어 잡혀 갈 때
그는 부모에게 하직하며 위로하되
‘거기 가서 죽으면 육정의 박절함이 없을까만은 주 명대로 위주하여
죽는 것이 구령에 편한 일이라, 부디 염려마시고 훗날을 조심하십시오.’라고 한 다음
그 사촌 형 마티아와 함께 수원옥에 갇혔다.
모진 고문을 당할 때 마티아가 이를 못 이겨 배교하려 하자
“천주를 배반하고 영벌을 받으려 하느냐?”고 형을 깨우쳐,
이에 마티아는 배교한 것을 뉘우치고 옥에 갇힌지 15일 후 같이 순교하였는데
죽은 후 시체를 찾아 이 곳 원머리에 안장하였다.
이 때 마르코의 나이는 33세였고 마티아의 나이는 52세였다.
그 후 박 선진(마르코)와 박 태진(마티아)의 묘는 1989년 4월 4일 신평 성당 구내로 옮겨 모시고 현양비를 세웠다. 이외에도 순교로 신앙을 증거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원머리(신평)출신 14분 순교자들의 기록을 치명일기는 이렇게 적고 있다. 양 도미니코 회장, 박 회장, 유서방, 김동 4인은 정묘년(1867년)에 홍성(홍주) 감옥에서 순교하였으며, 최 베드로, 김 루치아, 김 마리아, 원 아나스타시아 4인은 무진년에 홍주에서 같이 순교하였으며, 원씨, 김 마리아 2인이 홍주에서 정묘년에 순교하였고, 최 아우구스티노, 홍 베드로닐라, 양정수, 양 아우구스티노 4인이 병인년(1866년)에 홍주에서 순교하여 치명하셨으니, 이 곳 원머리에 얼마나 큰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던가를 알 수 있으며, 순교자들의 신심이 얼마나 깊었던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후 2000년 성전을 신축하면서 재정비했다가 2009년 교구 성지 위원회의 결정과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의 재가를 얻어 순교자 현양과 성지 개발을 위해 그해 11월 3일 본래 모셔져 있던 원머리로 유해를 옮겨 모시고 현양비도 수정하여 세우고 재정비 하였다. 신평원머리성지내에도 20여년간 모셔져 있던 자리에 기념비가 건립되어 순교의 높은 뜻을 기리고 있다.
첫댓글 김정자 아네스..김정란 마틸다.김애경 벨렌다 김순분 프란치스카..노병금바울라
김영선 세실리아.유남수헬레나.유영재마틸다..
허진희 카타리나.박건순 가브리엘. 참석 합니다...이국희모니카님 참석 합니다
낼 걸음여행 어율리안나. 이장순 바울라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