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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학사랑 글짱들 원문보기 글쓴이: 디디울나루
임진강, 삶의 현장에서 가꾸는 시심
문학평론가 리 헌 석
(사)문학사랑협의회 이사장
1. 임진강의 시인에 대하여
황의진 시인의 삶은 우리 시대 소시민의 억울한 자화상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역사의 피해자가 되어 절망적 삶을 영위하면서도, 그는 자신을 꼿꼿하게 지켜낸 의식 높은 시인이다. 민족의 비극인 ‘김일성 남침 전쟁’으로 인해 그는 고아가 된다. 1.4후퇴 때에 부친은 북으로 납치되었고, 그 와중에 어머니도 행방불명이 되었으며, 여동생이 있었으나 피난길에 헤어져 혈혈단신(孑孑單身)이 된다.
황의진은 임진강의 시인이다. 그는 임진강 상류에서 태어나 6.25와 함께 온갖 고난을 겪는다. 특히 납북된 아버지로 인한 연좌제(連坐制) 때문에 사회생활에서도 여러 제약을 받는다. 군(軍) 복무를 마친 후 고향에 정착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접적(接敵)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보낸다. 임진강 유역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을 숙명으로 인식한 그는 9년 연하의 여성과 결혼을 한다. 농촌 생활이 고단하였지만 자녀를 잘 양육하여 장녀가 의과대학에 합격하여 최상의 기쁨을 나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랄까, 운명의 신이 그들을 시기하였는지, 그의 아내가 ‘간경화’로 별세하는 아픔을 겪는다.
벅차오르는 심리적 충격으로 한때 방황하기도 하였지만, 문학 작품을 창작함으로써 어느 정도 위안을 받는다. 여러 작품을 빚어 인터넷 동호회 ‘대한사이버문학회’ ‘카페’에 발표를 하며 열정을 보인다. 좋은 작품을 빚어 등단을 하고 시집을 발간하기에 이른다. 그의 삶은 사회적 역풍으로 인해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으나, 사회에 대한 그의 시각은 따뜻하고 정의롭다.
지하철 3호선 연장
반대하고 지랄하고
지하철 6호선 연장
반대하고 지랄하고
경의선 전철화
반대하고 지랄하고
모두 개통되니 시원시원하다
배탈 나서 급히 화장실 들어가
확 쏟아내듯
지랄들 하고
―「경의선」 전문
함부로 법석을 떨거나 분별없이 막 하는 짓을 나타내는 비속어 ‘지랄하고’를 4회 반복하여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전달한다. 이 작품은 제재도 독특하지만, 시적 구조가 개성적이어서 독자들도 ‘시원시원하게’ 공감할 것 같다. 1연에서 3연까지는 단순한 반복의 효과가 빛난다. 경의선은 ‘대한민국’과 ‘북조선’으로 양단(兩斷)되어 있는 국토를 잇는 대동맥으로서의 의미를 띤다. 이를 연결하는 것은 남과 북이 소통하는 일이며, 갈라진 겨레가 서로 오가며 동질성을 찾을 수 있는 통로를 여는 일이다.
그러함에도 일부 시민과 단체들은 경의선을 잇는 것조차 반대하고 나선다. 특히 경의선을 전철화하는 것은 시민의 편익 증대를 도모하는 것이고, 그 상징성으로 인해 경제적 부담감을 상쇄할 수 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민족의 미래를 위한 대사(大事)여서 경의선은 개통이 되고, 그 주변 임진강 가에서 농사짓고 사는 시인은 마음까지도 시원하다. 마지막 5연의 1행은 앞의 여러 변수를 하나로 묶어 비판하는 극적 효과를 거둔다.
이런 바탕에서 사회에 대한 정의로운 비판, 아내의 영면(永眠)에 따른 애상적인 정서의 폭발, 그러면서도 황의진 시인은 다시금 세상을 따뜻한 마음으로 끌어안는 내면을 작품으로 빚는다. 필자는 이러한 그의 작품들을 독자보다 조금 먼저 읽으면서 그 정서에 공감하여 여러 번 눈물을 씻어야 했다.
2. 겨레의 애환을 노래하다
황의진 시인은 어려서부터 민족 애환의 중심에 휩싸여 산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따랐을 것이고, 그 고통으로 인해 절망 또한 컸을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그렇지만, 견고한 내면을 소유한 그에게 있어, 고통이 크면 클수록 그의 투지(鬪志)는 더욱 형형하게 살아난다.
그의 생활 터전은 임진강 유역이다. 특히 민간인을 통제하는 ‘민통선’ 안에서 농사를 짓고 산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일상을 이렇게 형상화한다. <나는 젊음이 다 기울도록/ 임진강을 넘나들며 농사를 지었다/ 아침에 건너가며 희망을 펼치고/ 저녁에 건너오며 지친 땀방울을 뿌렸다>고 노래한다. 그는 군(軍) 초소를 지나 임진강을 건너고, 민통선을 지나 농사를 지으러 다닌다. 하루 종일 일을 한 다음에는 다시 민통선을 나와야 하고, 다시 임진강을 건너고 초소를 지나 귀가한다. 이러한 생활을 숙명처럼 평생 반복한다.
임진강을 건너 밭을 갈 때는 ‘전진교’를 통과한다. 거의 매일 조석(朝夕)으로 건너는 이 다리는 적과 마주하고 있어 밤에도 불을 밝히지 않아 캄캄하다. 그래서 시인은 이 다리에도 환하게 불을 밝힐 수 있는 통일의 그 날을 염원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리 양 끝과 다리 난간 한쪽에 희미한 불을 켜 놓아 통행에는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지만, 적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아직도 캄캄한 다리다.
전진교에는
지축을 흔드는 전차 소리
초병들의 우렁찬 구령 소리
임진강 얼음 위에 잠이 든다
철새떼
날개깃에 머리 묻고
죽은 듯이 앉았는데
찌푸린 하늘에
눈발은 날려 날려
차디찬 바람 귀밑을 스친다
별빛도 잠들고
새까만 밤 깊어도
불빛 없는 전진교
가로등 환히 밝혀질 날
기다리고 기다린다
―「전진교」 전문
시인에게 있어 임진강은 삶을 위해 건너다녀야 하는 존재다. 그래서 임진강은 그가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아픈 사연의 발원지로 기능한다. <1.4 후퇴하던 해/ 폭격에 끊긴 독개다리에서/ 배고파 우는 동생을 세워두고/ 여기서 기다리면/ 먹을 것 구해올게 하고는/ 다신 못 만났다>는 눈물어린 곳이다. 그래서 시인에게는 <지금도/ 누이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적벽을 넘지 못하고/ 푸른 물 위에 맴돌고 있다>고 울먹인다. 그는 <많은 세월 동안/ 임진강물은 내려다보지 못하고/ 가로지른 4차선의 다리 저쪽/ 적벽만 바라보며 숨 가쁘게 다녔다/ 이제야 다리 밑으로/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알았다>고 실토한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농민으로서의 애환이다. 이러한 애환은 자신에 머물지 않고 친구의 삶에도 적용된다. <임진강 민통선 옆에 자리 잡은 작은 농장>을 경영하는 친구에게 ‘구제역’이라는 바이러스가 찾아와 그 친구는 <천직으로 알고 기르던 소를 땅에 묻어야 했다>고 토로한다. 어미 소를 백 마리로 늘리고 <꿈의 동산에 요양원을 짓겠다는 소박한 꿈>을 펼치던 그 친구는 육십 평생을 급행열차처럼 달려왔지만, 이제 <문산역을 지나서/ 구제역에 영원히 머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지리적 ‘문산역’의 ‘역(驛)’과 가축질환의 하나인 ‘구제역’의 ‘역(疫)’의 음성상징을 통해 운명적 시련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러한 아픔은 자연재해와 국제 무역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황사는 봄이면 가끔 찾아온다
황사가 오면 마음이 언짢다
맑은 마음도 초롱초롱하던 눈동자도
희뿌옇게 덮어온다
황사는 무섭고 슬펐던
한국전쟁을 생각나게 한다
말 탄 중공군과 미군 폭격기
아우성치던 피난민들
즐비하게 누운 시체들
그때 부모와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이웃들 아름다운 추억도 모두 사라졌다
남북통일도 멀어졌다
중공군 때문이었다
황사는 바로 중공에서 온다
농작물은 누렇게 병들고
빨랫줄에 옷들도 걷어야 하고
일광욕하던 장독도 덮어야 한다
뒤이어 값싼 농산물이 몰려온다
농사꾼이 된 나를 또 괴롭게 한다
―「황사」 전문
6.25라는 ‘김일성 침략전쟁’이 일어나 대구지역까지 후퇴하였지만, UN군의 도움을 받아 우리 국군은 압록강까지 전진한다. 그러다 중공군의 기습으로 1.4후퇴를 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로 인해 시인의 가정은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된다. 그 아픔을 가슴에 담고 살면서, 언젠가는 흩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이런 때에 ‘통일대교’가 건설되고, 현대 그룹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북으로 건너가는 일을 목격한다. 그러나 <새로 고친 자유의 다리로/ 납북된 포로들이 일부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끝내 소식이 없었다>고 절망한다.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지나는 것은 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장쾌한 일이었지만, 시인 개인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꽃다운 청년들을 납치해서/ 무참히 잘 죽여줬다고 북괴들에게/ 고마워서 소까지 끌어다 주는 모양>이라고 억하심정(抑何心情)이 되기도 한다. 특히 <임진강 건너엔/ 억울하게 죽은 사람 위에/ 살인자들이 여전히 당당하다>면서 조국 분단의 현실을 직시하기도 한다. 이렇듯이 시인은 임진강을 기반으로 생활하면서, 겨레의 애환을 직접 목격하였기 때문에 가슴 시리도록 절절한 작품을 빚는다.
3. 아내는 그리움이다
어려서 홀로 된 황의진 시인에게 가정을 꾸리는 일은 ‘꿈의 원천’이었을 것 같다. 행복을 꿈꾸며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양육하는 것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하였을 터이다. 그리하여 조국 분단의 현장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지라도, 그는 크고 작은 행복 속에서 산다.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靑天霹靂)이 일어난다. 아내와의 사별이다.
그의 아내는 결혼 당시 <스무 살 된 허약해 보이는 새댁>이었고, 이 새댁이 이동슈퍼 봉고차 앞에 <만삭인 몸으로 다가가/ 20원짜리 호박잎 한 묶음>을 사서 저녁 반찬을 하던 사람이다. 그러다가 <농장 생활이 너무 힘겨워/ 옛 이야기하며 여행 한번 못 가고/ 어린 자식들 눈에 넣은 채/ 노을 붉게 물든 선산>으로 떠난 사람이다. 그런 아내가 그리워 시인은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텅 빈 농장 한편에/ 어린 아내가 먹고 싶었다고/ 나를 위로했던 호박잎에는/ 항상/ 이슬이 많이 고여 있다>고 한 작품 ?호박잎」에서 그의 가슴에 고였을 ‘이슬’을 연상할 수 있다.
아내의 별세 1주기를 맞아 그는 <당신 신주 앞에/ 메 한 술> 떠 놓고 <눈물을 참으려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 본다. 사별 7주기를 맞아 따스한 봄날에 그는 임진강변의 들녘에서 달래를 한 바구니 캐온다. 며칠째 베란다에서 시들시들 마르는 것을 보고 <아내가 와서 찌개를 했음 좋겠다>고 아내를 그린다. 그는 <말라버린 달래 바구니 들고/ 아내 사진 앞>에 서서 아내를 그리는 사람이다. 그런 시인에게는 모든 사물이 아내와 연계된다. ‘가랑비’에서도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찌푸린 하늘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다
별이 된 당신이
구름에 가리워 내가 안 보여
보고 싶은 마음 전하려고
눈물을 뿌려
눈물을 뿌려
창가에 맴돌다
내 얼굴에 점자처럼 내려앉는다
당신이 전하는 간절한 마음
얼굴로 읽는다
―「가랑비」 전문
구름에 가려 시인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그의 아내는 하늘에서 가랑비로 내린다. 시인의 집 창가를 맴돌다 <점자처럼 내려앉는다>는 구절은 참으로 절묘(絶妙)하다. 손으로 더듬어 자신을 확인하는 아내의 손길과도 같은 가랑비, 그래서 시인은 얼굴에 흐르는 빗물에서 아내의 손길을 느끼고, 그 손길에서 아내의 마음을 읽어낸다. 이처럼 절절한 사랑을 노래하며 아내를 그린다.
그러면서도 그는 슬퍼도 슬퍼하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시심을 표출한다. ?비밀번호」에서 그는 <아내의 제삿날이 되면/ 조용히 제사를 지냈다/ 슬픈 기억을 지우려고/ 아내 얘기는 입에 담지 않았다/ 아이들도/ 엄마 얘기를 안 꺼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마저 어머니를 잊는 것 같아 서운하였는데, 어느 날 의대를 다니는 ‘큰애’가 은행카드를 만들어 보내왔고, 그 비밀번호를 묻자 <엄마 생일날>로 정했다는 대답을 듣는다. 대답을 듣고 그는 아마도 돌아서서 한없이 느꺼워 울었을 것 같다.
황의진 시인은 아내를 위해 나무를 심는다. <농장에 앵두나무 한 그루 심었소/ 아내는 가슴에 앵두나무를 간직하고 있다/ 얼마 후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포도나무하고 매실나무도 심었지/ 아내는 가슴에 과수원을 만들었다/ 아내의 가슴에 과수원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하여 나무를 심는다. 그 열매를 나누던 아내가 간 이식을 위해 떠난 후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그 후 시인은 냉장고에서 포도가 몇 알 말라붙어 있는 종이컵을 본다. 혹여 <아내가 포도 컵을 가지러 꼭 올 것만 같아서> 그 포도 컵을 식탁 위에 놓아두고 한해 여름을 보낸다. ?가슴에 심은 나무」에서 만난 가슴 아픈 사연이다.
어느 날
당신이 찾아와
두 팔로 내 목을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목이 메었다
하얀 쪽배에 몸을 싣고
당신이 은하수를 건너가던 날
별들이 다 죽어 가도록
귀뚜라미는
너무나 슬피 울었다
창가에
햇빛이 다 녹아 내려도
내 목에 걸어 두고 간
당신의 두 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꿈속을 꿈속을 헤멘다
―「별들이 다 죽어가도록」 전문
그리운 사람은 꿈을 꾸어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꿈에 나타난 아내가 사랑한다고 목이 메어 속삭인다. 꿈속의 아내가 떠나던 날 <별들이 다 죽어 가도록> 귀뚜라미가 슬피 울었다고 한다. 귀뚜라미의 울음은 바로 시인의 울음이다. 아내가 시인의 목에 걸어두고 간 두 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꿈속을 헤매는 것이 바로 시인의 변함 없는 사랑이다.
꿈에서라도 만나야 할 정도로 애타게 그리운 아내이지만, 그는 기다리지 않겠다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복사꽃」에서 <올해는/ 당신이 사랑하던/ 복사꽃이 피지 않았다/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를/ 괴로움으로 맞섰지만/ 봄이 와도/ 끝내 꽃을 피우지 못했다>고 한다. 이 말은 아내가 떠나서 복숭아나무도 따라 죽은 것 같다는 인식이기도 하다. 그는 죽어 썩어가는 복숭아나무를 톱으로 베어 넘긴다. <죽은 나무도 안타깝고/ 내 마음도 찢어져> 다시는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멀리 떠난 당신처럼/ 복사꽃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의 가슴에는 절절한 그리움이 흐를 것이다.
4. 가다듬는 서정을 따라
황의진 시인은 그가 마주하는 사물, 사상, 그리고 정서를 통해 다양한 형상화로 감동을 생성(生成)한다. 이웃을 제재로 한 작품에서 그는 정서의 동질성을 표출한다. 세상에서 낙오되어 안타깝게 죽은 ?봉과장」에 대한 에피소드는 동병상련을 담고 있다. ?막내아들」에서는 <개복숭아로 술을 빚어 먹으면/ 무릎관절에 효험이 있다며/ 해마다 복숭아를 따던 절름발이 할머니는/ 무릎이 오그라붙어 더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며 애잔한 정서를 환기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정서를 토로하기도 한다. <채소는 뭉크러졌고/ 살아남은 무 배추는/ 고라니가 먹고/ 멧돼지가 밟았다>다면서 절망적인 상황을 ?김장」에 그린다. 특히 <작은어머니는 배웅 나오셔서/ 거친 손을 흔드셨다/ 서리 맞은 배추 잎이 펄럭이는 듯했다>에서 시인의 안타까운 정서가 드러난다. ?농심」에서 <한 톨 남기지 않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해를 거듭했다>고 희생적 사랑을 노래하면서, <몇 날 며칠을 기다려도/ 안부 메시지 한통 없는/ 낡은 휴대전화 뚜껑을 행여나 해서/ 하루에 몇 번씩> 여닫으며 외로움을 달랜다.
마을회관이나 노인정에 가면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그만의 가슴 시린 삶이다. 그래서 그는 한겨울에 높은 산에서나 볼 수 있는 ‘상고대’와 같이 차가운 정서를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첫사랑은
날 따라온 꽃이라네
꽃은 눈물에서만 피었다네
어느 날
나는 밤새워 울었다네
그러나 꽃은 피지 않았다네
그 후로도
내가 울 적마다
꽃은 끝내 피지 않았다네
눈물이
모여 모여 허공을 떠돌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얼음 꽃이 피었다네
―「상고대」 전문
아내를 만나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하며 살아도, 아내의 사별에 의한, 그 첫 사랑이 눈물의 꽃이라는 인식에서 빚어진 작품이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는 밤새워 울어도 그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꽃이 피지 않지만, 시인은 아름다운 꽃을 기대하며 수없는 날밤을 계속하여 울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시인의 운명이이도 하다. 그 눈물이 한겨울의 나뭇가지에 내려 앉아 ‘얼음꽃’이 되었다는 애절한 에피소드를 작품으로 빚는다.
이러한 정서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방향으로도 승화된다. <어머니의 제삿날이다 상차림을 하다가 북어포를 보니/ 옛일이 생각나 북어 대가리를 잘라 문밖에 내놓고/ 그 옆에 술도 한잔> 따라놓는다. 이는 어머니와 숨바꼭질을 하며 찬장 밑에 살던 강아지만한 옛날의 그 쥐가, 어머니 제사를 지내는 오늘 밤에, 어머니를 따라 함께 올 것만 같아서 그런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오롯하고, 미물에도 관심과 동정을 베푸는 시인이 바로 황의진이다.
그는 앞으로도 따뜻한 가슴으로 작품을 빚어 새로운 감동을 생성하리라 믿는다. 이런 믿음과 기대로 황의진의 시 감상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