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다음에는 현재가 오고, 그 다음은 미래가 되는 일방통행의 시간의 흐름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진실이지만, 만약 그러한 시간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고 또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책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각자가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속에서 살아가는 남녀의 사랑과 삶을 그린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우선, "시간 여행자의 아내"란 어떤 의미인가?"하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시간 여행을 "해 버리는" 남자의 아내를 말한다.(그대로인가?) 시간여행이라고는 해도 스스로의 의지로 자유롭게 시간을 넘나드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바램과는 상관없이 말 그대로 "해 버린다" 혹은 "하게 된다" 는 개념이다. 이 작품의 주목해야 할 부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흥미로운 모험이야기로서의 시간여행이 아니라, 시간을 넘나드는 능력이 "시간장해"라는 일종의 유전적인 결함의 하나로서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 헨리는 언제나 부지불식간에 알몸 상태로 다른 시대에 내던져지는, 자신의 몸 이외에는 의복을 포함한 어떤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매우 불편하고 위험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이야기에서 많이 보여지던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자신과는 마주쳐서는 안 된다"와 같은 규칙같은 것은 일체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시대의 자신과 연관되어 간다. 그리고 이런 시간장해를 안고 살아가는 헨리의 아내가 바로 또 한명의 주인공인 "시간여행자의 아내" 클레어다.
이야기는 헨리와 클레어의 시점을 교차해가며 담담하게 나아간다. 클레어가 헨리와 처음 만나는 것이 6살 때로, 이 첫 대면 이후 클레어의 성장 단계에서 매번 다른 나이의 헨리가 나타난다. 그렇지만, 나타나는 것은 30대 이후의 헨리. 그런 두 사람이 현실(현실이라는 말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에서 만나는 것은 클레어가 20살, 헨리가 28살 때. 시간의 흐름상 이 지점에서의 헨리는 아직 과거의 클레어를 만나러 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클레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고, 오히려 클레어는 6살 때부터 몇번이나 만나 온 까닭에 헨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시간차에 의한 유머러스하거나 로맨틱한 느낌의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당연하게도 두사람은 연결되지만, 결혼 후에 헨리는 과거의 클레어를 만나러 빈번하게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떠나진다). 헨리가 없는 시간은 고작 몇분에서부터 몇 시간, 어떤 때는 며칠에 이르기까지 매번 다르고, 그 시간동안 클레어는 오로지 걱정 하면서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이 시간장해를 안고 살아가는 헨리의 고뇌와, 남편을 지키며 기다림을 반복하는 아내 클레어의 인생이 너무나 안타깝게 다가온다.
헨리는 분명히 시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의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어쩔수 없이 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결국 헨리에게 있어서는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과거"나 "미래"라는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 그대로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두개의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을 사는 사람끼리 어느 한 지점에서 연결되고, 그리고 맞이하는 이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마지막 장면에서는 기어코 눈물짓게 만드는 이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시간여행을 다룬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결코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