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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든 처녀산행인 놈이 산행기를 쓴다고 한다.
난 내심 우리의 잭팟인 한라산을 노리고 있었으나 이번엔 넘겨줘야 한다.
껍딱, 보증, 에이... 한라산 첨이고 한가한 분이 둘만 떠오른다.
준비해...어서~~
내가 생각하는 산행기의 기본은 안가본 분도 가본거 같고 갔던 사람도 눈감고 한번 더 갈 수 있을 정도의 생동감이 아닐까 싶어 최대한 자세히 쓰고자 한다.
백운산에서의 비박...
처녀산행때 비박하고 궁뎅이 따러가서 자고 이번이 세 번째다.
이렇게 말하니까 딴데서는 무쟈게 자본 놈 같지만 딴데는 월출산 야영장밖에 없다.
며칠전 느닷없는 마루형님의 돌발에 갑작스레 급조된 독수리 오형제는 1월 5일 오후 세시 참마트 앞에서 그렇게 만났다.
난 마루형님과 같이 출발하면서 알았지만 참마트에서 만난 세사람은 형님의 푸르다 못해 시린 싼그라스를 보고 예의 호들갑을 떨어준다.
그때 난 또 알았다. 이럴려고 그 늦은 시간에 폰뱅킹으로 송금을 했다는 것을...
암튼 나도 조심스럽게 내마음속 장바구니에 싼그라스를 담아놔 본다.
용기를 내서 꺼내볼 수 있도록...
반가운 해후를 하고 위풍당당하게 참마트를 접수하러 들어간다.
바구니를 들고 이것저것 주워담는다.
물, 꽁치통조림, 라면, 삼겹살, 마늘, 무쌈, 양상치, 고구마, 감자, 바나나우유, 석쇠, 가스, 휴지, 키친타올, 껌, 귤...
그 와중에 회장님 황도를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뫼님과 그산님한테 삭제 당한다.
얼른 보니 세 개나 담아 놨다.
그 정도면 완전 매니아 수준인데 친구라고 봐주질 않는다.
그거 얼마나 한다고...맘 같아선 내돈으로 사고 싶었으나 빙고동님을 두 번 죽이는거 같아 다음 비박땐 파머스에서 세 개 사가지고 가기로 맘 먹는다.
장 본 것을 배분하기 위해 새로 생긴 큰 마트 주차장으로 옮긴다.
이름이 얼른 생각이 안난다. 그작가님이 광양의 명동이라고 했는데...
아~~생각났다. 트라이앵글이라고 한 것 같다.
장은 참마트에서 보고 빙고동님 차는 거기 세워두고 갈려니까 조금 미안했다.
다음 접선은 여기서 하자고 다짐했다.
분배가 끝난 배낭을 이것저것 뫼님 들어보며 확인하는데 그산님 배낭을 보더니 봇짐수준이란다. 하여간 뫼님^^
종주배낭을 다섯 개 싣고 올라타니 차가 묵직하다.
수련관에 도착해서 맛난 커피와 쿠키로 열량을 채우고 드디어 산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걷기 전엔 몰랐던 종소리가 들린다.
마루형님이 싼그라스 사고 사은품으로 받은 종이 배낭에서 땡땡거리고 있다.
그러자 뫼님...소 몰고 가는거 같다고...진짜 소 끌고 가는거 같은 소리가 싫지 않다.
저 사은품도 잘 기억해 둔다.
오랜만에 매본 종주배낭이 무겁지만 쉬엄쉬엄 갈만하다.
능선까지 올라와 헬기장을 향하는 길은 유난히 지루하다.
아마도 거의 다 온 듯한 생각이 들어서 그럴 것이다.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빙고동님이 기다렸다가 내 배낭에 꽂혀있는 큰 생수를 꺼내서 들고 간다. 역시 회장님은 다르구나...아무나 회장이 되는건 아니구나...나 같은 초짜를 저렇게 챙겨주는구나...이쪽 주머니에도 뭘 좀 꽂아둘껄...
헬기장에 드디어 도착했다.
이제 다 온 듯한 느낌이 드는데 해는 거의 넘어가고 조금 서둘러야 했다.
억불봉으로 향하는 길은 아주 수월했다.
가는 길에 그산님이 색계란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마침 얼마전에 본지라 서로 침을 튀며 얘기를 했다.
탕웨이, 왕조위 주연의 영화인데 실제냐 연기냐로 논란이 됐고 중국에선 심의에 걸렸고 우리나라에선 무삭제로 개봉을 했다는 얘기로 시작해서 그 이쁜 탕웨이가 毛를 다 보여주고 왕조위는 ball을 보여주고...거기도 메이크업을 했니...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는 둥...메이크업 해준 여자만 디졌다는둥 한바탕 웃고나서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억불봉에 도착해서 헤드랜턴을 장착하고 그동안 무수히 많은 말을 들었지만 처음 가보는 설레이는 업굴 입성을 위해 출발했다.
얼마 안가 한참을 로프 잡고 내려가야 하는 암벽이 나타났다.
언제 내가 줄잡고 등산을 해봤겠나...이 줄 쌩쌩할까 싶기도 하고 온통 암흑이라 움찔했지만 회장님 내려 가는걸 잘보고 있다가 따라 내려갔다.
이제부터는 길 같지도 않은 곳인데 가파른 곳을 한참 내려간다.
어찌됐든 내려가는 길은 낫다.
도대체 업굴을 어쩌다가 찾아냈을까 싶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지 아직도 많은 눈에 발이 푹푹 빠진다.
업굴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점에서 최대의 난코스를 만났다.
좁디좁은 수직벽에 로프를 잡고 올라가야 하는데 로프 있는데까지 가는 길이 짧은 거리지만 빙판이라 발에 힘을 맘껏 줄 수 없는 상황이다.
하는 수 없이 배낭을 벗고 한사람씩 겨우 올라섰다.
빙고동님과 마루형님이 로프잡고 올라섰고 내가 중간에서 배낭을 하나씩 꼼지발을 서서 머리위로 들어올렸다.
그 순간 오른쪽 종아리가 따끔한다. 다섯 개를 위로 들어올렸더니 힘이 한개도 없다...
절벽위로 올라서면서 무릎을 바위에 사정없이 찍었다. 피가 났겠다 싶다.
이런 썅...무릎보호대를 갖고 올 것을...
겨우겨우 업굴을 향해 나아갔다.
저 앞에서 다 왔다고 한다.
아싸리~~ 마지막에 별로 높지도 않은 언덕이 나왔다.
올라갈려고 오른발을 위로 확 디디는 순간 온몸이 굳을 만큼 엄청난 쥐가 나타났다.
목적지까지 3미터도 안 남았는데 이럴 수가 있나...
그 자리에 드러누웠고 마루형님이 마사지를 했다.
그 와중에도 형수님 마사지를 이렇게 하나 생각한다.
난 진짜 쥐가 그렇게 무서운줄 몰랐다.
하긴 쥐난게 태어나서 처음이었으니까...정말 쥐는 다 싫다...쥐포 빼고
그렇게 업굴에 입성을 했다. 업굴에도 쥐가 있다던데...ㅠㅠ
도착해서 보니 어떻게 이런 멋진 굴이 있나 싶을 정도로 감탄이 나온다.
어렸을 때 우리들만 아는 그런 아지트 같은데서 놀았던 그런 곳이다.
짐정리를 간단하게 하고 비박용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런데 얼핏 보니 회장님이 월출산 비박때 개시했던 몽* 우모복을 입은 것이 아니라 노**** 우모복을 입고 있는게 아닌가???
무쟈게 좋아 보이는게 회장 당선된 기념으로 마님께 제대로 봉사하고 협찬을 받은거라는 생각이 들어 못보던 옷을 막 띄워줄려고 얘길 꺼냈다.
“회장님!!! 월출산때 죽이는 우모복 입었더만 그건 또 뭐에요? 우와 죽인다~~”
“얼마 줬는데요?”
“다섯장”
헉!!! “그럼 월출산때 입은 몽*은 얼만데요?”
“세일해서 두장 좀 넘게 줬어요”
“우와 멋있다~~”
“막 입을라구 이거 입구 왔어요”
헐!!! 다섯장이 오마넌을 말하는 거였다.
뫼님은 서둘러 나무 베기 위해 가져온 톱을 꺼내 든다.
마루형님은 야삽도 가져왔다.
누가 보면 진짜 살벌한 사람들인줄 알겠다.
이런 칠흙 같은 어둠속에서 톱이랑 삽을 들고 산속에 있으니...
우린 조심스럽게 불을 지피고 저녁을 준비했다.
꽁치찌게와 뫼님이 가져온 압력밥솥에 찰진 밥을 했다.
미친 듯이 배를 채우고 모닥불에 조심스럽게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양상치에 삼겹살과 파절이와 마늘과 무쌈을 넣고...아삭아삭한 양상치에 씹히는 고기맛이 가히 예술이었다. 곁들인 매실주까지...
모닥불 앞에 둘러 앉아본지가 언제였던가...
정말이지 산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이런 기분을 다 알까 싶다.
배불리 먹고 나서 마시는 커피까지 너무 여유롭다.
마니 추울꺼라고 해서 준비해 온 타이즈 입었지...불똥에 탈까봐 안에 껴입은 우모복 입고 모닥불 앞에 앉아 있을라니 막 땀이 날 지경이다.
아씨...이러다 땀띠나면 어떡하지? 피부가 애기피부라 연약한데...파우더를 가져올껄 싶다.
얼마후 고구마랑 감자를 호일에 싸서 조심스럽게 불속에 넣어두었다.
한참동안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마루형님이 장갑만 낀 손으로 고구마를 꺼낸다.
뜨겁지도 않나...불을 마니 다루는 사람이라 불이 귀여운가 보다.
꺼낸 고구마를 형님말로 십자가가 지워졌다는 다용도칼로 쪼개보니 노랗게 익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속살이...
아~~죽이는 꿀맛이다.
한 개씩밖에 안돌아가서 너무 아쉬웠다.
담부턴 뫼님 좀 더 사요!!!
화기애애하게 모닥불 앞에 앉아 좋은 사람들과 갖는 이 시간이 너무도 행복하다.
봄기운님은 아직도 업굴에 못 와봤다는데 난 참 운이 좋은 거 같다.
그래도 요즘 봄기운님이 윗분들 모시고 안내산행 하신다는데 아무쪼록 가시적인 성과가 있기를 빌어본다.
뫼님이 가져온 수제 소세지를 호일에 싸서 불에 구웠더니 노릇노릇하고 탱탱하게 커진게 영~~조심스럽다.
마루형님이 칼로 써는데 잘 썰리지가 않는다. 아무래도 지워졌다는건 아닌가보다.
형님생일을 조심스럽게 알아놨다가 용기를 내서 하나 해드리자고 마음먹는다.
12시를 조금 넘은 거 같은데 가져온 음식과 술이 거의 바닥나버렸다.
아씨...분위기상 더 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아쉽기만 했다.
침낭을 펴고 잠자리에 든지 얼마 안됐는데 회장님이 슬슬 코를 골기 시작한다.
하긴 무슨 고민이 있겠는가...권력 잡았지, 복지카드 두 개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도 잠에 빠져 들었다.
얼마쯤 잤을까...눈을 떠보니 한시간 정도 지났다.
소변이 마려운데 침낭 밖으로 나오기가 싫다.
불은 거의 꺼져가고 바람에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백운산에도 맷돼지가 많다는데 설마 여기까지 올 수도 있을까 싶다.
아니다!!! 지리산에서 아무도 못봤다는 곰도 본 놈인데 맷돼지라고 못보겠나 싶어 더 못나가겠다.
그러다 도로 잠이 들었는데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다.
오매오매~ 터질 거 같다. 허겁지겁 침낭 지퍼를 내리는데 지퍼가 천을 씹어서 안내려간다. 지랄~~
다섯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마루형님이랑 그산님은 랜턴 끼고 장갑 끼고 마치 안자고 있었던 사람처럼 불 떼고 라디오도 틀고 이미 식기까지 다 씻어놨단다.
어쩜 저렇게 자상도 할까??? 누군지 몰라도 시집 잘 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또 꿈결 같은 잠에 빠져들었다.
일출을 보고 싶었는데 눈을 떠보니 여덟시다.
줸장!!! 그럼 그렇지...
화창한 날씨에 멀리 노고단과 천왕봉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일출을 못 본 것이 못내 아쉽다.
오뎅 넣은 라면을 끓여 먹고 남은 밥으로 누룽지까지 먹으니 배가 빵빵하다.
커피 일잔 하고 지리산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마루형님이 근무하는 날이라 조금 서둘러야 했다.
밤에 올라왔던 길을 내려가자니 어떻게 올라왔나 싶을 정도로 높다.
군데군데 빙판이어서 조심해야 했다.
지난 밤에 배낭을 머리위로 들어 올리던 곳에서 걍 뛰어내리다 흙덩이에 정강이를 스쳤는데 걷다 보니 조금 쓰리다.
안되겠어서 살짝 바지를 까보니 피가 꽤 난다.
마루형님한테 구급약을 달라고 할까 하다가 ‘저새끼 쥐가 나질 않나...까지질 않나...오랜만에 비박와서 쉴라구 했더니 여기까지 와서 구조활동을 시켜? 다신 안데꼬 다녀야지...’ 할까봐 걍 참기로 했다.
헬기장에 도착해 보니 한무데기가 앉아서 무언가를 먹고 있다.
근데 이렇게 더운데도 우모복을 입고 얼굴 벌개서 온 뫼님이 저기 갱미가 있단다.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데 역쉬 뫼님 눈까지 예리하다.
우리한테 쫓아온 갱미와 갑돌님 직원들 데꼬 안내산행 왔단다.
뫼님이 한라산 갈 때 예비신혼여행이라 여기고 방까지 따로 내어 준다고...진짜 결혼하면 하와이로 가란다.
부곡하와이!!!
그 말에 둘이 서로 쳐다보고 좋으면서 쑥스럽고 어쩔 줄 모른다.
암튼 이렇게 깨끗한 곳에서 같이 산행을 하는 저 커플 참 건전하고 좋아 보인다.
하긴 둘만 있을 수 있는 그런 공간에만 있다 보면 느닷없이 이런 산에 또 와보고 싶기도 하고 그럴 꺼다.
괜찮아... 우리 다 이해해^^
갱미님한테 수련관으로 내려가는 다른 험한 길을 뫼님 아무렇지도 않게 일러주고 우린 노말코스로 단숨에 내려왔다.
약수터에서 말끔하게 씻고 광양장으로 팥죽을 먹으러 출발했다.
비록 만 하루가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너무도 좋았던 시간이었고 정말 오래 기억에 남을 추억이기에 쓰라린 상처도 영광스럽다.
다음에 또 업굴비박이 예고되면 항상 참석하기로 마음먹고 혹시라도 5명 정도가 정원인 곳에 신청자가 몰리면 마루형님과 뫼님이 나무 베서 이층침대를 짜주리라 믿는다.
비박 순간순간의 생생함을 글로 제대로 전달 못한 점을 스스로 아쉽게 생각하며, 지혜로운 우리 회원님들이 알아서 이쁘게 봐주시리라 믿고 이만 마치겠습니다.
한라산을 위해서 건강관리 잘해주십시요!!!
참석자 : 빙고동, 산마루, 하늘아래뫼, 그리운산, 티코파이
첫댓글 히히히 넘 잼있습니다. 그 실력 어디가겠습니까 거운비박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부럽
생생한 감동이 몰려옵니다... 담에도 또 작품을 기대합니다.
완벽한 시나리오입니다...눈앞에서 또 비박을 하는것처럼 생생하네요...역대 최고의 비밥이었습니다..못내아쉬운건 근무때문에 5일장에서 팥 죽만 먹고,,숭어회에다 쐬주한잔 못허고 온것이 아쉽습니다..ㅋㅋ..다음 한라산행(신임산존님)기대합니다..^^*
늘 느끼지만, 참 글 잘 쓰십니다. 부럽습니다.^^*
산마루님은 불이 귀여운가보다..ㅎ 파이님 글이 더 귀엽습니다..ㅎ 잘보고 갑니다~~^^
감히 댓글을기가 겁나도록 멋진 글이였습니다...... 혹시 알바쓰는거 아닌지요... 잘읽고갑니다
파이님 진짜 색계에서 다보이나요?? 산행기가 너무 실감나서 읽고있으니 다보이는거 같네요...^^*
다 보입니다...졸다가 깜짝놀랐습니다...옹달님하고 같이 보세요...도전해보고싶은것도 있습니다
아~ 산행후기를 보니 갤러리의 팥죽이 뭔지 알겠네요.ㅎㅎ, 근데 혹시 티작가? 우리카페엔 작가들이 넘 많은것 같아요..
업굴비박 만큼 재미있고 즐거운 글입니다. 파이님, 고맙습니다~
혹시 옛날에 작가 지망생 아니었나요? 요즈음 너무 지치고 힘들었는데 ....티코파이님 때문에 웃네요
긴 글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님 다시 보입니다
누가 티코님 보고 라... 했는겨..헤헤 ..^^*
ㅎㅎㅎ 이층침대 만들어 놓으면 함 낄랍니다. 파이님 보고잡다.
산행후기 읽고 있는데..수련관으로 내려가는 다른 험한 길을 뫼님 아무렇지도 않게 일러주고...여기에서 헛~하고 터지는데요...^^;; 저 그때 백운산 탄 일행중 1人 이였습니다..이거 이거 백운산 두번갔는데 두번째..길을 헤매게 했던 거친산행로(?)로 인도하신 분이 뫼님이셨나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