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간만에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은미씨한테서 문자가 온다. 내일 금샘에 대타 뛸 수 있느냐고.
오후에 복지관 가는 날인데 미화씨가 안 된다니 할 수 없지. 아그들은 요즘 우째 책 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오케이. 대부분 두세살이라고 해서 혹시나하고 집에 있는 책을 훑어보니 갖고 갈 만한 책이 없다.
‘우씨, 며칠전에 말해줬으면 도서관에 가서 빌려오면 되는데. 낼 일찍 금샘 가서 골라 읽어주지 뭐.
은미씨 일지 써놘거 보니까 너무 어려서 책 보기는 뭘 봐, 아그들 노는 거나 보지 뭐 .’
다음 날, 지킴이 수희씨가 일찍 문을 열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 몇 권을 훑어보다 두 개를 골랐다.
하나는 완전 처음, 또 하나는 유명 작가의 책인데 제목만 알고 있던 걸로.
신동 어린이집 아이들이 온다. 신발 벗는 거 도와주며 눈 좀 맞추어보렸더니 손도 못 대게 하고
어린이집 샘만 찾는 애들도 있다. 나중에 책 읽어줄 때 보니까 두어명은 작년인가 금샘 책읽어주기 했을 때
본 적 있는 얼굴같기도 하고.
걔중에 제일 커 보이는 여자애(다섯 살 서영이던가?) 가 책을 들고 와 샘에게 읽어달라고 하는 걸 보고
“아줌마가 대신 읽어줄게.”
들고 온 책은 <메리크리스마스, 늑대아저씨>
아기돼지들이 노래하는 부분은 내 마음대로 음을 붙여 노래 불러주니 웃으며 내 입만 쳐다본다.
부끄럽기도 하고 순간 급 당황. 그래도 뒤에 한번 더 노래하는 부분이 나올 때도 노래로 불러 주었다.
늑대가 ‘우우우...’ 하는 게 많이 반복되어 나오니까 나중에는 따라한다. 좀 더 늑대소리처럼 실감나게 해 줄 걸 그랬다.
제일 마지막 장 줄글은 눈으로 쓰윽 훑어보니 설명이 많은 것 같아 중간에 잘라 읽어주고 마무리.
이제 샘들이랑 아님 혼자 책 보던 아이들을 한 데 모아 이 노래는 다 알겠지 싶어 산토끼 노래 함께 부르며 시작하려는데
아는 친구가 딸랑 한 명이다. 샘에게 요즘 어린이집에서 잘 부르는 노래가 뭔지 물어봐서 ‘삐약삐약 병아리~ 따당 따당
사냥꾼~’ 이런 노래를 불렀다.
<옛그림 따라 아장아장> 은 별다른 반응이 없어 순간 또 급 당황.
‘다른 책도 그러면 어떡하지? 샘들도 있는데.'
계속 읽어주기했던 애들이면 ‘이 책은 겉으로 반응이 별로 없는 책이구나.’ 하고 말거나 표정이나 분위기 등으로
반응했다면 캐치해냈을랑가?
이번엔 <싹싹싹>
수프 먹는 첫 장면부터 한 남자애가 저도 수프 먹은 적 있다며 말한다.
‘손에 흘렸네’ ‘발에 흘렸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말이 재미있어 웃는 건지, 수프 흘리는 그림이 웃기는 건지
아이들이 같이 웃는다.
‘누구 입에 수프가 묻었네요.’ 문장이 끝나자마자 남자애가 “이거”한다. 앞에는 동물들(동물 인형?) 이 나왔고
이번에는 아이가 나와서 ‘얘’ 할 줄 알았는데 ‘이거’ 라고 하네. 또 아이 옆에 있는 곰(곰인형?) 의 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 붙였어요?”
’헐~ 갑자기 붙이기는 뭘 붙여?‘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금새 제 스스로 또 대답을 한다.“포도”
그러고보니 색깔도 그렇고 코가 큰 게 뭘 붙여놓은 것 같기도 하다.
수프 묻은 아이를 닦아주는 장면을 보고는 “엄마가 닦아주네.” 하며 나직이 말하는 게 편안하고 사랑스럽게 들렸다.
아이들이 책의 결말을 보며 안도감을 느낀다는 게 이런 걸 말하는건가?
첫댓글 오랜만에 아그들이랑 눈맞추고 입맞추고 행복했겠어요?ㅋㅋ 아, 작년 생각난다.
둘째놈 학교 도서관에 일이 좀 생겨 못갔네요. 에구, 재선씨만 좋았겠다^^ㅋㅋ
역시 고수님답습니다. 뭘 하느라 6월말과 7월초를 보냈는지 반성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허욕은 아닌지, 더 단순명쾌해야 하는건 아닌지....? 땜빵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