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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동쪽 자락에는 여우와 관련한 이야기가 유난히 많다.
관악산 쉰고개의 마을의 강씨 집안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묘자리를 잡게 됬다.
지사가 묘자리를 잡는데 혼자 말로 "그 막내 상제가 이만하면 지탱은 하겠다"고 중얼거리며 묘자리를 잡아 주었다.
상제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였으나 지사가 견디기만하면 명당이라고 하였다.그 곳에 아버지의 산소를 모시게 되었다.
산소를 쓰고 첫날 밤에 맏상제에게 죽은 아버지가 문밖에 와서는 얼굴은 보이지 않고
"내가 편히 잘 수가 없으니 이장을 해 다오" 라고 하면서 사정을 하였다.
형제들이 모여 의논을 하였으나 새로 모신 산소이고 지사의 말이 있었으므로 이장을 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밤에는 둘째 아들에게 목소리만 들리우며 이장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대로 두었더니 사흘째 밤에는 막내 아들에게 와서
너희 형들에게 이장을 해달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으냐.
내가 네 애비니 제발 나를 좀 살려다오"라고 애원을 했다..
막내아들은 "아버지가 오셨다면 한 번 뵈었으면 좋겠으니 방안으로 들어 오십시요"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어둠속에 숨어 있던 목소리가 약간 당황 하는듯한 목소리로..
"아이구 이 흉한 모습을 어떻게 보여 주겠니"라고 하면서 안 들어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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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아들은 돌아가신 후 5일장을 지냈으니 편히 저승으로 가셨을텐데, 죽은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다닐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틀림없이 고개에 사는 여우가 제 집을 빼앗긴 것을 복수할려고 둔갑을 한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막내 아들은 제발 들어와서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고 애원을 했던 것이었다..
들어오기만 하면 여우의 속임수를 밝혀 돌아가신 아버지가 편히 쉬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계속 애원을 하자 여우가 그럼 손을 들이밀 터이니 문은 열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들이 알겠다고 하자 문틈으로 사람 손이 들어왔는데 손톱이 길고 팔에 누런 털이 나있었다..
막내아들은 힘을 주어 손을 꼭 잡은 후에 하인들을 불렀다.
하인들이 달려와 보니 죽은 주인마님이 와서 문앞에서 꼼짝 못하고 서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닌가.
하인들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돌아가셔서 땅에 묻힌 분이 살아서 돌아다닐 수는 없는 것이니
몽둥이로 때려 잡아라"라며 막내 상제가 엄히 꾸짖었으므로 정신을 차려 죽은 망자를 몽둥이로 때려 잡았다.
하인들의 몰매에 못이겨 죽어 넘어진 망자는 순식간에 여우로 변하였다고 한다.
막내 상제의 사려 깊은 행동으로 여우를 잡을 수 있었고 명당에 위치한 아버지의 산소를 지탱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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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에 사는 암여우가 강감찬을 낳았다는 전설이다.
강감찬의 아버지가 팔도어사가 되어 지방으로 나가게 되었다.
"길가다 다른 여자하고는 상관하지 마세요!"
집에 남게 된 큰 부인이 신신 당부를 하였다.
전국을 돌아보고 돌아오는 길에 과천에 와서 남태령 고개를 넘어 갈 때이다.
한 여자가 길 앞에 나와 어사의 앞길을 가로 막아 섰다.
부인의 당부도 있고 해서 그 앞을 스쳐 지나가려고 하였다.
"젊은 영웅께서 하루를 묵어서 가면 천하를 구할 수 있는 인연을 얻을 것인데
무슨 남자가 이러냐! 그 젊은 미인이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사가 인연이 되어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다음날 떠나려 할 때이다,
"앞으로 열달 후에 관악산의 어느 바위굴로 와서 아들을 찾아가라!"
그 여자는 이런 말하고는 여우로 변해 달아나 버렸다.
" 어이구, 이 양반 신수가 훤하시구려!"
집에 도착하니 큰 부인이 기막힌 꿈의 이야기를 하였다.
"꿈에 어떤 여인이 당신 남편과의 귀한 인연으로 얻은 아들이니
날이 되면 찾아 오라!
그 어사부부는 그 아이를 찾아다가 길렀다고 한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고려의 명장 강감찬장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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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남태령은 수목이 울창하고 후미진 곳이 많았다고 한다.
여우가 많이 나타났다 하여 여우고개라고 불렀다.
정조 큰 임금이 수원 화산으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원을 찾아가는 길에
남태령 고개에서 어가(御駕)를 잠시 쉬어가게 하였다.
"이 고개가 무슨 고개인가?"
한 시골 노인에게 고개의 이름을 물었다.
"예, 남태령이라 하옵니다"
그 노인은 임금에게 남녘에 있는 큰 고개 남태령이라고 아뢰었다.
이때 옆에 있던 과천현 이방이 나섰다.
"상감마마, 그 말은 거짓말입니다. 남태령이 아니라 여우(여시)고개라고 합니다."
정조도 이 고개가 여우고개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자한 정조임금도 크게 꾸짖으셨다.
"네가 어찌 짐에게 거짓 이름을 고하느냐?"
한 노인에게 곤장 100대를 때리라고 명령하였다.
그 시골 노인은 고개 이름을 다르게 고한 사유를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면서 해명을 하였다.
"본시 여우라는 동물은 인간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동물이 아닙니다.
흔히 남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얕은 꾀를 부리고 잔재주를 부리는
사람을 여우같은 놈이라고 말합니다.
성스러운 상감마마께 쌍스럽고 하잖은 여우고개라는 이름을 감히 말씀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나름대로 한양에서 남쪽으로 가다 만나는 첫번째로 큰 고개라는 뜻으로
남태령(南泰嶺)이라고 아뢴 것이라고 했다.
정조는 촌노인이 자기를 생각한 마음에 감동되어 오히려 옆에서 고자질한 과천현의
이방에게 곤장 10대를 치게 하였다.
정조는 잠시의 노여움을 풀고, 시골 노인을 오히려 가상히 여겼다.
그에게 주지(周知)란 벼슬을 내리고 후로는 이 고개를 남태령이라 부르도록 했다.
그 촌로는 과천에 살던 과천 변씨(邊氏)로 현재까지 자손 8대에 걸처 모여 살고 있다고 한다.
남태령의 옛길을 지나 언덕을 숨가쁘게 오르면 큰길을 만난다.
그 길 가운데 '남태령(南泰嶺)'이라는 큰 돌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이 비석의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集子)하여 조각한 것이라 한다.
추사 김정희와 과천은 인연이 깊다.
경상도 관찰사였던 추사의 선친 김노경이 회갑연을 앞두고
과천에 별서(別墅)인 과지초당(瓜地草堂)을 지으면서 과천과 추사 김정희의 인연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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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동쪽 자락에 험한 '쉰네미 고개'다.
맹수들이 출몰하고 도적떼가 들끓어 고개 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였다.
쉰명이 넘어야 관군들의 호위를 받고 고개를 넘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과객이 한양으로 갈 때 마지막 밤을 과천에서 묶게 된다.
이 새술막에서 술값으로 노자를 다 쓰고 다시 '쉰네미 고개'를 넘어야 했다.
이때 과객들은 또 호송 관군에게 사례비를 건네야 했다.
그래 한양 가는 길 내 마음대로 못 간다고 해서 "한양 가려면 과천부터 긴다"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