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 장마철이 아니면 한반도에 내리는 비는 이틀을 넘기지 못합니다. 하루 온종일 비가 내리고 나면 그 이튿날은 어김없이 구름이 걷힙니다. 동해 바다와 서해 바다에 면한 한반도의 간격이 그만큼 좁은 때문일 것입니다.
서해로부터 불어 들어오는 대부분의 비바람은 24시간 이내에 모두 동해바다로 빠져 나갑니다. 그러기에 토요일 새벽에 시작된 빗줄기는 일요일 아침이면 그칠 것입니다.
평소 일기 예측을 자주 하다 보니 오늘의 예상은 중앙기상대의 예보보다 더 명확히 적중했습니다. 2006년 5월 28일 새벽 4시의 하늘은 이미 맑게 개었습니다. 일요일 오전까지 중부지방에 비가 내리겠다던 중앙기상대의 일기예보는 빗나갔습니다.
일기예보를 근거로 당초 10시경에 집을 나서려던 계획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서둘러 집을 나와 첫 차를 타야 했습니다. 비개인 오전의 맑은 삼각산의 모습을 만나자면 첫차를 타야 했습니다. 공휴일이나 일요일에는 평일 보다 30분 늦은 5시 34분의 전철을 타야 했습니다. 수원역을 출발하는 전철 1호선을 타고 종로 3가에서 3호선으로 갈아탔습니다. 구파발에 도착하여 북한산성 입구를 지나는 156번 버스를 타고 가다 백화사 입구에서 내렸습니다. 서둘러 의상봉으로 가는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산의 입구에 도착하니 7시 30분경이었습니다. 산의 입구에 위치한 북한산국립공원 매표소에서는 벌써 입장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나이 든 직원은 이 마을 주민일 것입니다.
북한산 백운대의 맞은 편 길인 의상봉 능선은 백화사 입구나 산성 계곡의 대서문에서 시작합니다. 산성계곡을 따라 오를 경우에는 대서문에서 성벽 길을 따르다 북서릉을 거쳐 곧장 의상봉으로 오를 수 있습니다. 백화사 입구에서 오를 경우에는 곧장 암릉을 타고 오르면 되는 코스입니다.
의상봉에서 문수봉에 이르는 이 코스는 산성문을 세 개나 거치는 아기자기한 구간입니다.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 원각문(圓覺門), 청수동암문(靑水洞暗門) 등이 있고 용출봉 증취봉, 나월봉 등이 능선을 이룹니다. '북한산 공룡릉선'이라 부를 만큼 경관이 뛰어난 구간으로 위험 구간에는 우회로가 있어 등산길이 안전합니다.
대서문 서남쪽의 의상봉 능선을 따라 산을 올랐습니다. 의상봉으로 오르는 길이 매우 가파른 난코스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바위 사면에는 철봉과 쇠줄로 안전장치를 해놓았습니다. 그러나 초심자를 안내하기에는 대서문을 지나 산성계곡을 따라 오르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수월할 것입니다. 바위 사면에는 북한산 소품으로 불릴 만한 재미있는 형상의 바윗돌이 놓여 있었습니다. 북한산 부근의 기갑사단에서 볼수 있는 탱크같은 모습이기도 하고 오리 등에 두꺼비가 올라탄 모습이기도 하였습니다.

의상봉(미륵봉)에 오르니 삼각산의 웅장한 모습이 병풍처럼 다가왔습니다.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습니다. 또한 아침 햇살에 빛나는 산성계곡의 짙푸른 신록이 싱싱하였습니다. 단지 응달이 진 아침시간이어서 삼각산의 모습을 밝게 담기에는 햇빛이 부족하였습니다.
용출봉과 용혈봉을 지나 증취봉에 머물러 잠시 쉬었습니다. 햇빛이 밝게 나기를 기다려 삼각산의 전경을 만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6월에 가까운 여름 날씨인 탓에 골짜기에서는 옅은 안개가 피어올랐습니다. 은근히 기대하였던 맑고 또렷한 삼각산의 전경은 점차 흐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바윗 암릉길에 엉겅퀴꽃이 피어 산행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기름진 땅에서 보다 척박한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엉겅퀴꽃이 더욱 아름다운 줄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모습입니다. 지나친 것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모습니었습니다.
의상봉 등산길에서 만난 10살 연장의 등산객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지난 2월에 삼각산에 왔다가 극락세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궁금히 여겼더니 얼음 녹아 물방울 맺힌 나뭇가지에 햇빛이 닿아 이루는 오색찬란한 극락의 순간을 목격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사진으로 담아 놓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대구 팔공산 등산길에서 만났던 오색찬란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비온 뒤의 이른 아침에 한적한 의상봉 능선을 오르는 등산객은 이런 색다른 만남을 예상하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증취봉을 지나자 의상봉길 암릉에서 가장 아슬아슬한 나월봉 나한봉 오름길이 나왔습니다. 길이 20m의 이 구간은 정상능선 왼쪽 턱밑으로 크랙을 따라 올라야 하는 아슬아슬한 구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구간은 보기보다는 그리 어렵지 않은 수월한 구간이었습니다. 크랙 구간이 끝나고 한동안 암릉길이 이어지다 막판에 암릉이 끊겼습니다. 여기서 경사면의 슬림을 잡고 왼쪽 도보 등산로로 내려섰습니다. 의상봉-문수봉간 암릉 종주는 여기서 끝나는 것입니다. 이후 문수봉 을 지나 대남문까지는 일반 등산로로 이어졌습니다.
문수봉 아래의 청수동암문 자리에서 발길을 북쪽으로 돌려 남장대터로 향하였습니다. 삼각산의 멋진 위용을 문수봉보다 가까운 남장대터에서 바라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처음 시작 구간인 의상봉에서 보는 것만 못하였습니다. 서남 능선에서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을 전망하기에는 의상봉이 제일 나은듯 싶었습니다.

남장대터에서 되돌아서서 문수봉으로 향하였습니다. 문수봉에는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대남문에 이르렀습니다. 구기동 방향의 비봉코스와 평창동 방향의 보현봉 코스로 올라온 등산객들로 왁자지껄하였습니다. 대남문에서는 삼각산의 전체적인 모습과 그 뒷편에 자리잡은 도봉산이 함께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비봉은 진흥왕 순수비가 섰던 자리여서 비봉으로 명명된 능선입니다. 지난 1.21 북괴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폐쇄되었다가 한참 후에 개방된 코스였습니다. 서울 종로구 신영동의 상명여대에서 시작해서 삼지봉-비봉-문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었습니다. 이 능선을 따르면 중간 중간 여러 군데의 재미있는 암릉 코스를 지나게 된다는군요.
북한산성의 성벽에 기대어 수도 서울의 궁터인 청와대로 이어지는 북악능선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어 미군기지 이전의 용산과 애국가에 등장하는 남산을 찾아보았습니다.
산성의 성벽에 기대어 물 한 모금을 마시며 풍경을 살피는데 나이 든 등산객이 방울토마토를 내놓으며 맛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노형의 배려에 감사하며 배낭에서 콩떡 한 개와 백세주 한 잔을 건네며 몇 마디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정릉에서만 쭉 살아왔는데 저 아래 보이는 강남과 강북의 수도 서울의 모습은 최근 35년 만에 이룬 기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참 빨리빨리도 일 잘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공든탑을 쌓아온 선조들의 노고를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사 진상 조사도 좋고 친일 매국노를 처단하는 것도 좋고 통일의 물꼬를 트기 위한 남북대화도 좋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사람들의 공적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나 오늘의 나는 과거 어려운 시대를 힘겹게 헤쳐 온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공덕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비봉 능선으로 하산할까 생각하다가 다음 기회에 오르기로 하고 남겨 두었습니다.
대남문에서 대성문을 거쳐 대동문으로 이어지는 북한산성의 성벽이 아름다웠습니다. 이 능선은 보름 전에 지나간 길이어서 눈에 익었습니다. 그 때는 서남 능선이 아니라 산성 계곡을 따라 올랐으므로 산길이 편안했습니다.
대성문에 이르러 보현동 능선으로 하산하였습니다. 산을 내려가면서 민주노동당 선거 운동원들을 만났습니다. 어깨띠를 두르고 산행에 나선 젊은 당원들의 구호는「세상을 확 바꾸자」였습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역설적으로 기업들의 어려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노사문제는 기업 운영에 있어서 가장 풀기 힘든 과제 중의 과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노동자가 제 몫을 더 챙기겠다고 정치판에 뛰어 들면 누가 언제 어떤 물건을 값싸게 만들어 수출할 여유를 갖게 되겠습니까?
무엇에 목숨을 거는 우리 국민성에 비추어 볼 때 분배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드러난 고래 고기 분배와 같은 절묘한 규칙을 도입해야만 할 것입니다.
정릉으로 내려와 북악터널을 한 바퀴 도는 시내버스를 타고 비봉으로 오르는 산길을 눈여겨 보아두었습니다. 1.21 무장공비도 이렇게 살피며 대한민국 정부의 중심인 청와대를 습격할 계획을 세웠겠지요. 참 어처구니없이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북한 정권의 이렇듯 강도 집단식 벼랑끝 외교나 인질 외교는 본래 우리 민족의 습성이나 정서가 아니었습니다. 중국 북방 유목민의 야만적인 습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 인물 납치와 유골 납치 등의 습성에서 전엽된 것입니다.
광화문역에서 내려 전철을 타고 귀가하였습니다. 집에 돌아와 시계를 보니 아직 오후 해가 많은 2시 30분이었습니다. 오후에 일이 있는 날에 전철로 다녀 오기 쉬운 북한산 국립공원이 가까이 있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첫댓글 백두대간에서 북한산으로 행보를.....? 뵌지가 엄청 오래된것 같습니다 !.
눈 빠지는 것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