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천대학교 평생교육관에 개설된 강좌가 여러개가 있습지요.
그 중에서도 제가 수강하고 있는 문화유산해설사반이 아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강좌 중의 하나가 아닌가 쉽습니다.
그 이유을 나름대로 곰곰히 생각해 보니,
물론, 조상님들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관심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중간중간에 여행 삼아 떠나는 답사 재미가 솔직히 더 솔솔해서
더욱 인기가 있지 않을까? 나름 진단해 보았습니다.
2012년 남도문화유산해설사반 2학기 제2차 문화유산답사의 시간..
이번에는 1,500년 전 백제왕도로써 천년의 세월을 이어온
그 옛날의 사비성 부여로 역사여행을 떠나봅니다.
2012. 10. 20. (토) / 순천대학교 평생교육관 남도문화유산해설사반원 44명
부여국립박물관~정림사지~고란사/낙화암~백제문화단지~능산리고분
평생교육관에서 8시가 조금넘어 출발한 버스가 이곳 박물관에 도착하니 10시 30분.
오늘도 역시 가이드는 최인선 교수님께서 수고해 주시네요~~
국립부여박물관은
청동기시대를 중심으로 선사실, 백제유물중심의 역사실,
백제불교 미술품 중심의 불교 미술실, 야외전시실 등에
국보3점, 보물 5점 등 총 32,000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약 1,000여점이 넘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입니다.
전시실 내에서는 빛을 보이면 안된다며 카메라 촬영을 금하고 있네요.
그래도 몰래몰래~~
부여일원의 지도를 보며 열심히 설명하고 계시는 나이가 지긋하신 노 해설사님!
머지않아 저에게도 이런기회가 올까요..? 올걸로 믿습니다.ㅎ
다들 진지한 모습들입니다.
호자..
국보도 아니고 보물도 아니지만..ㅎ 당시에 남성용 요강이답니다. ㅋ
(사진을 마우스로 쿡~ 누르면 글씨가 확대됨)
이곳 부여박물관에 국보 3점이 소장되어 있습지요.
바로 그 3점 중 한점입니다.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유물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사리감은
백제 창왕 13년(567년)에 공주가 사리를 공양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답니다.
이를 통해 위덕왕이 성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능사를 세웠음을
짐작한다고 하니 참고하시길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
아마 금동대향로가 소장되어 있어서 이곳 부여박물관이
더욱더 빛을 보지 않나 할 정도로 그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연꽃과 산봉우리로 상징되는 백제인의 이상세계를 완벽하게 구현한
당대 최고의 걸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금동대향로는,
용과 봉황이 어우러진 완벽한 조형미를 자랑하는 백제인들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과
높은 문화적 품격을 느낄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993년 능산리 고분군과 부여 나성 사이의 능산리 절터를 발굴하면서
절터 바닥 진흙 구덩이에서 발견하였다고 하지요.
공기가 통하지 않는 진흙 속에 피묻혀 있었기에 거의 녹슬지 않고
제 모양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하니 천행이 아닌가 쉽습니다.
64cm의 이 거대한 향로는 머리를 들어 올린 용을 받침으로 삼아
피어나는 연꽃위에 봉래산이 솟아나고 그 꼭대기에 봉황 한마리가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지요. '백제금동대향로'..!
어두워서 조금 그렇긴 하지만.. 카메라 성능 탓일까요?. 쩝!
국보 한점이 더 있는데 그건 놓쳤습니다. 쩝.
'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 제293호) 나중에는 꼭 담아야 되겠지요.
시간관계상 특별전시실까지 대충 훓어보고 밖으로 나옵니다.
야외에 전시된 '보광사대보광선사비'(보물 제107호) 일명 '보광사중창비'라고도 한답니다.
고려시대에 보광사를 크게 일으킨 원명국사의 공적을 새긴 비로
고려 공민왕 7년(1351년)에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당유인원기공비'(보물21호)
'보광사대보광선사비' 바로 아래에 자리잡고 있지요.
비록 당나라장수 유인원의 공적을 기리는 비 이기는 하지만,
비문에 당시 의자왕과 태자 및 신하 700여명이 당나라로 압송된 사실과
백제 부흥운동의 주요내용, 폐허가 된 도성의 모습 등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부여는 서기 538년에 백제 성왕(16년)이 왕도로 삼은 뒤
마지막 의자왕까지 6대에 123년간 백제의 수도로써 위용을 떨쳤던 고을이지요.
부여의 본래 명칭은 사비로 '밝은 서울'의 뜻이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13만여호에 50여만명이 넘는 인구가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 부여 고을의 군세를 보면 과연 그게 사실이었는지
쪼간 의문은 갑니다만.. 쩝!
부여박물관 답사를 마치고 5분거리에 있는 정림사지로 향합니다.
부여의 정림사지는
백제말 123년의 도읍기를 통털어 남아있는 유일한 백제유적으로
백제 사비도성 건설과 함께 세워져 왕실의 흥망성쇠와 같이한 곳이기도 합니다.
남북 일직선상으로 중문~탑~금당~강당순의 백제가람의 대표적인 모델로 세워졌구요.
<입구쪽에서 바라본 정림사지 전경>
정림사지 5층석탑 (국보 제9호)
부여에는 나이드신 특히, 남자분이 문화해설사로 봉사하시는 분들이 많은 갑지요.
석탑 앞에서 열강을 토하시는 해설사님!
보기만 해도 그 열의가 대단하신 것 같았습니다.
부여시가지 중심에서 1,500년을 고스란히 지켜온 5층석탑!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글귀(대당평백제국비명)를 남겨놓아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답니다.
대하소설 박경리의 토지의 주무대인 평사리들녁이 있는 곳이 하동군 악양면이지요.
'악양'이라는 지명도 소정방이 이곳을 지나면서 옴팍하게 산으로 둘러쌓인 넓은 들녁을 보고
중국의 악양 고을의 축소판 같다고 해서 이곳을 '악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지요.
그러고보면 소정방이 옛 백제땅 이곳 저곳에 많은 영향을 끼친것 같지요. ㅉㅉ
익산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오래된 탑의 하나다고 하지요.
비례구성과 구조수법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와 함께
유려하고 따뜻한 이미지의 백제문화가 석탑에서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목조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처음 약식이다고 설명하고 계십니다.
금당과 강당지..
보이는 것처럼 현재 강당지에는 석불좌상의 보호각이 세워져 있습니다.
석불좌상 (보물 제108호)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불에타고 심하게 마모되어
대좌와 불상이 형체만 남아있습니다.
좁아진 어깨와 올라간 두 손의 표현으로 보아 진리를 나타내는
비로자나불상으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머리와 갓은 후대에 복원한 것이고요.
석불이 있던 절은 6세기 중엽에 창건된 것으로 추측이 되며,
정림사는 이 절의 고려시대에 지은 이름인데 1,028년에 만들어진
기와 명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남원 만복사 대좌와 함께 11세기 고려 불상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석불이다고 하니까 참고하시길요.
좁고 낮은 단충기단과 각 층 우주에 보이는 민흘림,
살짝 들린 옥개석 기단부, 낙수면의 내림마루 등등..
정돈된 형식미와 세련된 완숙미를 잘 보여 주고 있는 정림사지 5층석탑!
아쉬워서리~~ 다시 담아 보았습니다.
정림사지의 발굴모습과 발굴 당시부터 현재까지
정림사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시해 놓고 있는 정림사지 박물관..!
일제강점기 정림사지의 모습.
일제강점기 정림사지 5층석탑.
미래의 정림사지 모습을 그린 모형도.
1942년 1차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1983년 국가사적 제301호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부터 현재 제10차 발굴조사가 진행중에 있다고 합니다.
부여박물관과 정림사지 오전답사를 마치고 부여에서 자랑하는 맛집에서
연닢 쌈박정식에 동동주로 한사발로 허기진 배를 채웁니다.
옥상에 홍살문이 다른집 건물들과는 다르게 특이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부여읍은 사적지이기 때문에 5층 이상 건물은
지을수가 없다고 하지요.
빡빡한 일정.. 휴~ 쉴틈이 없습니다.
고란사와 낙화암을 둘러보기위해 유람선 선착장인 구드레 나루터에 도착..
'구드래'의 의미는 '큰 나라'의 뜻으로 백제를 뜻하다고 하며,
일찍이 백제가 고대 해상강국으로 발전하며 일본, 중국과 교역의 중심지 역활을
하였던 곳이 이곳 백마강 '구드래 나루터'라고 합니다.
강건너 저~ 보이는 곳 어딘가에 왕흥사지 있다고 하는데..?
구드래 나루터.. 그 뒤로 낙화암과 고란사, 부소산성이 있는
부여의 진산 부소산이 들어옵니다.
의자왕과 3천궁녀의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낙화암!
직벽 제일 높은 곳에 '백화정'이라는 정자 보이신가요..?
우암 송시열이 썼다는 바위에 새겨진 붉은 글씨.. 아쉽게도 사진으로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황포돛배를 타고 이곳 고란사 선착장으로 오는 동안
고란사 약수, 낙화암, 백마강, 조룡대 등에 얽힌 이야기 들을 소상하게 들려 줍니다.
귀를 쫑긋하고 들었지요.ㅎ
자가차를 이용하시는 분들은 모르겠지만,
관광차를 이용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부소산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본 후
고란사 나루터에서 구드래 나루터로 이동하는데..
우린 기사아저씨도 문유반원이고 또한 시간도 없고 해서리
이곳에서 내려 낙화암과 고란사만 잠깐 둘러보고 다시 황포돛배를 이용
구드래 나루터로 이동한답니다.
반월정에 올라 부여시내도 내려다보고..
다들 사연을 가지고 있는 영일루, 사자루, 삼충사도 둘러보고 싶었지만..쩝!
아쉽지만 집행부 계획에 따라야 겠지요.
고란사를 우로하고 낙화암으로 올라섭니다.
낙화암의 백화정.. 육각으로 된 정자입니다.
낙화암 전망대에서 바라본 백마강..
원래 4대강의 하나인 금강의 젖줄이지만, 부여를 휘감아 도는 16km 구간 만을
'백마강'이라고 부른답니다. 그에 얽힌 전설은 다들 아시지여~
휴일이라 그런지 낙화암을 찾은 인파가 줄을 있습니다.
평일에는 아마 수학여행 팀으로 북적되겠지요.
고란사..
백제말기에 지은 궁중의 내불전이었다는 설이 있지만 자세한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에서 사라져간 3천 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고려 현종 때 지은 가람이라고 전해오기도 하구요..
<고란사 전경>
극락보전 내부.. 가운데 부처님이 아주 무섭게 생겼습니다.
삼천궁녀의 극락왕생을 비는 법당일텐데 부처님 상이 어찌..?
무슨 이유가 있을테지요.
약수를 한잔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는 고란정..
욕심많은 할아버지가 너무 많이 마셔서 아기로 변해버렸다는 이야기..
그래서 저는 딱 한잔만 마셨습니다.ㅎ 과유불급~~!
가파른 절벽 바이틈에서 자생하는 고란초를 담기위해 셧터를 눌러댑니다.
이 고란초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 위해 부여군에서 백방으로 뛰고 있다는데.. 글쎄..?
그러고 보니 고란사 종소리가 유명하다던데 담지를 못했네요. 쩝!
타종 소리가 1분 30초간 울리면서 반경 30리까지 울리도록 제작되었다고 하며,
종각 이름도 범종각이 아니고 영종각이라고 특이하게 지었다고 합니다.
고란사에서 백마강에 몸을 던진 삼천궁녀의 영혼을 위안하기 위해
고란사에서 특별 제작하였다고 하니 나중에 방문하실때는..
아셨지여~~
구드래 나루터로 다시 가기위해 선착장으로 이동합니다.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용이되어서 침략을 방해하는 의자왕을
백마의 머리를 이끼로 삼아 용을 낚았다는 낚시터라고 하니.. 쩝.
아무리 전설이라고는 하지만 씁쓸하기만 합니다.
벡마강과 황포돛배~~ 평온한 한가한 모습..! 한폭의 산수화지요.
구드래 나루터가 보이고..
혹자는 지금의 전경을 보고 부여읍의 진산 부소산이
누에가 백마강을 향해 기어가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답니다.
그렇게 보이십니까..?
낙화암과 고란사, 백마강의 얽힌 사연들을 접하다 보니
1,500년 전의 백제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느낌이 드는건 비단 저만의 착각일까요.
그럼 더 깊은 백제속으로 함 들어가 보실까여~~ㅎ
2010. 9월 세계 대백제전이 개최된 곳이지요. 백제문화단지..
백제문화역사관을 지나서 사비궁 재현단지로 향합니다.
백제문화단지는,
우리 민족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면서 고대 일본문화의 원류가 되었던
백제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지난 1994년부터 20여년에 걸친 대 역사에는, 총 6,904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330만㎡의
대지위에 사비궁과 능사, 생활문화마을과 위례성, 백제역사문화관과 한국전통문화학교를
건립하고 민자사업으로 롯대부여리조트를 유치하였습니다.
명실상부하게 세계적인 역사테마파크로 거듭나고 있는 이곳에서 1,400년전 찬연했던 백제의
기상과 문화의 정수를 느끼시고 그 때의 정취에 흠뻑 젖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귀는,
보이는 사비궁 재현단지 입구 현판에 소개된 글귀입니다.
삼국시대 중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해 놓은 곳이지요.
'사비궁 정양문' 모습입니다.
정양문을 넘어서자 넓다란 광장이 나오고..
사비궁 중궁전으로 가기위해 넘어서야 할 또 하나의 문.. 바로 천정문입니다.
중궁전의 모습..
중궁의 정전은 왕의 즉위 의례, 신년행사 등 각종 국가의식이 거행되고,
외국사신을 맞이하는 왕궁의 중심 건물이답니다.
사진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오른쪽으로는 동궁전, 왼쪽으로는 서궁전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중궁전 내부..
임금님의 의자인 어좌구요. 일명 용좌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어좌 위에는 닫집이 있구요.
백제문화의 특징인 '화이불치(華而不侈) 검이불누(儉而不褸)'
'화려하지만 사치하지 않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라는 백제의 미학을
잘~ 표현하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궁전에서 바라본 중궁전 뜰..
옆문을 통해 동궁전으로 향합니다.
일명 궁전의 복도이지요. 동궁전 회랑..
동궁전과 그 앞마당의 모습,.
동궁전은 정전과 외전으로 구성되었으며,
정전인 문사전은 왕이 평소 문관에 관한 집무를 보는 공간이며,
외전은 연영전이며 신하들의 집무 공간이단다.
그럼 서궁전은 당연히 무관에 관한 집무를 보는 곳이겠지요.
동궁전을 둘러 본 후 뒷문을 통해 능사(능산리사지) 재현지로 향합니다.
능사의 옆 모습.. 대웅전과 5층목탑.
<모서리에서 바라본 대웅전과 목탑 전경> 굉장하지요~
국내 최초로 재현된 5층 목탑으로 그 높이가 38m이며,
능산리사지 목탑 심초석에서 바로'창왕명석조사리감'이 발굴되어
서기 567년 사리를 봉안하고 탑을 세웠다는 기록을
알수 있었다고 합니다.
<능사입구 대통문에서 바라본 전경>
탑의 구조를 놓고 열공중인 수강생들.. 뭐가 하나 빠졌다고들 하는데..?
대웅전 내부에는 목조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능사는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백제왕실의 사찰로써
부여읍 능산리 유적을 재현해 놓은 곳입니다.
앞서 부여박물관에서 소개한 국보 제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와
국보 제288호인 백제창왕석조사리감이 발굴되었다는 능산리사지..!
바로 그곳을 재현해 놓은 것이 동궁 옆에 세워진 '능사'라고 합니다.
일본 관광객들인가 보네요. 일본어로 열심히 설명하고 계십니다.
아쯔꼬 선생님! 친정 식구들을 만난듯 아주 반가운 표정이네요~ ㅎㅎ
능사를 배경으로~~
멋지게 담으셨겠지요..ㅎ
백제문화역사관 속으로 들어갑니다.
국내유일의 백제역사 전문 박물관으로 백제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대한
자료수집, 보존, 연구, 정보제공 등의 기능을 수행하며,
한눈에 보여주는 상설전시실, 백제문화단지 조성과정을 종합 전시한
건립기념관, 백제관련 영상물 상영, 백제정보자료실 등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국립부여박물관과의 관계설정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지요.
공주에서 발견된 무령왕릉 석실 내부와 소장품들을 재현에 농았네요..
국보 제162호 무령왕릉 석수도 보이구요. 물론 모조품이겠지만..
백제 왕릉중 유일하게 릉 주인이 밝혀진 웅진(공주)시대의 무령왕릉!
공산성과 함께 언젠가는 답사하게 되겠지요.
오늘은 걍 맛만 보고 지나칩니다.
익산 미륵사직9층 목탑을 재현해 놓았군요.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 관련 유적들도 별도로 시간을 내야겠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모형도>
능산리 고분군 답사지가 남아있어서 부리나케 움직입니다.
롯데그룹에서 민자사업으로 유치된 롯데리조트 전경이네요.
저 건축물이 지난해인가?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건축물로 뽑혔다고 하니까
나중에 꼭 별도로 둘러보시길요~~
가을 단풍이 부여까지 깊숙히 내려와 있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 능산리 고분군에 도착합니다.
착실한 수강생들.. 피곤도 하실텐데 이탈자가 한분도 없습니다.
능산리 고분군 옆에 있는 능산리사지 발굴현장..
바로 저곳에서 금동대향로와 백제창왕석조사리감이 발굴된 곳이다고 하니..
능산리고분군 전시관
의자왕과 그의 아들 융의 가묘가 있는 곳이며 7기의 고분군이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보이는 오른쪽이 의자왕, 왼쪽이 그의 아들 융의 가묘이지요.
백제의 패망과 더불어 그의 아들 융과 함께 당나라로 압송되어 병사했다는 의자왕..
이곳의 묘는 노래에도 나오는 "낙약성 십리 허에 높고 낮은 저~무덤은'..라고 읆조리고 있는 곳,
지금의 허난성 뤄양시(하남성 낙양시) 베이망산에 있다고 추정되는 곳에서
2000년 그곳의 영토(塋土)에서 가져와 조성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학창시절에 배울때는 의자왕이 낙화암에서
삼천궁녀와 함께 백마강에 빠져 죽었다고 배운 것 같은데.. ?
저만 그리 알고 있었을까요.. ?
하기사 역사란 승자의 편에서 쓰여지니까요.. 쩝!
의자왐의 단을 지나 우측 고분군으로 향합니다.
해는 뉘엇~뉘엇~ 저물어 가고.. 고분군을 바라만 보면서 설명을 듣습니다.
해발 121m의 능산리 산 중턱에 있는 7기의 무덤으로
앞뒤 2줄로 3기씩 있고, 제일 높은 곳에 1기가 있다고 합니다.
사비시대는 서기 538년부터 660년까지 6대에 걸쳐 123년간 백제의 수도였으므로
혹자는 의자왕을 제외한 다섯 왕의 무덤이 모두 여기에 있고,
그중 제일 높은 곳에 있는 1기는 사비로 도성을 천도한 혹 성왕의 무덤이 아닐까?
추측하는이도 있다는데.. 글쎄요..?
서동요의 주인공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알려진 익산의 쌍릉은
또 어떻게 설명이 되어야 할지..
세월이 더 지나야 확실히 알수 있을까요..?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전달하려는 최교수님의 열정적인 열강 모습!!
감솨~ 드립니다.
능산리 답사를 끝으로 오늘 답사 일정을 모두 마갑했지요.
젊음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지요. 한살이라도 젊어서 확실하게 흔적을 남겨야 겠기에..ㅎ
의자왕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억새우는 소리와 함께 귓전에 맴돕니다.
이것으로 문유반 부여답사 백제속으로의 시간여행을
마감하였습니다.
도착 예정 시간 저녁 7시.. 아주 정확합니다.
문유반 동료이지요. 동료 수강생들의 안전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멋쟁이 기사 선생님!
감사드리구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답사내내 열강을 토해내신 최인선 교수님! 다시한번
감솨~감솨~ 드리구요~~
계획부터 진행까지 동료 수강생을 위해 헌신해 주신 반장님과 여성총무님!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동행내내 즐거움을 같이하신 문유반 동료분들께도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마지막 한번 남은 답사도 유종의미 확실하게 거둬야 겠지요.
2012 문유반 화이팅!! 입니다.
아~~ 끝으로.. 사실 저는 이번에 부여가 두번째 답사였습니다.
지난 2009년 여름이었는데, 그때는 부여군에서 나온 해설사분의 도움을 받았었지요.
이번에 우리가 답사한 곳 중 백제문화단지를 빼고는 동선이 같았구요.
대신에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연이 깃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인 궁남지를 돌아 보았었지요.
그래서인지 오늘 답사는 복습하는 기분이어서 왠지 발걸음이 가볍더군요.
후기 정리는 최교수님의 강의을 중심으로 해서 전에 답사의 기억을 가미하기도 하였구요.
안내 팜플랫을 참고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월요일부터 몇일 어디좀 다녀와야겠기에 일요일 모처럼 쉬면서 부지람을 떨었습니다.
혹 읽으시다가 잘못된 부분이나 꼭 알아야 될 부분이 빠져있다면
바로 댓글로다가 흔적 남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