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변산 월명암
전북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변산반도 능가산에 위치한 월명암은 신라 신문왕 11년(691) 부설(浮說)거사가 창건한 절로서 호남의 3대 수도처(대둔산 태고사, 변산 월명암, 백양사 운문암)로 알려져 있다. 월명암은 가정을 가진 거사도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기도하면 도를 통할 수 있으며 실제로 가족 4명이 모두 성불한 곳이다.
* 1300년 세월이 묻어있는 소나무와 월명암

때는 통일신라 신문왕 시절, 부설, 영희, 영조 등 세 수좌는 여름 안거에 들어가기 위해 변산을 떠나 강원도 오대산으로 길을 떠났다. 그 중 부설은 본래 불국사 스님으로 거사선(禪)의 대표적 인물이며 불국사에서 원경 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후 수도하던 중 변산 능가산 쌍선봉 아래 암자에서 10여년 홀로 공부하였다. 그러다가 도반들과 오대산에 들어가 대중들과 함께 정진하자는 제의에 함께 길을 나선 것이다. 길을 가던 중 김제 땅 백련지 근처 구무원이란 사람의 집에 하루를 머물게 되었는데 그의 딸 묘화(妙華)를 만나 애정의 고백을 받고, 도반들은 떠나고 김제군 성덕면 성덕리 고련 부락에서 그녀와 결혼하여 두 남매를 기르게 되었다. 부설은 남매를 기르며 아내와 함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부설은 그 뒤 가족을 데리고 변산으로 돌아와 부설암을 짓고 아내를 위해 묘적암을, 딸을 위해 월명암을, 아들을 위해 등운암을 지어 각자 일생동안 수도생활에 정진하였다.
월명암에서 맞이하는 일출,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일몰의 광경이 서해 제일의 장관이라 스님이 자랑한다. 낙조대에서 불어오는 솔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예부터 바닷바람으로 몸을 다진 변산의 소나무는 고려 문신 이규보가 벌목사로 내려와 궁중 재목을 찾을 만큼 우람하고 재질이 뛰어났다. 고려의 전 시대에 살았던 백제의 불모(佛母)들은 변산의 소나무로 불상을 만들었고, 백제인이 조각 했다는 일본 국보 제 1호인 미륵반가사유상도 이곳의 소나무였다 한다. 월명암 법당에 앉아 솔바람을 느끼고 있으면 조선 선조 때의 진묵 스님이야기도 들려준다.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는 의병을 이끌고 현실에 참여한 거두 였다면 진묵 스님은 순수파의 보루였던 선사. 그가 월명암에 머물 때 한 젊은 스님이 재를 지내기 위해 마을로 내려가면서 ‘공양물을 준비해 두었으니 때가 되면 드십시오“ 하였다.
그때 진묵 스님은 미륵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지으며 ‘능엄경’을 읽고 있었는데 젊은 스님이 다음날 돌아오니 진묵 스님의 모습이 그대로이며 바람에 문이 흔들려 손가락에 피가 흐르는데 여전히 을 읽고 미소 짓고 있었다. 독일의 철학자 칼야스퍼스는 미륵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보고“이만큼 인간 실존의 참답고 평화로운 모습의 예술품을 본 적이 없다”라 감탄하였는데 월명암의 노 소나무 앞에서 솔바람을 맞으며 진묵스님을 그려본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공부하고 갑니다
공부 잘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
흥미있게 공부 잘 하고 갑니다.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남방화주대원본존지장보살마하살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