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빨리 가기 위해 뜁니다. 하지만 한국허벌라이프 송기석(43) 이사는 달리면서 느림이 주는 여유와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가 달리면서 보니 직장은 삶의 한 부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직장 생활이 전부인 양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학창시절 품었던 꿈을 현실에서 이루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모두들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갈 뿐이었습니다. 그는 조금 천천히 가면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좋아하는 일을 배울 수 있었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직장 생활도 더욱 열심히 하게 됐습니다. 송 이사는 ‘밥먹듯이’ 달리기를 합니다. 빼먹고 넘어가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평일에는 러닝머신 위에서 5~6㎞를 뛰고, 주말에는 집이 있는 광명에서 안양천을 따라 5~10㎞를 달립니다.
스스로 돌아보니 자신은 가진 게 너무 많은 사람
그는 마라톤 마니아입니다. 7차례 풀코스 완주를 했습니다. 기록은 3시간 20분대. 하프마라톤까지 합하면 완주 횟수는 수십 번이 넘는다고 합니다. 체중감량을 위해 2002년 마라톤을 시작한 ‘짧은’ 경력에 비하면 화려한 성적이라고 볼 수 있지요. 달리기는 그에게 명상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달릴 때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고민스런 문제의 해결책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가장 좋은 점은 나 자신을 대면하게 된다는 겁니다. 가족이나 직장을 넘어 인생 자체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이 달릴 때입니다.”
특히 그는 지난해 6월 고비사막에서 열린 마라톤에 참가한 뒤 인생관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고비사막마라톤은 참가자들이 자신의 숙식에 필요한 물품을 배낭에 메고 6박7일 동안 250㎞를 그날그날 정해진 시간 안에 주파해야 하는 대회입니다. 거의 지옥의 레이스라고 볼 수 있지요. 외부의 지원은 하루에 지급되는 물 10리터가 전부입니다. 마지막 날은 ‘오버나이트’(overnight)라고 해서 밤 시간에 90㎞를 달려야 했습니다. 태어나서 가장 힘들었다고 합니다.
“물집이 곪고 터져 발이 붓고 너무 아팠습니다. 주최 쪽이 양말을 신고도 엄지손가락 하나 더 들어가는 큰 신발을 준비하라는 데는 이유가 있었어요. 발이 부어 신발이 맞지가 않아요. 마지막 날에는 통증이 너무 심해 달리기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진통제를 먹고 뛰었습니다. 완주를 한 뒤 진통제 효과가 사라지자 발이 아파 서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스런 기간 동안 송 이사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거의 한 데서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노숙자 같은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니 자신은 가진 게 너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더 갖기 위해 애면글면하지 않아도 자신의 삶은 풍요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워크숍에서 업무 얘기 대신 각자 꿈 목록 발표
고비사막을 가로질러 달리는 도중에 우루무치에서 만난 위구르족 아이들로부터 받은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의 꾀죄죄한 모습의 아이들이었지만 선한 눈빛과 웃는 모습은 얼마나 천진한지. 갈증으로 힘들어하는 낯선 이방인에게 살구를 씻어 내미는 아이들을 보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렇게 살면서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구나. 물질만으로 행복을 평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나도 다른 이를 도우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사막마라톤 참가를 후원한 이들에 대한 고마움도 밀려왔습니다. 참가비와 장비구입비 등 경비를 지원한 회사와 완주 뒤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쓰라며 후원금을 모아준 친구, 직장동료, 대학원 동기, 일본 지사 직원들 등. 그런 도움이 있어 귀국 뒤 430만원을 허벌라이프에서 후원하고 있는 보육원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사막마라톤을 다녀온 뒤 그의 삶의 태도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늘 바쁘게 살았지만 이제는 느림과 여유를 중요시하게 됐습니다.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가장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다그칠 일이지만 지금은 한 발짝 물러나서 기다려주고 직원들의 의견을 많이 수용하려고 노력 합니다” 그리고 웃을 때가 많아졌습니다. “주위에서는 고비사막에 다녀온 뒤 얼굴이 너무 밝아졌다고 말해요.”
송 이사는 지난 1월 같은 부서 직원들과 함께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업무 얘기 대신 각자 꿈의 목록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먼저 자신이 꾸는 꿈 50가지부터 발표했습니다. 남극마라톤 참가, 50세 때 책 저술, 색소폰 시디 제작, 50세 전에 가족과 유럽 여행 등. 처음 뜨악해 하던 직원들도 모두 진지하게 자신의 꿈을 적었습니다. 그의 사무실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직원들이 이뤄가는 꿈에 대해 발표하는 행사가 열립니다. 모두들 재미있어 한다고 합니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 남극 등 4대 사막마라톤이 목표
그는 마라톤을 마치고 돌아와 보육원 아이 2명과 곧바로 결연을 맺었습니다. 일단 다달이 후원금을 보내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회사의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함께 ‘밥퍼 행사’에 참여하고 함께 산을 타면서 얘기를 나누는 시간도 자주 갖습니다.
“사막 마라톤으로 인생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됐습니다. 더 많이 가지려 애쓰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하려고 합니다. 제가 가진 것을 나누기도 하구요.”
송 이사는 오는 10월 사하라사막에서 열리는 사막마라톤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달리는 거리에 따라 어려운 이웃돕기 성금을 모으는 후원금 모금 계획도 세웠습니다. 최종 목표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 남극 등 4대 사막마라톤 완주입니다. 이를 통해 자신을 만나고 삶을 성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