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엄마는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칠순을 넘기면서 당뇨와 고지혈증, 골다공증 증세가 한꺼번에 찾아오더니 통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증세가 더 심해졌다. 누구보다 강하고 씩씩했던 엄마였는데, 우울증은 엄마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바꾸어 놓았다.
엄마는 자꾸만 과거의 나쁜 일들을 떠올렸다. 때로는 세상을 포기하고 싶다는 말로 딸의 마음을 후벼팠다. 엄마 옆에서 항상 재잘거리던 딸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모녀사이에 말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동생이 강아지를 키워보자고 제안했다.
엄마에게 슬쩍 여쭈어보니 싫지는 않은 것 같다며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좋겠다고 하셨단다.
나는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진돗개를 키우다가 개 물림 사고를 겪은 터라 개라면 진저리가 났다. 더구나 예전처럼 마당에 목줄을 매어 키우는 것도 아니었다. 산책도 시켜야 하고, 목욕도 해야 하고, 예방접종도 챙겨야 했다. 결국 엄마 가까이에서 사는 내가 돌볼 일이 많아질 것이 뻔했다.
손바닥만큼 작고 뽀얀 말티즈 강아지 한 마리가 결국 엄마 집에 입성했다. 애견숍에서 데려온 아이였다. 동생이 듣기로는 가정집에서 태어난 새끼라고 했다.
엄마는 작은 강아지를 품에 앉고 기도를 했다.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자라게 해달라고.
“너는 우리 엄마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
나는 강아지에게 기쁨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날부터 기쁨이는 엄마의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싸우고 화해하고, 미워하다가도 다시 그리워지는 것이 가족이라고 했던가. 엄마와 기쁨이도 진짜 가족이 되기까지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우울증이 심한 날이면, 엄마는 기쁨이에게 냄새가 난다, 털이 빠진다며 화를 냈다. 당장 내다버리라고 소리를 지르는 날도 있었다. 한동안 기쁨이는 막내동생 집으로 피신 가 있기도 했다. 추운 날 현관 밖에 나가 있다가 몸이 차가워져 병원으로 데려 간 일도 있었다. 집안 여기저기에 오줌을 쌌다고 크게 혼나는 날도 많았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고민했다.
다른 집으로 보내는 것이 차라리 기쁨이를 위한 일은 아닐까.
어느 날 예방접종을 하려고 엄마와 함께 기쁨이를 안고 동물병원에 갔다. 수의사가 기쁨이의 귀를 살펴보더니 진드기가 너무 많다며 이런 경우 번식장에서 태어난 강아지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쁨이는 가끔 다리를 절기도 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뒷다리 한쪽이 유전적으로 약간 짧게 태어났단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자꾸 마음이 쓰였다.
나는 엄마 대신 기쁨이를 데리고 부지런히 산책을 다녔다. 노즈워크도 시켜주고, 건강하고 영리한 강아지로 키우고 싶어 영상을 찾아보며 개에 대해서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쁨이가 우리 곁에 온 지 어느덧 8년이 되었다.
작고 뽀얗던 강아지는 이제 노령견에 접어들었다.
연세가 많아진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쁨이와 동네를 돌아다닌다. 산책하다 길을 잃어버리는 일이 생겨도 기쁨이는 어느 새 집에 먼저 돌아와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밖을 돌아다녀 털이 꼬질꼬질해진 날에도 밤이면 어김없이 엄마 머리맡에 올라가 함께 잠을 잔다.
엄마와 기쁨이는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기쁨이 오늘 뭐 했어?”
“밥은 잘 먹었어?”
“오늘도 산책 많이 했어?”
우리 모녀 사이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말들이 기쁨이를 중심으로 다시 이어졌다.
나는 예전에 식용견과 반려견은 처음부터 다르게 태어나는 줄 알았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늘 개를 키웠고, 여름이 되면 어느 순간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인지 내 머릿속에는 막연한 구분이 있었다. 식용견은 크고 사납고, 반려견은 작고 영리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마당에 묶여 지내는 개들을 보면서 멍청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기쁨이를 키우면서 그 생각이 얼마나 큰 편견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며 경험을 쌓듯 개도 함께 살아온 시간만큼 변해갔다. 어린 시절 부산스럽던 기쁨이는 나이가 들수록 의젓해졌고, 우리가 하는 말과 표정을 놀라울 만큼 알아차렸다.
무엇보다도 나는 개도 사람과 관계를 맺는 존재라는 사실을 늦게야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을 주고받는 시간이 필요하듯 사람과 동물 사이에도 함께 보내는 시간과 교감이 필요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 무심했다.
사람에게는 너그럽게 대하려고 애쓰면서도 그동안 내 곁을 스쳐간 수많은 개들에게는 별다른 마음을 주지 않았다. 그저 인간과는 전혀 다른 생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기쁨이를 만나고 나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 나는 유기견 영상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동물을 학대하는 장면을 보면 화가 난다. 그렇다고 반려동물이 사람보다 더 우대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살아 있는 존재로서 함부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람도, 개도, 다른 모든 동물도 당신이 지으신 창조물일 것이다. 인간 역시 그 창조물 가운데 하나이지 않은가.
사람과 동물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자리를 빼앗지 않고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
오늘도 기쁨이는 엄마의 껌딱지가 되어 온 동네를 누비고 다닌다.
이제 기쁨이는 엄마 뿐 아니라 나에게도 기쁨을 주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2026년 9월 4일
오늘도 싸돌아다니는 기쁨이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