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작품선(作品選)-(8)이야기:3) 금붕어가 물어온 무우씨
아득히 먼 옛날이였습니다. 어느 한 호수가에 자그마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하늘가에 아침노을이 퍼질 때면 호수는 금빛으로 물들고 집집마다 솟아있는 통나무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락지가 퐁퐁 피여오르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이였습니다.
이 마을에서 무던하고 부지런한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함께 호수가의 자그마한 뙈기밭을 가꿔가면서 은동이라는 손자애를 데리고 살아가고있었습니다.
어느날 할아버지를 도와 밭일을 하다가 소낙비를 만난 은동이는 온몸을 홈빡 적시고 우둘우둘 떨던끝에 감기에 걸렸습니다.
할아버지가 갖가지 약초를 구해다가 은동이의 병을 치료해주었습니다. 은동이는 옹근 사흘동안을 앓고나서야 열이 내리고 숨결이 고르로와졌습니다. 그런데 입맛을 잃다보니 몸이 추서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여서라도 은동이의 입맛을 돋구어주기 위해 잣죽도 쒀주고 꿀물도 타주며 온갖 사랑을 다 부어주었습니다. 《이녀석아,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을 해서라도 좀 맛있게 먹으려무나.》
그러던 어느날 할아버지는 낚시대를 메고 호수가로 나갔습니다. 앓고나서입맛을 잃은 사람에게 좋다는 메기나 가물치를 잡으려는 것이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제나저제나 하며 퍼그나 오래동안 낚시줄을 드리우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저녁해가 기울도록 한마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돌개바람까지 불어대며 호수를 마구 흔들어놓았습니다.
이윽고 하늘에 먹장구름이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점점 세차지더니 호수를 통채로 뒤집어 엎을듯이 사납게 날쳤습니다. 할수없이 낚시줄을 거두고 일어서던 할아버지는 호수가 풀밭에서 웬 물고기들이 푸들쩍거리는것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엄지금붕어 한마리와 새끼금붕어 여러마리가 이젠 기운이 빠졌는지 아가미만 풀떡거리며 누워있었습니다.
《이것들이 어찌다가 이 지경을 당했노. 아마 그 돌개바람에 휘말려올랐던 모양이지. 꿩대신 닭이라구 이거래두 가져다가 애녀석 반찬거리를 해야겠군.》
할아버지는 다래끼에 넙적넙적한 풀잎을 깔고 거기에 금붕어를 넣어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앓는 몸으로 자리에 누워있던 은동이가 할아버지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반쯤 일어나 문을 열고 내려다보았습니다.
《이녀석 바람쐴라. 어서 자리에 눕거라. 여보 마누라, 얼른 이 물고기를 손질해서 저녁밥을 먹읍시다.》
《할아버지, 나 물고기 볼래요.》
다래끼를 잡아당겨 그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던 은동이가 도리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나 물고기 안먹을래.》
《그건 무슨 말이냐?》
《할아버진 나보구 알가진 고기와 새끼고기는 잡으면 안된다고 그러구선…》
그제서야 할아버지는 다래끼안의 금붕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허어, 내가 네 반찬거리 생각만 하면서 미처 몰라봤구나.》
《할아버지, 나 이젠 아프지 않아요. 저걸 놓아주자요.》
《너 먹으라구 잡았던거니 네 맘대루 하려무나.》
그러자 은동이는 앓던것 같지 않게 벌떡 일어나 할아버지와 함께 호수가로 나갔습니다. 은동이는 다래끼안의 금붕어들을 몽땅 물에 놓아주었습니다. 금붕어들은 고맙다는듯 두어번 솟구쳐오르며 꼬리를 쳐보이고는 물속깊이 사라졌습니다.
금붕어가 사는곳은 호수 한옆에 나있는 동굴속 깊은곳이였습니다. 동굴안은 수정돌과 진주보석으로 장식된 아름다운곳이였지요. 동굴안은 아늑한 보금자리이기도 하였습니다. 은동이가 놓아준 엄지금붕어는 이곳 동굴에 사는 새끼금붕어들의 엄마였습니다.
엄마금붕어가 바깥세상에서 죽을 고비에 들었을때 동굴에 남아있던 새끼금붕어들은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눈빠지게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 금붕어들이 있는가 하면 그들을 얼리느라고 안타까와하는 형, 누나 금붕어들도 있었습니다.
《엄마-》
《엄마야-》
《울지 말어, 울면 엄마 안와.》
이럴 때 엄마금붕어가 나타났습니다. 엄마를 기다리며 울고있던 새끼금붕어들은 저마다 모여들어 엄마품에 안기기도 하고 잔등에 업히기도 하면서 반가와 어쩔줄 몰랐습니다. 그냥 엉엉 소리내여 울고있는 금붕어도 있었습니다.
《됐다, 이젠 울지들 말아.》 엄마금붕어는 새끼금붕어들을 안아주며 그사이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도 있더라.》
《어머니, 그럼 은혜를 갚아야지요?》
《암, 은헤를 은혜로 갚는것이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자랑이구 덕이란다.》
엄마금붕어는 동굴안쪽 돌문을 열고 거기서 번쩍거리는 함을 하나 꺼냈습니다. 함 뚜껑을 여니 그안에 웬 씨앗 한알이 있었습니다. 《이건 집안의 보물이다. 이걸루 은혜갚음을 하자.》
엄마금붕어는 이튿날 그 씨앗을 가지고 호수가로 나갔습니다. 마침 할아버지를 따라 호수가에 나와서 뚝을 손질하고있던 은동이가 그 금붕어를 보았습니다.
《할아버지, 저 금붕어가 왜 저럴가요? 아까부터 뱅뱅 돌기만 하면서 가지 않아요.》
《가만, 그게 전번에 놓아준 그 금붕어가 아니냐.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이니 어디 건져봐라.》
은동이는 모아붙인 두손을 오무려서 거기에 금붕어를 담아 건졌습니다. 《맞아요. 우리가 놓아준 그 금붕어가 맞아요.》 금붕어는 입안에서 씨앗 한알을 뱉아놓았습니다. 《할아버지, 씨앗이예요.》
《어디 보자, 이건 무우씨구나. 참 신기한 일이다.》 할아버지와 은동이는 금붕어를 물속에 놓아주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은동이는 어느날 금붕어가 물어온 무우씨를 마당가에 정성껏 심었습니다. 여름내 애지중지 가꾸었더니 무우는 무럭무럭 컸습니다.
가을이 되었습니다. 산에는 빨갛게 단풍이 들고 하늘은 높고 푸르렀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은동이는 독보다도 더 크게 자란 무우를 뽑기 위해 그 밑둥에 든든한 바줄을 꼬아서 걸었습니다.
《영차! 영차!》 있는 힘을 다해서 바줄을 당겼으나 무우는 끄떡도 안했습니다. 《하나, 둘, 영차!》 은동이의 구령에 맞추어 힘을 합쳐 당겼더니 무우대가리가 툭 부러졌습니다. 그바람에 그들은 엉덩방아를 찧었지요.
그런데 바로 이때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무우가 부러진 자리에서 흰 연기가 물씬 피여오르더니 난데없는 기와집이 불쑥 솟아올랐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은동이가 어정쩡해서 바라보고있는데 대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그들은 두리번거리며 대문안에 들어섰습니다. 궁궐같은 집이였습니다. 창고마다 온갖 귀한 물건들이 그득그득 차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것들을 마을사람들과 골고루 나누어가졌습니다.
《아니, 이걸 다 이렇게 나누어주면 할아버지넨 무얼 쓰겠나요?》 마을사람들이 사양하며 말하자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허허, 우리가 혼자 잘살 생각이나 하면서 살것 같으면 그 금붕어를 애당초 놓아주지도 않았을거구, 그랬더면 이런 희한한 일두 생기지 않았을걸세.》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할아버지네와 이 마을사람들은 그 호수가를 더없이 사랑하고 아름답게 꾸려가면서 의좋게 살았답니다. 그리고 그 호수는 온갖 물고기들의 좋은 보금자리가 되였구요.
[김정일이 “소학교시기에 반동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