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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8구간 우두령-추풍령 종주 산행기
그동안 여러 가지 일로 바빠서 자주 가지 못하다보니 한동안 산과 멀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음 한편에선 산이 더 그리워지게 되었다. 이번 구간은 전에 다른 팀과 지나 갔던 곳이어서 쉬려고 했었지만 스트레스를 풀려는 생각으로 가기로 했다. 살면서 삶이 답답하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때 산은 마치 심신의 피로를 다 씻어줄 듯 찾아가 안기고 싶어지는 곳이다.
오랜만에 산행 차비를 하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챙겨가는 것인지 새삼 신경이 쓰이게 되었다. 하기야 원초적인 삶의 태세로 임하게 되는 산은 춥지 않게 옷을 챙겨 입는 것과 산행동안 먹을 것을 준비 하면 되는 일이다. 다만 무박산행이기에 밤길을 가는 것이 신경이 더 쓰인다. 예보에 내일 중부 지방에 약간의 비 소식이 있어서 마음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산속의 밤은 체감 온도도 매우 낮아질 것 같아 두꺼운 옷을 입고 여벌의 옷을 더 준비했다. 그러고 보니 올해도 벌써 훌쩍 세월이 지나갔다.
밤 11시 강동역 4번출구로 나가 차를 갖고 기다리던 최회장과 채총무를 만났다. 이 대장은 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번 산행의 일행은 그들과 죽전 정류소에서 탈 박정호 사장을 포함해 다섯명이었다. 오늘 같은 야간 산행은 서울에서 내려가는 시간이 짧아져 그나마 흔들리던 차 안에서 자던 시간도 더 짧아지게 되었다. 나는 피곤하고 감기 기운이 있는 상태여서 차에 탈 때부터 억지로 눈을 부치고 있었다. 1시 50분 추풍령 휴게소에 들러 김치라면을 아침 식사로 먹었다. 거기서 이대장이 우두령까지 타고 갈 택시 가사와 통화로 만날 약속을 하고 출발했다. 2시 21분 추풍령 도착하니 잠시 후 연락했던 택시기사가 나타났다. 그 택시를 타고 곧바로 우두령으로 행했다. 택시 기사는 전문적으로 산행길에서 영업을 하는지 주변 산행 구간에 이르는 시간과 거리 등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가는 사이 일행이 지난 구간을 마치고 지나온 길을 이야기 했다. 우리가 가는 길옆에 상촌면과 물한계곡 등을 가리키는 표지가 보였다. 상촌은 몇 년전 할머니와 시골 할머니 집으로 가서 살게 된 손자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집으로‘라는 영화를 촬영한 곳이다.
3시 우두령에 도착했다. 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보였다. 지난 번 일행이 올린 소의 조각상이 별빛에 어스무레 비춰 보였다. 나는 지난번 우두령을 지날 때 이 도로를 통과한 기억이 없었는데, 거기서 도로 위로 육교처럼 설치 해 놓은 생태로가 보여 그 위로 지나간 것 같았다. 바람이 불어 쌀쌀했다. 냉기가 몸으로 스며들어서 여벌로 가져간 겉옷을 입고 나니 한결 든든했다. 어두운 산길을 오르기 위해 헤드랜턴을 켰다. 이제 시작하고나면 아무리 길이 험난하고 힘들어도 끝까지 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구간이 거리도 멀고 오르락 거리는 낙차가 심한 구간이어서 신경이 쓰였다.
도로변에 백두대간 표식지가 달린 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일찍 시작한만큼 야간 산행 시간은 더 길게 되었다. 그런 사정이 오히려 체념하듯 단단한 각오를 갖고 임하게 했다. 조금 오르자 능선을 스쳐가는 산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산에는 잎이 진 나무 가지들이 앙상해져 있었다. 가까이 보이는 주변의 집 불빛과 도시 불빛이 가깝고 멀게 보였다.
3시 20분 870고지를 지났다. 북극칠성이 앞에 거꾸로 놓여 보였다. 능선 길을 가는 동안 세찬 바람 소리가 바닷가 파도 소리처럼 들렸다. 큰 파도를 타듯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을 반복하며 걷는 동안 낙엽에 내린 흰 서리가 반짝거려 보였다. 다시 뒷동산 같은 완만한 길을 가는 동안 주변의 떡갈나무와 철쭉 가지가 앙상하게 보였다. 3시 40분 970고지에 닿았다. 거기서 앞으로 나가는 길가에는 넝쿨나무가 칙칙하게 엉켜 있었다. 내리막 길에서 앞쪽으로 야트막히 둥근 산들이 겹쳐 보이는 모습이 평온해 보였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어 길 옆의 갈대들이 휘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3시 51분 983고지를 지났다. 그곳을 지나는 능선길가에는 진달래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다시 내리막길에 앞산 봉우리가 보였다. 여전히 바람이 세차게 불어 민구릉 갈대숲에서 쏴-아 하는 소리가 났다. 산 봉우 부근에 당도하니 우측 계곡 너머로 지나는 능선 위로 희미하게 붉은 햇살 기운이 느껴졌다. 4시 2분 우측 벼랑이 있는 길을 지나는 동안 바람이 잠시 잠잠했다. 그러나 그 곳을 지나자 마치 커튼이 열리듯 다시 바람이 몰아 닥쳤다. 나무들의 살갖도 움츠려 들어 더 단단해 보였다. 낙엽이 많이 쌓인 오르막길을 걸어 다시 능선길을 지났다. 그 곳을 지나는 동안 길 가운데 나무가 가지를 벌리고 있어 나무 사이로 지나가게 되었다.
잠시 후 길이 두 갈래로 갈리진 지점에서 앞서가던 이 대장이 잠시 멈추라며 앞장서 길을 살폈다. 저 앞으로 간 그가 두 길이 만난다면 아무쪽으로나 오라고 했다. 뒤에 오는 일행에게 그 말을 전하고 우측길로 지나갔다. 4시 13분 주변이 트인 바위 봉우리에 닿았다. 앞에는 더 높은 봉우리가 보였다. 다시 내리막길과 오르막 길을 걷다 4시 18분 그 여정봉(1030m)에 당도했다. 주변이 트여 날이 맑으면 전망이 좋을 듯 했다. 봉우리를 내려가다 바람 없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난 후 경사가 급한 계단길을 지났다. 산행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보이는 김천의 도시 불빛이 점차 약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4시 20분 신선봉 갈림길에 당도했다. 거기서는 김천시 야경 불빛이 더 가까이 보였다. 길에는 서리가 더 두텁게 덮혀 있었다. 우측으로 급히 꺽어지는 길로 접어들어 4시 31분 헬기장에 당도했다.
갈대 숲길을 지나가는 동안 다음에 당도할 바람재 표지판이 보였다, 길 가에 벤치 2개가 보이는 지점을 지나니 임도가 나타났다. 임도에 들어서며 전에 지났던 기억이 났다. 오른편으로 임도를 따라 가다보니 그 길에서 벼랑 아래로 향하는 리본이 보여 따라 내려갔다. 그러나 앞장서 가던 이대장이 아닌 것 같다면서 다시 올라가 찾아보자고 했다. 지형으로 보아 저 아래쪽이 전에 쉬어가던 바람재인 것은 분명한데 밤이어서 분간하기 어려웠다. 지도와 설명한 자료를 보고 좌측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 길이 맞다고 생각하는 나는 길을 잘못들지 않을지 불안한 마음이 되었다. 그러나 길이 다르더라도 자료에 적혀 있는데로 문제없이 길을 찾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좌측에 산길이 있고 우측으로는 임도가 계속 연결되어 있었다. 거기서도 임도를 가다 되돌아와서 다시 산길을 갔다. 4시 51분 다시 임도를 만났다. 계단으로 내려가 4시 59분 팻말이 있는 바람재(810m)에 당도했다. 여전히 바람이 불었으나 특별히 여기만 부는 것은 아니어서 특별히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곳을 지나 앞산을 걸어 올라갔다. 전에는 바람재에서 쉬고 더 힘들게 올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기야 그 때는 여름이어서 땀을 만이 흘리면서 더 힘들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때보다 수월한 느낌이 들었다.
5시 13분 산마루에 올랐다. 그 곳에도 벤치가 놓여 있었다. 아까 임도를 만날 때부터 벤치가 보였는데 바람재를 지나는 구간에 누군가 쉬고 갈 수 있게 해 놓은 것 같았다. 완만한 길을 따라 나가다 다시 오름길을 걸어 5시 31분 형제봉에 도착했다. 거기서는 김천 시대 불빛이 더 가깝게 보였다. 앞쪽에 불빛이 보이는 곳이 직지사 같다고 했다. 직지사는 서산대사가 손으로 절터를 가르친데서 유래한다고 전해진다. 다시 길을 가다 5시 48분 능여계곡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를 지났다. 그 곳을 지나는 동안 직지사를 가르치는 표지가 가끔 눈에 띠었다. 5시 53분 황악산 가까이 다가가 오르막 길을 오르니 거센 바람에 서리가 얼굴에 부딧쳐왔다. 다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어 뒷동산 같은 하산길을 걸었다. 뒤로 지나온 산세가 검게 보였다. 6시 12분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일행이 돌려준 더운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추운 날씨여서 어떤 차보다 좋았다. 밤길에 걷는데만 신경을 쓰는 사이 어느 덧 날이 훤해지고 있었다. 맨 눈으로 사물을 분간 할 수 있게 되어 6시 32분 랜턴을 껐다.
내려가는 길에 좌측으로 보이는 능선 산이 햇살을 받아 자연 빛깔이 물들기 시작했다. 자연의 빛깔은 어느 철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내리막 길을 가다 채총무가 왼쪽 다리를 접질렸다고 했다. 걱정이 되어 멈춰 물어보니 괜찭다면서 잠시 머물며 안정을 취하다 걸어갔다. 계곡 방향이어서인지 바람이 잠시 주춤했다. 밝은 햇살이 산을 넘어 퍼져오고 있었다. 밤새 걸은 거리가 이번 구간의 절 반 가까이 되었다. 밝은 아침이 밝아 올 때 이미 큰일을 절반 마친 것 같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6시 50분 지나온 황악산까지 거리가 2260m로 표지된 푯발이 길가에 보였다. 거기서 앞쪽으로는 여시골 산이 있었다. 6시 57분 운수봉(680m)에 당도했다. 앙상해진 진달래 숲 길을 걸었다. 그 곳은 동네 뒷산 같은 길이어서 마음이 편안했다. 나무가 앙상해져서 상록수인 소나무가 홀로 더 푸르게 보였다. 오른쪽 산등성이 위로 해가 솟아오르려는지 산등성이 위로 붉게 불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두운 나무 가지 사이로 보여 황홀한 느낌이 들었다. 7시7분 이윽고 붉은 해가 솟았다. 야간 산행에서 늘 새벽을 맞았지만 해를 보는 날은 드물었던터라 일출을 보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겼다. 햇살이 비쳐 자연의 제 색깔이 살아났다. 진 낙엽에 은은한 햇살이 비쳐 산의 빛깔이 아름다웠다. 아침에 투명하고 밝은 햇살로 비치는 사물을 보니 새롭게 느껴졌다.
7시 13분 오르막 길을 오르다 박정호 사장이 시장하다며 간식을 먹고 가자고 해서 바람이 멋은 장소를 찾아 휴식을 취하며 보온병에 담아온 오뎅과 보리빵을 간식으로 먹었다. 7시 25분 휴식을 마치고 다시 출발했다. 햇살이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우리가 쉬던 여시골산 봉우리를 지났다. 길을 가다보니 좌측에 수직으로 뚫린 굴이 있었다. 그 곳을 여시굴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 곳을 지나며 보니 북쪽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깜깜해지고 있었다. 지나온 반대쪽의 밝은 햇살과 대비되어 보였다. 예보된 데로 날씨가 흘려질 듯 하여 걱정이 되었다.
7시 40분 길 우측편에 표가 1기 있는 곳을 지났다. 8시 괘방령 가까이 다가섰다. 길이 미끄러워 넘어질 뻔 했다. 개활지를 지났다. 산길 낙엽 위를 밟자니 미끄러웠다. 괘방령 도로 가까이 당도했다. 앞에 갈대 지붕 길 너머 갈 산이 겹친 채 별천지처럼 보였다. 8시10분 괘방령에 닿았다.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반을 조금 더 왔다.
전에 머물던 파고라 있는 곳으로 안내 했다. 파고라는 더 그늘져 보였지만 평상이 잇어 편안할 것 같았다. 뒤어 오는 일행을 기다렸다. 배낭을 열고 밥과 반찬 등 준비해 온 음식들을 꺼내 놓았다. 채 총무가 찌게를 끓였다. 추운 날에 김찌 찌게 더운 국물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그 코펠에 라면을 끓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을 넣어 끓였다.
다시 길을 나섰다. 지나온 고개에 그 곳의 유래에 대해 설명해 놓은 표지판이 세워져 잇었다. 괘방령은 해발 330m이다. 괘방령(掛榜嶺)은 충북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이다. 이 곳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괘방령(掛榜嶺)이라고 불리고 있다. 안내판에 그 곳을 설명하는 글이 써 있었다. “괘방령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데 때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급제(及第를 알리는 방(榜)에 붙는다 하녀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의 추풍령(秋風嶺)이 국가 업무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관로(管路)였다면 괘방령은 과거시험 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즐겨 넘던 과거(科擧)의 길이며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는 장사꾼들이 관원들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상로(商路)로서 추풍령 못지 않은 큰 길이었다. 또한 이곳은 임진 왜란 때 박이룡(朴以龍)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여 승전을 거둔 격전지로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도로변에는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지은 황의사(黃義祠)라는 사당이 있다. 비록 이곳이 해발 300m의 낮은 고개이지만 민족정기인 백두대간의 정기(精氣)가 잠시 숨을 고르다 황학산으로 다시 힘차게 뻗어 오르는 곳이며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하여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으로,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
9시 5분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고 그 곳을 출발해 다시 백두대간 길로 접어 들었다. 전에 그 곳을 지나며 몇 번을 급전직하 하듯 힘들게 지났던 기억이 있어서 마음 태세를 갖추었지만 그 때 경험한 구간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완만한 능선길에 참나무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곳을 지났다. 가일칠봉으로 오르는 오르막길에도 낙엽이 많이 쌓여 있어서 걷기에 더 힘이 들었다. 낙엽길은 디디는 힘이 바로 지면에 전달되지 않고 마끄러질 위험도 있었다. 9시 30분 앞에 보이던 산 봉우리를 오르니 건너편으로 가성산 산세가 보였다. 앞으로 펼쳐보이는 모습은 완만한 산세가 평온하게 이어져 보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경험했던 깊은 계곡을 지나게 되는 것이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평온한 느낌의 능선길을 지나가는 동안 우측으로 고속도로가 보였다. 기온이 많이 올라 따가운 햇살이 느껴진다. 햇살이 비추는 낮이 졸린 느낌이 되었다.
능선길을 가다 산 봉우리를 넘어 뚝 떨어지는 듯한 내림길로 계곡 밑까지 내려갔다. 그 길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다시 더 떨어진 계곡을 지나 오르막길을 걸어 봉우리에 오르니 뒤에서 보이지 않던 봉우리들이 나타났다. 다시 오른 높아진 봉우리 위에서 뒤로 지나온 황악산이 보였는데 공기가 투명해서 거리로는 그리 멀지 않게 느껴졌다. 오늘 가는 주요 구간은 바람재, 황악산, 가성산, 눌의산이다. 이번 산행에서는 거의 다 온 가성산 앞으로 추풍령이 내려 보이는 눌의산만 남아 있었다.
겨울 산행에서는 시야가 트여 구간을 의식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 상황에서는 갈 방향이 가늠되어 마음이 편했다. 10시 8분 급경사길에서 묘1기를 지났다. 밝은 햇살이 비춰 기온이 올라 덮게 느껴져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가성산을 행해 가는 동안 몇 번이나 산봉우리와 계곡을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정상처럼 보이는 곳에 당도하면 다시 지나야 할 상봉우리가 앞에 놓여 있기가 반복되었다. 그 길을 가면서 채 총무가 근래 당한 금융사기를 예기를 했다. 근래 은행 창구마다 공공기관을 사칭한 사기를 조심하라고 아예 음성으로 안내하는데, 알면서 당했다고 했다. 세상이 점점 더 어지럽게 변해가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예기를 하고 가면서 나도 모르게 산 봉우리를 하나 더 올라 있었으나 이미 몇 개의 산봉우리를 넘어온 터라 마음은 피곤해지고 있었다. 10시 45분 다시 앞 산 봉우리 정상에 당도했다. 오면서 그 곳이 가성산 정상일거라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다시 길을 걸어 앞에 나타난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다가가니 가성산이 맨 뒤 쪽에 치우쳐 나타났다.
10시 52분 가성산(716m)에 도착했다. 모두가 힘들었다고 했다.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구간이 보였다. 그리고 앞쪽으로 눌의산까지 오늘 마칠 구간이 한눈에 보였다. 거기서는 눌의산이 평온한 산세로 멀지 않게 보여서 큰 힘 들이지 않고 당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변이 툭 트인 전망을 돌아보면서 마음이 상쾌하진 상태로 11시 30분 백두대간 표지 매달려 있는 방향의 길을 따라 출발했다. 리본이 여러 개 매달려 있는 것이 마치 산행의 안전을 기원하는 표식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길은 급전직하하여 바닥까지 곤두박질치듯 내려가게 되었다. 그렇게 내려가 완만한 길에 접어들어 안도했으나 조금 후 다시 더 내려가는 계곡이 앞에 놓여 있었다. 그 계곡을 지나 다시 오르막 경사길을 올랐다. 가성산에 오를 때처럼 그 구간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은 어려운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정상부로 이어진 능선길을 걸어 11시 56분 앞쪽에 보이던 장군봉(606m)에 도착했다.
거기서는 눌의산이 바로 앞쪽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 편하게 당도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었다. 다시 내리막길을 걸어 다시 오르막 경사 길을 올라갔다. 묘 2기를 지나는 경사길 앞으로 맑은 하늘에 핀 뭉개구름이 보이고 바람소리와 일행들의 낙엽 밟는 뒤섞여 들렸다. 서리가 햇빛에 말라 낙엽 표면에 윤기가 반짝이는 미끄러운 길이 되었다. 능선에서 뒤돌아보니 지나온 가성산이 보였다. 앞서 걷던 이명철 대장이 내리막 길을 접어들며 “이크 또 다시 내려가네“ 했다. 가성산에서는 단순해 보였던 눌의산이지만 체험은 달랐다. 이 곳도 산 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다시 내려갔다 올라야 하는 다음 봉우리가 나타났다. 산봉우리를 지나 다시 오르막 길을 걸었다. 우측 정상부 산기슭에 석장승 같은 돌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길 가에 한 쪽으로 부는 바람에 방향 표지판처럼 된 갈대가 큰 나무 사이에 앙상하게 서 있었다. 12시 24분 헬기장에 당도했다. 거기서 내리막길을 지나 다시 경사길을 올랐다.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가성산이 숲 사이에서 푸른 빛깔을 띠며 투명해 보였다.
12시 35분 눌의산에 도착했다. 가성산에서 한시간을 지나 왔다. 아랫쪽으로 추풍령이 휜히 내려다 보였다. 다음에 이어 갈 구간 산세도 보였다. 뒤에 오는 일행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천천히 추풍령의 풍경을 느껴 보았다. 추풍령 인근의 식당과 마을이 보였다. 옛 고을 주변으로 건물이 모여 있는 모습이 주변 들녘과 함께 보이고 우측으로는 눈에 익은 추풍령 휴게소 탑이 솟아 보였다. 그리고 이어갔던 백두대간 길도 보였다. 눌의산에서 내려다보니 그곳을 지나칠 때 보다 더 한적한 느낌이 들었다. 추풍령이 산세가 겹겹이 쌓인 산길을 넘어가던 곳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경부 고속도로가 확고하게 이 편 저편으로 단절감을 주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이 곳은 머무는 곳보다는 지나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그런데 근래 건물이 많아지고 있어 모습이 변해갈 것 같았다. 맞은편에서 두 사람이 올라왔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조금 후 뒤에 오던 최회장도 도착하였다. 오는 동안 산봉우리와 계곡을 여러번 오르락거려서 지겹게 느껴졌다고 했다. 부부인 두 사람이 사진을 부탁해서 찍어 주었다. 우리 일행도 그들에게 촬영을 부탁해서 모처럼 전체 일행이 다 모인 상태로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 산봉우리의 감회를 느끼며 쉬다 1시에 하산을 시작했다.
산길 낙엽이 수북이 쌓여 미끄러지는 급경사 길을 걸어 평평해진 곳까지 내려왔다. 주변의 시선이 안정되며 정말 고개를 지나는 느낌이 들었다. 도로 가까이에 있는 포도밭을 지나며 남은 포도를 따 먹었다. 시리고 서리에 익은 맛이 특별했다. 경부 고속도로 밑으로 난 터널을 지나 나와 다시 포도밭 옆 길을 걸어 경부선 철도를 지났다. 길 가에 있는 영동군 추풍령면 추2리 186번지 임대식씨 집의 바랜 문패가 옛스럽게 보였다. 그 길로 나오다 보니 “대평 건널목 입체화공사로 2007녀 11월 19일부터 은편리 방향으로 차량진입이 불가하오니 우회하시기 바랍니다. 주민 여러분께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하는 한국철도 시설공단에서 붙여 놓은 공사안내 프렛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곳에도 뭔가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았다.
1시 56분 추풍령 표지석 앞에 당도했다. “구름도 자고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구비마다 한 많은 사연 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 보는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 고개” 라는 전범성 작사 백영호 작곡 남상규 노래 가사가 적혀 있었다.
이 대장이 다음 갈 길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약간 도드라진 고갯길을 너머 식당을 찾아 갔다. 그 고개에 광천 2리 당마루 고개(당령) 표지석이 보였다. 조금 가다보니 추풍령 할매 갈비 식당 간판이 보였다. 식당 주차장에 아침에 세워둔 차가 그대로 있었다. 2시 15분 식당에 들어섰다. 뒤에 일행을 기다리며 세수를 하고 신발을 벗고 자리에 앉으니 편안함이 느껴졌다.
일행이 다 당도하여 음식을 주문했다. 이 대장이 먼저 맥주부터 내오라고 했다. 고생스런 산행을 마치고 편하게 앉아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시는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 같았다. 이너 갖고 온 메뉴도 자근거려 놓아서 숯불에 금새 부드럽게 구워졌다. 아까부터 식당이 낯이 익어 생각해보니 지난번 작점고개까지 산행을 마치고 내려올 때도 여기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인근을 지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 식당을 이용하는 듯 했다. 산행의 고생을 생각하며 건배를 했다. 불 옆에 있자니 얼굴이 발개졌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당도한 어제 밤에는 지금 시각과 느낌이 아주 달랐었다. 깜깜한 밤의 적막 속에 우리 차만 대었었는데 낯인 시각은 많은 차와 사람이 들락거렸다.
3시 40분 식당을 나와 밤새 세워두었던 차를 타고 서울로 출발했다. 추풍령 톨게이트가 가까이 있어서 일찍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들은 일기예보에서 내일 아침 기온이 영하 4도까지 떨어진다고 했다. 길이 막혀 7시 20분 경 서울에 도착했다. 단지에 들어서면서 최회장이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내려오라고 했다. 운전을 맡겨 일행을 역까지 차례로 데려다 주게 하려고 한 것 같았다. 아파트 앞에 도착하니 사모님이 나왔다. 지난번 백두대간을 종주하다 다리가 접질린 것을 그냥 지내다 뒤늦게 깁스를 하고 얼마전에 풀었는데 아직 디디는 것이 조금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표정은 밝아보여 다행이었다. 산행에 맛을 들인 상태인데 산에 다녀온 우리가 부러울 것 같았다.
차를 타고 다시 역으로 가다 길가 호프집을 보고 딱 맥주 한잔만 하고 가자고 해서 8시 30분 그 앞에 내렸다. 그러나 운전을 하고 온 채 총무는 피곤한지 그냥 가겠다고 하니 사모님이 데려다 주고 오겠다고 했다. 안에 들어가니 TV에서 올림픽 대표팀 축구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맥주를 한잔씩 마시고 나오자 최회장 사모님이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강동역까지 태워주면서 최회장에게 밭에 심은 배추와 무우가 얼게 생겼다며 비닐을 구해 덮으러 가자고 했다. 최회장은 난색을 표하다 땀흘려 가꾼 것을 내버려 둘 수 없다며 설득하는 말에 이내 수긍하였다.
강동역에 내려 전철을 기다리다 보니 플랫폼 벽에 ‘깨어 있음’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깨달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리가 있는 것이다./ 나를 아는 것은 나라고 하는 것을 모두 버리는 것이다./ 세상을 바로 보는 것은 아는 것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부처는 열린 중생이요 중생은 닫힌 부처다.” 그 글을 읽으니 바른 생각을 갖는 일이 매우 여려운 일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산행에서 참된 것을 느끼고 온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071117)
첫댓글 고생스럽지만 즐거운 산행에 경의를 표합니다.
예전에 함께 갔던 구간이어서 그 때 생각을 많이하며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함께 했던 일행 모두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하하하하 즐거운 산행 하셨읍니다.
그동안 바빠서 산행에 자주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기회에 즐거운 산행 함께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