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랩 천재란다. 자신을 중심으로 힙합의 구약과 신약이 갈라진다고 외치고, 스스로 Korean Hip-Hop Superstar라 평한다. 노래 속에서 래퍼 산E(30·본명 정산)는 솟구쳐 올라가기만 하는 롤러코스터 같다. "음악은 내 자존심이다만 내 자존심 팔아 부모님과 나의 가족 지킬 수 있다면 이깟 자존심이 문제야 양보할 수 있어 내 목숨까지도"라 노래하는 그는 지금의 성공뿐 아니라 지난날의 어려움에도 감사하는 겸손한 청년이다. |
편집부가 독자에게 ...
음악이 노동이라고? 래퍼 산E를 취재한다고 하자 열혈팬인 중학생 아들이 성큼 따라나섭니다. "그동안은 노래만 좋았는데 이젠 사람까지 좋아졌어. 감동이야" 인터뷰 과정을 쭉 지켜본 뒤 아들이 제게 건넨 말입니다. 아들의 생각에 공감했습니다. 취재가 끝나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인터뷰이는 처음이었습니다. 겸손, 정직, 성실,열심을 삶의 지표로 삼는다는 그를 보며 음악도 땀 흘린 자만이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노동임을 알았습니다. 그를 만나고 나서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경구를 다시 마음에 새겼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그의 내면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이렇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래퍼 산E. 함께 만나보시지요. _김지민 리포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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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의 래퍼를 뽑는다는 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예비 심사장. 심사 위원은 손꼽히는 유명 래퍼들이다. 오금이 저리는 떨림과 긴장감으로 준비된 랩을 하는 지원자들. 그러나 심사평은 눈물을 쏙 빼놓을 만큼 독하고 가차 없다. 심지어 몇 소절 하지도 않았는데 "그만" 이라고 탈락을 선포하기도 한다. 냉혹한 경쟁의 세계, 탈락자들에게 좀 따뜻한 시선을 줄 수는 없을까. 바로 그 독설가들 사이에 왜 떨어졌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이가 있다. 래퍼 산E다. |
여기가 어디지 난 무엇이지 |
아아 마이크 체크 하낫 둘 산이가 왔어요 산이 값싸고 맛 좋은 산이가 왔어요/산이랑 놀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짜자잔/자 애들은 가 촌스런 랩 하는 애들은 봐 이모 삼촌 잠깐이면 돼 안 사도 되니 한번 듣고나 가 싸게 드릴게/골라 골라 산이를 골라 들으면 놀라 자빠지고 막 몰랐던 애들은 엄마한테 졸라 엄마 엄마 이거 사줘 나/저는 랩을 할 테니 형은 떡을 썰어주세요~
산E의 데뷔곡 '맛있는 산'이다. 자신을 상품으로 내세운 언어의 유희가 감칠맛 난다. 그는 이야기하듯, 고백하듯, 일러바치듯 자신의 스토리를 노래한다. 위트와 비꼼, 질투와 배신, 때로는 협박과 쇼킹함까지 주는 그의 랩은 뻔한 것을 지루해하는 현대인의 감성 틈새를 멋지게 공략한다. 산E, 어디서 어떻게 나온 '물건'인지 궁금하다.
IMF 경제 위기로 여러 사람의 인생이 흔들린 1997년, 산E의 가족도 밀려나듯 한국을 떠났다.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쫓기듯 도착한 미국에서 아버지는 학교 청소를, 어머니는 주방 일을 하셨죠. 일주일 내내 일하셨어요. 부모님 없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음악 듣는 것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힙합을 만났다. 그가 느낀 힙합은 '솔직함'. 그 솔직함을 거칠게 표현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고, 그 말들이 자신을 대변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힙합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음악이었다. 그에게 힙합은 뭔가 일종의 무기이자 방패막 같은 것으로 자라났다. 힙합에 빠진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 한참 사춘기를 지날 무렵이고 처한 상황에 대한 불만과 주변의 유혹도 많았을 텐데…. 엇나가기 쉬웠을 그 시기를 어떻게 보냈을까.
"한국에 있을 때는 공부를 잘했어요. 미국에 간 뒤에는 적응하느라 성적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열심히 공부했죠.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아무렇게나 살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마음속에 쌓인 생각,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한권, 두 권 공책(라임 노트라고 부른다)이 쌓여가면서 그것들을 세상 밖에 내놓고 싶어졌고, 래퍼로서 길을 가고자 결심했다. 하지만 대다수 부모들이 그렇듯 그의 부모도 자식의 평범한 삶을 바라셨다.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 같았죠."
길이 쉽게 보이진 않았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서 도전해보고 안 되면 포기하자' 고 자신과 약속했다. 데모 CD를 만들어 한국의 여러 기획사에 보냈고, 드디어 한 기획사에서 기회를 얻었다. |
그의 휴대폰은 가사를 적는 노트고, 그의 컴퓨터에는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많은 노래가 담겨 있다. 음반으로 나온 곡은 그의 일부분일 뿐이다. |
여긴 내 세상이네, 음악 속에서만은 왕이네 |
지금은 각종 음원 차트를 휩쓸고 한 음원 차트에서는 아티스트 종합 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런 호황기(?)를 누린 것도 근 1년간의 일. 하고 싶은 음악을 하지도 못하고, 돈도 벌지 못한 5~6년이 그 앞에 있었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어를 잘했으니 영어 강사를 했다면 돈은 벌었겠죠. 불안할 때면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최고의 래퍼가 되겠다는 희망과 믿음을 버리지 않았어요. 제 노래 가사에도 있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갈 힘을 저축하지는 않았거든요." 돌아보면 인생의 암흑기라 부를 만하지만, 자신의 내면과 음악을 단련하는 시간이었다고 믿는다.
"요즘 래퍼를 꿈꾸는 청소년이 많아졌어요. 간혹 힙합에 몸을 던지겠다며 자기가 속한 학교나 가정을 등한시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렇게 한다고 꼭 훌륭한 래퍼나 뮤지션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훌륭한 뮤지션은 자기 자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는 자기가 속해 있어야 하는 틀을 벗어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힙합이라고 강조한다. |
산E가 들려주는 힙합 이야기
힙합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말하면 힙합은 문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랩을 힙합이라고 알지만 랩은 힙합의 일부분이죠. 음악은 물론 패션, 예술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을 힙합이라고 하죠. hip과 hop이란 말 자체가 통통 튄다는 의미있으니까요.
랩은 흑인들이 사회에 대한 저항과 부조리를 표현한 데서 시작했다는데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랩은 1970년대 흑인들이 주로 모이는 파티에서 파티의 흥을 돋우기 위해 턴테이블과 믹서를 이용해 특별한 소리를 만들고, 그에 맞는 몇 마디 운율 섞인 말을 섞은 것이 시작이거든요. 삶이 고단했던 흑인들이 즐기기위해 시작된 거죠.
랩은 '힙합 정신'을 갖춘 사람들만의 것이라는 생각에 어렵게 느껴집니다. 쉽게 접근할 방법이 있나요? 래퍼마다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요.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소리치는 사람도, 대화하듯 랩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랩의 주제도 사람마다 다양하죠. 전람회에 전시된 여러 그림을 둘러보듯 자연스럽게 즐기면 된다고 생각해요. 랩은 라임이 있어요. 처음엔 라임을 따라 가보고, 라임이 익숙해지면 펀치 라인을 즐겨보는 것도 좋아요. 그렇게 귀가 열리면 래퍼의 각기 다른 플로(박자를 끌고 당기는 등 곡을 이끌어가는 흐름)도 느낄 수 있어요. |
날아 더 멀리, 거침없이 꿈이란 날개를 달고서 |
그는 따로 랩을 배우기보다 여러 뮤지션을 흉내 내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으라고 권한다. 그러다 보면 자기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색을 찾을 수 있다는 것. 허세를 부리기보다 솔직한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이다. 많은 래퍼들은 스스로 작사한다. 일반 노래보다 가사 분량이 많고 라임(운율)이나 펀치라인(힙합에서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중의적 표현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가사)의 묘미를 살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휘력과 언어에 대한 감각, 무엇보다 세상을 향해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
"그렇게 보이진 않겠지만(웃음) 책을 많이 읽어요. 최근엔 <니체의 말>이란 책을 흥미롭게 읽었어요. 자신 기쁨 삶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니체의 짧은 글이죠. 언젠가 이 글들이 제 노래에 녹아 나오는 날도 있을 거예요." 세월호 사건을 보며 떠오른 생각을 노래로 만들었지만, 이 노래로 또 누군가 상처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놓지 못했다. 이처럼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노래도 많다. 세상에 나온 노래들은 자신의 일부일 뿐이라는 그의 말에 남극의 빙산처럼 묻혀 있을 9 /10의 가능성을 타진해본다.
"어릴 때 제 롤모델은 드렁큰타이거였어요. 재미 교포로 살던 그가 한국에 힙합을 전하고, 팬들에게 사랑받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죠. 그런 래퍼가 꼭 되고 싶었어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래퍼가 된 지금. 그는 꿈을 이뤘을까? "랩을 시작할 때 나의 랩으로 랩의 본토인 미국에서 뭔가 이루겠다고 결심했어요. 그 초심이 저의 꿈입니다. 아직 이뤄야 할 것이 남았어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흔들었듯 산E의 랩이 멋지게 세상을 두드리기를, 그의 노래로 세계가 춤추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미즈내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