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은 대학의 좁은 문을 뚫기 위해 지원하는 많은 학생을 매의 눈과 냉철한 기준으로 선발해야 한다.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와 자기소개서는 그래서 면밀하게 분석해야 할 대상.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아이의 생활을 들여다보면서 공감하고 아파하는 입학사정관이 있다. 한 아이의 고등학교 3년 생활이 평가대상이 돼버리는 것이 안타깝다는 숭실대 한기호 입학사정관을 만났다.
취재 김지민 리포터 sally0602@naeil.com 사진 이현준
눈물 나는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처음 입학사정관이 되어 아이들의 학생부와 자기소개서를 보고 많이 울컥했어요. 지금은 달라졌지만, 성장환경을 기술하라는 1번 항목이 특히 그랬죠.”
숭실대 한기호(49) 사정관은 아이들의 환경이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안타까웠단다. 지금도 학생부 기록들을 보면 아이의 생활과 마음이 떠올라 어떤 것도 심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3년 개근 기록도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 다니느라 힘들었겠구나’ 하는 마음에 짠한 마음이 먼저 들어요. 작위적인 자기소개서를 보면 오죽하면 이랬을까 싶어 더 그렇고요. 훌륭한 기록이든 아니든 행복하고 편안해야 할 학교생활이 ‘대학 입학’을 위한 준비과정이 된 것 같아 안타깝죠.”
그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계기로 <나를 발견하는 자소서>라는 책을 자비로 발간했다. 여느 자기소개서 책과는 달리 ‘모범 사례’를 수록하지 않은 것이 특징. 자기소개서는 학교 학교생활 속에서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다.
공교육 교사, 학원 강사를 거쳐 입학사정관까지
한 사정관은 중·고등학교와 대안학교 교사, 학원 강사까지 ‘가르치는 일’과 2013년 시작한 입학사정관까지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경험했다. 고등학교 교사 시절 야간 자율 학습 시간 학생들을 ‘감시’하며 교사로서 꿈꾸던 교육이 아니라는 생각에 ‘대안학교’로 일터를 옮겼다. 하지만 9년 간 몸담은 대안학교가 취지와는 달리 변질돼가는 모습을 보며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학원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역시 행복하지 않았다.
‘공교육으로 회귀’의 의미로 입학사정관을 시작한 걸까?
“솔직히 처음엔 가장의 역할을 다 하려고 택한 ‘직업’ 개념이 더 컸어요. 하지만 지금은 편법 없는 대입 전형을 위한 대학의 노력이 우리 공교육을 바로 세우는데 이바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정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크죠.”
경직되지 않은 자녀교육, 홈스쿨링에서 해답 찾아
그에게 ‘교육’은 인생의 가장 큰 화두. 자유롭고 편안한 자녀교육을 하고 싶어 아내와 함께 홈스쿨링을 결정했다.
“신혼 때, 집 뒤편에 학교가 있었는데, 월요일 아침 조회부터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알 수 있었죠.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교육현장에 내 아이를 내놓고 싶지 않았어요. 아내도 교원 자격이 있으니 선생이 둘인 셈인데, 내 아이들은 가르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는 홈스쿨링으로 자녀들을 키우면서 필요 이상의 고민을 줄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일반고, 특목고, 문과, 이과, 탐구과목 선택 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 늘 함께 생활하니 부모는 아이들의 장·단점을 정확히 알고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아이들도 부모와의 갈등 없이 자기 꿈을 펼치고 수정하며 진로를 찾더란다.
다섯 아이 모두 학력의 기준이 학교 이름이라고 믿지 않기에 넓고 자유로운 생각, 선택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고.
글 쓰며 생각 나누는 입학사정관
그는 글을 쓰는 입학사정관이다.
“처음엔 우리 아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글을 썼어요. 웹진에 만화칼럼을 쓰기도 하고요.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지만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글로 남겨요. 그 이야기들이 모여 책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죠.”
사정관으로서 그의 당면과제는 곧 다가올 수시를 포함한 올해 입시에서 정말 배우고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을 잘 선발하는 것. 그가 지나온 다양한 교육적 체험을 바탕으로 많은 이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는 것은 앞으로 그가 걸어갈 길이다. 그가 자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청소년과 학부모, 교사가 그의 글에서 힘과 위로를 얻길 기대한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