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운 졸업앨범
31회 정애영
중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기억이 가물가물 선명히 생각나는 게 하나도 없어서 촌스러운 표지의 졸업 앨범을 새삼스레 넘겨보니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이 설렌다. ‘아, 내게 이런 시절도 있었구나.’ 사진을 보니 “긍지 높은 한국인이 되자”, “부모 생각, 나라 생각 효도하고 애국하자.”란 글귀가 3년 동안 우리들의 머리 위에 꼿꼿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이 문구는 뇌리에서 지워진지 오래다. 아니 아예 그때부터 입력조차 안되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 생각하니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사신 설립자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겠구나!’ 싶다. 나라 잃은 슬픔, 어버이께 효를 다하지 못한 한보다 더 가슴 시린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교장선생님의 북한 말 훈화에서 그런 말을 자주 들은 것 같기도 하지만, 철없던 시절이었으니 아무리 좋은 말인들 귀담아 들었을 리 없다.
고향을 떠나 20여 년을 살다가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순간순간 느끼게 되었으니 세월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내게 중학교 시절에 대한 기억은 삶의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금계 들판에 덩그러니 놓인 교정, 그 공간을 메우고 있던 선생님이나 친구들 선후배들에 대한 기억은 늘 친근하고 따뜻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녹사료를 한다고 포대를 들고 산을 헤매던 그 시절엔 사과 몇 개쯤 서리하는 일은 그저 한때의 추억 만들기인 줄만 알았다. 환경미화 한답시고 밤늦게까지 남아 친구들과 노닥거리고, 그러다 하나 둘 친해져 여럿이 모여 희방사 계곡에 가서 발을 담그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정겹다. 그 여유로운 신선놀음이 고등학교 이후부터 차츰 사라져 지금에 이르렀으니 어찌 그날들이 그립지 않겠는가!
서울에서 오신 선생님들의 예쁘게 꾸며진 방에서 진한 향수 내를 맡으며 서울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추억도 잊을 수 없다. 대학 시절의 무용담을 들려주기도 하고, 공부하는 법을 일러주기도 하고, 여자들끼리만 통하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때론 언니처럼 때론 친구처럼 지냈다.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생기기도 했고, 대학의 낭만을 물씬 느끼며 우리들의 미래를 설계해보기도 했었다. 꽤나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때 그 선생님들은 여전한 젊음을 간직하시니 이젠 함께 늙어가는 것만 같아 기분이 묘하다. 조만간 그 선생님들을 모시고 그때처럼 살아가는 얘기를 나눌 날이 있으리라.
요즘은 시골 도회지 할 것 없이 아이들은 마냥 바쁘다. 나 혼자 이렇게 학창시절을 정겹고 따뜻한 기억으로 품고, 그때의 추억들을 첫사랑처럼 간직하며 살자니 미안한 생각까지 든다. 내 아이들도 공부에 쫓기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학교에서 친구들이나 선생님과 많은 추억을 만들며 살았으면 좋겠다. 살아보니 삶에서 공부가 다는 아니다. 친구들끼리 소통하며 정을 느끼고, 젊은 날을 투자할 만한 가치 있는 일을 찾고, 옳고 그름을 가려 의로운 마음을 나눌 줄 알고 , 남에게도 넉넉한 마음을 줄 줄 아는 삶이 더 좋아 보인다. 예전에 우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 아이와 금계의 후배들이 그저 참인간이 되는 일에 몰두하며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