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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크메르의 세계'가 기획한 <21세기 대중음악 사전>을 구성하는 항목으로서, <위키피디아 영문판>의 해당 항목을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한 후 동영상 등을 추가하여 편집한 것이다. |
[개론] 레게톤 - 푸에르토리코에서 시작된 주류 댄스음악 (상)
[참조] '위키피디아 영문판'의 본 항목이 개정되기 전(2016-7-16)에는 '레게톤'에 관해 다음과 같이 개요가 소개돼 있었다. '레게톤'(reggaetón, 레개톤)은 [미국령]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에서 발전된 '뎀보우'(Dembow 혹은 Dem Bow)라는 반복적인 리듬을 특징으로 하는 음악 장르이다. * "뎀보우 리딤"(Dem Bow riddim) 들어보기 |
'레게톤'은 푸에르토리코([역주]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의 자치령이고, 백인 인구가 주류지만, 스페인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국가)에서 시작된 반복적인 리듬을 특징으로 하는 음악 장르이다. '레게톤'의 뿌리는 1990년대 말 푸에르토리코의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음악 씬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들은 소규모의 비공식 공연장들에서 '레개'(reggae, 레게), '랩'(rap), '힙합'(hip-hop)의 요소들을 차용한 음악을 스페인어로 공연했다. 1997년까지 이 음악이 전파되는 수단은 해적판 레코드판들과 입소문이었다. 그리고 1998년에 이 음악이 마침내 오늘날 '레게톤'이라 불리는 장르로 합쳐졌다. '레게톤'이 북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음악 팬들에게 퍼져나가면서, 이 음악의 인기는 2000년대 초에 급격히 성장했다.(주1)
'레게톤'은 푸에르토리코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자메이카(Jamaica: 자마이카)의 '댄스홀'(dancehall) 장르 및 트리니다드 토바고(Trinidad and Tobago)의 '소카'(soca) 장르의 영향을 받는 가운데 '살사'(salsa), '봄바'(bomba), '라틴 힙합'(Latin hip hop), 일렉트로닉 뮤직(electronic music) 등을 접목시킨 것이다. '레게톤'의 보컬은 노래와 랩을 함께 사용하며, 스페인어 가사가 일반적이다. 노랫말의 내용은 '힙합' 장르와 유사하다.
주1: Wayne Marshall (2006-01-19). 'Rise of Reggaetón". The Phoenix.
1. 어 원
'레게톤'이란 말의 기원은 "~톤"(-tón)이란 스페인어 어미를 붙이는 푸에르토리코의 관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레게톤'을 '레개'나 '레개 엔 에스파뇰'(Reggae en Español 혹은 Spanish Reggae: [역주]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레개' 음악)과 혼동하곤 하지만, '레게톤'은 그러한 장르들과는 다른 리듬을 갖고 있다. '레게톤'은 '레개'의 히스패닉(Hispanic) 혹은 라틴 아메리카(Latin American)적인 변형이라고 할 수 없으며, 각 장르들의 리듬들은 각기 다른 역사를 갖고 있다. '레게톤'은 1991~1997년 사이에 푸에르토리코 산 후안(San Juan)의 클럽들에서 시작된 고유한 리듬을 갖고 있는데, 실제로는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이 장르의 명칭이 "레게톤"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98년에 이르러서였다. 푸에르토리코의 프로듀서 디제이 넬슨(DJ Nelson: 1972년생)이 자신의 새로운 앨범 명칭으로 "레게톤"(Reggaeton)이란 말을 생각해낸 1995년 초부터 '레게톤'이란 장르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됐다.(주2)
스페인어에서는 '레게톤'을 표기하는 데 몇 가지 철자법이 함께 사용된다.(주3) 여기에는 "reggaeton", "reggaetón", "reguetón" 등이 포함된다.(주4) [스페인어에 관한 다양한 학술적 활동을 벌이는] 'BBVA 재단'(Fundéu BBVA: 구명칭 '긴급 스페인어 재단')은 "reguetón"이란 철자법을 전적으로 채택할 것을 권고하면서, 스페인어에서 "reggaeton"이나 "reggaetón"이란 표기를 사용할 경우엔 이택릭체(흘림체)로 처리해야만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주4)
주2: "1:53 - DJ NELSON - INTERVIEW WITH URBAN FLOW UK - YouTube." YouTube. 2011-10-25.
주3: "Ya No Sería 'Reggaetón' Sino 'Reguetón'". El Mundo. --- "푸에르토리코인들인 대디 양키(Daddy Yankee: 1977년생), 돈 오마르(Don Omar: 1978년생), 밴드 '깔예 뜨레쎄'(Calle 13) 등이 전세계로 보급한 이 음악은 명칭을 갖고 있다. 그것은 '레게톤'(reguetón)이라고 발음되지만, 스페인어 철자법에 관해서 합의가 없는 상태이다. '푸리에르토리코 스페인어 학회'(Puerto Rican Academy of the Spanish Language)가 이 용어의 철저법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주4: "Reguetón." Fundéu BBVA. --- "'reguetón'이란 표기법을 수용하는 것이 적절하며, 이미 특정한 사용법이 확립돼 있다. 따라서 이 표기법이 추천할만한 형식이다. 이 단어가 영어와 스페인어의 혼합된 것이기 때문에 틸데(tilde: 스페인어 자모에 붙는 액센트 표시)를 사용할 때와 뺄 때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표준 형식을 통해 해소되는 문제임), 만일 원래의 표기법을 사용하게 된다면 이탤릭체로 표기돼야만 한다."
(동영상) '레게톤' 장르의 세계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돈 오마르(Don Omar). 2010년 발표곡 <단사 쿠두로>(Danza Kuduro)는 '유튜브' 조회수가 8억3천만건을 넘어선다. 이 곡은 '레게톤' 장르와 더불어 중서 아프리카 앙골라(Angola: 아프리카의 극소수 포르투갈어 사용 국가)에서 시작된 '쿠두로'(kuduro) 장르가 융합된 형식을 보여준다. 그런데 '쿠두로' 역시 원래는 앙골라가 카리브해 음악을 수용한 후 토착화키시면서 변형한 형식이어서, 대서양을 사이에 둔 양 지역의 끊임없는 상호교섭을 보여주고 있다.
2. 레게톤의 역사
2.1. 초기 역사
이 음악은 '레게톤'이란 명칭을 얻기 전에는 '언더그라운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90년대 중반의 '언더그라운드' 장르는 반복적인 비트 속에 랩 가사를 보내하는 방식이었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자국의 독자적인 리딤(riddim)들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힙합'이나 여타 음악 장르/스타일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이러한 최초의 '레게톤' 트랙들은 원래 "언더그라운드"라고 불렸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카리브해 및 미국의 흑인 음악이 인기를 얻으면서, 스페인어로 된 랩(rap)이 푸에르토리코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출발점이 됐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창의적 표현을 펼치는 장을 제공했다. 전체적으로는 이목을 끌지 못했지만 스스로를 표현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두드러지는 점이 있었다. 청년 문화는 사회의 변방에서 불법성의 테투리 안에 존재했고, 공적으로 비판받는 경우도 많았다. 푸에르토리코 경찰은 언더그라운드 씬을 단속했고, 형법의 외설 조항을 적용하여 음악 가게들에서 카세트 테입을 몰수하고, 벌금을 물렸고, 라디오나 TV, 신문 등에서는 래퍼들의 풍기문란을 조명하기도 했다.(주5)
푸에르토리코에서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는 '힙합' 관련 담론에서 파생된 말로서,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음악의 상업화 거부로 규정한 데 그 특징이 있다. 하지만 산 후안에서는 "언더그라운드"라는 말이 단순히 진정성이나 이념적 의미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시장에서의 위상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비공식적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됐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하나의 카세트테입에서 또 다른 카세트테입으로 복제돼서 유통되는 경우가 흔했다. 디제이 플레이예로(DJ Playero: 1964년생)는 이 시기에 가장 유명한 "언더그라운드" 프로듀서 중 한명이었다. 그는 이후 곧 유명해질 아티스트들의 초창기 활동들을 담고 있는 여러 장의 언더그라운드 카세트테입들을 발매하여, 당시 푸에르토리코에서 '레게톤'의 기반을 닦았다. 이 음악은 빠른 템포의 '댄스홀', '힙합',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라틴 아메리카(Latin American) 음악 장르들을 '스페인어 레개'(레게 엔 에스파뇰) 속에 혼합시킨 것이었다.
주5: Mayra Santos, "Puerto Rican Underground", Centro vol. 8 1 & 2 (1996), pp.219~231.
(동영상) '레게톤' 장르의 대스타 대디 양키(Daddy Yankee: 1977년생)는 원래 '시애틀 마리너즈' 입단이 확정됐을 정도로 우수한 야구 선수였다. 하지만 입단 계약 직전 발생한 총격세례로 부상을 입은 후, 뮤지션으로 전향했다. 그는 현재 미국 및 푸에르토리코에서 정치, 사회, 환경운동을 펼치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하지만, 조용한 사생활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튜브' 조회수 5억9천만건에 달하는 <림보>(Limbo: 2012년).
2.2. '레게톤'의 인기 상승
이 새로운 장르는 단순히 "언더그라운드"라고 불렸다. 이 음악은 마약, 폭력, 가난, 우정, 사랑, 섹스에 관한 매우 노골적인 가사들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많은 경우 도시생활에서 발생하는 고단함을 묘사한 것으로, 오늘날까지도 '레게톤' 음악에서 여전히 발견되고 있다.
"언더그라운드" 음악은 "마르퀘지나"(marquesina: 푸에르토리코 특유의 가설 차고)들에서 녹음된 후, 카세트테입에 담겨 노점에서 판매됐다. 정부가 "[대중들의] '취향' 통제 능력의 상실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이러한 마르퀘지나들은 푸에르토리코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의 발전에서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주5) 마르퀘지나들이 종종 "빌라 케네디(Villa Kennedy)나 후루툰고(Jurutungo) 같은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단지 내에" 위치한 경우도 많았다.(주5) 그렇지만 마르퀘지나들에서 녹음된 음악 다수는 고품질이었고, 그 인기는 저소득층 주거단지 뿐만 이니라, 중산층 및 상류층 젊은이들에게로도 퍼져나갔다. 이러한 카세트테입들이 구입도 용이하고 품질도 양호하자, 푸에르토리코 음악 씬에서 사회경제적 장벽들을 넘어서 인기를 얻었다. 1990년대 초반에 가장 인기 있었던 카세트테입은 디제이 니그로(DJ Negro)의 <더 노이즈>(The Noise) 1, 2집과 디제이 플레이예로의 37집과 38집이었다. 제라도 크루엣(Gerardo Cruet)은 이러한 레코딩들을 제작한 후 소외된 빈민 주거지역에서 사회의 여타 부문으로 이 장르를 전파시켰는데, 특히 사립학교들에는 더욱 그러했다.
1990년대 중반 무렵이 되면 상업지구의 음반가게들에서도 "언더그라운드" 카세트 테입들을 팔았다. 이 장르가 중산층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게 되자,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이 무렵 몇몇 클럽들이 '언더그라운드' 씬의 발전에 기여했다. 당시 가장 주목할만한 곳으로는 카롤리나(Carolina)에 위치한 '클럽 래퍼스'(Club Rappers)와 푸에르토 누에보(Puerto Nuevo)에 위치한 클럽 '플레이메이커스'(PlayMakers)가 있다. 클럽 씬에서는 클럽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자메이카 프로듀서] 바비 "디지털" 딕슨(Bobby "Digital" Dixon)이 제작한 '뎀보우'(dembow) 리딤 트랙을 활용했다. '언더그라운드 뮤직'은 원래 클럽 음악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 본토 사우스 플로리다(South Florida) 지역에서는 '디아즈 브라더스'(Diaz Brothers)의 디제이 라즈(DJ Laz)와 휴고 디아즈(Hugo Diaz) 형제가 이 장르의 개척자들이었다. 이들은 팜 비치(Palm Beach)에서 마이애미(Miami)에 이르기까지 이 새로운 장르의 인기에 박차를 가했다.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언더그라운드 뮤직'이 격렬한 비판에 직면했다. 1995년 2월 정부 주도로 '언더그라운드 뮤직' 및 그 영향을 받은 문화에 대한 단속이 있었다. 푸에르토리코 경찰은 산 후안에서 레코드 가게 6곳을 단속하여,(주6) 카세트 테입 수백 장을 압수하고 (외설 금지법 제112조 및 제117조에 따라) 벌금도 부과했다.(주5) '교육부'는 학교에서 헐렁한 옷과 '언더그라운드 뮤직'을 금지시켰다.(주7) 단속이 있고나서 몇 달 후, 푸에르토리코 언론들은 "공공질서를 무책임하게 타락시킨다"면서 래퍼들을 악마로 묘사했다.(주5)
1995년, 디제이 니그로는 <더 노이즈 쓰리>(The Noise 3) 앨범을 발매했는데, 그 레이블(=레코드 회사) 명칭이 "난익스플리싯 리릭스"(Non-Explicit Lyrics: '노골적이지 않은 가사'란 의미)란 풍자적 이름이었다. 이 앨범은 마지막 곡까지 그 가사에 악담을 전혀 담고 있지 않았다. <더 노이즈 쓰리> 앨범이 히트하면서 '언더그라운드 뮤직'을 주류 음악계로 침투시켰다. 하지만 '대중민주당'(Popular Democratic Party: PPD)의 벨다 곤잘레스(Velda González: 1933~2016) 상원의원과 언론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여전히 사회적 골칫거리로 보았다.(주8)
1990년대 중반, 푸에르토리코 경찰과 방위군(national guard)은 음악 소비자들로부터 "외설적인"(obscene) 가사의 음악을 빼앗기 위해 '레게톤' 테입들과 CD들을 압수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주9) 각급 학교들 역시 교육환경에서 '레게톤'의 영향을 일소하기 위해 힙합 스타일의 옷과 음악을 금지시켰다. 2002년, 벨다 곤잘레스 상원의원은 '레게톤' 음악의 가사에서 성적인 "슬렉니스"(slackness)를 규제하기 위해 공청회를 열었다. 이러한 움직임이 '레게톤'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시각에는 그다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진 못했지만, '레게톤' 음악이 대변하고 있는 문화에 대해 정부 및 상류층이 갖고 있던 불편함을 반영하고 있었다. '레게톤'은 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도 많았고, 이 음악이 원래 도시 빈민가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푸에르토리코의 중산층과 상류층은 이 음악이 "부도덕할 뿐만 아니라 예술성도 결핍된 사회질서에 대한 위협이며 정치적 무관심을 반영한다"면서, 하나의 위협으로 간주했다.(주7)
'레게톤'은 초창기에 논란의 대상이 됐지만, 푸에르토리코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으면서 느리지만 사회적 용인을 얻게 됐다. 부분적으로 그것은 벨다 곤잘레스 같은 정치인들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곤잘레스 상원의원은 2003년 총선에서 젊은층 공략을 위해 '레게톤'을 활용했다.(주7) 현재 푸에르토리코 주류 대중문화에서 '레게톤'이 인정받고 있다는 징후는 더욱 더 가시화되고 있다. 2006년, '펩시'(Pepsi)는 자사의 광고에 대디 양키(Daddy Yankee: 1977년생)를 등장시켰고,(주10) 아이비 퀸(Ivy Queen: 1972년생)은 '펩시'의 '마운틴 듀'(Mountain Dew) 제품을 위한 음악 대변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주11) 푸에르토리코의 다수 대중들 사이에서 '레게톤'에 대한 감수성이 변화했다는 것은 일부 종교적, 교육적 영향을 지닌 가사들에서도 나타난다. 가령 랩 앨범 <레게 스쿨>(Reggae School)은 어린이들에게 수학적 지식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됐는데, 미국의 어린이용 TV 프로그램 <스쿨 하우스 락>(Schoolhouse Rock!)과 유사한 느낌을 주었다.(주12)
(동영상) "레게톤의 여왕"(The Queen of Reggaeton)이라 불리는 아이비 퀸.
한편, 디제이 넬슨이나 디제이 에릭(DJ Eric) 같은 프로듀서들이 디제이 플레이예로가 걸어간 길을 추종하면서, '레게톤'의 외연은 확장되고 인지도도 더욱 높아졌다. 아이비 퀸의 1996년 앨범 <엔 미 임페리오>(En Mi Imperio), 디제이 플레이예로의 앨범 <플레이예로 37집>(Playero 37: 이 앨범에서 대디 양키가 유명해짐) 및 <더 노이즈: 언더그라운드>(The Noise: Underground), <더 노이즈>(The Noise) 제5집 및 제6집 등 1990년대 초반에 발매된 앨범들은 푸에르토리코 및 도미니카 공화국(Dominican Republic)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돈 체시나(Don Chezina: 1976년생), 템포(Tempo), 에디 디(Eddie Dee: 1977년생), 베이비 라스타 앤 그링고(Baby Rasta & Gringo: 1976년생), 리토 앤 폴라코(Lito & Polaco: 1979년생) 같은 가수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레게톤'이란 장르 명칭은 '뎀보우' 비트(리딤)가 이 음악의 특징을 형성한 2000년대 초반에 와서야 인지도를 얻었다. 이 음악은 이전까지 '레개', '댄스홀', '힙합'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가운데 창작된 트랙들과는 차별성을 보였다. '레게톤'이란 명칭은 푸에르토리코 내에서 이뤄진 보다 독특한 퓨전 사운드를 지칭하기 위해 푸에르토리코 내에서 발생한 명칭이다.(주1) 오늘날 '레게톤'은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번성하고 있다. '레게톤'은 미국 내 라틴계 청소년들 사이에서 급속히 인기를 얻었다. 그것은 디제이 조(DJ Joe)나 디제이 블라스(DJ Blass)같은 DJ들이 <레게톤 섹스>(Reggaeton Sex), <산둥게로>(Sandunguero), <파탈 판타시>(Fatal Fantassy) 같은 앨범들에서 '플랜 비'(Plan B)나 스피디(Speedy: 1979년생) 같은 아티스트들과 공동작업을 하면서부터였다.(주13)
(동영상) <레게톤 섹스 제1집>. '레게톤' 초창기인 '언더그라운드 뮤직' 시대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주6: ra Corbett (2006-02-05). "The King of Reggaetón". The New York Times.
주7: Frances Negrón-Muntaner and Raquel Z. Rivera. "Reggaeton Nation".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07-12-21.
주8: Hilda Garcia and Gonzalo Salvador. "Reggaeton: The Emergence of a New Rhythm".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05-01-1.
주9: John Marino, "Police Seize Recordings, Say Content Is Obscene", San Juan Star, 1995-2-3; Raquel Z. Rivera, "Policing Morality, Mano Dura Style: The Case of Underground Rap and Reggae in Puerto Rico in the Mid-1990s", in Reading Reggaeton.
주10: Matt Caputo. "Daddy Yankee: The Voice of His People". Archived from the originalon 2008-03-02.
주11: "Amazon.com: Sentimiento: Music: Editorial Reviews".
주12: Giovannetti, Jorge L. (2003). Frances R. Aparicio and Cándida F. Jáquez, ed. "Popular Music and Culture in Puerto Rico: Jamaican and Rap Music as Cross-Cultural Symbols" Musical Migrations: Transnationalism and Cultural Hybridity in the Americas. New York: Palgrave.
주13: "Q&A with DJ Blass ". 201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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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론] 레게톤 (reggaeton) - 푸에르토리코에서 시작된 주류 댄스음악 (상)"
- "[개론] 레게톤 (reggaeton) - 푸에르토리코에서 시작된 주류 댄스음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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