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카인에 대해서 아시죠?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그 맏아들 말입니다. 하느님이 농부인 카인의 재물은 받지 않고 목자인 아벨이 제단에 올린 가축만 받자, 질투가 난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여 야훼를 노하게 하였다지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라고 기록이 되었고 인류 역사의 살인자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카인. 카인이란 말은 제게 너무 소름끼치는 단어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인간의 심리적인 질투심은 곧 살인을 부른다는 것인지 어떤지. 아무튼 하느님은 이 일로 카인에게 천벌을 내려서 아무도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표식을 주었다고 하잖아요. 표식이요. 내 몸 속에 박힌 푸른 형광의 고체, 마이크로칩과 같은 그런 표식을 말입니다.
아침에 비가 내리는 듯, 실눈을 뜨면 창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파르게 살아있는 내 목숨을 확인하는 듯한, 눈을 뜨는 아침은 언젠가부터 잃어버린 자아를 향한 아픔으로 허덕입니다. 어린애가 눈을 뜨자마자 엄마를 찾듯이 그런 설명할 수 없는 허무감이 습관처럼 등을 어루만지며 또 저를 찾아 왔습니다. 지독하도록 뚜렷한 아픈 생채기를 명료하게 헤아릴, 눈을 뜨는 아침이 싫습니다. 저는 눈물도 마른 잠이 좋습니다. 나의 잃어버린 아침은 그저 목메어 그리운 상실 같은 어두움뿐입니다. 비가 내리는 도심지 전신주 위, 어디선가 까치가 멀리서 울어댔습니다. 그 소리가 너무 신비로워서 고요히 눈을 감고 그 소리에 젖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여기 도심에 까치가 울었을까요? 수면제를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혹은 부엉이처럼 눈을 부라리고 새벽까지 밤샘 작업을 하고 늦잠을 자느라 그 소리를 여태껏 나만 듣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또 카인이 아벨을 찔러 죽인 그 당당한 저지름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또 다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당신의 그 가을 속으로, 그 견고한 그리움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을겁니다. 당신을 떠올리며 카인에 대해서 생각하는 요즘은 내 역사와 세월을 건너뛰는 알 수 없는 혼돈들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해서 끊임없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지요. 오, 처절히 몰입 한다면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아들을 텐데. 아직 생의 굴곡이 앙금으로 가라앉지 않은 설익은 편지로 그 많은 사유들을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세상 모든 것은 유기적인 조직체인 것이지요. 당신과 나, 그리고 지금 내가 이야기하려는 카인을 둘러싼 무난치 않은 회상들이 그렇습니다. 회상은 참으로 이상한 것입니다. 어떤 이야기의 대상이 명확해지면 겁이 나는 것입니다. 지난 편지로 그 점받이 집에서 내가 들은 적잖이 당황스런 이야기들을 나는 당신에게 다하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내게도 숨겨야 할 과거가 있는 것이고 굳이 말하고 싶지 않고 또 말로써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일들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러나 작은 조각도 숨겨서는 이해를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지라 패일언하고 말씀드립니다. 그 무인의 한 마디의 말은 이랬습니다.
"니한테는 귀신이 붙어있데이. 남자를 잡아먹는 귀신....그기 니를 따라다니는기라. 애장터를 지나마 와 눈가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안 카드나? 그기 혼령이데이."
참 장난 같았습니다. 귀신이라니. 당신의 피식 웃는 모습이 보이는 듯해요. 귀신이라면 무서워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당신은 전혀 무서워하지 않을 겁니다. 저도 조금도 무섭지가 않아요. 무섭기는 커녕, 귀신은 마치 친구 같고 어머니 같이 제게 친숙한 단어지 뭐예요. 제게 귀신은 인간 실존에의 의문과도 같습니다. 그런 무인에게 저는 물었지요.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귀신이 붙어서 이렇게 남의 신수를 보고 있으세요?"
무인의 말을 부정하고 싶은 도발적인 질문에 그녀는 당황하는 기색이 완연하더군요. 그러나 곧 이런 질문을 할 줄 알았다는 듯이 깊은 한숨 내쉬었습니다. 다시 보기에 마음 공부가 된 점쟁이인 건 분명했군요.
"내 한테 점치러 와서 고런 것을 묻는 사람도 내사 생전 처음이다. 남한테 말한 적이 없지만도 .....이상하게 언니야에게 다 말하고 싶다. 대인은 언사고 소인은 투사라 카디. 언니야는 내가 하는 말 뜻을 금방 알아먹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 왜 사람한테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지 알게 될끼다. 언니야 한테 왜 그란지 오늘 내가 좀 그렇테이...... "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내 나이 스무세살이 되어 결혼을 했는데 몸이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했제. 그때는 신병인지 뭔지 몰랐꼬 아무튼 병이 심해지면서 꿈에 뱀이 나타나 복수를 하겠다고 카더라. 하이고 시오메야. 몸이 아프니 전 재산을 병원비로 모조리 탕진을 하고 결국 정신과에 드나드는 신세까지 되었제."
그늘진 표정 뒤엔 운명에 승복한 초라한 여인네의 눈빛이 나타나더군요. 본질은 본다는 것은 가짜 모습이 아닌 진짜 모습을 보는 것이지요. 제 마음이 한결 가라앉더군요.
"누군가 노상 나를 부르는 것 갖꼬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와 춤을 추는 꿈을 꾸질 않나. 이런 더릅은 운명을 거부하고 싶어가 자살을 기도하기도 해따...... 14년의 방황이 모두 다 허사였제......무당이 지 굿 몬하고 소경이 지 죽는 날 모른다꼬 신내림 굿을 받기 전까지 불운의 시간은 한마디로 악몽이었제....."
저는 어찌 할봐를 몰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창으로 부서지는 빛살이 인상을 자꾸 구겨지게 만들고 콧물 약이 이제 위에서 풀려 나와 온몸으로 퍼지는지 자꾸만 의식이 몽롱해지면서 나른한 울음을 터트릴 듯 저는 망연히 앉아 있었습니다.
"휴......무슨 놈의 팔자인지 바다로 산으로 계곡으로 돌아다녔따 아이가.....가정이 있는 여자가 내 새끼에게 무당이란 소리를 듣게 하기 싫었던 기고 집안의 반대도 말로 다 할 수 없었던기라....... 그카다가 내는요렇게 거부할 수 없어 운명에 순응을 했다 마...... 우매한 사람들이 나에게 쪼매라도 위로를 받자고 오는데 내사 헛으로 적당하이 봐 줄 수는 없는 거제......내는 매일 눈뜨는 아침마다 정성껏 나의 신에게 기도를 올린대이...... 밥을 하고 아아들을 챙길 때는 내도 평범한 가정 주부일 뿐인기라. 그캐도 사는 기 고통 스러버서 나에게 뭔가를 알라꼬 사람이 찾아오마 내는 달라지제. 지금...... 내가 왜 언니야에게 이런 말을 하꼬? 기냥 아무 뜻도 음시 하는 말은 아니라는 거시제. 이건 내도 모르게 나오는 말인기라......"
여기서 잠시 한숨을 내쉰 보살은 넌지시 말하더군요.
"내도 그렇듯이 사람에게는 다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 아이가."
"그럼 내가 남자 너 댓을 잡아먹는다는 말 그말을 믿어야 하는가요?"
"그렇테이. 믿어라. 할배가 그렇다 카마 맞따."
"그걸 피할 수는 없는가요?"
"읍따.....우째 피하노? 본래 모습을 보게 되마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본래 모습을 보게 되마 자유롭다."
식견이 넒은 소승 같은 말을 하더군요. 그리곤 눈을 휘둥그레지며 묻는 것입니다.
"언니야, 니, 글을 쓰제?"
"아닌데요?"
"아니데이. 지금 우리 할베가 언니야더러 오천만 가지의 말문을 내리신다꼬......카네?"
어디선가 귀신의 소리가 들리는지 보살이 눈을 뜨고 설핏 웃으며 말하는 거예요.
"오천만가지요?"
저는 깜짝 놀라서 물었겠지요.
"그 말이 그 말이지 뭐꼬? 오천만가지의 말무운....... 언니야가 앞으로 글을 쓰면 뭐든 일사천리로 쓰이게 해주신다카는 거네? 사람이 글을 지 혼자의 힘으로 쓸 수 있다꼬 생각카나? 가슴 속에 수많은 목소리들이 있제? 언니야 조상 중에 글쟁이가 있어 갖꼬 물이 흐르는 정자에 앉아 니더러 글을 쓰라꼬 칸다. 그래야 운명아 풀릴 끼라꼬!"
제가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써 본적은 없었다는 거 당신도 아시죠?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5천 5만가지도 아닌 5천만 가지의 말문을 주겠다니, 또한 내 조상이 저더러 글을 쓰게 한다니. 그것은 도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요.
믿음을 드러내는 듯한, 의리 있게 와 닿는 거친 사투리 때문이었을까요? 이제 돌이켜 생각해 보면 빈 말이 아니었던 그녀의 말, 말 그대로 역술 같은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제가 무슨 생각을 한 줄 아세요? 어처구니없게도 죽이지 말라는 표식에도 불구하고 죽은 제가 아는 그 카인에 대해서 생각을 했습니다. 그 죽음과 함께 나를 찾아와 제가 처음 본 그 귀신과 그리고 아직도 어딘가 떠돌고 있을 그 귀신을요. 그리고 불현 듯 그에 대해 이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글을 쓰기 전에 저는 공기 속,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아직도 떠돌고 있을 그 귀신과 이렇게 타협을 시도했었습니다. '이제 당신에 대해서 글로 정리해도 되겠나요? 네? 갑자기 가당찮게 쓰고 싶어요. 그때 그 점쟁이의 말은 맞았어요. 이제 생각해 보니 거짓없는 내 내부의 투영은 그런 글을 쓰고 픈 욕구였어요.' 아, 귀신은 저를 보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얼굴로 함초로이 웃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저는 지금도 한 마리 두루미로 우물 속에 빠져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제 영혼의 등불 같은 당신은 오늘도 두루미가 된 저를 건져 올리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고 계시군요. 기어코 손을 뻗어 나를 잡았지만 내 긴 발목은 우물 밑 어딘가 돌 틈에 끼여 빼낼 수가 없군요.
물은 조금씩 샘솟으며 우물 위로 천천히 고여오고 굳어지는 발은 시린데, 맑은 구름이 흐르는 끝없이 청명한 하늘이 이승과 저승처럼 꿈과 같아요. 우물 속에서 내다보는 창공은 꿈이고 소망이며 비상을 향한 영원한 그리움입니다. 늘 슬픔이 물결치는 눈으로 나를 안타까이 내려다보는 당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당신 사랑으로 내 하늘 위로 잘게 부서진 금가루가 찬란히 반짝이며 우수수 비늘처럼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아요. 황홀하도록 눈부시고 고와서 저는 긴 모가지를 들고 우아하고 커다란 흰 날개를 펼쳐 나르는 흉내를 내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 당신은 탄성을 지르며 뛸 듯이 기뻐했지요. 실지로 날아오를 것처럼 우물을 다 가리도록 커다란 날개를 다 펼쳤으니까요. 그러나 사로잡고 있는 돌 틈에서 발목이 빠지지 않음을 다시금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한없이 슬퍼했습니다. 발목을 잘라내도 날개는 있으니 전 언제든 날을 수 있어요. 저는 비감에 잠긴 당신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불안한 미래에 대한 엷은 신념이라도 드리고 싶음은 위태로운 세상사, 저 역시 힘이 들어서 일겁니다.
그의 죽음을 들었을 때는 한 여름 7월 중순, 장마철이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석양이 뉘엇뉘엇 서산 마루로 질 때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막 옷을 갈아 입으려할 때 전화가 걸려왔었지요. 전화를 건 사람은 나의 맏동서였습니다.
"정우 삼촌이 죽었다고 해, 동서...... 방금......."
붉은 색 전화기를 놓고 그만 넋을 잃었습니다.
"동서! 정신 차려!"
수화기를 타고 흘러드는 여자의 억양이 너무 높아서 귀를 비우고 싶은 나는 그 순간 정신을 잃었었는지, 아니면 더욱 정신이 뚜렷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붉은 전화기에 시선이 박혀 잠시 넋을 놓고 멍하니 꼼짝않고 있었을 겁니다. 그가 죽다니! 엄청난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피의 시간을 보냈건만 어찌 죽었단 말인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빨리 집으로 와, 새벽에 포항으로 함께 가자. 동서..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네에......"
"일단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옷을 갈아입지도, 씻지도 못하니까. 적당히 편한 옷을 입고 아예 씻고 와. 자기가 오기 전에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올 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래? 어서 서둘러......"
나의 맨 위 맏동서는 나를 자기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왜냐면 그녀보다 제가 나이가 두 살이나 많았으니 자네라고 부르기엔 뭣했던지 늘 저를 자기라고 불렀지요.
저는 의연중에 그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족함을 모르고 그 하나까지 탐냈으니 이로 인해 우리의 영혼은 에덴에서 쫓겨났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사고가 난 곳으로 떠난 남편에게 전화가 와서 시숙 정우가 사고를 당한 곳이 영덕 대진포구라고 말했을 때 모든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형이 포항에 있는 종합병원 수술실로 실려 들어갔는데 앞가슴이 거의 파열이 되었대....."
비통한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 이미 가망이 없다는 것을, 생명을 붙들 수 있는 작은 희망도 없다는 것을 저는 알았던 것입니다. 마치 고사목처럼 말라드는 흐릿한 의식을 부여잡고 현실부터 찾겠다는 듯, 저는 제가 다니는 소아과 병원으로 먼저 전화를 걸었습니다.
"제 바로 위의 시숙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세상을 달리 했답니다...... 며칠 병원에 출근을 못 할 것 같아서요."
세상을 달리했다는 말. 이 고통도 연마일 뿐이야. 이 고통 역시 연마일 뿐이야. 세상을 달리 한 것 뿐이야. 다른 세상에 있다는 거지. 죽음은 아니야.
"송선생, 아휴.. 그저께는 결혼을 했노라고 폭탄선언을 하더니 오늘은 난데없이 시숙이라니...... 거기다가 세상을 달리했다니? 사고로 죽었다는 말이야?"
"네......"
네, 라고 했지만 죽은 게 아니구요. 세상을 달리한 것입니다. 라고 저는 다시 말하고 싶었습니다.
당신도 제 성격을 아시죠? 무척 심란해하고 죽을 듯 괴로워하다가도 어느 순간 맹하도록 단순하게 잊어버리는 그런 거요. 큰 단점이면서 어쩌면 다행히 저를 버티게 해주는 어린아이 같은 성품 말입니다. 풍선을 놓쳤을 때 어린아이는 그 순간, 죽을 듯이 울음을 터트리지만 솜사탕을 하나 들려주면 금방 잊어버리잖아요? 풀리지 않는 세상의 고민을 해결하는 제 노하우인 셈입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우리는 시댁에서 모여 함께 포항으로 풀발하기로 했지요. 시모는 이미 출발을 한 모양이었습니다. 택시 안에서 솟구치는 고통으로 모든 감각이 경직되는 것 같더니 집들이 선물용 세트처럼 빈 공간도 없이 다닥하게 붙은 시댁으로 향하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 겨우 시댁 앞에 도착을 했을 때였죠. 헛깨비가 걷는 것처럼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더니 저는 그만 중심을 잃고 한순간에 기절을 해 버렸습니다. 달도 없는 캄캄하고 무더운 밤이었습니다.
"아이구 이를 어째?"
쿵하는 소리에 놀라서 나왔는지 아니면 볼일이 있어서 나오다가 마주쳤는지 제 동서는 소리치며 정신없이 달려와 쓰러진 나를 일으켰지요.
"자기라도 정신을 차려야지 왜 이래? 세상에......동서 이러면 안돼! 이러다 우리 식구 모두
죽는다!"
마비가 되어 몸이 시체처럼 버둥버둥해진 저를 보더니 그녀는 안 되겠다 싶은지 근처에 사는 노파를 데려와 내 코밑과 손가락 끝을 바늘로 마구 찌르게 했습니다. 그 찌르는 아픔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저는 맥을 놓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금방 잊어버리고 저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초연해지고 있었지요. 참 이상스런 일이었습니다.
시숙은 왜 영덕에서 죽었을까.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해도 영덕, 그리고 대진포구라는 묵시적 지명이 주는 의미는 엄청나게 큰 것이었습니다.
"제방 뚝 앞에 서면 바다로 뛰어들고 싶어요. 욕망을 다스리느라 낚시 대를 던지고 앉아 인내를 해봐도 어느 순간 갑자기 파도 속으로 뛰어들고 싶지요."
갑자기 저는 언젠가 저게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이 아니라 대진 포구 국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고하지 않았는가. 죽음은 우연이다. 자살은 아니다. 저는 그렇게 계속 저에게 최면을 걸고 또 걸고 있었습니다.
우리 식구들이 포항에 위치한 종합병원 영안실로 들어섰을 때, 남편 정태는 병약하고 피로한 얼굴로 저를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말없이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는 황소 같이 착한 눈 속엔 뜻하지 않게 닥쳐온 불행을 위로를 받고 싶다고 호소하는 듯 보였어요. 주검은 어디에 있는지 사진 한 장만 덩그라니 올려진 빈소에 머리를 풀어헤친 노모가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울던 시어머니는 울음을 멈추고 화들짝 우리를 돌아보았지만 눈빛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아이고, 동생아!"
그녀는 천군만마라도 얻은 듯, 우리를 따라 연이어 들어선 곱사 등의 시이모에게 눈길이 머무르더니 더 큰 소리로 통곡을 했습니다. 시모는 영리한 시이모를 정신적으로 크게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시모에게 믿을 곳은 그녀밖에 없다는 듯이. 시이모의 앙칼진 통곡이 우리 모두가 갇혀들 듯 영안실 안으로 쏟아졌습니다. 그네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미친 듯이 영안실 바닥을 쓰러지며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불쌍한 우리 언니, 불쌍한 우리 조카...... 하늘도 무심하시지. 정우야! 이 놈아! 이게 웬일이냐!"
시이모는 끈끈한 핏줄 사이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서럽게 울었습니다. 피를 나눈 부모 자식간에도 심장을 나눈 연인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멀고 먼 저승의 습지로 떠나 버린 것을 이제 누구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을.
희미하게 뭉개지는 의식을 붙들고 머릿속에 파도소리가 들리는 듯, 우리는, 그리고 저는 그저 할 말을 잃고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현실은 명료하고 구체적이어야 하건만 내게 현실은 추상적이고 불투명한 꿈만 같구나. 늘 현실은 꿈만 같다고 생각하면서요. 멀리 통통배가 떠가는 바닷가에서 별들을 바라보며 꿈을 토로하던 어제의 일들이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게 그저 끝없이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지요.
객지인 포항에서 장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참석할 사람은 정해진 셈이었지요. 찾아올 손님도 한정이 되어 있는 터라 밤이 되자, 고인의 친구 몇 명 외에는 우리 가족들뿐이었습니다. 쓸쓸하고 초라하도록 고적한 장례식이었지요.
밤새 제 시선은 명을 달리했다는 표시로 까만 리본을 옆으로 커턴 꼴로 드리운 네모난 사진으로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내가 의식이 없구나. 지금 꿈속의 거울 앞에 서 있구나. 시간은 궤도를 이탈하고 흐름은 순서를 일탈해가고 있구나 싶더군요. 목 부분에 단추를 채우지 않은 체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사진 속의 그는 설핏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더군요. 얼굴에 그늘을 만드는 광대뼈의 관절과 헤쳐진 목선의 드러난 굵은 철사 줄 같은 동맥 근육이 가슴에 고인 말을 할 듯,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 했습니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떠나 간 어제의 빙하기처럼 맑은 안경 너머의 눈빛이 선명하게 액자 속에서 빛이 났습니다. 죽음은 모든 가능성을 빼앗아가 버린다는 것을 모른다는 듯이 넘치도록 살아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우리는 서둘러 입관식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커다란 서랍처럼 생긴 시체 안치실 냉동고에서 그의 시신을 꺼내 깨끗이 닦고 수의를 입히는 동안 시체 안치실은 다시 격한 울음 바다가 되었지요.
근육이 경직되어 잠자듯 누워있는 그의 창백한 얼굴은 고요하고 평화로웠습니다. 병원에 고용돼 염을 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지만 저는 저미는 아픔으로 그 포르말린을 적신 헝겁으로 그의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주었습니다. 누군가가 쳐놓은 운명의 거미줄에 걸려 고통스러웠지만 이제 다 떨치세요. 하고 빌었습니다.
백년의 외로움을 견디고 계세요. 곧 따라갈게요. 하고 위로했습니다. 그 말이 제게도 위로가 되었는지 눈물 마저 메말라버린 줄 알았는데 그제서야 저도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리더군요. 제수인 제가 그의 얼굴을 닦아도 눈여겨 보며 이상히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서늘한 체념으로 누가 보고 이상하게 여겨도 신경쓸 여력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관에 못질을 하기 직전에 감당할 수 없는 슬픔으로 제 팔목의 묵주를 유일한 마음처럼 넣어 주었습니다.
이윽고 그의 시신이 담긴 목관이 영구차에 실리고 우린 화장터로 향했습니다. 화장터로 버스가 달릴 때 워낙 먼 거리라 나는 이 버스가 지구 끝까지 가는 게 아닐까, 쏟아지는 잠 속에 그런 생각만 했었지요.
눈을 뜨면 멀리 고깃배들이 떠다니는 바다가 보였다가 솟구친 대지와 건물 사이로 사라지곤 했습니다. 자자연의 정취는 그토록 고요하고 향기로운데 이 모든 것이 무의식이구나 싶더군요. '난 지금 뭔가에 홀린 거다. 꿈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현실이 꿈이다. 절망의 물결로 보이는 이 모든 것이 공허와 허무다. 그래서 꿈이다.' 저는 악몽을 털어 버릴 듯, 꿈속에서까지 꿈이라고 자신에게 속삭였습니다.
남편은 말없는 정우를 마치 마피아 보스처럼 맹종하고 따랐었지요. 화장터에서 그에게 직접 형의 시신에 불을 지피라고 하자, 그는 그만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미친듯이 흐르는 불길 속에 시체가 타는 것을 남편과 저는 정승처럼 서서 지켜보았습니다. 꽃은 피었다가 지고 계절은 불현듯 왔다가 가지요. 속절없이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허무하고 허무하더군요. 남편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불구덩이에서 나온 형의 뼈들을 절구통에 넣어 빻았습니다.
그의 유해는 시모가 다니는 서울 근교의 절의 납골당에 안치하기로 했었지요. 시모는 장례 전까지 꼬박 삼 일을 목놓아 울더니 시숙 정식과 생명보험 회사와의 분쟁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일찍 남편과 사별한 시모는 아들 셋만 두었는데 애석하게도 죽은 둘째 아들을 가장 사랑했었지요. 우리 일행이 화장터에서 나와 막 서울로 돌아가려고 차에 몸을 실었을 때, 남편의 맏형 정식이 휑한 눈으로 급하게 달려와서 막았습니다. 시모와 올케가 탄 차는 이미 출발한 후였습
니다
그는 남편을 구석으로 데려가 뭐라고 소근대더니 시숙 정식이 피곤한 눈을 깜박이며 저를 보자고 했습니다. 그는 특유의 건조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정우를 납골당에 안치하는 것도 그렇고 그냥 바다에 뿌립시다. 아마 정우도 그렇게 해 주길 원했을 겁니다. 납골당에 두면 두고두고 떠올라 힘들테니 멀리 떠나게 여기에 뿌리는 게 좋겠어요. 제수씨."
그래서 우리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를 달려 대진 포구의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그대 이별을 할 땐 쨍쨍한 햇살 아래 떠나라' 는 신세대 유행가 가사가 노상 머릿속에서 빙빙 돌더군요.왜 이 노래가 자꾸 머릿속에 맴도는지 모르겠다고, 저는 줄곧 그런 생각만 했습니다. 충격에 빠진 남편은 격랑의 바다로 차를 몰고 들어갈 듯 난폭하게 차를 운전하고 가더니 어느 것에 이르러 갑자기 차를 길가에 세웠어요. 그곳은 시숙 정우가 교통사고를 당한 장소였습니다. 그곳엔 하얀 페인트로 사고 위치가 표시돼 있었고 부서진 차에서 흘러내린 듯한 기름 자욱이 사고 당시의 처참함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몇 안되는 아이들이 백사장에서 뛰어 놀고 있더군요. 쓰러질 듯 초라한 구멍 가게의 담벼락을 뒤로하고 바다 내음이 한껏 물려왔습니다. 그는 여기서 무슨 생각을 했으며 마지막을 알고 저 바다를 보았을까 싶
더군요. 그의 고통의 무게가 철썩대는 파도의 토막처럼 안겨왔습니다.
우리는 준비해 간 술과 안주를 놓고 약식의 노제를 지냈습니다. 정식은 남은 술을 도로 여기저기에 뿌리고 다시 차에 오르는데 안타깝고 비통한 낯빛이 가득하더군요. 그는 동생에게 잘 해주지 못한 지난날을 떠올리고 있는 듯 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대진 포구에 이르러 통통배를 빌렸습니다.
"당신은 여기서 쉬고 있어.....당장 쓰러질 것 같네."
남편 정태가 정식과 제 눈치를 살피며 말하더군요.
"아니야. 나도 갈래...."
남편의 만류를 뿌리치고 같이 배를 타고 바다 가운데로 나갔습니다. 파도는 끝도 없이 무심히 출렁거리고 갈매기는 흐느껴 울듯 끼룩거렸어요. 슬프도록 아름다운 푸른빛이었습니다. 당신은 죽고 없는데 새상은 이토록 아름답다. 우리는 한시바삐 지옥에서 빠져 나오려는 사람 들처럼 빨리 일을 끝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여름 오후의 하늘에 구름은 낮게 드리워져 있었고 그 하늘은 바다를 빨아 들이고 자꾸만 달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드문드문 떠 있는 먼 곳 배들이 바다를 떠나 하늘로 안개처럼 사라져버릴 것처럼 보이기도 하더군요. 정식은 마치 곱게 빻아진 뼈 가루를 맨손으로 꼭 쥐었다가 놓기를 수 차례 반복하고 있었지요. 바닷 물에 떠다니는 빼가루는 플랑크톤이 먹고 그 플랑크톤을 물고기가 먹고 그 물고기를 또 인간이 먹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뼈 가루를 뿌리자, 수리수리, 바닷물은 찬찬히 푸른 빛으로 흐르더군요. 저도 그 뼛가루를 한줌 손에 쥐어들고 흩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곳에 가세요. 서른 몇 해의 생애 다 버리고 가세요.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미련 없이 그만 가는 거예요......"
세상의 고민을 홀로 떠 안은 사람처럼 고뇌에 찬 남편 앞에서 저 혼자 울어대는 풀벌레처럼 저는 낮게 정신없이 중얼거렸습니다. 바닷물에 머리가 차가워지기 시작하며 심장의 쿵쾅거림도 줄었습니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서른 여섯 해의 일생이 뼈 가루로 돌아오다니. 물끄러미 강물을 바라보고있었지요.
"당신이 나를 잊는 건 싫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그런 환청이 들려 왔습니다. 참으로 불가사한 일이었습니다. 분명히 저는 그런 소릴 들었던 것입니다. 놀라서 남편을 바라보게 되더군요. 그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는지 묵묵히 강물을 보고 있었지요. 비상식적인 엄청난 일이 일어나자 남편 정태는 유해를 뿌리는 동안 시종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습니다. 아직 앳되 보이는 맑은 눈이 바닷물에 빠질듯 뚫어지게 바라보는 모습이 투명인간 같았습니다.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도로를 달릴 때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히끗히끗 꼬리를 흘리고 사라지는 불빛이 제게는 잠시 시야에 잡혔던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시 꾸려고 애써 보아도 결코 되풀이되지 않는 꿈 말이에요. 남편은 운전대를 잡고 차를 달리면서도 내내 얼이 빠진 사람 같았습니다. 정식은 일치르느라 무척 고단했는지 어느 덧 잠이 들어 있었어요. 추풍령을 지나서야 남편이 겨우 입을 열더군요.
"형이 말이야. 사고가 아니고...... 자살을 했다고 생각지 않아? 보험사에서 자살이라고 하는데 나도 사실 그런 생각이 참 많아. 자살 같아."
큰 불덩이가 가슴에 날아와 박히는, 깊이를 저울질 할 수 없는 끝없는 슬픔과 허허로움을 잊으려고 애를 쓰는데 남편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살이 분명하다고.
"자살......"
저는 이미 서늘하게 굳은 심장으로 조용히 단어를 되씹듯 되뇌어 보았을 겁니다. 자살. 그 단어가 번민과 고통의 혼불처럼 펄럭거리더군요.
"응. 형이 사는 것에 대해 얼마나 진지했는지 당신도 알 거야. 나만큼 형을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술을 마시고 운전을 그렇게 난폭하게 할리가 없다구. 그리고 미리 생명보험을 넣어 둔 것도 맘에 걸려. 왜 생명 보험을 넣어뒀을까. 정말 이상해......"
전 그때 생각했습니다. 그가 자살을 했다면 자살을 죄악시 느끼지 못할 만큼 강한 도덕적 통제의 결여에 의한, 가혹한 슬픔에 못이긴 애타적 자살일거라고......